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신라 제29대 왕으로 김유신 등에게 5만의 군사를 주고 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당의 율령제도를 모방한 관료체계를 정비하고 구서당이라는 9개 군단(軍團)을 설치하는 등 왕권을 확립하였다.
성 김(金). 휘 춘추(春秋). 진지왕의 손자. 이찬(伊飡) 용춘(龍春:龍樹)의 아들.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金氏). 무열왕(武烈王)이라고도 한다. 642년(선덕여왕 11) 백제의 침입으로 대야성(大耶城)이 함락되고 사위인 성주(城主) 품석(品釋)이 죽음을 당하자, 고구려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치고자 연개소문(淵蓋蘇文)을 만났으나, 국경의 영토문제로 감금당했다가 돌아왔다. 웅변에 능하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서 사신으로 일본과 당(唐)나라에 다녀왔으며, 특히 당나라에는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군사원조까지 약속받아 삼국통일의 토대를 닦았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진골(眞骨)의 신분으로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함으로써 신라 최초의 진골출신 왕이 되었다. 즉위 후 이방부령(理方府令) 양수(良守)에게 명하여 율령(律令)을 상정(詳定)하게 하고 이방부격(理方府格) 60여 조를 제정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당나라와 계속 친교를 맺어 깊은 신뢰를 얻고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신라왕(新羅王)에 책봉되었다.
660년(무열왕 7) 당나라에 청원하여 당나라가 백제 정벌의 대군을 파견하자, 왕자 법민(法敏:文武王)과 김유신 등에게 5만의 군사를 주어 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이듬해 백제 부흥군을 격파하고, 이어 고구려 정벌의 군사를 일으키다가 죽었다.
그의 재위기간에 신라 왕권의 전제화(專制化)가 확립되었고, 또한 크게 성장한 귀족세력을 중심으로 당나라의 율령제도(律令制度)를 모방한 관료체계가 정비되었으며, 구서당(九誓幢)이라는 9개 군단(軍團)의 설치로 군사조직이 강화되는 등 본격적인 국가체제가 확립되었다. 또, 김유신의 매부(妹夫)가 됨으로써 경주김씨 왕실과 김해김씨와의 결합이 이루어졌고, 그의 직계자손으로 8대가 계속됨으로써 120년 동안 정치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김인문(金仁問)
자 인수(仁壽).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 문무왕의 아우. 651년(진덕여왕 5)에 왕명으로 당(唐)나라에 가서 숙위(宿衛)하여 좌령군위장군(左領軍衛將軍)이 되고 653년에 귀국하여 압독주총관(押督州摠管)이 되어 장산성(獐山城)을 쌓고,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뒤에 당나라에 파견되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조직에 성공했고, 660년(태종무열왕 7) 신구도행군부대총관(神丘道行軍副大摠管)으로 소정방(蘇定方)과 연합하여 백제(百濟)를 멸망시켰고, 파진찬(波珍湌)·각간(角干)으로 승진되어 당나라에 머물렀다.
665년(문무왕 5년) 숙위하던 김문왕(金文王)이 죽자, 제5차로 당나라에 가서 숙위하였고, 666년에 당나라 고종(高宗)으로부터 우효위대장군(右驍衛大將軍)에 임명되고, 668년(문무왕 8)에 귀국하여 20만 군사를 동원, 당군(唐軍)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679년(문무왕 19)에는 당경(唐京)에 머물면서, 진군대장군행우무위위대장군(鎭軍大將軍行右武威衛大將軍)이 되었다. 690년(신문왕 10) 보국대장군상주국임해군개국공좌우림군장군(輔國大將軍上柱國臨海郡開國公左羽林軍將軍)이 되고, 694년(효소왕 3) 당경(唐京)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영구는 신라에 호송되고 효소왕으로부터 태대각간(太大角干)이 추증(追贈)되었다. 유학의 대가로도 이름을 떨쳤고, 사어(射御) ·향악(鄕樂) ·예서(隸書)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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