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군 이희경(晋川君 李喜慶, 1591년 ~ 1664년)
신묘(辛卯) 1591년(선조 24) 4월 26일 익성군 이향령(益城君 李享齡)과 진주군부인 소씨(晋州郡夫人 蘇氏)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군수(郡守) 진주인(晋州人) 소수(蘇遂)이다. 초수 진천부정(晋川副正)에 책봉되었고, 하빈인(河濱人) 이정기(李挺期)의 딸로 현부인 하빈이씨(縣夫人 河濱李氏)를 아내로 맞았다.
1612년(광해 4) 대북파가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김직재 옥사(金直哉 獄事, 임자옥사) 때 동복동생 진릉군 이태경(晋陵君 李泰慶)을 왕으로 추대하였다는 대북파 이이첨(李爾瞻)의 모함을 받아 이때 온 가족이 연좌되어 정배되고, 진천군은 사천(泗川)에 정배되었다.
인조 즉위 후 신원되고, 진천도정(晋川都正)에 책봉되었다. 1637년(인조 15) 12월 14일 숙녕전(肅寧殿) 입번(入番)한 공로로 가자되어 이해 12월 15일 정의대부(正義大夫) 진천군(晋川君)에 가자되었다.
1651년(효종 2) 1월 10일 오위도총부 부총관(副摠管)에 제수되고, 1656년(효종 7) 7월 13일 종부시(宗簿寺)에서 거둥과 공회(公會) 때 진참(進參)하지 않았다고 청하여 파직되었다가 이해 12월 2일 서용(敍用)되었다.
갑진(甲辰) 1664년(현종 5) 11월 26일 향년 74세로 별세하여, 충남 논산시 은진면 선영 해좌로 예장하였다.
진릉군 이태경(晋陵君 李泰慶, 1594년 ~ 1612년)
덕흥대원군의 증손이며, 선조의 백형 하원군 의헌공 이정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익성군(益城君) 이향령(李亨齡)이며, 어머니는 군수(郡守) 진주인(晋州人) 소수(蘇遂)의 딸로 진주군부인 소씨(晋州郡夫人 蘇氏)이다. 선조의 6왕자 순화군(順和君) 이보(李王+土)에게 입양되었다가 파양되었다.
부인은 문과(文科) 연일인(延日人) 정사(鄭泗)의 딸이다.
익성군 3남으로 1594년 8월 18일생으로 탄생하여 1609년(광해군 1) 진릉군(晋陵君)에 봉하여졌다. 1612년에 대북파는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지지하던 소북파를 제거하려고 무옥을 일으켰다.
황해도 봉산군수 신률(申慄)은 병역을 피하려다 붙잡힌 김경립(金景立)을 체포하여 유팽석(柳彭錫)을 시켜서 무옥을 꾸미게 하였다.
김경립은 이들이 꾸민 각본에 따라 아버지 김직재(金直哉)의 실직(失職)에 불만을 품은 김백함(金百緘)을 모역의 주모자라고 허위자백하였다. 이로써 김직재·김백함 부자와 김직재의 사위 황보신(皇甫信) 등이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김백함 자신이 모역의 주모자라고 허위자백하면서, 그들이 왕으로 추대한 인물은 진릉군 이태경이라고 진술하였다.
광해군은 당시에 순화군의 장인인 황혁(黃赫)이 신천(新川)에 적거(謫居)하고 있었기에 진릉군이 역모에 가담된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역모죄로 다스렸다. 그리하여 그는 절도에 위리안치되고, 1612년 10월 28일 향년 19세로 사사(賜死)되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도 연좌되어 형 진산군(晋山君) 이순경(順慶)은 강진에, 형 진천군(晋川君) 이희경(李喜慶)은 사천에, 동생 진평부정(晋平副正) 이승경(李承慶)은 흥양에, 이복동생 양평수(楊平守) 이득경(李得慶)은 이산(理山)에 각각 정배되었다.
묘소는 충남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 산 93-3 아버지 익성군묘역 내에 있다.
진릉군의 묘(좌)와 진평부정의 묘(우) 전경
진평부정 이승경(晋平副正 李承慶, 1598년 ∼ 1658년)
조선중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 휘는 승경(承慶)이다. 덕흥대원군의 증손이며, 선조의 백형 하원군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익성군 이향령(益城君 李享齡)이고, 어머니는 군수(郡守) 진주인(晋州人) 소수(蘇遂)의 딸로 진주군부인 소씨(晋州郡夫人 蘇氏)이다.
부인은 감역(監役) 부안인(扶安人) 임영(林英)의 딸로 신인 부안임씨(愼人 扶安林氏)이다.
익성군의 4남으로 무술(戊戌) 1598년(선조 31) 4월 17일 탄생하였다. 진평부정(晋平副正)에 책봉되었다.
1612년(광해 4) 대북파가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김직재 옥사(金直哉 獄事, 임자옥사) 때 동복형 진릉군 이태경(晋陵君 李泰慶)을 왕으로 추대하였다는 대북파 이이첨(李爾瞻)의 모함을 받아 이때 온 가족이 연좌되어 정배되고, 진평부정은 흥양(興陽)에 정배되었다.
인조 즉위 후 신원되고, 1639년(인조 17) 6월 5일 창선대부(彰善大夫) 진평부정(晋平副正)에 책봉되었다.
1641년(인조 19) 12월 2일 파직되었다가 서용(敍用)되고, 무술(戊戌) 1658년(효종 9) 12월 23일 향년 61세로 별세하여 충남 논산시 은진면 선영 해좌에 예장하였다.
진계부정 이윤경(晋溪副正 李潤慶, 1604년 ∼ 1648년)
조선중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 휘는 윤경(潤慶)이다. 덕흥대원군의 증손이며, 선조의 백형 하원군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익성군 이향령(益城君 李享齡)이고, 어머니는 군수(郡守) 진주인(晋州人) 소수(蘇遂)의 딸로 진주군부인 소씨(晋州郡夫人 蘇氏)이다.
부인은 동지(同知) 광주인(光州人) 김명세(金命世)의 딸로 신인 광주김씨(愼人 光州金氏)이다.
익성군의 7남으로 갑진(甲辰) 1604년(선조 37) 12월 17일 탄생하였다. 진계부정(晋溪副正)에 책봉되고, 1612년(광해 4) 대북파가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김직재 옥사(金直哉 獄事, 임자옥사) 때 동복형 진릉군 이태경(晋陵君 李泰慶)을 왕으로 추대하였다는 대북파 이이첨(李爾瞻)의 모함을 받아 이때 온 가족이 연좌되어 정배되고, 진계부정은 나이가 어리다고, 바로 정배하지 않고, 성장한 후 정배하라 하였다.
인조 즉위 후에 신원되고, 1625년(인조 3) 8월 29일 인조가 사묘(私廟)에 친제(親祭)할 때 이유없이 수가(隨駕)에 나오지 않았다고 종부시(宗簿寺)에서 추고(推考)를 청하였다.
1639년(인조 17) 7월 11일 관직을 제수받고, 1641년(인조 19) 12월 2일 파직되었다가 서용(敍用)되었다. 창선대부(彰善大夫)에 가자되고, 무자(戊子) 1648년(인조 26) 6월 13일 향년 45세로 별세하여 충남 논산시 은진면 선영 백호 해좌에 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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