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형세론과형국론)

[스크랩] 경북도청 예정지 풍수관 (지종학선생님 글)

장안봉(微山) 2013. 2. 2. 14:43

경북도청 입지의 재점검
풍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혈처이다. 제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할
지라도 혈처에 들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러한 까닭에 毫釐之差 禍福千里라 강
조했던 것이다.
혈처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주산인데, 주산은 그 땅의 성격을 규정지으며 정확
한 위치와 좌향의 기준을 제시한다.
따라서 주산만 올바르게 판단한다면 풍수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이러한 주산은 母體山이기 때문에 주산
의 외면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모습이 되어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된다.
주산의 불리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경복궁과 청와대인데, 북악산의 외면이
라는 치명적 결함은 그곳에 입주하는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반영되어 반복적인 수
난과 수모로 나타나고 있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이에 필자는 청와대 이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함을 피력한 바 있다.

 
 
참고로 경복궁과 청와대를 거쳐 간 제왕들의 면면을 간단히 살펴보겠다.

 
각설하고 현재 대구에 있는 경북도청을 안동·예천 검무산 아래로 2014년까지 이
전하기로 하였다. 이전 이유는 경북의 전체적인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전 후보지는 당연히 정치 경제 환경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겠
지만, 반면 지리적 점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풍수논리로 보면 땅은 거짓이 없고
또 용서도 없음을 통렬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경북도청 입지에 관해 세부
적으로 점검해 보고자 한다.

검무산의 면배와 도청입지(지당마을)




 
청사진에서 보듯이 경북도청의 주 건물은 검무산을 기준점으로 입지를 정했다.
이는 현재의 청와대가 북악산과 삼각점을 이루는 지점에 입지한 것을 모방한 것으
로 매우 잘못된 전철을 밟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북악산은 머리를 왼쪽으로 향하면서 경복궁과 청와대를 노골적으로 외면하고
있는데, 검무산 또한 왼쪽으로 머리를 꼬아 도청사를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
를 초래한 것은 산의 내면적 성품까지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산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려는 단편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흥준 前문화
재청장의 글이 생각난다.


 
검무산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혈처는 주변 모든 것들로부터 덩달아 업신여김을
당한다. 특히 위성사진으로 보는 검무산은 좌우 날개를 뒤로 젖히고 있어 혈처를
 감싸주려는 마음이 전혀 없음을 볼 수 있다.
좌측의 깊은 골짜기에서는 골바람이 형성되고, 龍虎는 뒤집어지듯 反背하고 있으
며, 좌우측 물은 도청 앞에서 합수되어 1km를 直去水로 빠지고 있다.
주민들도 그 점이 마땅치 않았는지 논의 한 가운데에 나무를 심어 물 빠짐을 방비
하고자 했으나 역부족이다.

 
한편 청룡에 해당되는 井山도 혈처를 외면하고 있으며, 정산의 산 끝은 여자못까
지 물 빠짐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즉 三谷風이 마주치는 꼭짓점에 도청이 입지함으로서 스스로 풍파가 많은 땅을 선
택하고 말았으니, 藏風得水라는 풍수의 가장 기본적 원칙조차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입지를 정한 것은 순전히 과시하기 위한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전
형적인 관료주의의 전시행정으로 보인다.

 
(청룡어깨의 허함과 정산)
 
이곳과 흡사한 지형이 익산 미륵사지이다. 미륵사는 주산인 미륵산(용화산)을 기
준으로 배치하였으나 이곳처럼 주산과의 배치만을 고려한 겉치레 구도 때문에 물
의 直去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곳은 마한의 수도였지만 백제에게 합병 당하고, 백제 무왕 때 건립된 미륵사는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또 견훤은 이곳을 궁궐로 삼아 왕건과 자웅을 겨
루었으나, 그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즉 미륵사지는 어떠한 영웅도 입지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한 실패한 땅인 것인
데, 이곳 검무산 경북도청의 입지가 그러한 것이다.
미륵사지 바로 옆에는 전라북도 교육연수원이 미륵사지와 똑 같이 처연하게 빠지
는 물을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으니, 어찌 우리의 공직자들은 하나같이 사고가 비
슷한지 모르겠다.

땅의 역사
도청이 입지하는 지당마을에는 향교나 서원, 고택이 전혀 없다.
옛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곳이 작금에 이르러 명당으로 둔갑한 것은 어인 일
인가.
땅이 변했는가?
풍수가 바뀌었는가?
세종시와 같은 전철을 똑 같이 밟고 있음이다.

