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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시 번역의 구성과 표현

장안봉(微山) 2016. 10. 2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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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번역의 구성과 표현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목차】
1. 한시의 번역을 어떻게 볼 것인가?
2. 한시의 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3. 한시 번역의 구성과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
 1) 한시 번역에 있어서 원의 구현의 3가지 중요한 방향과 그 예시
   가. 역문의 구사를 잘해야 빛이 나는 시
   나. 주석을 잘 달아야 빛이 나는 시
   다. 해설을 잘 해야 빛이 나는 시
 2) 한시 번역의 구성과 표현에 있어 4가지 중요한 명제와 그 예시
   가. 본문에 중심 가치에 대한 설명 필요
   나. 주석에 역자의 번역 근거와 감상 개진
   다. 참고 자료의 정리
   라. 번역서에 역자의 견해 진술
4. 역자의 자율성을 어떻게 보장하고 조절할 것인가?
5. 결어



1. 한시의 번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나라 한문 국역계도 이제 현대어 번역을 시작한 지 대략 50년 정도 되었다.1) 그동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여러 악조건 속에서 많은 성과를 낸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영어나 일어 등의 외국어를 한국어로 유려하게 번역하는 것에 비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느껴진다. 이는 얼핏 보면 번역문의 구문에 따른 것으로 보여 많은 역자나 연구가들이 대체로 구문론적 접근을 통한 직역과 의역이라는 틀에서 논의를 전개해 왔다.


우리의 정신 유산은 한문을 통해 오랫동안 축적되어 왔다. 한문이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실생활에 사용되는 文言文일 뿐만 아니라 교양인들이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던 말들이기도 했다. 시조나 가사 등 한글 표기가 우세한 문학 작품이나 家學의 전통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난 분들의 회고를 통해 알 수 있다.

한문 속에 담긴 내용이 실제로 존재했던 우리의 문화라는 것이 한문의 번역이 다른 외국어의 번역과 구별되는 매우 근원적인 차이이다.2)


특히 한시는 그 시적 전통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형태나 미학적 원리가 현대시와 통하는 보편성도 있지만 다른 점이 아주 많다. 가령 시를 통한 사교라든가, 외교 활동, 과거를 통한 출세, 만사나 축시, 제문, 묘도문 등에 보이는 각종 실용적 기능은 현대시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중요한 특질이다.


뿐만 아니라 시가 창조된 공간과 배경은 물론이고 문화 습관, 의식 체계, 정신 지향 등이 현대 독자들의 가치관이나 의식 구조, 경험을 통해 축적된 감수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그 시의 구절구절을 아무리 언어적 조탁 능력이 특출한 사람이 번역한다 하더라도 그 한시에 담겨 있는 원의와 환기하는 정서, 그리고 언어 표현의 미감을 제대로 전달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한국고전번역원 (이하 : 번역원)에서 주로 수행하는 전집 형태의 번역은 현대의 독자들에게 바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적고 여러 가공 단계를 거치거나 각종 연구 자료로 활용될만한 것들이 많다. 이러한 번역에 대해서 시는 시답게 번역해야 한다든지 번역문만으로 웬만한 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해하도록 번역해야 한다는 논의는 매우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시중에 출간되는 한시 관련 서적을 보면 비교적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시들이나 현대인의 기호에 맞는 시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언급이 있지만, 이처럼 실용적 특징이 강하거나 학문적 깊이가 심오한 것 등에 대해서는 그 출판 여건상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이런 시들은 대중의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데 반해, 실제로 문집에는 이러한 시들이 상당량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글은 바로 이러한 한시 번역과 관련한 문제를 보다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하여 한문 번역자의 입장에서 다른 번역자 및 연구자는 물론이고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적절한 토론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필자는 이번 글에서는 한시 번역의 구성과 표현에 대해 문제 제기 형식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차후에 개별 각론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해 볼 계획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고전번역을 주도하고 있는 번역원을 위시한 공공성을 띤 번역을 위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만, 굳이 일반 번역을 배제하지는 않고 이글을 전개한다.


1)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가 한국 고전의 번역을 주요 사업으로 삼아 1965년 11월에 설립되었고, 1966년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1권과 2권을 번역하면서 그 서막을 열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2007년 12월에 정부출연기관의 형태로 개원하였는데, 그 이전까지의 연혁과 사업 개황을 사진 자료와 함께 《민족문화추진회 42년사》(2008)에 정리해 두었고, 2010년도에는 《고전번역연감》을 발행하여 우리나라 고전번역의 개관과 각종 통계, 그리고 해방 이후 주요 고전에 대한 연표와 간행 목록 등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신승운은《民族文化 제28집》(2005)에 실린 〈韓國에서의 古典籍 整理事業 현황과 과제〉 등을 통하여 해방 이후 고전번역의 현황과 古典籍의 정리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한편 고전번역원 메인DB 화면의 <고전번역서서지정보검색>에서도 해방 후 국역서의 기초 정보를 서명, 저자, 역자 등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한시 번역에 한정하여 통계를 낸 자료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위에 언급한 자료를 열람하면 그 전체적인 흐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 독일의 철학자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는 번역을 이분법적으로 크게 보아 ‘독자를 저자에게 데리고 가는 것’과 ‘저자를 독자에게 데리고 가는 것’으로 나누었다고 하는데, 한문이 전통시대의 우리 文言이라는 점과 우리의 한문 번역이 단순히 異國의 언어를 우리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할아버지의 말을 우리의 손자에게 알아듣게 전해준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한문 번역은 독자를 저자에게 데리고 가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에게 호평 받고 있는 한시 교양서들도 잘 살펴보면 단순히 우리글로 어떻게 옮겼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저자의 작품에 얼마나 잘 안내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이 말이 곧바로 역문의 우리말 어법 질서와 자연스러운 표현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운운은 이향의 《번역이란 무엇인가》 33쪽에서 인용.



2. 한시의 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그동안 번역원에서 수행한 한시의 번역은 서종과 역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하였지만 여러 책을 꺼내놓고 비교해 보면 시기별, 역자별 차이가 본질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는다.대략 규격화된 틀 속에서 다소간의 양적 차이가 나타나는 편이다. 이는 번역원의 번역이 가진 오래된 관행이기도 한데,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번역원의 번역은 우선 번역문에 주석을 달되, 번역문으로 적절히 구현을 하였을 경우에는 주석을 달지 않고 번역문으로 의사전달이 충분히 되지 않을 경우에 주로 주석을 달고 있다.
시 전체에 대한 배경 설명이나 역자의 의견이나 감상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3) 이는 시중에 나오는 다른 번역서들을 보아도 대체로 비슷한 경향을 띠고 있어 번역원의 번역이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와 달리 일반 교양서로 시중에 출간되어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한시 관련 서적에서 지향하고 있는 점은 이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4) 또 구문의 이해에 치중하여 한 구절 한 구절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시 전체를 읽고 나서 이게 무슨 말인지, 이 시 속에 어떤 가치가 담겨있는지, 알기 어려운 점이 있고, 심지어는 왜 이런 시를 오늘날에 읽을 필요가 있는지,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점도 없지 않다.


오늘날은 전산과 검색 시스템이 발달해 많은 국역서의 용례나 주석을 편리하게 검색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한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려면 책을 들고 읽어나가게 되는데 번역문이 유려하고 주석이 충분히 달려 있음에도 그 작품들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고 또 몇 십장 이상 읽어나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는 오늘날의 한국어 어법에 부자연스럽거나 해당 시구를 잘못 번역하여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한 구절은 큰 무리 없이 번역하였지만 시 한편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 전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면이 있고, 번역서에 역자의 체취가 잘 느껴지지 않고 건조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서투르고 어색한 곳이 있어도 전체적으로 볼 때 역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고 하나의 구절 보다는 한편의 시, 혹은 여러 편의 시가 갖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번역서에서 해설이나 감상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아쉽지만 형식적 특징도 경우에 따라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때가 있는데, 이런 것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은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대체로 역자의 주관적인 생각은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한 것을 주석으로 달거나 번역문으로 구현하고 나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그러나 사료의 번역은 독자에게 그 판단을 맡기는 것도 좋은 방도가 되겠지만 시의 경우에는 독자에게 그 판단을 떠넘기기엔 원작은 물론이고 번역된 한시조차도 독자와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특징이 있다.


사료의 번역은 아주 특수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가 문면에 대부분 노출되어 있다. 아주 교묘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사직 상소나 피혐 상소라 하더라도 몇 십 건만 살펴보면 대략 그들이 말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문집의 산문인 경우도 시대와 작가에 따라 문체나 표현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한문의 일반 문법을 따르고 있어 사서삼경과 기타 관련 서적을 사전에 충실히 숙지하고 있는 역자라면, 해당 저작의 글의 특징이나 문장에 등장하는 고사를 규명하고 전후의 맥락을 잘 따져보면5)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대강의 의사를 큰 무리 없이 번역문과 주석에 담아 전달할 수가 있다.


이에 비해 한시는 해당 시에 적용되어 있는 문법이 일반 산문과 매우 다를 뿐만 아니라 함축적이고 은미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번역문과 주석으로 그 의사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리고 역자가 그 시인의 생각과 정서를 잘 읽어내지 않으면 원의와 상당히 다른 번역문을 구사하여 뜻하지 않게 망신을 당할 우려도 있어, 사실 처음 번역하는 작품에 자신 있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6)


이는 한시가 일반 산문에 비해 기본서의 숙지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시대의 유명 시인의 시를 읽어야 하는 등 선행 지식은 더 많이 필요로 하면서도, 평측이나 운자뿐만 아니라 빈번한 글자와 구문의 도치, 작자에 따른 독특한 언어 구사, 함축과 여운 등 해독의 난점들은 더 많이 있기 때문인데, 작시의 배경과 맥락을 어진간해서는 알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시의 번역을 오역이다, 아니다, 라는 개념 보다는 보다 높은 수준의 이해를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그 과정에 자신이 참여하여 의미 있는 지식의 축적을 해 나간다는 자세로, 번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좀 다르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7)


그리고 시는 객관적으로 딱히 정해진 정답을 제시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때 모호하게 번역해 놓고 그냥 넘어가기 보다는 다소 미숙하다 하더라도 역자의 번역 근거와 견해, 혹은 미비한 점을 적극 번역서에 드러내 후일의 번역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번역 논의에서는 ‘어떻게 번역해야 좋은 번역이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다소 있어 왔지만8) 정작 그 번역을 수행하는 역자의 입장에서 ‘역자가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번역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학술적 행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자가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3) 이에 대한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크게 보아 역자의 지향성, 물리적 조건, 정책적 고려 등을 들 수 있다. 고전번역원의 문집 역자들이 주로 장기간에 걸쳐 사료 번역을 한여 소위 한문 문리를 검증 받은 다음 문집 번역을 하기 때문에,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감상은 배제하고 객관적인 진술이나 근거를 중시하려는 경향을 그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또 대개 일 년 단위의 촉박한 번역 일정과 한 서종을 분책하여 번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역자가 충분히 번역하고 있는 한시를 음미하고 감상하거나 여타 학술적인 考究를 할 물리적인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 시인의 전반적 특징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들 수 있다. 그 외에 번역원의 번역은 통일성을 강조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특징이 있는데, 문헌에 나타난 것으로는 《한국문집표준번역연구 TFT 집담회 정리》(한국고전번역원, 2008.)에 수록된 서정문, 정선용 등의 논평과 평가, 〈서정문, 《고전번역사업》의 종합적 목표 설정을 위한 시론〉,(《고전번역연구 (제1집)》, 2010.)에서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 한편 <<2010년도 한국고전번역원 일반고전 번역서평가/연구 책임자 김윤조>>에서는 평가서의 말미에 <제언>을 두어 학술적 가치가 있는 주석의 중요성과 함께 번역서에 역자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는 제언을 하고 있다.
4) 가령 최근 10년 이래 독자들의 반응이 좋은 것으로, 손종섭, 이원섭, 임창순 등의 한시 관련 서적들은 모두 수준 있는 번역과 해설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원문에 대한 이해가 높고 현대 한국어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시 원문에서 자신이 느낀 風味를 독자에게 어떻게든 전달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또 정민, 송재소 등의 한시 관련 서적은 학술적 바탕 위에서 보다 깊이 있는 문예 미학을 선보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또 이종묵 등의 《국조시산(이종묵 외)》이나 이만원 등의 두보시 역해 작업, 심경호의 한시 관련 저작과 《당시개설》 등의 역서 등은 한시의 번역을 체계 있고 깊이 해야 한다는 각성의 산물로 보인다. 이러한 최근의 경향은 한시 원문과 현대 독자와의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가교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의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한시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시도하는 분들의 면면을 대강 살펴보면 번역 능력과 학술적 능력을 구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이것도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시의 번역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한문의 특징과 그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상하의 「한문고전 문집번역의 특성과 문제점」(民族文化(제31집),2008.)을 비롯한 일련의 논문과 <<고전번역연구>> 1집과 2집에 실린 성백효와 정선용의 회고담 등이 참고할 만하다.

