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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水에서의 陰陽과 吉凶*
김 종 의
** 동의대학교 철학윤리문화학과 교수.
요 약 문
風水는 氣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고대의 天文學과 曆學, 그리고 陰陽五行의 원리를 다양하게 원용하여, 땅의 모양과 형세에 따라 길흉화복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고를 체계화하고 있다.
그러나 風水는 실험을 통해 반증될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함으로써 유사과학을 넘어서 형이상학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왜곡되거나 신비화하는 경향마저 띠게 되었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견해의 초점은 風水가 비합리적이며 비과학적이라는데 있다. 비합리적이라는 측면은 사실이 아닌 부분을 확대해석하여 人事, 吉凶에까지 언급하는 술수라는 것이며, 비과학적이라 비판하는 측면에서는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억측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風水는 陰陽개념의 확대 해석에서부터 感應논리의 일방적인 적용으로 人事災異의 문제에서부터 發福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을 망라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風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적절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비단 이와 같은 사실만이 風水이론을 정립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風水에 내재된 문제의 핵심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風水가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근원적인 지혜를 정립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관점이 현대의 생태적 조경이나 생태 건축학 등의 기본 방향 및 원칙과도 부합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 주요어: 風水, 陰陽, 吉凶.
1. 서 론
風水는 風水地理, 堪輿, 地理, 地術, 地學으로도 표현되는 용어로서, 개인의 주택으로부터 집단 거주지 그리고 묘지에 이르기까지 그에 알맞은 곳을 판단하는 방법론을 정립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氣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고대의 천문학과 曆學그리고 陰陽五行의 원리를 다양하게 원용하고 있으며, 그것을 근거로 하여 땅의 모양과 형세에 따라 길흉화복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고를 체계화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風水的사고는 인간이 일찍부터 자연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지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거주지를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농경을 시작한 후로는 작물의 재배
와 수확량이 생존과 직결됨으로 인해 땅의 성격을 이해하게 되고, 그에 따라 땅의 기운을 파악하는 방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풍수적 사고의 맹아가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氣의 변화와 動靜을 陰陽으로 파악하는 논리가 경험적 수준에 머물던 인식을 학문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렸으며, 이로부터 風水的사고는 이론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地理에 대한 이해는 자연의 생명력을 감지한다면, 즉 좋은 기운이 있는 땅을 선택한다면 그 땅의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는 ‘感應’ 의 의미를 확장시켰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연의 원리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땅의 이용에 따른 다양한 사례를 통찰함으로서, 생명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의 조건들을 파악해서, 가장 적당하고도 알맞은 기운을 지닌 땅을 판단하는 방법이 정립된 것이다.
그런데 風水가 오랜 세월 동안 받아들여지고, 오늘날까지도 그 위력을 지니고 있는 원동력은 오직 感應과 發福만을 추구하는 풍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그와 같은 내용도 풍수를 지탱시켜온 동력임에는 틀림
없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을 찾거나, 혹은 생명 존중에서 인륜적 가치 실현인 孝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서는 거주지를 정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순기능을 담당했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곧 땅을 이해하는 관점이 합리적인 해석에 바탕을 두고자 했던 측면과 그와는 달리 땅을 신비한 힘을 지닌 실체로서 받아들이고자 했던 시각이 공존하였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후자의 시각을 부각시키는 사람
들은 風水를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風水가 실험을 통해 반증될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함으로써 유사과학을 넘어서 형이상학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1) 그로 인해 왜곡되거나 신비화하는 경향마저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견해의 초점은 風水가 ‘비합리적이며 비과학적인’ 데 있다. ‘비합리적이라 비난하는 측면에서는 사실이 아닌 부분을 확대해석하여 人事, 吉凶에까지 언급하는 술수라는 것이며, 비과학적이라 비판하는 측면에서는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억측’2)이라고 표현한다.
1) 강신주, 회남자와 황제내경, 김영사, 2007, p. 40.
2) 김영식 편, 중국 전통문화와 과학, 창작사, 1986, p. 309.
그러나 이는 風水가 본질적으로 지녀 왔던 땅에 대한 논리나 지혜는 무시되어 온 반면, 피상적이고도 술법적인 내용들이 과장되게 부각된 부분으로 말미암는다.
사실 풍수의 내용과 논리 구조에는 혼란스러운 요인이 적지 않게 내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인과 관계를 통해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때문에 風水비판의 초점은 類比의 확대해석으로 인해 정합적이고 타당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며, 아울러 검증을 통해서 추론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실험하거나 조작하기 보다는 오히려 설명하는 데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이라고 한다면 이론검증의 의무를 스스로 부과한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과학으로 그 작용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風水가 신비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관점의 차이를 혼동한 것이다.3)
3) 풍수는 과학이 아니면서 과학 흉내를 내다가 인문학의 특성인 균형 갖춘 시각과 총괄적인 입장 정리의 자세를 잃게 되었다. 다시 말해 풍수가 당대에는 과학이었지만 지금은 진정한 과학이 아니게 된 점을 사람들은 잊고 있다. 풍수는 인문학이다. 여기에 본능, 직관, 사랑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이다. 최창조, 새로운 풍수이론, 민음사, 2009, p. 147.
