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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충북 보은] 대곡 성운(大谷 成運) 묘소

장안봉(微山) 2012. 12. 14. 22:41

대곡 성운(大谷 成運)

 

1497(연산군 3)∼1579(선조 12).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숙(健叔), 호는 대곡(大谷).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 세준(世俊)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비안박씨(比安朴氏)로 사간 효원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 진사에 합격, 1545년(명종 즉위년) 그의 형이 을사사화로 화를 입자 보은 속리산에 은거하였다.

그 뒤 참봉ㆍ도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선조 때도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은둔과 불교적 취향을 드러낸 시를 많이 남기고 있다. 서경덕(徐敬德)ㆍ조식(曺植)ㆍ이지함(李之菡) 등과 교유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가 죽자 선조가 제문을 내려 애도하였으며, 뒤에 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대곡집』 3권 1책이 있다.

 

 

 

대곡 성운 신도비각

 

 

대곡 성운의 묘

 

대곡 성운 묘비-中訓大夫守司宰監正成公之墓/袝葬淑人慶州金氏

대곡 성운의 묘갈-우계 성혼이 지었다

 

일구당 김가기(一丘堂 金可幾)

 

1537년(중종 32)∼1597년(선조 3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원(士元), 호는 일구당(一丘堂).

부사직(副司直) 김벽(金碧)의 손자로, 아버지는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지낸 통훈대부(通訓大夫) 김천우(金天宇)이다. 스승 성운(成運)이 아들이 없어 조카사위인 그를 후사로 삼았다.

1579년(선조 12) 기묘식년사마시(己卯式年司馬試) 생원(生員) 1등에 합격하여 노성현감(魯城縣監)을 지냈다. 그 후 성운의 문집 편찬에 몰두하던 중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마을에 침입한 왜적과 맞서 대항하다가 순절하였다. 당시 부인 전주유씨(全州柳氏)는 남편을 구하려다 순절하였고, 며느리 고령신씨(高靈申氏)도 피난 중 왜적을 만나 자결하여 일가 셋이 한 날 순절하였다.

1598년(선조 31)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에 증직되고, 유씨 부인숙부인(淑夫人)으로 추증되었으며 며느리 고령신씨(高靈申氏)는 정려가 내려졌다.

그가 수집하여 간행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성운의 문집은 1603년(선조 36) 아들 김덕민(金德民)유근(柳根) 등과 함께 《대곡집(大谷集)》으로 간행하였다.

 

김가기의 묘- 대곡 성운의 묘 아래에 위치한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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