6)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을 비롯한 전문 한학 교육 기관에서 행해지는 커리큘럼을 보면, 한시에 대한 체계적인 소양을 쌓기 어려운 점이 있다. 또 한시를 창작하는 문화도 극히 일부의 제한된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시를 체험하는 기회도 적은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시 번역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두
보시나 도연명 시 등, 조선 시대 한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시인과 시를 장기간에 걸쳐 정밀하게 강독을 하
는 것은 물론,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후진 양성 대책이 필요하다,
7) 이는 비단 한시의 번역뿐만 아니라 지금 국역계의 전반적인 문제로 보인다. 대부분의 국역서가 개정판이 없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도 문제이고, 당장의 겉모양과 형식은 그런대로 갖추고 있지만 다소 불완전하다 해도 앞으로 다른 번역을 위해 초석이 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단기적으로는 사업이 성공적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번역의 축적과 발전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
8) 대표적인 것으로 <<한국문집표준번역연구 TFT 집담회 정리. 2008>>와 번역원에서 발주한 <한국고전번역원 일반고전 번역서평가. 2011>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논의된 큰 방향은 ‘역자는 이렇게 해야 좋은 번역이 된다’는 것이 대략적인 의견이었고 ‘역자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논의는 거의 보지 못하였다.
참고로 지금까지 고전번역과 관련하여 논의에 참여한 분들과 논의 사항을 일별해 보면, 주요 논자로는 서정문, 심경호, 이상하, 이종묵, 진재교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서정문은 〈漢文古典飜譯史的 맥락에서 본 비문 문제〉(《民族文化 (제32집)》, 2008.)에서 번역을 출발어인 한문 보다는 도착어인 한글에 맞추어 우리말의 질서에 맞는 번역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심경호는 〈한국고전번역에서 학술번역의 개념과 그 역할〉,(《漢子漢文硏究 (제4호)》, 2008.)에서 학술 번역의 개념과 함께 그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상하는 〈한문고전 문집번역의 특성과 문제점〉(《民族文化(제31집)》, 2008.) 등에서 한문 번역에 있어서 전거의 중요성과 역자의 실력 향상을 주문하였다. 이종묵은 〈조선시대 한시 번역의 전통과 한시 번역의 모델〉(《民族文化 (제32집)》, 2008.) 에서 한시 번역에서 意境注를 달고 해설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진재교는 〈한문고전 번역의 특수성의 안과 밖〉, (《民族文化(제32집)》, 2008.)에서 한문 고전이 안고 있는 특수성으로 전고 활용, 당대 역사 사실과 문화, 다양한 한문 양식의 이해로 나누어 언급하고 있다. 이들의 논의는 학술적 가치가 있는 방향으로 번역을 하자는 말로 압축될 수는 있지만 세부 방향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최근에 이규필은 〈운문 번역의 제문제 고찰〉(단국대 동양학 연구소 학술발표회, 2011)에서 거점 연구소의 역자 입장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 선상에 올려놓고 있으며, 南哲鎭은 〈한국 고전번역에 보이는 번역투의 유형 고찰〉(《中國語文論集(제68호)》, 2009.〉) 등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한문 문법 체계에 기반해 있는 글을 한글 문법 체계로 제대로 옮겨 주지 않았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대체로 서정문과 남철진 등은 도착어 중심의 가독성에 초점을 맞춘 논의를 전개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김혜경(2000)과 홍승직(2008) 등도 비슷한 논의를 하고 있으며, 심경호, 이상하, 이종묵, 진재교 등의 논의는 한문 원전의 난해성과 그 원전에 담고 있는 내용을 최대한 역문에 구현해 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 한문 고전 번역 관련 논의는 남철진의 상기 논문 주석1)에 정리해 두고 있어 참고가 된다.



3. 한시 번역의 구성과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개의 한시들은 그 시가 창작된 배경이 있고 상황이 있다. 이는 현대시도 마찬가지이다.
그 배경과 상황의 상당 부분은 그 시에 진술된 언어의 행간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그 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시 맛을 다소 살려 음보와 음수를 고려하여 번역하고 보면 많은 경우 원시가 지니고 있던 풍미는 물론이고 저자가 시에 내장한 여러 단서와 미묘한 의사는 증발되고 만다.


또 한시는 한 글자마다 그 글자에 축적된 이미지와 어감이 있다. 이것은 전대 시인들이 이미 사용하여 축적된 意境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인들의 언어 습관은 어떤 글자를 운용할 때 상대와 나, 그리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전대의 시인들이 사용하여 널리 회자된 경우에는 情韻義가 형성되어 그 의미가 더 함축적이다. 한시가 이렇게 압축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보니, 이걸 남에게 설명하자면 상당히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게 될 수밖에 없다. 현대시의 경우에는 시적 애매성이 있긴 하지만 그 시를 독자가 충분히 읽는 것만으로도 감상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한시는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뜻은 더 정확함에도 불구하고 한시에 대한 충분한 교양이 없이는 이런 메시지를 제대로 읽고 감상하는 것에는 자연 한계가 있다. 이 점이 시에 주석과 해설이 필요한 이유이다.


필자의 생각에 시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중심으로 가급적 현대의 독자들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번역은 하되, 해당 구절에 대한 번역 근거와 전거는 주석으로 밝히고 시 전체에 대한 이해는 따로 【해설】9)을 두어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역문과 주석, 해설을 한시 번역의 3요소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이 서로 잘 조화되어 삼위일체가 될 때 한시 작품은 온전한 생명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시의 광범위한 특성상 그 중에는 상대적으로 역문의 구사가 중요한 시도 있고 주석이 핵심 관건인 경우도 있으며 또 해설을 잘해야 죽은 시가 살아나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한시 번역에 있어서 원의 구현을 위해서 이 3가지 요소를 중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해 가고자 한다.

먼저 ‘1) 한시 번역에 있어서 원의 구현의 3가지 중요한 방향과 그 예시’에서는 역문과 주석, 해설이 각각 왜 중요한지를 거론해 볼 것이고, ‘2) 한시번역의 구성과 표현에 있어 4가지 중요한 명제와 그 예시’에서는 그러한 시의 특성을 반영하여 어떻게 역문을 구성하고 어떻게 원의를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 논해 보았다.

1)이 원칙론적 논의라면 2)는 현장에 밀접한 문제 제기와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 본 셈이다. 이에 대해 여러 역자들과 국역계 인사들의 고견을 여쭙고자 한다.


9) 이 해설은 포괄적인 말로 그 상황에 따라, 해제, 해설, 참고, 평설, 감상 등 여러 약물을 심사숙고해 만들고
이를 해당 작품의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한시에서 해
설과 감상은 초심자는 물론이고 연구자도 그 시에 접근하는 門戶가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曺斗鉉의 <<漢詩의 理解>>나 任昌淳의 <<唐詩精解>> 같은 책에서 계발 받은 바 크다. 물론 해설을 하자면 역자의 공력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웬만한 수준의 역자들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짤막한 해설이나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하는 것이라도 해설은 독자의 시 이해에 매우 도움을 줄 것이다. 가령 현대시의 경우에도 김용택, 안도현, 신경림 제씨 등의 해설이 붙은 시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 지금 출간된 책들을 많이 찾아 봐도 해설이나 감상이 붙은 번역서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金甲起의 <<三韓詩 龜鑑>>(2002)이 눈에 띄는 정도이다.



1) 한시 번역에 있어서 원의 구현의 3가지 중요한 방향과 그 예시


가. 역문의 구사를 잘해야 빛이 나는 시


한시의 번역에는 역문의 언어 구사, 그것이 바로 번역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들이 있다. 역문 표현이 원의의 구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략 한시의 어법, 고사의 근원적 의미와 활용, 낱글자의 쓰임, 작시 상황 등을 적절히 파악하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
먼저 茶山 丁若鏞(1762~1836)의 시를 한 수 본다.10)


<예시 가-1>

11월 6일 다산의 동암 청재에서 혼자 자고 있었다. 꿈에 한 예쁘장한 여인이 나타나 추파를 던졌는데 나 역시 마음이 동하였다. 잠시 뒤에 그녀를 거절해 보내면서 절구 한 수를 지어 주었는데,그 꿈을 깨고 나서도 기억이 역력하였다. 시는 다음과 같다.

[十一月六日, 於茶山東庵淸齋獨宿. 夢遇一姝來而嬉之, 余亦情動. 少頃辭而遣之, 贈以絶句, 覺猶了了. 詩曰 :]


雪山深處一枝花    설산 깊은 곳의 한 송이 꽃
爭似1)緋桃護絳紗 비단에 쌓인 복사꽃만 하겠는가
此心已作金剛鐵    내 마음 이미 금강철이 되었으니
縱有風爐奈汝何    풍로가 있다 한들 너를 어이할까2)


1) 爭似의 어법에 대한 주석을 曺植 시의 예시를 들어 달아주면 좋겠다.
2) 구절의 의미를 보완하는 주석을 달아도 좋을 것이다.
예) 너에게 풍로가 있어 내 마음을 녹이려 한다 해도 내 마음은 이미 금강철과 같아 아무런 마음의 미동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원문 출처 : <<茶山詩文集>> 제5권


10) 필자의 논의가 전인의 번역을 놓고 그 오역을 지적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기존의 번역을 참작한 필자의 번역을 소개한 뒤에 기존의 번역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논의 전개상 부득이 기존 번역의 실례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 선생님들의 해량이 있기를 바란다.

원문의 출처는 인용문 안에 명기하였다. <<국역다산시문집>> 제5권의 번역이다.



설산 깊은 곳에 아름다운 한 송이 꽃 雪山深處一枝花/

연분홍 복사꽃 비단에 싸였는가 爭似緋桃護絳紗 /

이내 마음 어쩌다가 금강철로 굳었거니 此心已作金剛鐵 /

네가 비록 풍로라도 녹일 수가 있다더냐 縱有風爐奈汝何


그리고 왼쪽에 원문을 두고, 오른쪽에 번역문으로 둔 것은 원문의 의미가 번역문으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방식으로 보기 때문에 본래의 번역서 체제와 상관없이 일괄 같은 체제로 정리하였다. 번역서이기 때문에 번역문을 왼쪽에 두려고 하는 경향이 최근에 두드러지나 한 번 보고 말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봐야 하는 한시 번역의 경우 번역문을 왼쪽에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시는 시의 배경도 저자가 시제에서 설명을 해 놓았고 원문에 특별한 고사도 없다. 다만 쟁사(爭似)라고 하는 시문에 주로 보이는 독특한 어법의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전체 意境을 고려하여 그 부분을 잘 처리하는 것이 주 관건이 된다. 남명 조식의 <덕산의 시냇가 정자의 주련에 쓰다 [題德山溪亭柱]>에 爭似의 용법이 “A 爭似 B : 어찌 A가 B만 하랴?”로 쓰인 용례가 있으므로11) 주석에서 이를 소개하면 독자가 분명하게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표를 찔러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고 있는 이 점층적 구조로 짜여진 한시를 역문으로 어떻게 표현해 내는가 하는 것이 이 시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


또 앞 두 구에서 대조와 점층을 통해 여인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뒤에 전구에서 시상의 전개를 뒤집어 자신의 의지를 강력하게 확인시킨 다음, 결구에서 자신의 의사를 정리한 시의 의경을 번역문에 잘 구사해야 한다.


11) 남명의 시는 다음과 같다.

題德山溪亭柱 덕산의 시냇가 정자의 주련에 쓰다 //


請看千石鍾  청컨대 천석 무게의 큰 종을 보라

非大扣無聲  큰 공이가 아니면 쳐도 소리가 없다

爭似頭流山  그러나 그것도 두류산이

天鳴猶不鳴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은 것만 하랴

<<南冥集 권1>>




다음은 흔히 쓰이는 고사인데도 뜻을 불명하게 알고 있지 못할 경우, 부자연스러운 번역이 나올 수 있는 예시이다. 杜牧(803~852)의 시이다.


<예시 가-2>

題烏江亭 오강정에서
두목(杜牧) : 803~852.


勝敗兵家事不期   승패란 병가의 일상사 기필할 수 없는 것
包羞忍恥是男兒   수치를 참고 견뎌야 진정한 남아라네
江東子弟多才俊   강동의 자제 중엔 뛰어난 인재 많으니
卷土重來未可知   온 힘 기울여 다시 싸우면 승패를 모를 것을


원문 출처 : <<杜樊川詩集 卷4>>



국어사전에 있는 ‘卷土重來’의 풀이를 보면, ‘땅을 말아 일으킬 것 같은 기세로 다시 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하였으나 힘을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옴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여 成語의 요체를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고 있다.12)

卷土重來에서 土는 관할 영토를 말하는 것이고 卷은 총동원을 뜻하므로, 이 말은 강동 지방의 인력과 물력을 총동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전에 적절하지 않게 풀이된 것에 근거하여 번역이나 주석을 할 경우, 원의의 전달이 미흡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역자는 그 원의의 根底를 정확히 파악하여 역문으로 구현해야 한다.


12) 현재 주로 통행되고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의 한문 어휘 관련 풀이는 많은 문제가 있다. 부정확한 풀이, 일부의 의미만을 부각한 경우 등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이는 별도의 논문으로 다루어 볼만한 사안이다.