전체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생각하고, 행성의 변화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인간의 행동이 행성의 질서에 영향을 미친다는 ‘질적인 시공간관’과 ‘유기체적 세계관’은 과학적 시각 즉 양적인 세계관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와 같은 문제를 야기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風水의 이론적 바탕이 陰陽五行그리고 氣라는 개념으로 정립되어 있다는 데 있다. 이는 곧 동양적 사유의 근간을 이루는 이 개념들에 대한 해석과 적용의 범위가 문제
됨으로 해서 이와 같은 비판에 직면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 氣의 운용을 해석하는 방법은 陰陽五行에 의하므로, 중요한 것은 陰陽과 五行의 해석 여하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 해석의 변화와 추이를 고찰한다면, 오늘날 풍수 비판의 견해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역설적이게도 경험은 소중한 것이지만, 경험에만 의존할 때 그것은 대개 신비주의나 불가지론으로 귀착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 없이, 風水를 氣의 존재 입증이나 陰陽五行이론의 과학성으로 전제하
다면 거기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비단 이와 같은 사실만이 風水이론을 정립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風水에 응용된 지나친 類比의 관점들을 이해한다면, 風水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근원적인 지혜를 정립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2. 風水的사유의 정립과 陰陽五行
淸代의 風水書에는 地理를 地利와 地脈으로 나누고 있으며, 그 의미 또한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地理의 학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地利이고 하나는 地脈이다.
地利는 산천의 험하고 평탄함을 살펴 관문과 교량을 놓아 국토를 건설하고, 길을 우회하는 것과 가깝고 먼 것을 살펴 출입과 이동이 쉽도록 하며, 땅의 높낮이를 살펴 도랑을 파고 개천을 뚫어 관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地脈의 학문으로는 땅의 陰陽을 판단하고 물의 흐름을 살펴서, 크게는 나라와 도읍을 세우고 작게는 거주지나 묘지를 선택함으로써 吉祥을 얻고자 한다. 이는 곧 地利란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며, 地脈은 길함을 취하고 흉함을 피하는 것이다. "4)
4) 地理之學有二 一曰地利 一曰地脈 地利者 審山川之險易 設關梁以立國 察道里之迂宜遠近 以出入而行師
度乃地之高卑 以疏鑿而灌漑 若地脈之學 則相其陰陽 觀其流泉 大而建都立邦 小而卜宅營葬 以召吉迎祥也 是地利者 所以厚民生 而地脈者 則所以趨吉避凶也. 淸, 葉九升, 地理大成山法全書 序.
이에 따르면 地理는 地脈을 판단하여 趨吉避凶하고자 하는 부분과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하고자 하는 地利의 부분으로 분화되어 있으며, 그 해석 방법 또한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의 地脈이 곧 風水를 의미하지만, 초기의 地理이해는 이 두 부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자연환경이야말로 인간의 행동양식이나 사유체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이기에, 농업을 생존기반으로 하는 고대사회에서의 天文과 地理에 대한 이해는 풍요로운 수확을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때문에 하늘과 땅에 대한 관찰은 일찍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다시 말해 풍요로운 생산을 위해서는 파종과 수확을 적기에 맞추어야하는 농사시기의 결정과 기후변화에 대한 대비, 그리고 땅과 농작물의 선택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농사시기를 알기 위한 天文은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었고, 地理에 대한 지식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周易에서는 ‘위로는 天文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地理를 살핀다’5)고 하였으며, 史記에서도 ‘처음 인류가 출현한 이래로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지 않은 임금은 없었다. 오제와 삼대에 이르러 이를 계승하여 밝혔다.
… 위로는 하늘의 운행을 살피고 아래로는 땅의 조건들을 구분지었다’6)고 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요임금이) 희씨와 화씨(曆象을 맡은 벼슬)에게 명하여 하늘을 삼가 따르게 하고 일월성신의 운행을 관찰하여 사람들에게 농사 때를 알리도록’7) 하였던 것이다.
5) 易與天地準 故能彌綸天地之道 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 周易 繫辭上.
6) 自初生民以來 世主曷嘗不曆日月星辰 及至五家三代 紹而明之… 仰則觀象於天俯則法類於地.
史記 天官書.
7) 乃命羲和 欽若昊天 歷象日月星辰 敬授人時. 尙書 堯傳.
