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尹瓘]장군
?∼1111(예종 6). 고려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동현(同玄),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북진 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졌다. 파평 윤씨의 시조이자 고려 개국공신 윤신달(尹莘達)의 5세손이며, 아버지 윤집형(尹執衡)은 검교 소부 소감을 지냈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습유(拾遺)ㆍ보궐(補闕) 등을 거쳤으며, 좌사낭중(佐司郞中)으로 요나라에 파견되어 숙종의 즉위를 알리기도 했다. 이후 추밀원 지주사, 어사대부, 이부상서, 한림학사 등을 거쳐 1104년(숙종 9) 동북면 행영병마도통사(東北面行營兵馬都統使)가 되어 여진을 정벌하다가 실패하나 강화를 맺고 돌아온다. 이후 그는 여진 토벌을 위한 군대를 양성할 것을 주장하여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하게 된다.
1107년(예종 2) 여진 정벌군의 원수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이끌고 출진하여 여진을 평정하고, 이때 함주(咸州)ㆍ영주(英州)ㆍ웅주(雄州)ㆍ복주(福州)ㆍ길주(吉州)ㆍ공험진(公嶮鎭)ㆍ숭녕(崇寧)ㆍ통태(通泰)ㆍ진양(眞陽)에 9성을 쌓고 돌아온다. 그 공으로 추충좌리평융척지진국공신(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ㆍ문하시중(門下侍中)ㆍ상서이부판사(尙書吏部判事)ㆍ군국중지사(軍國重知事)가 된다. 그 뒤 여진이 강화를 요청해오자, 조정은 9성을 지키기 어렵다 하여 여진에게 돌려준다.
윤관이 예종에게 신임을 받는 것을 질투한 관리들이 그를 비방하여 여진의 침범을 막지 못한 죄로 벼슬을 빼앗기고 공신호마저 삭탈되었으나, 예종의 비호로 복관된다. 1110년 수태보(守太保)ㆍ문하시중(門下侍中), 병부판사(兵部判事) 상주국 감수국사(上柱國 監修國史)로 임명된다. 그는 사퇴를 청하였으나 예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111년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경(文敬)이었으나 인종 때 문숙공(文肅公)으로 고쳤다. 1130년(인종 8)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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