다음의 예문은 시적 상황에 대한 파악이 역문 구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예시이다.

燕巖 朴趾源(1737~1805)의 시이다.13)


<예시 가-3>

遼野曉行  요동 벌판을 새벽에 지나며


遼野何時盡  요동 벌판 그 언제나 다 지날까
一旬不見山  열흘을 가도 산 하나 안 보이네
曉星飛馬首  말 머리엔 새벽 별 떠 깜박이고
朝日出田間  들판 위론 아침 해가 솟아오른다


<<燕岩集>> 제4권 <映帶亭雜咏>


3구의 飛자가 번역의 초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른 부분은 약간의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상황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3구의 飛자를 번역할 때 ‘날다’라는 기본자의에 종속되어 이 시의 상황에 맞는 번역을 하지 않게 되면 전체 시상 전개가 이상하게 된다. 가령 말을 타고 가기 때문에 말을 타는 사람의 동작에 따라 하늘의 별이 나는 것처럼보이거나, 아니면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14)


그러나 지금 이 시에서 시인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시상은 요동 평원의 광활성과 그것을 호흡하는 시인의 후련하고도 허허로운 기분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신선한 여명의 서광(瑞光)을 받으며 거칠 것 없는 광야를 호흡하는 시정(詩情)이 잘 나타나게 번역을 해야 하는데 기서 飛는 별의 이동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별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을 표현한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가령 소동파의 적벽부에 “달이 동산 위에 떠서 남두성(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사이에서 배회한다.[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라고 할 때, 이 배회라는 말이 달이 사람처럼 어디를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휘영청 밝게 떠 있는 것을 有情한 사람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듯이, 이 飛도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체 시상 속에서 글자의 의미를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13) <<국역 연암집>> 제4권에 실린 번역이다.

요동(遼東) 벌판을 새벽에 지나며 //

요동 벌판 어느 제나 끝이 날는지 遼野何時盡 /

열흘 내내 산이라곤 보지 못했네 一旬不見山 /

새벽 별은 말 머리 위로 솟아오르고 曉星飛馬首 /

아침 해가 논밭에서 솟아나누나 朝日出田間


<<나는 껄껄선생이라오>>에 실린 북한의 홍기문이 번역한 것이다.

요동벌의 새벽길 //

요동의 이 벌판을 언제나 다 지날꼬 遼野何時盡 /

열흘을 와도와도 산 하나 안 보이네 一旬不見山 /

새벽별 말머리를 스치어 날아 가고 曉星飛馬首 /

아침 해밭 사이서 돋아 올라오네 朝日出田間
14) 아주 유명한 한시들도 막상 자세하게 따지고 들면 간단하지 않은 것들이 왕왕 있다. 가령 杜牧의 산행(山行)에서 제3구 ‘停車坐愛楓林晩’하니, 할 때의 ‘坐’ 자의 해석을 현재 중국에서는 주로 ‘因爲(~ 때문에, 왜냐하면)’(《新譯唐人絶句選》 등)의 의미로 해석을 하고 있는데, 《七言唐音》 해설에는 ‘坐而愛之’라고 풀고 있고, 《교학사 대한한사전》에는 坐의 훈고를 저절로, 아무 이유 없이[自然而然]로 내고, 그 예문으로 이시를 들고 있다. 또 우리나라 한시에서 崔致遠의 《秋夜雨中》에서 제4구 萬里心이 어디를 향한 것인가도 그렇고 鄭知常의 〈送人〉에서 제2구의 動 자를 동사로 보아야 할 것인지, 부사로 부아 ‘걸핏하면’의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인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오리무중에 빠지는 것들이 많다. 이 시들은 모두 명작으로 알려진 것인데도 이러한데, 처음 대하는 시를 수준 높게 번역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다음은 어휘의 폭넓은 운용과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표현의 예이다. 고려 말 시명이 높았던 崔瀣(1287~1340)의 風荷이다.15)


<예시 가-4>

風荷 바람에 하늘거리는 연꽃


淸晨纔罷浴 맑은 새벽 금방 목욕을 마치고
臨鏡力不持 거울 앞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네
天然無限美 천연스런 무한한 아름다움이
摠在未粧時 온통 단장하기 직전에 있구나


* 이 시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연꽃의 생태와 함축하고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는 작품이므로 그러한 사실을 간략히 설명해 주는 것이 좋겠다. 특히 제2구의 鏡자를 여인이 보는 거울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아침의 고요한 연못 수면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주면 좋겠고 詩眼인 纔 자가 결구의 未粧과 시상이 연결되고 있는 점을 말해 줄 수 있고 말해 준다면 더욱 좋은 해설이 될 것이다.


원문 출처 : <<東文選>> 제19권 風荷



이 시의 기존 번역을 보면 纔와 力, 總 자를 적절히 번역하지 않아 명작이 그 가치가 잘 드러나지 못하고 말았다. 纔는 금방, 갓 등 상황에 맞는 말로 고치고 力자도 힘 보다는 몸을 가누지 못한다는 말로 고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다만 總은 이전의 언어로 온통을 ‘전혀’ 라고 하여 그렇게 표현한 것이므로 이런 것도 현대어의 언어 감수성에 맞게 고쳐줄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현대인의 감수성에 바로 다가갈 수 있는 한시는, 한자의 자의를 기본 자의에만 얽매이지 말고 언어 운용 범위를 최대화해서 번역하고, 고사의 뜻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며, 한시의 어법과 작시 상황 등을 잘 고려하여 시상이 살아 움직이도록 번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언어의 조탁이나 시를 시답게 번역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런 부류의 시에는 대개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15) 《동문선》 제19권 풍하(風荷)이다.

맑은 새벽에 겨우 목욕을 마치고 淸晨纔罷浴 /

거울 앞에서 힘을 가누지 못하네 臨鏡力不持 /

천연의 무한한 아름다움이란 天然無限美 /

전혀 단장하기 전에 있구나 摠在未粧時



나. 주석을 잘 달아야 빛이 나는 시


五山 車天輅(1556~1615)의 시이다. 壺谷 南龍翼(1628~1692)의 《壺谷詩話》와 《五山集》의 행장을 보면 차천로가 자신의 文才를 자부하기를, “만리장성에 종이를 붙여 놓고 나에게 빨리 시를 쓰라고 한다면 종이는 다하더라도 나의 시는 다하지 않을 것이다.[公嘗自言, 貼紙於萬里長城, 使我走筆, 則紙有盡而詩不窮.]”라고 한 대목이 보인다. 차천로의 문재는 본인의 자부뿐만이 아니라 당대의 저명인사들이 두루 인정한 것이었다.16) 뒤에 소개하는 李奎報(1168~1241)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차천로의 시를 실제로 살펴보면 거개가 중국 사신과 우리나라 관료들과 수창한 내용으로 자신의 문재를 과시하려는 의욕을 갖고 많은 故事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시를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유의 시는 그 작시 의도가 잘 드러나도록 전고를 철저히 찾아주고 그런 고사를 그 구절에 왜 활용하였는지를 밝혀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앞에서 이미 살펴 본 역문의 조탁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시들과는 그 역문 구성의 중심이 달라야 한다.


<예시 나-1>

사상(使相)1)이 파산(坡山)에서 유숙하면서 일을 기록한 시운에 따라 화답하다 2수


驛亭攲枕小燈殘 역정에 작은 등불 다 타도록 앉았지만
羇思詩情苦未闌 타향 시름 얽히어 시정이 안 떠올랐지
老兎透檐懸古月 처마 엿보는 늙은 토기 달은 하늘에 떠 있고2)
鑿龍酣夢咽悲灘 단꿈 꾸는 착룡이라 여울물은 흐느끼네3)
五更星斗三冬盡 오경4)되자 겨울하늘 별들 다 사라지고
萬里風霜一劍寒 만리의 풍상 속에 칼 한 자루 싸늘하지
馬上定應秦臘破 마상에서 진나라 납월 끝났을 터이지만5)
故園梅動好誰看 고향에 핀 매화 누구하고 봐야하나


卻疑水帝威全失 수제6)가 위엄을 완전히 잃었는지
未信窮陰歲已闌 어느새 혹한 가고 새해가 되었네
山氣欲佳姸煖日 산색은 따스한 햇살 받아 고와지고
冰聲政怒抑揚灘 얼음소린 가파른 여울에서 한창이네
通宵野霧仍成瘴 밤새 낀 들 안개는 장기가 돼버렸고
近臘江梅不受寒 섣달 앞둔 강 매화는 추위를 안탔지
若著大風翻碧海 태풍이 불어 닥쳐 창해가 뒤집히면
鶢鶋應復魯門看 노문에서 다시금 원거를 보겠구나7)


-위는 따뜻한 겨울날씨에 대해 지은 시에 화답한 것이다.


1) 사상(使相) : 원접사(遠接使) 이정귀(李廷龜)를 지칭한 것이다.
2) 처마 …… 떠 있고 : 하늘에 떠 있는 달에서 달빛이 쏟아져 처마에 새어든다는 의미를 달에 살고 있다는 토기 고사를 활용하여 표현한 것이다. 늙은 토끼[老兎]는 전설 중에 달에 살고 있다는 흰 토기를 말하는데 달빛이나 달을 가리킨다.

3)단잠 빠진……울먹이네 : 착룡(鑿龍)은 용문(龍門)은 뚫은 것을 말한다. 전설에 우(禹)임금이 치수(治水)할 때 용문을 뚫어 길을 인도하였다고 한다. 두목(杜牧)의 <낙양장구 2수(洛陽長句二首)>에 “달빛에 감싸인 이름난 원림엔 외로운 학이 울고, 가을 밤 꿈에 잠긴 시내엔 용문을 뚫는 듯한 물소리 들리네.[月鎖名園孤鶴唳, 川酣秋夢鑿龍聲.]”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이 구절을 변용하여 가을이 깊어 밤에 오열하듯 흐르는 가을 물이 또렷하게 들린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4) 오경(五更) : 날이 밝아지는 시각을 지칭한 것이다.
5) 마상(馬上)의……끝났을 터이지만 : 옛날 진(秦)나라에서 10월에 짐승을 사냥하여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지칭한 것이다. ≪예기집설(禮記集說)≫ 제66권에 “주(周)나라는 12월에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진(秦)나라는 10월에 짐승을 사냥하여 선조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6) 수제(水帝) : 전욱(顓頊)을 지칭한 것이다. 전욱이 수덕(水德)으로 왕이 되었다가 죽어서 북방 수덕의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은 것인데, 여기서는 겨울을 말한 것이다.
7) 태풍 불어……보겠구나 : 겨울날씨가 따뜻하여 태풍이 불면 바다 새인 원거 즉 부리가 긴 까마귀가 성문에 나타날 것이라는 뜻이다. ≪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옛날에 바다 새인 원거(鶢鶋)가 노(魯)나라 교외로 날아오니, 노후(魯侯)가 그 새를 태묘(太廟)에다 모셔놓고 구소(九韶)를 연주하여 즐겁게 해주고 소를 잡아 먹이로 주었다. 원거가 어리둥절하여 고기 한 점도 먹지 못하고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한 채 3일 만에 죽어버렸다.


16) 차천로의 文才와 당대 저명인사들의 평판은 《국역 오산집》 권1의 해제(李義康)와 《국역 오산집》 권2의 五山集 跋 《국역 오산집》 권4의 부록에 실린 挽辭, 祭文, 行狀, 續集 跋 등에 자세하다.



다음은 星湖 李瀷(1681~1763)의 시를 예로 든다.