이와 더불어 地理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농업생산에 있어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였으니, ‘地理를 굽어 살핌으로써 도량의 표준을 정했고, 구릉과 육지, 못과 연못의 비옥함과 척박함, 높고 낮음 등의 마땅함을 살핌’8)
으로서 토질에 알맞은 곡물의 선택이나, 관개를 위한 수로의 구축에 응용하였으며, 또한 이로 인해 축적된 지혜는 도읍지를 비롯한 거주지의 선택에 적용되었고, 나아가 곡물의 생산량을 파악함으로써 조세의 정비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이미 周代에 토지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직책(職方氏)9)이 따로 있을 정도였으며, 지도를 만들어 행정구역을 정비하고, 산물을 관리하고 주민들을 구분하였던 것이다.10)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식은 나라의 이름을 정하는 데도 응용되었는데, ‘그 땅과 생업에 적합한 지로써 각각 그 이름을 지었다. 진대에 와서 제후국을 고쳐 군과 현을 두었는데, 해당 지역의 산천과 토지의 형태에 따라 이름을 정했다’11)고 할 만큼, 땅의 형세와 기운을 인식하는 관점은 진일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天文에 대한 지식의 축적은 曆法의 정비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고, ‘天文과 曆法의 정비는 곧 왕권의 상징이었으며’,12) 地理의 중요성은 治者의 논리로 이어졌던 것이다.
8) 俯視地理 以制度量 察陵陸水澤 肥墩高下之宜. 淮南子 泰族訓.
9) 職方氏 掌天下之圖 以掌天下之地… 與其財用 九穀六畜之數要 周知其利害. 周禮 夏官司 馬職方氏.
10) 戰國時代전후의 저술로 간주되는 山海經은 地理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적어도 기원전에 시작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특히 山海經의 ‘山經’에는 여러 산의 명칭 형태 특징과 물의 발원 流向유입처 등이 서술되어 있고, 각각은 중앙과 동서남북의 다섯 방위를 기준으로 체계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는 곧 지리에 대한 연구의 기원은 오래이며, 일정한 방위에 입각하여 그 위치가 파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혜정, 중국고전의 풍수지리사상, 한국 학술정보, 2008. p. 26.
11) 各以其地及於事宜制此名也 至秦改諸侯 置郡縣 隨其所在山川土形 而立其名. 釋名 釋州國.
12) 로버트 템플,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과학세대 역, 까치, 2009, p. 55.
"땅이란 다스림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땅은 정치를 바르게 할 수 있다. 땅이 균형과 조화를 잃으면 정치가 바르게 될 수 없다. 정치가 바르지 않으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13)
13) 地者政之本也 是故地可以正政也 地不平均和調 則政不可正也 政不正則事不可理也. 管子 乘馬.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天文과 地理의 연구는 우주만물의 상호작용은 유기적이고 통일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확립하였고, 陰陽五行論은 그 이론을 정립하는 논리구조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땅에는 陰과 陽이 있다. 하늘에는 五星이 있고, 땅에는 五行이 있다. 하늘에는 별들이 늘어서 있고, 땅에는 나라들이 있다. 해와 달과 별은 陰陽의 정기이고 그 근본은 땅에 있다.
…이십팔수가 십이주를 주재하고 북두칠성이 그들을 통괄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것이다."14)
14) 天則有日月 地則有陰陽 天有五星 地有五行 天則有列宿 地則有州域 三光者 陰陽之精氣本在地
… 二十八舍 主十二州 斗秉兼之 所從來久矣. 史記 天官書.
"陰陽家의 유파들은 모두 희씨와 화씨의 관직에서 나왔다. 일월성신을 살펴 역법을 바르게 하여 백성들에게 올바른 때를 알려준다. 이것이 그들의 장점이다."15)
15) 陰陽家者流 皆出於羲和之官 敬順昊天 曆象日月星辰 敬授民時 此其所辰也. 漢書 藝文志
이는 곧 天文연구의 결과가 陰陽五行의 개념을 빌어 체계화된 것을 의미하며, 陰陽五行이 天文과 地理의 해석에서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陰陽家의 형성이 觀象授時를 담당하던 고대 천관의 직책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陰陽五行이 日月과 五星으로 분명하게 인식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천문현상의 규칙성이 역법 정립의 근간이었던 반면, 陰陽五行은 그것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天文과 地理에 대한 지식의 축적은 曆法이외에도 占星을 통하여 미래사를 예측하거나 地氣를 판단하는 방법으로도 확대되어 응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天文현상은 천문관측이나 시기를 판단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잘못된 人事를 경고하거나 이변이 일어나는 원인의 해석으로 그 인식의 폭이 확대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별들의 운행이나 밝기 등의 변화가 人事를 해석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곧 天氣와 地氣의 상호 작용이 人事를 비롯한 만물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유체계를 확립하게 되었음을 의미
한다.
"위로는 천체의 운행에 맞추고, 아래로는 지형의 높낮이에 따르고, 가운데로는 인간의 이치에 맞도록 한다. … 天文은 陰陽二氣를 조화하고 … 별의 운행을 더듬어 천지간의 질서를 거역하면 어떤 이변이 생기는 지를 분별하고, 금기를 범함으로써 생기는 화를 피한다.