비보의 한계
몇몇 풍수인들이 이러한 불리함을 거론하며, 여러 가지 비보할 것을 2011년 영남
대세미나에서 지적하였다.(박재락, 정백균)
그러나 비보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지 지금과 같은 총체적인 부
실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특히 검무산의 외면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결함이다.
주산의 외면에 따른 폐해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적나라하게 경험한 바 있으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불협화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현재의 입지와 비교
現경북도청 입지는 멀리 앞산에서 이어져 고개를 크게 180도 돌려 다시 앞산을 바
라보는 형태로 回龍顧祖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청까지 이어지는 來龍은 크게 상하로 꿈틀거리며, 도청 앞에서는 신천이 굽이쳐
들어오는 형태로 매우 귀한 朝水의 땅이 되었다. 반면 새로운 도청의 입지는 물이
빠지는 곳이니, 현재와 미래의 경북도청은 정반대의 땅이 되고 말았다.
개인 묘지를 이장할 때도 새로운 자리가 낫지 않으면 이장을 하지 않는 법이거늘
중차대한 국가기관에 있어서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풍수의 들러리
경상북도에서는 이미 안동·예천으로의 도청입지를 결정한 뒤에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풍수를 이용하였다고 생각할 수뿐이 없다.
만약 진정성이 있었다면 사업구상단계부터 복수의 풍수인이 참여하여 함께 고민
해야 했다. 이 또한 세종시와 같은 전철인데, 언제까지 풍수를 정치의 꼭두각시로
이용할 것인가?
도선께서 輔國安民의 마음으로 행했던 거룩한 풍수가 어쩌다가 이토록 비굴하게
전락했는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완점 제시
이상과 같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보았다. 그러나 이미 도청이전이 확정된 마
당에 더 이상의 문제제기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니 중언하지 않겠다.
단 현재의 지역에서 최선의 방법을 도모함은 국가의 祿을 받는 공직자의 당연한
책무이며, 경북도민을 위한 百年之計라고 생각한다.
이에 보완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양광마을

 
위성사진으로 보는 검무산은 고개를 동쪽으로 돌려 양광마을을 응시하며, 양 날개
로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주산의 보살핌을 받는 양광마을에
도청사가 입지해야 한다.

風&水
이곳은 오목한 와혈의 형태를 하고 있어 전후좌우 바람의 우려가 전혀 없으며, 물
의 直去를 염려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마을 뒤편 사과나무 과수원에 오르면 매우
아늑한 것을 느낄 수 있다.



 
明堂
이곳은 지당마을에 비해 명당이 좁은 것이 불만스럽지만, 그 또한 경복궁이 명당
이 넓은 것을 탐해 수많은 불화를 초래한 것을 생각한다면 명당의 크고 작음은 아
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귀의 땅은 內·外명당을 만든다는 것을 고려하면, 양광마을에서는 갈전리
에서 여자못까지 이르는 넓은 뜰을 외명당으로 거느리게 되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양광마을의 朝案

物形으로 보는 立地
原案인 지당마을에서는 사나운 매가 놀라서 펄쩍 뛰는 땅이 되었으나, 이곳 양광
마을에서는 용맹스런 매가 기뻐서 춤추는 勇鷹舞喜(용응무희)의 땅이 되었다.
지극히 작은 차이로 성격이 180도 달라졌으니 정확한 혈처의 중요함이다.

결론
이상의 각론을 상대평가로 비교해 보면 거의 전 항목에 걸쳐 양광마을의 입지가
지당마을에 비해 우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경북도청의 주 건물은 양광마을에 입지해야 한다.
물론 계획의 변경은 적지 않은 차질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경북도민을 위한 백
년대계이므로 그 정도의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청사에 근무하는 공직자의 문제뿐 아니라
경북도민 전체와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좌우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므로,
이는 반드시 공론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가곡리 佳日마을
이번 사업 예정지에서 빠졌지만 인근에 위치한 가곡리 가일마을의 입지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세종 때 정랑을 지낸 권항(權恒)을 입향조로 하는 안동권씨
집성촌이며, 500년을 이어온 전통마을이다.
현재 이 마을에는 몇 채의 고택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도시인들의 고
택체험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곳의 주산 정산은 마을 밖에서 보았을 때는 탐랑목체로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지만, 마을 안에서는 단아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으니, 전형적인 內
柔外剛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정산에서 이어진 용호는 가지런히 마을을 감싸주면서 이곳 또한 전형적인 와형을
이루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저수지를 조성해 수기의 누출을 비보하고 있으며, 그
것으로도 부족해 3그루의 고목이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건너편에는 넓은 풍산 뜰을 확보하고 있으니 마치 구례 운조루 경주
양동마을의 지세와 흡사한데, 마을 전체가 풍수논리에 의해 형성된 아름다운 명당
이 아닐 수 없다.
이 복스러운 땅이 경북도청 이전 계획구역에서 빠진 것이 잘된 것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빼어난 명당은 풍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으로 옛사람들
의 擇地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곳에서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는데, 모처럼 풍수를 공부한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뉘라서 풍수가 미신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참고로 3곳의 입지를 상대평가로 비교해 보았다.


출처 : 실상풍수지리
글쓴이 : 이동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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