地負海涵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익의 학문은 매우 넓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그의 시 역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학문의 향취가 그윽이 배어 있다. 그러므로 이런 시는 시의 맛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그의 풍부한 학문 세계가 시로 투영된 특징을 주석이나 해설에서 잘 반영해 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성호의 만사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현재 누구인지 알기가 어려운데 시의 이해를 위해서는 이런 인물의 정리가 관건이 되고 있다. 성호시는 마치 두보의 시가 그냥 읽어서는 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공부하듯이 읽어야 맛을 느끼는 특징이 있으므로 두보시를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에서 《杜詩鏡銓》, 《杜詩詳注》 등의 책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도 《杜詩諺解》, 《澤風堂批解》 등을 간행한 것과 같이 철저한 주석과 고증을 해야만 이익 시의 진가를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부류의 번역을 앞에 나온 역문의 구사에 충실해야 하는 시들과 동일 선상에서 논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익의 차운시 한 수를 본다.17)


<예시 나-2>

화곡 정와(花谷靜窩) 시에 차운하다 次花谷靜窩韻


蝦菜淹留海一濆 하채 즐기며 오랫동안 바닷가에 머문 채
優閒與物不容紛 한가로이 지내면서 사람들과 안 섞이네1)
檐楹地借盤桓宅 대지는 처마 있는 소요할 집 빌려줬고
草樹天成繡畫文 하늘이 그림 같은 초목 내려 주었어라2)
寤寐難忘湖上月 자나깨나 호수가의 달을 잊지 못하니
是非寧到嶺頭雲 세상 시비 어떻게 산정 구름에 이르랴3)
主人厭鬧偏求靜 주인은 소요 싫고 고요함만 추구하니
牆壁銘詩協古聞 담벽에 시 새겼다던 옛일과 꼭 맞구나4)


1)하채……섞이네 : 제목에 나오는 ‘화곡정와(花谷靜窩)’가 누구의 집을 가르치는지 찾지 못하였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이 집의 주인은 세상 사람들과 섞이지 않은 채 타향의 바닷가에 오래 머물러 살면서 한가로움을 추구하는 은자로 보인다.
2)대지는……주었어라 : 그 은자가 사는 곳의 정경을 묘사한 연(聯)으로, 이곳은 바닷가를 산보할 수 있는 곳에 처마와 기둥이 있는 집을 짓고 주변에 초목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우거져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3)자나깨나……이르랴 : 이곳 주인은 항상 호숫가에 나아가 한가로이 달구경을 즐기는 은자이므로 세상사의 시비가 이런 한적한 곳에 이르러 올 수가 없다는 말이다. 원문의 ‘영두운(嶺頭雲)’은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은자인 도홍경(陶弘景)의 고사이다. 그는 구곡산(句曲山)에 숨어 살면서 호를 화양진인(華陽眞人)이라 하고 양무제(梁武帝)가 나라에 대사가 있을 때마다 자문을 구하여 ‘산중재상’이라 일컬어졌던 인물이다. 그가 쓴 〈조문산중하소유부시이답(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이란 시에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고개 위에 흰 구름이 많아라. 그러나 혼자서만 즐길 수 있을 뿐, 그대에게 부칠 길이 없다네.[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寄君.]”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시에서 차용한 ‘고개 위의 흰 구름’은 은거하는 곳을 상징한다.
4)주인은……맞구나 : ‘벽에 시를 새겼다’는 고사는 진(晉)나라 때 은자인 송섬(宋纖)의 고사이다. 그는 자가 영애(令艾)이고 돈황(敦煌) 효곡(效穀)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지조가 있어 세상과 어울리지 않고 주천(酒泉)의 남산(南山)에 은거하였다. 한번은 주천의 태수(太守) 마급(馬岌)이 위의를 갖추고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는데, 송섬이 끝내 만나주지 않자, 마급이 탄식하기를, “이름은 들을 수 있으나 몸은 만날 수 없고 덕은 우러를 수 있으나 형체는 볼 수가 없구나. 내가 지금에서야 선생이 인간 중에서 용(龍)과 같은 존재임을 알겠다.[名可聞而身不可見, 德可仰而形不可睹, 吾而今而後, 知先生人中之龍也.]”라고 하고는 그곳 석벽(石壁)에다 시를 새겼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붉은 벼랑 높이 솟고 푸른 벽이 끝이 없네 기목은 빽빽하여 울창하기 등림(鄧林) 같네 그 사람 옥 같으니 나라의 보배로세 지척 두고 못 만나니 참으로 애가 타네[丹崖百丈, 靑壁萬尋. 奇木蓊鬱, 蔚若鄧林. 其人如玉, 維國之琛. 室邇人遐, 實勞我心.]” 《晉書 卷94 宋纖傳》 여기서는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아 마급으로 하여금 이런 시를 석벽에 쓰게 만들었던 송섬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주인도 세상과 어울리지 않은 채 은거하며 고요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17) 이 시의 번역은 고전번역원의 이기찬 선임연구원이 한 것으로 필자가 약간의 윤문을 가하였다. 자료 제공에 협조해 준 이기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다음은 《翠虛集》에 실린 成琬(1639~미상)의 <後琵琶行>이다.

이 시는 白居易(772~846)가 쓴 비파행의 운자(韻字)를 대부분 그대로 사용하였고 그 내용도 기본 골격이 같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용이 길어 그 시의 일부를 본다.


<예시 나-3>

毛公聞之動顔色 모공이 듣던 중에 얼굴색을 변하니
暢叙胸間不平志 가슴 속 불평한 심사 시원히 풀린 게지
絃將手語弄和音 현이 손가락 따라 자유롭게 화음을 이루니
梨花萬樹催花事 배나무 만 그루 꽃이 피길 재촉하네1)
雄如壯士出戰挑 출전하여 싸움 거는 장사처럼 웅혼하니
洞庭樓船破楊么 동정호에 누선을 탄 양요를 격파하는 듯2)
淸如碎珮滿烟雨, 안개비에 퍼져가는 옥 부수듯 맑은 소리
湘妃漢女琅琅語 상비3)인가 한족 여인 노래처럼 낭랑하네


1) 배나무 …… 피웠어라 : 비파 소리에 감동하여 배나무가 예정보다 서둘러 꽃을 피웠다는 뜻이다. 당 현종(玄宗)은 원래 음악에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서방의 갈(羯)이라는 부족(部族)이 치던 북인 갈고(羯鼓)를 아주 잘 쳤다고 한다. 당나라 남탁(南卓)의 <<갈고록(羯鼓錄)>>에 보면 “2월 초 어느날 새벽, 막 세수를 하고 나오니 비가 개어 날씨가 아주 좋았는데 내정(內庭)에 버들과 살구나무가 꽃이 피기 직전이었다. 이것을 보고는 현종이 ‘이러한 경물을 대하고서 어찌 그들이 결단을 내리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고는 갈고를 가져오게 하여 춘광호(春光好)라는 노래를 지어 연주하였다. 연주를 마치고 버들과 살구나무를 돌아보니 이미 모두 꽃이 피어 있었다. 현종이 웃으며 빈어(嬪御)들에게 말하기를 ‘이러한 일이 있는데 어찌 나를 하느님이라고 부르지 않느냐?’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작자는 당 명황의 이 고사를 차용하여 비파소리가 극도로 아름다웠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2) 양요(楊么 :?~ 1135) : 남송 때 종상(鐘相)과 함께 동정호(洞庭湖)를 무대로 농민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악의(樂毅)가 초포사(招捕使)가 되니 황좌(黃佐) ․ 양흠(楊欽) 등이 수만 명을 이끌고 항복하였으나 그는 험고함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는데, 동정호에 큰 배를 띄우고 바퀴로써 물을 저으니, 그 빠르기가 나는 듯하였으며, 배의 측면에 당간(撞竿)을 설치하여 관선(官船)이 가까이 오면 부셔 버리는[以輪激水, 其行如飛, 旁置撞竿, 官舟迎之輒碎.] 등 용맹을 떨쳤으나 악의가 계책을 써서 격파하였다. 계책에 걸려든 적과 분전할 때 악비의 휘하인 장우(張牛)가 가죽으로 시석(矢石)을 가리며 큰 나무를 들어 양요의 배를 내리쳐 모조리 부수니 양요가 다급하여 물에 뛰어들었으나 우고가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張牛革以蔽矢石, 舉巨木撞其舟, 盡壞. 么投水, 牛皋擒斬之.] <<宋史 卷365 岳飛列傳>> 이 시에서는 비파 소리의 웅혼하고 억센 기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무적함을 타고 다니며 마지막까지 항거한 양요 고사를 차용한 것이다.
3) 상비(湘妃) : 순(舜) 임금의 두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말한다. 순 임금이 남쪽으로 순행을 하다가 붕어하자 상수(湘水)에 투신자살하여 상수의 귀신이 되었으므로 상비라 하는데, 이들이 흘린 눈물이 대나무에 배어 흑색의 반점이 있는 반죽(斑竹)이 되었다고 전해온다.《博物志湘中記》


원문 출처 : 《翠虛集》 〈後琵琶行〉


특히 주석 1에서처럼 당 현종의 고사를 소상하게 밝혀주지 않으면 그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또 ‘洞庭樓船破楊么’의 구문은 동정호에서 누선을 타고 저항하던 양요를 악비가 격파하였다는 것이 원의인데 그냥 일반 산문의 구법으로 보아 동정호에서 누선을 타고 있는 누군가가 양요를 격파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석을 철저히 밝히는 것은 그 구문의 문법 질서를 제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므로 독자들의 오독이 예상되거나 역자의 고심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주석을 달아 주어야 한다.



다. 해설을 잘 해야 빛이 나는 시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 생산된 저명한 한시 관련 역서들을 보면 대개 해설이 필요한 곳에는 해설을 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18) 우리나라의 경우 학술적 성격을 띤 것으로는 《國朝詩刪》의 번역을 들 수 있는데, 시의 형식과 校註 외에 詩話와 評說을 가하고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된다.19)


시의 해설은 크게 보아 3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한시의 형식적 측면에서 설명을 필요로 한다. 한시에는 일반적으로 친숙한 절구나, 율시, 고시 외에도 廻文詩를 비롯한 여러 雜體詩가 있고, 또 운자를 특이하게 운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일부러 평측을 어그러뜨린 경우도 있다. 그 외에 오탈자와 교감이 많이 필요한 것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해설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책에 원시의 일부만을 잘라 수록했을 경우 그 시 전체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예로는 실제로는 율시인데 그 절반만 수록하여 절구로 보인다든가, 차운시의 경우 상대의 시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거나, 동일 저자, 혹은 다른 저자의 詩나 記文, 說, 論 등과 그 내용이 연결되는 것 등, 그 시의 이해를 위해 다른 시를 소개하거나 詩話나 정치적 사건 등 중요 정보를 더 제공해야 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의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위에 열거한 것은 해설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것이다. 시의 함축적인 내용이라든가 특수한 맥락, 시사적 의의, 시의 가치나 특성 등을 소개할 수 있는데, 특히 한시의 가치는 현대시와 좀 달리 역사 자료적 가치, 문학적 가치, 박물적 가치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가장 요긴한 것을 서술하는 것이 좋다. 그 외 역자의 개인적 감상 등을 자유롭게 적절히 진술할 수 있다.20)


18) 가령, 대만의 삼민서국에서 나온 한시 관련 서적에 硏析(新譯 杜甫詩選 등)이나 賞析(新譯 唐人絶句選) 등을 둔 것이나, 일본에서 나온 續國譯漢文大成에 기본 번역 이외에 詩意를 두어 시의 내용을 더 자세히 밝히고 부족한 것은 餘論을 두어 서술한 것, 중국에서 각 시대별 한시 감상 사전이 나오게 된 일련의 흐름을 예로
들 수 있다.
19) 다만 모든 시를 이렇게 하자면 공력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혼자서 하기에는 다소 무리한 작업이라고 본다.
이러한 방식은 《東文選》이나 《大東詩選》 등, 그 활용 가치와 시사적 의의가 있는 선집이나 문학사적 가치가 특출한 문인에 한해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20) 여기서 자유롭게 적절히 진술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방만하게 서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 역자의 엄중한 명예와 책임 아래 서술하되 그 서술할 내용은 역자가 자유로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형식적인 설명이 필요한 한시이다. 李奎報의 美人怨이라는 시이다.

美人怨은 동일한 제목에 두 편의 시가 있는데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이규보는 여러 편의 회문시와 雙韻廻文시를 남겼는데 《국역 동국이상국집》에서는 내리읽기로만 번역을 해 놓아 회문시의 형식은 물론이고 <翰林別曲>에서 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이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문재를 과시하던 이규보의 문학적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이규보의 회문시 중에서 맨 처음 나오는 작품에 해설을 달아 이규보의 회문시 전체를 포괄하는 설명을 해야 하고 해당 시에 대해서는 내리읽기와 치읽기, 이 두 방향의 시를 동등한 스타일로 번역문에 게재해야 할 것이다.21)


<예시 다-1>

미인원(美人怨) 쌍운회문(雙韻廻文)22)


<내리읽기>
晴園春好花齊綻 밝은 뜰 봄은 좋아 꽃들은 활짝 피고,
輕吹飄空飛絮散 하늘을 떠도는 버들개지 흩날린다.
明鏡臨慵微步緩 거울 앞 엷은 화장, 맥없이 걷는 걸음,
英華減損紅顔換 정채도 줄어들고, 곱던 얼굴 수척하다.
(중략)

縈繞深愁千緖亂 감도는 깊은 시름 갈래갈래 얽혔는데,
情緘織錦紅文爛 정을 봉해 짜낸 비단 붉은 무늬 찬란컨만,
行人絶迹無鴻雁 인편도 끊어지고 기러기도 아니 오니,
程遠恨長天碧漫 길은 멀고 한은 길어 하늘만 아득하다.


<치읽기>
漫碧天長恨遠程 아득히 푸른 하늘 한스러운 먼먼 길에,
雁鴻無迹絶人行 기러기 자취 없고 사람 왕래 끊였으니,
爛文紅錦織緘情 밝은 무늬 붉은 비단 정을 담아 째냈건만,
亂緖千愁深繞縈 뒤숭숭한 갖은 시름가슴 깊이 뒤얽힌다.
(중략)
換顔紅損減華英 여윈 얼굴 바랜 안색 곶다움도 줄었거니,
緩步微慵臨鏡明 맥없이 늦은 걸은 거울 앞에 다다랐네.
散絮飛空飄吹輕 버들개지 흩날리어 표표히 가벼웁고,
綻齊花好春園晴 한물에 피는 꽃들 봄 동산은 화사하다.