… 地形은 … 사람들에게 땅의 이치를 널리 알려 어떤 요사한 현상에도 놀라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 時則은 위로는 天時에 순응하고, 아래로는 토지의 생산력에 힘쓰되, 시절에 맞는 일을 행하고
… 순환에 따름으로써 때의 吉凶을 알게 한다.16)
16) 上考之天 下揆之地 中通諸理… 天文者 所以和陰陽之氣… 列星辰之行 知順逆之變 避忌諱之殃
… 地形者… 使人通迵周備 不可動以物 不可驚以怪者也
… 時則者 所以上因天時 下盡地力 據度行當
… 因循倣依 以知禍福. 淮南子 要略.
이는 곧 天地의 질서에 순응한다는 것은 올바른 人事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존망이 위태로워진다고 여긴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말할 것도 없이 천지의 질서는 陰陽의 조화에 따른 것이므로 人事또한
천지의 운행과 부합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데서 비롯된 것이다.
때문에 ‘風水에서도 산천의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은 모두 形과 氣, 별의 精氣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天文의 五星이나 北斗九星의 이름들이 실제로 山水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지형을 陰陽의 양대 요소이자 상응 관계로 간주하고, 天文의 형상은 그대로 지상의 형상으로 투영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天文과 지형의 상응은 陰陽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기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17)고 보았다.
17) 김혜정, 풍수지리학의 천문사상, 한국학술정보, 2008, p. 157.
다시 말해 風水에서 星宿의 精氣가 地理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해석하는 것은, 日月五星과 별들의 氣가 地理人事吉凶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 점과 동일하다. 따라서 風水에서 수려한 山水는 星宿의 精氣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陰陽五行이 天文과 地理의 표기수단으로 다양하게 쓰임과 동시에 春秋戰國시기를 거치면서 그 의미를 확대하여 吉凶의 판단과 해석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天文
과 地理의 해석방법이 風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陰陽의 원리로써 정립된 天文과 地理의 내용이 風水의 이론으로 구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風水에서도 陰陽五行은 산천의 형세 판단과 인사의 길흉에 대한 구체적인 논리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는 곧 陰陽五行이 天文地理를 해석하는 수단을 넘어 그 활용 영역이 더욱 확대되었고, 風水의 형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風水의 고전이라 하는 靑烏經을 주석한 唐의 楊筠松이 靑烏經을 저술했다는 ‘靑烏子’를 두고 ‘음양술에 능통한 자(精地理陰陽之術)’라고 표현한 것은 물론 吉凶또한 음양술로부터 말미암는다고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錦囊經을 주석한 張說이 風水를 음양술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論陰陽術法之妙)에서, 風水가 음양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의식은 현대의 風水이해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풍수술은 위로는 天文을 보고 아래로는 地理를 살피는 것으로 陰陽, 四象, 八卦, 五行, 星象등의 학설을 빌려 와 대단히 복잡한 이론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18)라든가, ‘風水의 기본 범주는 陰陽과 五行그리고 九星이다.’19)는 점 등이 그러하다.
18) 최창조, 앞의 책, p. 100.
3. 陰陽의 의미 변화
초기의 陰陽개념이 나타나는 것은 春秋左氏傳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언급된 陰陽의 의미는 주로 계절에 따른 陰氣와 陽氣의 변화로 인한 가뭄이나 한발의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근거로서 이다.
"28년 봄에 얼음이 얼지 않은 일을 두고 梓愼이 말했다. ‘금년에 송나라와 정나라에 흉년이 들 것이다. 歲星이 星紀에 있어야 하는데, 움직임이 지나쳐 玄枵에 자리잡고 있어 시절의 재변이 있으니, 이는 陰氣가 陽氣에 눌려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
20) 二十八年春 無冰 梓愼曰 今玆宋鄭其饑乎 歲在星紀 而淫於玄枵 以有時菑 陰不堪陽.
春秋左氏傳 襄公二十八年.
"한발이 들 것이다. 태양은 춘분을 지냈으나, 陽氣가 아직도 陰氣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이기게 되면 陽氣의 세력은 반드시 심할 것이니 한발이 들지 않을 수가 있으랴? 陽氣가 陰氣를 이기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陽氣의 세력이 모여 쌓아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21)
21) 旱也 日過分 而陽猶不克 克必甚 能無旱乎 陽不克莫 將積聚也. 春秋左氏傳 昭公二十四年.
이 시기의 陰陽은 ‘천지 사이에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六氣중의 두 성질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은 원래의 기후 관념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 그러나 六氣가운데에서도 陰陽二氣는 風雨晦明등 네 가지 氣에 비해 좀 더 추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합리적인 상상을 하는 데 보다 유용하였고, 그 상상에 가해지는 제약도 나머지 것들에 비해 작았다. 때문에 그것은 많은 현상들에 대해 강력한 해석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六氣중에서도 점차 부각되어 다른 많은 형상이나 사물들과 연관을 맺게 되었’22)지만, 이 시기의 陰陽관념은 아직 모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2) 梁啓超馮友蘭외, 陰陽五行說의 硏究, 김홍경 역, 신지서원, 1993, p. 66.
國語에 나타나는 陰陽의 의미는 조금 더 확장되어 만물과 사람에 적용되며, 그 운행과 변화에 질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시 말해 질서를 잃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제대로 움직이고 만물이 제대로 자란다는 것 등이다.
"무릇 천지의 기운은 올바른 질서를 잃어서는 안 되며, 만약 그 질서를 잃는다면 백성들이 혼란스럽게 된다. 陽의 기운이 밑에 깔려 나올 수 없고, 陰의 기운이 그것을 눌러서 위로 솟아오를 수 없으면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다.23)
23) 夫天地之氣 不失其序 若過其序 民亂之也 陽伏而不能出 陰迫而不能烝 于是有地震. 國語 周語上.
이 외에도 사람 역시 陰陽의 기운을 어울리게 하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도 하였으며, 陰陽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하면 사람들이 화합하고 세상이 크게 평화로울 수 있다고도 했다.
이는 春秋左氏傳에서의 陰陽이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초보적으로 분석하고 규정하기 시작했다면, 國語에서의 陰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늘, 땅, 사람, 물질’에 적용되는 통일적인 법칙임을 제시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春秋左氏傳과 國語에서의 陰陽의 의미는, 자연과 사회와 사람의 양태와 변화를 추론하는 개념으로써 초보적인 범주의 의미에 머물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陰陽으로 만물을 분류하는 방법은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유사성에 의한 類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陰陽은 단순히 분류 방법만 아니라, 모든 현상 속에는 기본적으로 陰陽의 요소가 동시에 내재해 있다는 방식으로
사유의 영역을 확장시켰던 것이다. 이에 따라 陰陽은 사물들의 단순한 類比的분류를 넘어서, 현상의 변화를 설명해주는 근본적 원리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陰陽의 의미는 인간과 자연에 내재하는 유기적 연속성을 매개하는 개념으로서 확장되게 된다. 이와 같은 만물의 유기적 연속성은 氣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여겨졌고, 기는 陰陽의 원리를 통해 변화 할
수 있다고 인식되었다.
따라서 세계를 天과 人으로 양분하여, 하늘에는 天道가 있고 사람에게는 人道가 있다고 상정하여, 하늘과 사람의 관계는 ‘天文’과 ‘人文’으로 표현되었다.24)
전국시대의 孟子가 ‘天人相通說( 孟子 公孫丑上)’을 제기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의식의 초기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하늘도 인격정신을 갖추고 있으며, 사람도 하늘의 품성을 갖추고 있어서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한다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자연스럽게 천지를 이루고 있는 陰陽의 氣가 성하여 만물이 화순하게 되며, 천지의 변화는 만물에 두루 미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25) 이는 禮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4) 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 周易
25) 天地絪縕 萬物化醇… 範圍天地之化而不過 曲成萬物而不遺. 周易 繫辭下.
"天地의 이치를 근본으로 하기에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그것을 제시할 수가 있으며, 陰陽의 이치를 근본으로 하기에 어떤 사물이든 그 성질을 추찰할 수가 있다."26)
26) 以天地爲本 故物可擧也 以陰陽爲端 故情可睹也. 禮記 禮運.
때문에 전국시대 이래의 기존사상을 종합 정리하고 있는 呂氏春秋에서의 陰陽은, 이미 천지의 원리로써 정치 인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感應한다는 생각이 구체화되어 있다. 이를테면 ‘文王이 말하기를, 하늘이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게 한 것은 죄가 있는 사람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다’27) 는 표현이 그러하다.
27) 文王曰 夫天之見妖也 以罰有罪也. 呂氏春秋 制樂.
여기서 더 나아가 漢나라 초기의 사상을 통일하고자 집대성한 淮南子에서는, 感應의 논리가 자연현상과 人事의 문제에 걸쳐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천지가 화합하고 陰陽이 만물을 키우는 것은 모두 인간의 기운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위와 아래가 서로 멀리하면 氣는 위로 증발하고, 임금과 신하가 화합하지 않으면 오곡이 익지 않는다."28)
28) 天地之合和 陰陽之陶化萬物 皆承人氣者也 是故上下離心 氣乃上蒸 君臣不和五穀不爲. 淮南子 本經訓.