잡체시에는 회문시 외에도 吃語體, 口字體, 五雜組體, 建除體, 藥名體, 人名體, 郡名體, 玉連環, 離合體23) 등 다양한 시의 형식이 있으므로 이런 특이한 시의 형식이 나올 경우 반드시 충분한 설명을 하여 그 시문의 주요 가치를 독자가 알게 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나라 동시나 민요 등을 한역해 놓은 것은 그 본래의 민요나 동시 등을 찾아 소개해 주어야 할 것이다.24)


21) 최근 《국역 서계집》 등에 나온 회문시는 주석을 달고 양방향의 번역을 해 놓았다.

22) 이 시의 번역은 손종섭의 《옛 시정을 더듬어》(김영사, 2011/ 정신세계사,1992) 154~155쪽/91~92쪽에서 전재한 것이다.
23) 이 시체는 일례로 《與猶堂全書 補遺》에 나온 것을 들어본 것이다.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고 가령 離合體와 玉連環은 글자의 파자를 활용하여 시를 짓는 것인데, 이합체는 첫 구의 마지막 글자를 파자하여 뒷부분을
다음 구의 첫 자로 사용하고, 그 구의 마지막에 다시 다른 글자와 조합하여 글자를 만들며, 그런 다음 다시 뒷부분은 다음 구의 첫 글자가 되는 방식인데, 말 그대로 떼었다가 합하는 방식으로 시구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운용하는 시체의 일종이고, 玉聯環은 매 구의 끝 글자를 파자하여 그 한 부분을 다음 구의 첫 글자로 활용하므로 그 형상이 마치 옥이 연이어 연결된 것 같은 시체를 말한다. 藥名體와 人名體, 郡名體 등은 각각 약 이름, 사람 이름, 고을 이름을 시구에 넣어 시를 짓는 것이다.



다음은 전체 시 중에 일부의 시만 나타나 있는 시의 예시이다. <五言唐音>의 맨 앞에 놓인 宋之問(650~712)의 〈途中寒食〉이라는 작품이다.25)


<예시 다-2>

途中寒食 길 위에서 맞는 한식

馬上逢寒食 말 위에서 한식 명절 맞고 보니
途中①屬1)暮春 길가는 도중 어느덧 모춘이로세
可憐江浦望 가련하구나 강 포구에서 바라보니
不見落橋② 人 고향 낙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네


1) 屬 : 음(音)은 촉이다. ‘바로 ~ 하는 때이다.’라는 뜻이다. ‘~속하다’라는 뜻이 아니다.
* 이 시는 절구처럼 제시되어 있으나 본래 율시이므로 그 사실을 《瀛奎律髓》와 《唐詩品彙》등의 문헌 근거를 통해 밝히고 그 나머지 부분의 시도 소개한다.


北極懷明主 북극과 같은 밝은 임금을 그리면서
南溟作逐臣 남쪽 바닷가로 유배객 되어 왔노라
故園膓斷處 내 고향 그리워라 애끊는 그 곳에
日夜柳條新 밤낮으로 버드나무 가지 봄물 오르리


교감 ① 途中 :《唐詩品彙》권57에는 ‘愁中’로 되어 있다.
교감 ② 洛橋 : 《唐詩品彙》권57에는 ‘洛陽’으로 되어 있다.
愁中屬暮春 근심 속에 어느덧 모춘이로세
不見落陽人 고향 낙양 사람 하나 보이지 않네
* 역자가 판단하여 필요한 경우 교감한 번역문을 제시할 수 있다.


이 시는 원래 <<瀛奎律髓>> 권43 遷謫類의 맨 앞에 실려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좌천된 관인의 정서가 저변에 깔려 있다. 제목도 본래 <처음 황매현 임강역에 당도하여[初到黃梅臨江驛]>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실을 본문에 설명 형식을 통해서 밝혀 주어야 한다.


이 시는 송지문이 瀧洲參軍으로 좌천되어 있을 때 북쪽 고향이 있는 낙양을 그리워하며 지은 작품이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보면 ‘可憐하구나 江浦에서 바라보니, 낙교 사람 보이지 않네.’ 라고 한 구절이 이해가 된다. 본문에 途中은 愁中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고 洛橋도 洛陽으로 되어 있는 판본이 있는데, 내용 전개상 그렇게 된 것이 더 좋은 듯한 면이 있으므로 이러한 사실을 교감에서 잘 밝혀주어야 하고 필요한 경우 신중하게 판단하여 번역문을 제시해 볼 수 있다.


25) 이 작품은 비록 중국 작품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읽었음에도 잘 모르는 작품이라 해설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하여 선택한 것이다.



다음은 시의 배경과 중요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언급에 대한 예시이다. 成守琛(1493~1564)의 시 坡山이다.


<예시 다-3>

坡山 파산에서


坡山之下 파산의 아래 나의 거처

可以休沐 쉬면서 머리를 감을 수 있네
古澗1)淸泠 옛 시내 맑고 시원하니
我纓斯濯2) 나의 갓끈을 이 물에 씻고
飮之食之3) 물마시고 밥 먹으니
無喜無憂 기쁨도 금심도 없어라
奧乎玆山4) 깊숙한 이 산에서
孰從我遊 누가 나를 따라 노닐까


【해설】이 시의 해설은 크게 3방향으로 한다.

1)《남명집》에 실린 남명의 답신이 1552년(명종7)에 작성되었으므로 그것을 근거로 이 시의 창작 년도를 밝혀 적시한다.

2) 이 시에 대해 임억령(林億齡), 조식(曺植),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송순(宋純) 등 당대의 명사 14분이 차운(次韻)하여 시를 남기고 있는 점을 주목하여 그것이 가지는 은거와 관련한 당대 선비들의 의식을 서술한다.

3) 200년이 지나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이 이 파산체를 본떠 지은 <파산체를 본받아 감회를 읊어 잠옹(潛翁) 남하행(南夏行) 어른에게 바치다[效坡山體詠懷 贈潛翁南丈夏行] >라는 사실을 밝혀 그 영향을 진술한다.


그리고 시의 전체적인 의경에 대해 진술하면 좋다.
이 시의 意境이《시경(詩經)》 <위풍(衛風) 고반(考槃)>과 유종원의 산수유기에 가 닿는 사실을 고구하여 진술하면 매우 유용한 감상과 연구의 기반이 된다.


1) 古澗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저자가 1543년, 51세에 동생 성수영(成守瑛)이 고을 수령을 하던 충청도 덕산(德山)으로 모친을 모시고 갔다가 그 다음해에 동생이 형의 뜻을 알고 적성 현감(積城縣監)을 자청하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므로 그 사실을 고구하여 밝힌다.
2)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라고 한 대목에서 유래한 말로 고결한 삶의 지향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3)《논어》〈술이(述而)〉에 공자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않으면서 누리는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라고 한 데서 온 말임을 밝힌다.
4) 마지막 두 구절이 유종원의 <영주용흥사동구기(永州龍興寺東丘記)>에서 온 것임을 밝혀 이 시에 관류하고 있는 정신이 유종원(柳宗元)의 산수유기(山水遊記)와 아주 밀접한 사실을 알게 한다.


원문 출처 : <<聽松集>> 권1 <坡山>



평범해 보이는 한시에도 반드시 필요한 해설이 있다. 鄭道傳(1342~1398)의 시이다.


<예시 다-4>

訪金居士野居 김 거사의 시골집을 방문하고


秋陰漠漠四山空 가을 구름 몽실몽실 사방 산은 고적한데
落葉無聲滿地紅 소리 없이 지는 잎들 온 땅 가득 붉어라
立馬溪橋問歸路 시내 다리 말 세우고 돌아갈 길 묻노라니
不知身在畫圖中 이 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것은 아닐는지


【해설】이 시를 해설할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 시가 유배 상황에서 지어진 시이고 그러한 상황 속에 놓인 저자의 마음 자세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이 시의 의경이 당나라 위응물(韋應物)의 시에 “산은 텅 비었는데 솔방울 떨어지니 은거하는 이 잠들지 못하리라.[山空松子落, 幽人應未眠.]”라는 구절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나, <<시경>><정풍(鄭風) 숙우전(叔于田)>이란 시에,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공허감을 “공숙단이 사냥을 나가니 골목에 사람이 없다.[叔于田, 巷無居人.]”라고 노래한 대목에 그 연원이 닿는 점을 서술한다.


원시 : <<삼봉집(三峰集)>>



삼봉집에는 권근의 비점과 권점이 찍혀 있다.26) 이러한 것은 한시의 공부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차후 문집을 번역할 때 해당 한시에 비평이나 비점을 한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번역서에 표시하는 것이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 여기서 더 나아가 각종 시 선집이나 시화집에 언급된 작품에 대해서는 그 시의 제목 아래 【비고】란을 두어 찾아서 언급해 준다면 매우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27)


다음은 생활 문화적 환경이 달라진 것에 대한 해설이다. 지금 번역의 중추 세대를 이루고 있는 40대 중반~ 60대 중반에 해당하는 세대는 대개 어려서 시골 체험을 한 분들이 많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산업화된 60년 대 이전에는 일제 침략이나 6. 25 전쟁 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농경을 기본으로 비교적 완만하게 사회가 발전하였고 전통적인 것을 직접 체험할 기회가 많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그렇지 않아 한시에 등장하는 많은 구체적 상황과 물명, 초목의 이름 등에 구체적인 심상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역자는 그 점에 대해서도 중요한 사항을 서술할 필요가 있다.


26) 《三峰集》의 범례에 批點과 圈點을 어떤 기준으로 찍은 것인지 명시해 놓지 않았는데 필자가 살펴본 결과비점에 비해 권점을 찍어 놓은 부분이 더 표현이 잘 된 것으로 보였다. 이 점은 다른 문집과의 대조를 통해 더 고구해 볼 작정이다.
27) 최근 한국에서 출간되는 번역서에는 제가의 評이나 批點, 詩話 등을 찾아 번역서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려는 시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의 저명 문인들의 시에 대해서는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을 더러 보게 되는데, 학습에 용이할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그 시를 풍부하고 보다 깊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예시 다-5>

田家 농가


婦坐搯兒頭 아낙은 앉아 아이 머리 이를 잡고1)
翁傴掃牛圈 가옹은 구부린 채 외양간을 친다
庭堆田螺殼 마당귀엔 우렁이 껍질 버려져 있고
廚遺野蒜本 부엌에는 달래 몇 뿌리 남아 있다


1) 이 시의 첫 구절에서 이를 잡는 것이나 남편을 家翁이라 부르는 것 등을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시와 의경이 유사한 宋相琦의 시 <馬上記見>에 ‘부인은 아이 머리의 이를 잡고, 남편은 밭가의 소를 모네.[婦摘兒頭虱, 翁驅壠上牛.]’라는 구절을 근거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2) 한시 번역의 구성과 표현에 있어 4가지 중요한 명제와 그 예시
이제 앞에서 논의한 원칙론을 근거로 그 구체적 구성과 표현에 대해 서술한다.


가. 본문에 중심 가치에 대한 설명 필요
한시의 오역은 그 글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본질적인 것이 있고 단편적이고 부수적인 것이 있다. 이에 따라 번역의 오역을 지적할 때 그 비중에 차등을 두어 책정해야 하듯이 번역문에도 주된 가치와 부수적 가치가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그 시의 주된 가치는 살려서 번역문에 구현해야 하고, 그 주된 가치를 잃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아래의 예문은 시는 아니지만, 한 편의 글에 그 글 전체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리하고 표현의 특징 등을 서술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예시로 들어보았다.28)


이러한 해제 성격의 설명은 해당 역자가 적임자이다. 그러므로 설령 다소간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독자가 요량해서 잘 활용한다면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에 글 전체에 대한 것은 본문에서 특별한 약물을 주어 편집해야 하고 ‘동문자(東門子)’와 같은 주석도 일반 주석과 구별하여 별도의 약물을 고안해 본문에서 다루는 것이 절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세한정기>는 유자광(柳子光 : 1439~1512)을 극도로 칭송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 칭송의 주인공이 바로 유자광임을 증명해 내는 것은 이 기문의 번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부분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핵심적 가치는, 번역문에 대한 근거 제시, 부연 설명의 성격을 지니는 일반 주석과 구별하여 본문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28) 이 예시는 비록 한시는 아니지만 중심 가치와 부수적 가치에 대한 적절한 예시로 판단되어 소개하였다.



<예시 가-1>

세한정기1)
歲寒亭記


객(客) 중에 동문자(東門子)2)라고 하는 이의 원림(園林)이 서울 도성 안에서 으뜸이었는데 정자는 더욱 경치가 뛰어났다. 집의 남쪽 모퉁이에 흙을 쌓아올려 대사(臺榭)를 만들고 큰 소나무를 빙 둘러 심어 놓았다.