이와 같이 陰陽의 이론이 절대적인 진리 체계로 확립되었다는 것은 당시까지의 모든 자연과학 지식과 사변적인 이론체계를 포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陰陽개념은 그 추상성으로 인해 상대성과 절대성 그리고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구분을 소홀히 함으로써 인과론이 배제된 感應만을 부각시키게 된 것이다. 따라서 天文을 통하여 人事의 변화를
안다는 것 또한 ‘天의 의지’와 ‘기계적인 感應’이 대립한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하늘의 의지라고 한다면 ‘天人感應’은 人事의 잘잘못에 대한 하늘의 경계를 의미하지만 자연적인 법칙이라 한다면 ‘天人感應’이란 기계적인 感應인데, 이것들이 구분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漢儒들은 이와 같은 天人感應說을 굳게 믿었고, 자연계의 이상 현상은 人事의 잘못에 대한 징조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天人感應의 음양설은 漢代이후 거의 모든 의식형태 영역에 침투하여
견강부회한 논의를 증가시켰던 것이다.
4. 陰陽과 吉凶
고대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늘이 창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神이 만물을 낳았다고 생각하여29) 神을 섬겼던 것이다. 때문에 모든 일을 신에게 점을 쳐 물어본 뒤에야 행했던 것이다.30) 이와 같이 모든 일을 전적으로 신의 뜻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祭政一致의 神國이라 일컫기도 한다.
때문에 史記에도, ‘예로부터 성왕이 나라를 세우고, 천명을 받아 왕업을 일으켜 일을 하려고 할 때 卜筮를 소중히 여겨 선정을 돕지 않은 일은 한 번도 없었다’31)고 하였다. 다시 말해 天命의 표현은 곧 신의 계시이었으므로 전쟁에 나가는 일이나 제사, 수렵, 곡물의 작황과 수확, 질병 등 어느 일이든지 모두 점을 쳐서 길흉을 판단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였던 것이다.
29) 天神 引出萬物者也. 說文 神.
30) 說文의 ‘示’部에 속한 한자들을 검토하여 보면 대개 神에게 올리는 각종 제사나 혹은 인간의 길흉화복과 관련된 의미를 나타낸 자가 대부분인데, 이는 사람이 복을 받고 화를 당하는 일도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신의 섭리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돈주, 중국 고대문화, 태학사, 2006. p. 28.
31) 自古聖王將建國受命 興動事業 何嘗不寶卜筮以助善. 史記 龜策列傳.
하지만 신권이 점차 왕권으로 교체,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神을 믿고 占卜을 통해 나라의 대사를 결정하였으며, 天命을 받들고 공경하는 일은 춘추시대에서 秦, 漢代에 이르기까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성행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占卜의 중요성을 두고 周易에서는 ‘數의 지극함으로 미래의 일을 아는 것’이며, ‘하늘의 신비함을 聖人이 규범화시킨 것’이라고 했다.
또한 ‘蓍龜는 하늘이 만든 것이고, 성인이 그것을 卜筮의 방식으로 규범화시켰으며, 세상에서 길흉을 예측하고 업적을 이루는 데는 蓍龜만 한 것이 없다’32)고 하였으니, 이는 곧 인간이 신의 의사를 알아내기 위한 방법이 占卜이고, 그것은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의미이다.
32) 極數知來之謂占… 是故天生神物聖人則之… 謂天生蓍龜 聖人法則之以爲卜筮也… 以定天下之吉凶 成天下之亹亹者 莫大乎蓍龜. 周易 繫辭上.
이 시기에 자연현상과 그 변화가 인간의 삶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초기의 발상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와 연관된 이해에 머물렀지만, 陰陽五行의 개념이 자리 잡기 시
작하면서 사회현상에까지 관여하는 讖緯說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戰國時代에 이르러 사물들의 일반적 틀에 관한 또 하나의 사유 방식이 점차로 대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이 사유 방식은 前漢시기에 그 영향력이 절정에 이르고, 이어지는 자연 철학의 전체 발전에 영속적인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陰陽家이다.
陰陽家의 이론은 자연현상의 변화에 대한 경험 법칙이 바탕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신비주의적 요소들을 삽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연 현상의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추론
의 방향은 언제나 인간사와 정치였으며, 그것을 연결하는 논리는 天人感應에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天人感應의 논리는 禮記의 ‘月令’33)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나는데, 人事와 災異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感應의 논리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추론과 비약에 바탕을 두었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陰陽家이전에 등장했던 이론들에서 天人感應의 단초를 찾는 것에도 충분한 근거는 있으며,34) 그러한 경향들이 모든 점에서 초기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鄒衍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의 모든 현상들을 포괄하는 感應범주들의 방대한 사유 체계를 맨 처음 상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33) 月令은 戰國時代陰陽家의 중요한 저작 가운데 하나이다. 呂不韋가 呂氏春秋를 편찬하면서 전문을 수록해 넣으며 책 전체의 강령으로 삼았다. 漢初의 儒家들이 다시 그것을 禮記에 집에 넣으면서 나중에 儒家의 經典이 되었다.
34) 鄒衍이전의 인물인 孟子는 ‘堯舜으로부터 湯王에 이르기까지가 오백년이고, 湯王으로부터 文王에 이르기까지가 오백여 년이고, 文王으로부터 孔子에 이르기까지가 오백여 년이다.
孟子 盡心下’라고 하여, 오백 년을 주기로 성현이 출현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역사관에는 陰陽家의 색채가 배어있으며, 후대의 儒者들은 그것을 ‘천도의 법칙’이라고 하였다. 鄒衍이 이와같은 孟子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면, 荀子가 子思와 孟子를 이른바 五行의 창시자들이라며 공격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양계초 외, 음양오행설의 연구, p. 246.
史記에서는 鄒衍을 비롯한 陰陽家의 이론이 크게 두 부분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는 일찍이 陰陽家의 학술을 고찰해본 일이 있는데, 그것은 대체로 吉凶의 징조에 치중하여 여러 가지 금기하는 것이 많고, 사람으로 하여금 구속을 받고 두려움을 사게 하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춘하추동 사시의 운행 순서에 맞추어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점은 놓쳐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35)
35) 嘗竊觀陰陽之術 大祥而眾忌諱 使人拘而多所畏 然其序四時之大順 不可失也. 史記列傳 太史公自序.
문제는 이와 같은 鄒衍의 학설 가운데 ‘놓쳐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에 의해, 오히려 吉凶의 징조에 치중되어 그 본지를 잃어버리고 황당한 논리로 전개되어 버렸던 것이다.
"鄒衍은 陰陽主運이론으로 제후들 간에 알려졌다. 그러나 연나라와 제나라 해상의 방사들은 그의 이론을 이어받았으나 통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괴이하고 바르지 못하며 아첨하거나 함부로 영합하는 무리들이 이로부터 일어나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36)
36) 騶衍以陰陽主運顯於諸侯 而燕齊海上之方士傳其術不能通 然則怪迂阿諛茍合之徒自此興 不可勝數也. 史記書 封禪書.
이는 곧 鄒衍이후의 사람들이 그의 이론을 단순히 채택했을 뿐, 심지어 이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讖緯나 占卜을 陰陽家의 이론으로 왜곡하여 吉凶의 술수에로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天人感應이란 같은 종류의 사물은 공통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으로서, 일상의 체험 속에서 지각된 현상들을 수평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물, 식물, 四方位, 인간 특성, 자연현상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분류는 말할 것도 없이 견강부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 陰陽家들은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연관시키려고 하였고, 또 세계가 질서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통일적 전체임을 설명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인간과 자연의 同類관계들에서, 사회와 개인을 자연계의 주기나 변화와 제휴시킴으로써, 인간 사회와 개인적 삶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董仲舒는 인간은 ‘天’의 일부이므로, 인간 행위의 정당성을 陰陽家에서 이끌어낸 형이상학의 이론과 유가적인 정치 사회철학을 결부시켜 해석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하늘에는 陰陽이 있고 사람에게도 陰陽이 있다. 天地의 陰氣가 일어나면 사람의 陰氣도 이에 따라 일어난다. 사람의 陰氣가 일어나면 하늘의 陰氣도 마땅히 그에 응하여 일어난다. 그 道는 하나이다’37)고 하였다. 이는 곧 하늘의 氣와 사람의 氣가 동류일 때에는 감응한다는 의미이며, 이 원리에 입각하여 비가 오게 하거나 비를 멎게 하는 것도 신비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董仲舒는 君權神授說과 天人感應의 이론을 펼쳤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은 한마디로 말하여 왕권신화에 있었다. 따라서 그의 학문은 儒家의 이론을 중심에 두되, 陰陽家의 이론으로 보완함은 물론 神權君權 父權夫權을 꿰뚫어 봉건신학 체계를 이룩하였던’38) 것이다.
37) 天有陰陽 人亦有陰陽 天地之陰氣起 而人之陰氣應之而起 人之陰氣起 而天地之陰氣 亦宜應之而起 其道一也. 春秋繁露 同類相同.
38) 이돈주, 앞의 책, p. 50.
董仲舒는 인간의 옳지 않은 행동에 대한 하늘의 반응을 陰陽五行의 혼란을 의미하는 언어와 天意를 의미하는 언어로서 해석하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天意는 결코 정해진 운행 행로를 벗어나는 법이 없지만, 인간 사
회의 통치자들은 그렇지 못하므로 하늘이 자연의 혼란과 재난들을 통해 이에 반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인간의 운명이나 길흉화복에 관한 각종의 추론들을 만들어내었고, 그것은 더욱 보편화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별자리의 변화를 인간사의 길흉이 드러난 것으로 여겨 하늘에 일식이나 월식, 또는
이변 등이 나타나면 지상에도 그에 상응하는 일이 반드시 나타나며, 천문의 제반 현상이 지상의 길흉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이는 모두 陰陽의 精氣이다. 그 근본은 땅에 있으며 위로 하늘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가 올바름을 잃게 되면 저기에서 변화가 나타난다. … 현명한 군주가 그것을 보고 깨우치면 … 화는 사라지고 복이 이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39)
39) 此皆陰陽之精 其本在地 而上發于天者也 政失於此則變見於彼… 是以明君覩之而寤… 則禍除而福至 自然之符也. 漢書 天文志.