소나무는 큰 나무 작은 나무 모두 합하여 열 한 그루인데 천 자나 될 정도로 키가 크고 백 아름이나 될 정도로 굵다고 표현할 만하다. 나무에 나 있는 구멍은 흡사 사람의 코 같기도 하고 귀 같기도 하며 동자기둥 위의 두공 같기도 하고 나무를 구부려 만든 그릇 같기도 하다.3) 나무의 뿌리가 이리저리 구불구불한 것, 서리어 있는 것이 있고, 줄기가 휘감아 돈 것, 구부러진 것이 있으며, 가지는 쭉 뻗은 것, 오그라든 것이 있는데, 그 나무 중에 어떤 것은 새가 깜짝 놀라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듯하고 또 어떤 것은 규룡이 노하여 꿈틀대며 솟구쳐 오르는 듯하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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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한정기(歲寒亭記) : 동문자(東門子) 유자광(柳子光)의 정자인 세한정의 의미를 객(客)과 여(余)의 대화 형식으로 심화해나간 기문이다. 크게 3단락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정자를 둘러싼 11그루의 소나무의 형상을 묘사하였고, 중반에서는 객의 말로 소나무를 보고서 그 덕을 축적해 나가야 함을 역설하였으며,후반부에서는 여(余)의 말로 문무를 겸전한 정자의 주인이 조정에서 주석(柱石)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변함없이 국가에 충성을 바칠 것을 축원하였다.

 전반부에서는 <<장자(莊子)>>와 <<고문진보(古文眞寶)>> 등 여러 경전과 시문의 문자를 차용하여 소나무의 형상을 실감나게 묘사한 점, 중후반부에서는 소나무의 의미를 대화의 방식을 통해 완상(玩賞), 축덕(畜德), 충절(忠節)이라는 점층적 구성으로 전개한 점이 이 글의 주요한 특징이다.
2)동문자(東門子) : 유자광(柳子光, 1439~1512)의 별호이다.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우후(于後)이다. 유자광의 생년은 <<문과방목(文科榜目)>>에 근거하였고 자는 통행되는 사전류에는 주로 우복(于復)으로 되어 있지만 <<허백당집>>에는 일관되게 우후로 기록되어 있다. <<용재총화>> 권9에 의하면 허백당은 유자광과 함께 개성(開城) 출신의 훈장인 김구지(金懼知)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였다. <<허백당집>> 시집 권13 <부사 유 우후 자광에게 장난삼아 주다.[戲呈副使柳于後子光]>라는 시를 보면 우후가 유자광의 호임을 분명히 알 수 있고 <<허백당집>> 보집(補集) 권3 <아들을 잃은 우후를 위로하며[慰于後喪子]>라는 시에 “자네는 동문자이니 동문오를 본받아야 하네.[君是東門子, 當效東門吳.]”라고 한 구절을 보면 동문자가 유자광의 별호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열자(列子)>>의 동문오와 무관하지 않음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허백당집>> 시집 권1 <유우후가 사복시에 속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서[喜聞柳于後屬司僕]>라는 시에 “유자는 당당히 백 사람 중에서 특출하니 문과 무를 겸전하여 절륜하였네.[柳子堂堂百夫特, 文經武緯並絶倫.]”라고 한 대목은 이 글의 후반부에 “문장은 나라를 경륜할 만하고 무위는 도략을 낼만하다. [文以經邦, 武以出韜.]”라고 한 대목과 요지가 일치한다. 이러한 근거로 볼 때 동문자는 유자광을 지칭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동문자라는 말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지만 허백당의 언급으로 볼 때, <<열자>> <역명(力命)>에 나오는 동문오(東門吳)라고 하는 인물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열자>>에서 동문오는 자식이 죽었을 때도 근심을 하지 않는 다소 달관적이고 초월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한편 <<한시외전(韓詩外傳)>> 권9에는 동문(東門)에 사는 고포자경(姑布子卿)이 상법(相法)에 능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전한다.
3)백 아름이나 …… 하다 : 이 부분은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의 “백 아름이나 되는 나무의 구멍은 코 같기도 하고 입과 같고 귀와 같으며 두공과 같고 나무 그릇 같고 절구통과 같으며 깊은 웅덩이 같고 얕은 웅덩이 같다.[大木百圍之竅穴, 似鼻, 似口, 似耳, 似枅, 似圈, 似臼, 似洼者, 似汙者,]라고 한 말에서 온 것이다.
본문의 천척(千尺)이나 백 아름[百圍]은 나무가 크다는 것을 다소 심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예시 가-2>

고향을 그리워하여 낙향해서 편안히 쉴 것을 생각한다. <군망(郡望)과 성명자(姓名字)를 이합(離合)하여 시체(詩體)를 짓는다. >29)1)


家貧食不足 집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부족하니
豕柵行可築 돼지우리 장차 지어야 하겠네
直緣無特操 다만 특별한 지조가 없어서
十年計虛擲 십 년 동안 계획 헛되이 보냈구나
(이하 생략)


1)군망(郡望)과 …… 붙이다 : 군망은 고을의 명망이 있는 집안이라는 뜻으로, 약천 자신의 관향(貫鄕)인 의춘(宜春)을 이르며, 이합(離合)은 글자의 일부를 떼어내고 남은 글자를 다시 맞추어 자신이 의도하는 글자를 이루는 것으로, 문장의 한 유희(遊戲)인데, 한(漢) 나라 때부터 유행하였다.
후한(後漢)의 공융(孔融)은 노국(魯國) 사람으로 자가 문거(文擧)였는데, 그가 사언시(四言詩)를 지으면서 ‘노국공융문거(魯國孔融文擧)’ 여섯 글자를 이 시 속에 숨겨두어 유명하다.

공융의 시를 살펴보면, “어부가 절개를 굽히고 물에 잠겨 방소(方所)를 숨겼다가〔漁父屈節 水潛匿方〕, 때에따라 나와서 출행을 거창하게 한다〔與峕進止 出行施張〕.” 하였는데, 앞의 두 구는 어(漁)자에서 ‘氵’를 떼고 ‘魚’를 만들고, 뒤의 두 구는 시(峕)자에서 ‘出’을 떼고 ‘日’을 만든 것으로 ‘魚’와 ‘日’을 합하면 ‘魯’가 된다. “여공(呂公 : 강 태공〈姜太公〉)이 낚시터에서 낚시질하다가 위수(渭水) 가에서 문왕(文王)을 만나 입(말)이 합하였네〔呂公磯釣 闔口渭傍〕, 구역에 성인이 있으니 어느 땅이든 왕노릇 하지 않는 곳이 없네〔九域有聖 無土不王〕.” 하였는데, 앞의 두 구는 여(呂)의 두 ‘口’가 합하여 하나가 되어서 口’를 만들고, 뒤의 두 구는 역(域)에서 ‘土’를 떼고 ‘或’을 만든 것으로 ‘口’와 ‘或’을 합하면 ‘國’이 된다.

약천의 시 역시 공융의 이 시체(詩體)를 따라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뜻으로 오언시(五言詩)를 지으면서 이 속에 ‘의춘남구만운로(宜春南九萬雲路)’ 일곱 글자를 원문 네 구, 곧 한 줄마다 한자씩 숨겨둔 것이다. 첫 구의 가(家)에서 ‘豕’를 떼고 ‘宀’를 만들고, 셋째 구의 직(直)에서 십(十)을 떼고 ‘且’를 만든 다음 이 두 자를 합하면 ‘의(宜)’가 된다. (이하 생략)


이 시의 핵심적 가치는 시의 내용보다는 시의 형식에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 역자가 오랜 고심 끝에 그 문제를 해결하여 이례적으로 긴 주석을 단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로 평가된다. 지금 현재의 번역 체제상 주석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이런 성격의 내용은 본문에서 처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런 주요 가치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는 그 글 이해의 관건이 되는 작시 배경, 특이한 인물, 중요 고사, 특이한 형식 등 매우 다양할 수 있는데, 해당 글에서 지니는 비중에 따라 역자가 적절히 요량해 판단하면 될 것이다.30)


특히 장편 고시라든가 賦의 경우,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보면 구절구절은 대강 이해가 가지만 전체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점이 중요한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역자 나름의 안목으로 그 시에서 말하는 주요 메시지와 핵심 가치에 대해 언급해 주는 것은 가독성의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가독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한자 어휘를 한글로 바꾼다거나 원의를 다소 손상해서라도 한 대목 한 대목을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준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체 내용에 대해 역자가 정리해주는 작업을 하게 되면 전통적 보존가치를 훼손하지 않고서도 2차 3차 가공을 하려는 이용자들, 예컨대 연구자들이나 콘텐츠 제작자들이, 보다 풍부한 정보를 얻어 갈 수 있으므로 번역서의 부가가치를 보다 향상시킬 수 있다.


29) 이 시는 남구만의 <<약천집>> 권1에 실려 있는데, <<고전번역연구>> 제2집 <成百曉, 번역을 하면서 겪은 일화>에 수록된 내용에 따라 제목을 시제(詩題)와 부제(副題)로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30) <<고전번역연구>> 제1집 <정선용, 《響山集》의 詩를 번역하면서 겪은 어려움>에 실린 인물과 지명의 경우 작품 이해에 핵심 관건이 되는 것은 본문에서 해당 시의 서두에서 다룰 만한 사안이다. <<성호집(星湖集)>>을 비롯한 문집에 실린 다량의 묘도문자, 특히 만시(輓詩)의 경우에는 본문에 인물에 대해 연구하여 최대한 밝혀주는 것이 매우 의미가 있고 광범위하게 산재되어 있는 유기류(遊記類) 등은 여정을 중심으로 전체 내용을 개관하는 것이 기독성의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나. 주석에 역자의 번역 근거와 감상 개진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번역의 근거와 감상을 말하고 싶은 역자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역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자들을 일괄적으로 강제하여 ‘이러이러하게 번역해야 한다.’라고 논의를 전개하면 역자의 자율성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동어반복의 원론적 논쟁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이러하게 번역할 수 있다.’라고 의견을 조율해 가는 방식이 합리적일 것이다. 즉 역자에게 일정 범위 속에서 자율적 판단에 따라 번역을 하고 리뷰를 바탕으로 하여 독자들의 반응을 참작하여 번역의 길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먼저 朴南壽(1758~1787)의 시를 본다.


<예시 나-1>

齊賢懸弧日1)有賦 제현의 현호일에 시를 짓다


是日招邀湯餠客 득남을 기념하여 탕병객을 초청하니
喜顔相贈弄璋詩2) 모두들 기뻐하며 농장시를 지어 주네
三行娉醮3)堪辛苦 복잡한 혼인절차 그 신고를 감내하고
一夢熊羆4)亦幸奇 한 번 꿈에 사내아이 다행하고 기특해라
深願眞同蘇子語 소동파의 말과 같길 간절히 바라노니
晩生何異邵翁兒㉠ 소강절의 만년 자식과 무엇이 다르리오
魯論聖訓垂千古5) 논어의 성인 말씀 천고에 전해지니
名曰齊賢字曰思㉡ 이름은 齊賢이요 자는 思로 지어보네


* 주석이 필요한 곳 : 1) ~ 5)
* 해설이 따로 필요한 곳 : 진하게 표시.


해설의 방향
㉠ 저자의 염원이 집약되어 있는 부분이므로 부모의 마음이 잘 드러나게 간단한 언급을 하고 소동파와 소강절의 시를 소개하고 이 시와 관련한 중요 특징을 언급한다.
㉡ 자를 짓는 습관이 반드시 20세 약관에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는 언급이 필요하다. 아울러 논어(論語)의 “남의 어진 행동을 보고는 나도 그처럼 되기를 생각하며, 남의 어질지 못한 행동을 보고는 나에겐 그런 점이 없는지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라고 한 말을 취한 점을 서술한다. 고려 시대의 유명한 문인 이제현 역시 자가 중사(仲思)인 점에 대해서 간략히 부가 설명을 한다.


<참고>


아이가 태어난 날에 장난삼아 짓다[洗兒戲作]
  
人皆養子望聰明 남들은 모두 자식 낳아 총명하길 바라지만
我被聰明誤一生 나는 총명 때문에 일생을 망쳤구나
惟願孩兒愚且魯 그저 내 아이는 어리석고 노둔하여
無災無難到公卿 재앙이나 난관 없이 공경에 이르기를


我今行年四十七 내 나이 어느덧 금년에 47세
我今行年四十七 아이를 낳아 이제야 부모가 되었구나
鞠育敎誨誠在我 기르고 가르치는 건 진실로 내 몫이나

壽夭賢愚繫於汝 수명과 자질은 너에게 달려있다
我若壽命七十歲 내가 만일 70세까지 산다면
眼見吾兒二十五 25세 된 내 아들 모습 보겠구나
我欲願汝成大賢 나는 네가 대현이 되기를 바란다만
未知天意肯從否 하늘의 뜻이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다 <<邵氏聞見錄>>


원시 : <<修隅前集>>


이 시의 경우 매 구절마다 고사가 잔뜩 들어 있다. 문집에 있는 많은 한시들이 대개 이러하긴 하다. 이하곤이나 김립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함축을 위해 고사를 많이 쓴다.
사실 고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도 알고 보면 그 글자의 유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시의 경우 ‘湯餠客’, ‘弄璋’, ‘三行’, ‘熊羆’, ‘蘇子語’, ‘邵雍兒’, ‘聖訓’ 등에 모두 주석이 필요하다. 주석도 원문에 다는 것이 나을지 번역문에 다는 것이 나을지 간단하지는 않은데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교감이나 역문으로 구현이 되지 않는 원의 쪽에 비중이 있는 것은 원문에, 내용과 관련되고 역문으로 구현된 것은 번역문에 주석을 달아 정리하는 것도 한 방식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시에서 저자 박남수는 3번 장가들어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그 감회와 기대가 경련(頸聯)에 집약되어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소동파와 소강절의 시를 찾아 보다 비중 있게 처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러 주석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간략하게 해서 책의 형식미를 얻는 것 보다는 시 이해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시 나 -2>

後遊 다시 수각사(修覺寺)에서 노닐며


寺憶曾遊處 절에 오니 전에 노닐던 일 생각나고  
橋憐再渡時 다리를 다시 건너니 마음이 기쁘구나
江山如有待강산은 그동안 나를 기다린 듯하고
花柳更無私 꽃과 버들은 사람 가리지 않고 반겨주네
野潤煙光薄 옅은 구름과 안개에 들판이 촉촉하고
沙暄日色遲 느리게 지나는 햇살에 모래밭 따뜻하다
客愁全爲減 나그네 시름 이 때문에 줄어들었으니
捨此復何之 이곳을 버리고 다시 어디로 간단 말가


이 시는 당나라 肅宗 上元 2년(761), 杜甫의 나이 50세 때에 성도의 浣花溪에 자리 잡고 살 때 지은 시이다. 예전에 교과서에 나온 강촌(江村)이라는 시를 쓰던 그 시절이다. “늙은 아내는 종이에 선을 그어 바둑판을 만들고,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시 바늘을 만든다.[老妻畫紙爲棊局, 稚子敲針作釣鉤.]”라고 운운하던...
이 작품 앞에 <수각사에서 노닐며[遊修覺寺]>라는 시가 있기 때문에 ‘다시 노닐다’라는 뜻으로 제목을 <후유(後遊)>라고 단 것이다.


이 시는 원문으로 보면 마지막 2 구절을 제외하고는 한시의 독특한 어법으로 작성되어 그대로 번역하면 일반 사람이 알기 어렵다. 그래서 역자가 이 시를 이해한 다음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시인이 그렇게 표현한 의도라든가 언어 운용의 묘미와 독특한 어감 같은 것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다른 부분은 번역문으로 어느 정도 원의를 구현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첫 2구는 그런 번역이 나오게 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즉 원의를 살려 읽어 보면 ‘절은 일찍이 노닐던 것을 추억하게 하는 장소이고, 다리는 다시 건너는 것이 사랑스러운 때이다.[寺憶曾遊處, 橋憐再渡時.]’라는 정도로 번역 된다. 이렇게 하면 그 내용이 알쏭달쏭하여 시인의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절은 일찍이 노닐던 곳을 추억하게 하고, 다리는 다시 건너는 때를 사랑스럽게 한다.’라고 번역하고 싶은 생각이 나게 한다. 그러나 같은 문법이 적용된 邵康節(1011~1077)의 <淸夜吟>에 ‘달이 하늘 한 가운데 떠 오른 곳이요, 바람이 수면에 불어오는 때이다.[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의 구절이라든가 崔致遠(857~ 미상)의 <旅遊唐城贈先王樂官>에 ‘물가 전각에서 꽃을 보던 곳이요, 바람부는 난간에서 달을 마주한 때였지[水殿看花處, 風欞對月時]’라고 한 구법을 보면, ‘處’와 ‘時’가 마지막에 해석되는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구절의 의미는 ‘절이라는 공간 속에서 예전의 유람을 추억하고 다리를 두 번 건너가노라니 새로운 애착을 느낀다.’라는 뜻으로 두 번째로 수각사를 탐방하여 절과 다리를 둘러보며 그 공간과 시간이 촉발하는 감회를 互文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역자는 그러한 번역이 나온 근거를 제시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다르게 구문을 보는 분들과 진일보한 토론이 가능하고 번역의 결과가 축적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이 법을 전할 때 제자들을 시험하였는데, 신수(神秀)는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맑은 거울이네. 때때로 부지런히 닦아서, 먼지 끼지 않게 할지니.[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라고 읊었는데, 6조 혜능이 읊은 시를 보고 홍인이 혜능에게 불법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 시를 번역하면


菩提本無樹  보리의 나무는 본래 없고
明鏡亦非臺  명경의 대도 실상이 아니라네
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었거니
何處惹塵埃  어디서 티끌이 일어날까


이 정도로 번역이 되는데, 이 시의 앞 두 구를 일반이 이해하는 걸 보면,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명경도 대가 아니라네”라고 하여 이상하게 해석하는 것을 본다. 우선 구문에서 전달하려고 하는 의사가 ‘本無菩提樹, 亦非明鏡帶’라고 하여 몸이 보리수이고 마음이 명경대라는 집착의 공간을 초월하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보리수와 명경대라는 존재를 잊어버리는 의미로 번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어는 사실 身과 心인데 생략된 것이고 보리와 명경은 시적 효과를 위해 도치된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無자 때문에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다.’라는 번역은 불가한 것이다.

현대적으로 완전히 풀면,“보리수란 본래 없고, 마음도 명경대가 아니지. 본래 아무 것도 없었거니 어디서 번뇌가 일어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 시 역시 한시 교양이 부족한 일반인의 상식과 다르게 번역되었기 때문에 번역 근거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부기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예시 나- 3>

정부의 원망 征婦怨 二絶


一別年多消息稀 한번 이별 여태까지 소식일랑 감감하니
塞垣存歿有誰知 변방의 님의 생사 어느 누가 알겠어요?
今朝始寄寒衣去 오늘에야 이 애 편에 겨울옷을 부치오니
泣送歸時在腹兒 가실 때 뱃속에 있던 아이를 울면서 보냅니다.


정몽주(鄭夢周 : 1337년∼1392년) <<圃隱集>> 권1


통상적으로 마지막 구절 ‘泣送歸時在腹兒’의 의미를 ‘(지금 겨울옷을 가지고 가는 이 아이는 당신을)울면서 전송하고 돌아올 때 뱃속에 있던 아이랍니다.’ 정도로 이해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번역을 달리하였다.

이럴 경우에도 그 번역 근거에 대한 주석이 필요하다. 먼저 기존의 대표적인 번역을 소개한 뒤에 이런 번역을 하게 된 배경을 밝혀 보다 점진적인 토론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靑丘風雅》原註: 征夫去時, 在服之子, 生且長而指衣以遺其父, 征役之久, 可知, 秦時築城卒如是.
문집총간 자료
이민보(李敏輔: 1717~1799)의 《墅集集》官陞一品爲誰悅, 泣送兒孫拜墓行.
백광훈(白光勳: 1537~1582) 《玉峯詩集》去時在腹兒未生, 卽今解語騎竹行.
권만(權萬: 1688~1749) 《江左集》去時在腹兒, 迎泣淚濕衣.
실록에 故領相李恒福《泣送去時在腹兒》詩~~.


이러한 자료를 보면 이전의 사람들이 ‘去時在腹兒’를 한 덩어리의 말로 이해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泣送이 아무래도 붙여 쓰인 말일 것이라는 언어 감각을 사례로서 뒷받침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문곡집>>에 ‘空聞病裏思親語, 忍見行時在腹兒?’라는 말을 보면 歸의 주체를 남편으로 본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문맥상으로 ‘거시재복아’ 를 울면서 보낸다고 해야 여인의 한이 더욱 깊어지는 듯하고 어쩐지 ‘울면서 전송하고 돌아올 때’라고 하면 한문 해석이 다소 한국어 구문 같다는 감을 준다.


원래는 이 歸자의 자리에 去자를 놓으면 말이 훨씬 순하다. 그러나 ‘去’를 놓는다면 제3구의 去와 중복이 될 뿐만 아니라, 또 마지막 구절의 평측이 ‘측측측평측측평’으로 되어 4번째 글자가 ‘蜂腰’가 되고 만다. 그러나 반면 歸자를 놓으면 평측이 ‘측측평평측측평’ 으로 잘 어울린다. 그러므로 작자는 ‘그 사람이 가야할 곳으로 간다.’는 뜻을 가진 ‘歸’ 자를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歸의 번역을 최소한 ‘울면서, 가는 사람을 전송할 때~’라고 하거나 위의 번역처럼 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번역이 축적됨에 따라 어떤 시의 경우에는 기존에 번역되어 있는 것이 상당수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번역사적인 맥락에서 前人의 번역을 검토한 바탕 위에서 그 번역을 그대로 계승하거나, 아니면 더 나은 번역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번역을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다른 번역을 할 경우에는 그에 대한 문헌적 근거나 역자의 추단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시 나 -4>

石竹花 패랭이꽃


世愛牧丹紅 사람들 진분홍 모란을 좋아하여
栽培滿院中 집안 뜰에 가득 심어 가꾸네
誰知荒草野 누가 알리, 황량한 초야에도
亦有好花叢 좋은 꽃이 피어 있을 줄을
色透村塘月 꽃빛은 연못의 달빛 받아 드맑고
香傳隴樹風㉠ 향기는 불어오는 바람결에 스치네
地偏公子少 외진 곳이라 귀공자 오지 않으니
嬌態屬田翁 아리따운 자태 촌옹에게 보이네


㉠ 이 시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출전> 정습명(鄭襲明 : ?~1151) <석죽화(石竹花)> <<동문선(東文選)>> 권9


이런 유의 시에 대해서는 경구(警句)의 해석과 미학적 가치에 대해 특별히 언급을 할 필요가 있다. 村塘의 月에 의해 꽃잎의 色이 透하고 隴樹에서 불어오는 風에 의해 香이 傳해진다는 의미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色이 透하니, 村塘의 月때문이요, 香이 傳하니 隴樹의 風때문이라네’의 구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구조라 해도 다른 문맥에서는 달리 해석될 여지가 얼마든지 있지만, 이 시 전체 시상 전개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다른 부분은 큰 무리가 없이 그러한 번역이 나온 것을 대강 이해하겠지만, 이 구절은 ‘왜
이렇게 번역되었지?’ 하고 의심을 가질 것이고, 심지어는 오역이라고 할 수도 있으므로 미리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시 나- 5>

김 자고(金子固)의 목우도(牧牛圖) 뒤에 쓰다1)

題金子固牧牛圖後


앞의 목우도(牧牛圖) 한 폭은 쌍계 노인(雙磎老人)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크고 작은 소가 무려 10두는 된다. 누워 있는 놈, 이리저리 움직이는 놈, 언덕을 내려오는 놈, 물을 건너는 놈, 나무 그늘에 의지해 풀을 뜯는 놈, 언덕에 의지해 물을 건너려고 하는 놈, 물가를 따라 내려가면서 물결을 발로 차는 놈, 고개를 들고 물에 떠가는 놈, 무리를 기다리며 고개를 돌려보는 놈이 있으며, 긴 숲 우거진 풀밭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하며 무리를 지어 되새김질을 하는 놈, 등등 그 수효를 알 수가 없다.


동자 몇 사람도 보이는데, 소등에 타고 채찍을 때리는 녀석, 등에 걸터타고 서 있는 녀석, 종이로 만든 연을 날리는 녀석, 참새 새끼를 가지고 노는 녀석, 등등 천태만상으로 그려낸 솜씨가 마치 실제로 소들이 움직이고 연이 날고 새 새끼가 춤추는 듯한데, 그려낸 솜씨가 매우 정교하여 터럭 하나까지 모두 담아내었다. 야외의 무궁한 아취를 터득한 자가 아니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쌍계 노인이 보물로 완비하고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본다.


東風吹雨搖平津 동풀이 비를 몰아 잔잔한 나루를 흔드니
水生兩岸桃花春 양안에 물이 불어나는 복사꽃 피는 봄
桃花細浪涵靑蘋 도화수2) 잔물결은 푸른 마름을 머금었고
渡頭楊柳蒼崖濱 나루터의 버들은 물가에서 푸르구나
烏犍斑特依原畇 검은 소와 얼룩소 언덕에서 노닐다가
麾之畢來3)性自馴 오라고 부르면 오는 소는 성품이 절로 길들여졌고
阿童倒騎凌淸淪 아동4)은 소를 거꾸로 타고 강 물결을 건너는데
輕飆欲動波粼粼 가벼운 바람이 움직이니 물결이 일렁대네
中流素沫噴生唇 냇물 가운데 물거품은 소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5)
若跨龍去行逡巡 용을 타고 가는 듯한데 조심스럽게 건너가네
雲林杳靄蒙淸晨 구름 낀 숲6) 안개 자욱이 피는 새벽
際天草樹晴蓁蓁 하늘가의 무성한 수목 잎사귀도 선명하네


1) 김 자고(金子固)의 목우도(牧牛圖) 뒤에 쓰다[題金子固牧牛圖後] : 김뉴(金紐)가 보관한 목우도(木牛圖) 뒤에 쓴 제사이다. 수십 마리의 소가 매우 정교하게 그려진 것에 감탄하는 내용이다.
2)도화수(桃花水) : <<한서(漢書)>> <구혁지(溝洫志)>의 안사고(顔師古) 주(注)에 “중춘에 도화가 비로소 피는데, 이때가 절기로 우수(雨水)이다. 골짜기의 얼음이 풀려 물이 불어나 물결이 넘실댄다. 그래서 도화수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3)麾之畢來 :《시경》 소아(小雅) 무양(無羊)에, “네 양이 오는데, 야무지고 튼실하며, 마르지 않
고 병들지 않았네. 손으로 지휘하니, 모두 와서 다 우리로 들어가네.〔爾羊來思, 矜矜兢兢, 不騫不
崩. 麾之以肱. 畢來旣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4) 아동(阿童) : 아동은 서진(西晉) 왕준(王濬)의 아명이다. 진나라의 양호(羊祜)가 손호(孫皓)를 정벌하려고 할 때, 당시 오(吳)나라의 동요에 “아동 아동아, 칼을 물고 강을 건너네. 언덕의 짐승은 두렵지 않으나 수중의 용이 두렵네.[阿童復阿童, 銜刀浮渡江. 不畏岸上獸, 但畏水中龍.]”라고 하는 노래가 있었는데, 양호가 그 말을 듣고 익주자사(益州刺史)로 있던 왕준을 발탁하여 용양장군(龍驤將軍)으로 삼았는데, 왕준이 거대한 전함을 건조하여 오(吳)나라를 정벌하였다. 《晉書 卷42 王濬列傳》#그러나 여기서는 아동(兒童)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5) 냇물 …… 듯 : 강물에 넘실대는 흰 물거품과 그 물을 간신히 건너가는 소를 보고서, 소가 힘이 들어 강물에 입을 가까이 대고 건너는 것을 소의 입에서 물거품이 나오기라도 한 것인 양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6) 구름 낀 숲 : 원문은 ‘雲林’인데, 은자가 은거해 사는 곳이나 절을 말한다. 당나라 왕유(王維)의 〈도원행(桃源行)〉에, “당시에 깊은 산속 간 줄로만 알았나니, 맑은 시내 몇 번 건너 운림에 도달했나.[當時只記入山深, 靑溪幾度到雲林.]” 하였다


원시 출전 : <<虛白堂集>> 권9



이 시에서 도화수에 대해서는 이백의 ‘桃花流水杳然去’와는 다른 계통에서 온 전거로 파악해 주석을 달았지만 ‘中流素沫噴生唇’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는 주석을 달지 않는다.
그러나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곳에 주석을 달 수 있고 달면 매우 요긴하다고 생각한다.
즉 가만히 놔두면 독자들이 ‘素沫’을 소의 입에서 나오는 거품으로 이해하거나 아니면 이 번역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곳에 “강물에 넘실대는 흰 물거품을 두고, 마치 소가 힘이 들어 강물에 입을 가까이 대고 건너는 것을 소의 입에서 물거품이 나오기라도 한 것인 양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라는 의미로 주석을 달아주면 역자의 견해에 대한 동의와 반대가 분명해져서 책의 가독성이 높아지고 자료적 가치가 높아 질 것이다. 특히 역자들이 번역을 하다 보면 苦心處와 難解處가 나오게 마련이다. 이런 곳은
독자들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을 것이므로 가급적 주석을 달아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그 독특한 풍격이나 시의 특성에 따른 주요 가치에 대해서는 부수적인 가치와 구별하여 비중 있게 다루어 줄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역자가 그 시를 읽으면서 정서적인 공감을 한 것에 대해서도 적극 소개하는 것이 무미건조하게 번역하는 것보다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다. 참고 자료의 정리


문집을 번역하거나 교열을 하다 보면 책에는 싣지 않지만 단편적 생각과 부수적 자료가 많이 양산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자료를 다 거두어 정리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면 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가령 <<響山集>>처럼 일반적으로 사전 등을 찾아 해결하기 어려운 지식을 습득하였을 경우, 일회적으로 주석에 일부 반영하고 버리기보다 일괄 모아서 참고자료로 부록에 실을 필요가 있다. 또 <星湖集>에 실린 시의 경우도 일반적으로 알기 어려운 인명이 대부분이므로 이들을 따로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보통 문집에 실린 시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산문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연관되는 산문을 찾아 도표를 만드는 것도 일일이 시에 주석을 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외 작시의 배경이 되는 중요 사진 자료, 관련 지도, 역대 제가의 평, 창작 연대표, 번역시 참고한 문헌 등도 역자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수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 번역서의 형태가 공동의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전체적으로 일관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고의 방향과는 반대가 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다르고, 작품이 다르고, 역자가 다르면, 번역문의 구성과 표현이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라. 번역서에 역자의 견해 진술


시의 번역은 한 편 한 편의 이해도 필요하지만 그 작가의 전반적인 시풍과 의식지향, 언어운용 습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전체의 큰 흐름을 파악할 때 세부의 내용도 잘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한 구절 한 구절의 정확한 번역도 필요하지만 시 한 편 전체의 메시지 전달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번역의 해제를 역자가 작성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 해제도 문헌학에 치우쳐서 형식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기보다는 역자의 관점에서 보다 중요한 것, 역자가 아니면 말하기 어려
운 것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해제를 관련 연구자가 쓸 경우에는 반드시 책 뒤에 역자의 말을 실어 그 번역을 하면서 느낀 전체 소회를 적어 둘 필요가 있다.


이런 해제와 역자의 말은 앞에서 제시한 인명 ․ 지명록, 중요 사진 자료, 관련 지도, 역대 제가의 평, 창작 연대표, 번역시 참고문헌31) 등과 잘 연계가 되어 역자로 하여금 번역 의욕과 보람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번역을 위해서도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31) 참고문헌을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국역계에 종사하는 분들의 의논을 평소 청취해 보면 논문을 쓰는 분들이 번역서를 분명히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한다.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번역하는 분들도 당연히 자신의 번역에 참고한 공구서와 서지사항은 물론이고, 자문을 받은 분들은 성함을 사실대로 기술해야 한다. 이는 이 번역서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역계에 맑은 기풍을 진작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가령 논문에서 논저 위주로 참고문헌을 기록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주요하게 이용한 DB자료와 블로그 등의 인터넷 자료, 자문한 사람, 번역에 도움을 준 사람의 이름을 적는 것을 꺼리는 것을 필자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한다. 가끔 논문에서 자료 협조자와 번역에 도움을 준 분들의 성함을 주석에 기재한 것을 접하면 필자는 매우 좋은 기분을 느낀다.




4. 역자의 자율성을 어떻게 보장하고 조절할 것인가?


역자의 번역서 선택 문제를 먼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서종을 어떤 역자에게 할당할 것인가 하는 방법으로 접근하게 되면 그 주무자나 위원회가 제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 많은 서종의 내용과 특징을 파악해서 해당 역자에게 안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개인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저해하는 면도 있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물어 많은 서종을 모아 놓고 그 안에서 역자의 학술적인 역량에 의해 자발적으로 신청하고 위원회에서는 그에 대한 합리적인 심사를 하는 것이 장기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볼만하다고 본다.


그리고 최근 번역원에서 발주한 번역서 평가를 보면 지나치게 오역의 지적과 그 근거의 제시로 되어 있어 번역서 품질 향상과 역자의 번역 의욕 고취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의문이들 때가 있다. 번역서의 평가는 대개 마이너스를 하여 그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하다 보니 역자가 일정한 기준 이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곳은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우선 눈에 띄고, 그 평가가 역자의 번역 의욕을 고취하기 보다는 번역 의욕의 위축이나 소극적인 안전 지향의 번역으로 몰아가게 할 우려마저 든다.


이런 방식보다는 번역서가 나오면 수준 있는 학자나 역자가 적절한 서평을 해서 그 번역서의 장점과 함께 문제점을 균형감 있게 서술하여 독자 대중과 역자, 그리고 원작자를 잘 매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역자나 전문가 집단은 물론이고 독자 대중의 평판이 나오게 되므로 역자 역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번역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번역 담론도 공론의 장에서 보다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게 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게 되고 역자는 또 역자대로 더 나은 번역을 하기 위해 자신과의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한시를 번역하는 분들을 보면 각자 장점이 다르다. 어떤 분들은 우리말 표현에 능한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원의와 관련한 주석을 잘 달고, 또 어떤 분들을 정말 그 시의 진가를 느끼게 설명을 잘하기도 한다. 시도 다르고 역자의 장점도 다르므로 번역문의 구성과 표현을 탄력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그렇지만 공공기관의 번역이 역자의 자율성 속에 맡겨버리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정한 번역 역량과 학문적 역량을 적절한 방식으로 검정해서 지금 보다는 보다 자율적으로 번역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가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인 번역서의 평가보다는 장기적으로 리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여론이 형성되고 그 중론에 따르는 방식을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다. 번역원에서 적절한 매체를 만들어 번역 담론의 웅덩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번역원의 회보를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일차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 번역원의 홈페이지에 의사소통 기능을 일정부분 확보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적절히 조화하는 방식이 좋지 않을까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4. 결어


통상 국역에 대한 일반의 담론을 접해 보면 우리말로 쉽게 번역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또 한시번역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면 시는 시답게 번역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쉽게 번역한다는 것은 읽는 독자를 잘 배려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고 시를 시답게 번역하자는 것은 시가의 번역에 있어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 보편성을 띤말이므로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오래 국역 실무에 종사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한학이나 한문학을 전공한 분들의 관련 논문을 보면, 하나 같이 한문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원의와 상관없이 번역을 하기로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쉽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한시만을 골라 공을 들여 번역을 한다면 시를 정말 시답게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역계의 형편을 보면 아직도 원의의 구현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의 마음이 먼저 생긴다. 가령 우리가 대하는 문집은 당대에서 고르고 고른 엘리트로 최고의 지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 번역하는 분들의 수준이 과연 원전을 어느 정도나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가 하는 점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번역의 품질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면 번역을 장기적인 축적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분명하고도 솔직하게 번역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번역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우선 필요한데 이렇게 할 경우 모호한 번역이 없어지고 정오가 분명해지며 독자 역시 오독을 할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지금의 번역 체제로는 독자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번역이 나왔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해에 어려움이 있으며 심지어 오독을 방치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즉 쉽게 번역한다는 것이 역문을 우리말의 질서에 따라 잘 서술한다고 해서 다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번역문을 읽어 보면, 말은 알겠는데 뜻을 모르고 한 구절은 알겠는데 한 편의 시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호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즉 옛 사람의 사고나 논리, 어법이 지금과 다르고 역문만으로는 한시가 담고 있는 풍미와 바닥에 깔려 있는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 점을 주석과 해설, 감상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때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번역은 달성될 수 있고 또 번역의 결과가 축적될 수 있을 것이다.


한시는 오늘날의 시에 대한 교양으로 이해할 수 있는 보편성도 있지만 추구하고자 하는 문화적 지향이나 미학의 원리에 있어 본질적인 차이점이 매우 크다. 문집에 실린 많은 한시는 시답게 번역하면 좋을 것도 있지만, 주석을 달 달아야 그 시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역자의 높은 안목으로 적절한 설명을 하거나 감상을 곁들여야 독자가 비로소 그 시의 가치를 이해하고 감상에 동참해 볼만한 시들이 많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그 시의 성격에 맞는 적절한 번역을 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독자를 배려하는 번역이 구현될 것이다. 이러한 한시의 특성을 잘 고려하여 앞으로는 그에 걸맞게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해 가야 국역계의 번역 담론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핵심 가치가 있는 것은 보다 비중을 두어 본문에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고, 주석을 통해 역자의 번역 근거와 의견을 개진하면 의미의 파악이 보다 명료해져서 그 과정에서 자연 오역이 줄어들게 되고 독자 또한 오독을 할 가능성이 크게 줄 것이다. 또 역자가 그 번역서에 꼭 필요한 자료, 예컨대 시의 창작시기, 인명과 지명 등을 정리하여 부록으로 싣거나 역자 후기 등을 통해 그 번역을 하면서 느낀 점이나 어려운 점, 그 시인의 주요 특징, 번역을 하면서 받은 인상 등을 자유롭게 서술해 놓으면 다른 번역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에게는 좋은 연구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원저자에 따라 같은 한문이라도 쓰이는 문법이 다르듯이 한시는 저자에 따라 그 풍격이 많은 차이를 보인다. 또 시의 종류와 성격, 작시 상황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게다가 역자들도 각각 저마다의 장점이 다르다. 그러므로 번역서의 구성을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획일적으로 하는 것은 원저자의 특징을 잘 살려내지 못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해당 역자의 역량을 잘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일정하게 그 번역과 학문 역량이 공인된 역자의 경우, 한시 번역의 구성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원저작자의 특징이 잘 부각되는 것은 물론이고 역자의 역량이 발 발휘되고 또 내면적인 동기가 촉발되어 보다 살아 있는 한시의 번역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어설프게 보이고 안정성이 떨어져 보여도 이런 것들이 장기적으로 보면 국역계에 활력을 가져오고 역자는 역자대로 즐겁게 번역을 하며, 독자는 독자대로 좋은 번역서를 읽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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