결국 董仲舒를 비롯한 漢代의 儒者들은 鄒衍의 학설을 계승하여 陰陽에 대해 논의하였지만, 그들이 치중한 것은 天人感應의 확대해석으로 인한 길흉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漢書 ‘藝文志’에서는 ‘天文歷譜五行蓍龜雜占形法’ 등의 여섯 가지를 術數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이치를 ‘궁극적으로 유추하면 해석하지 못할 것이 없다’40)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의 術數란 자연현상
에 근거하여 人事의 吉凶을 예측하는 방법으로서, 궁극적으로는 陰陽의 이치와 天人感應의 논리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占卜으로 天命을 언급하는 것이 절대적이었듯이, 蓍龜와 占卜을 아우르고 있는 術數로서 판단하는 인사의 길흉 또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어떤 자연현상이 人事의 吉凶을 반영하는지에 대한, 음양론의 해석은 주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이에는 어떠한 원칙도 없다. 동일한 현상을 두고 吉하거나 凶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연계의
이상 현상은 수시로 발생하는데, 만약 그것을 악의적으로 해석하여 人事의 잘못에 대한 징조로 해석한다면 적용되지 않을 부분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이후의 역사를 통해서 언제나 자의적 정당성의 빌미가 되어 왔던 것이다.
40) 推其極則無不至. 漢書 藝文志五行.
5. 風水에서의 陰陽
동양적 사유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은 하나의 체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구축되었기에, 天文과 地理및 人事는 불가분의 관계로 간주되었다. 風水는 바로 이와 같은 인식의
구체적인 결과물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해 天地의 형성이 陰陽의 기운으로 대비되면서 地理에 대한 지식 또한 陰陽의 이치를 바탕으로 하게 되었으며, 인간 역시 天地와 동일한 陰陽의 氣이기에, 地理를 이해하는 것 또한 陰陽의 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만물의 이치란 곧 천지의 법칙이니, 陰陽이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로서 인식된 것이며, 또한 그 운동과 변화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 것을 의미한다.
"엎드려 地理를 살핌으로써 도량형을 정하고, 언덕과 물길 그리고 비옥함과 척박함, 높고 낮음의 적당함을 헤아려서, 농사를 일으켜 재물을 만들어 飢寒의 재해를 제거했다.41)
41) 俯視地理 以制度量 察陵陸水澤 肥墽高下之宜 立事生財 以除飢寒之患. 淮南子 泰族訓.
天數란 좌측에 靑龍, 우측에 白虎, 앞쪽에 朱雀, 뒤쪽에 玄武가 배치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地利란 뒤쪽에 生地를 끼고, 앞쪽에 死地가 있으며, 좌측에는 구릉이 있고 우측에는 계곡이 있는 것을 말한다."42)
42) 所謂天數者 左靑龍 右白虎 前朱雀 後玄武 所謂地利者 後生而前死 左牡而右牝. 淮南子 兵略訓.
이에 따르면 땅의 이치를 파악하는 地理의 관점이 일정한 방법과 격식을 갖추게 됨에 따라 地氣를 판단하는 논리가 정립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대로부터의 地理的지식에 陰陽家의 이론, 그리고 天文과 曆法을
도입하여 바람과 물의 순환 이치, 그리고 땅의 기운과 그에 따른 영향까지를 고려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靑龍, 白虎, 朱雀, 玄武’는 고대의 四靈에서 유추된 것으로,43) 風水에서의 四神砂로 정착되게 된다.
地理이해에 있어서 이러한 관점들은 자연히 땅속을 흐르는 生氣를 상정하게 된 것이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이롭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地理의 이해에 대한 기원은 春秋戰國時代이전으로 볼 수
있지만, 地勢를 판단하여 地氣의 흐름을 통찰하는 방법은 漢代에서 그 기초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최초의 저서는 靑烏經으로서,44) 이 책은 漢代靑烏子로 알려진 사람이 저술한 가장 오래된 풍수서로 통하고 있다.
그런데 唐代의 풍수가인 楊筠松은 靑烏經을 주석하면서, 그 서두에서 이 책의 저자인 ‘靑烏子’를 ‘地理陰陽의 術에 능통한’45)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곧 唐代에서는 風水가 ‘地理陰陽之術’로 이해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작 靑烏經에서 ‘陰陽’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구절은 단 세 곳이며, 이 또한 陰陽의 원리적 의미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는 태초의 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陰陽의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방
향을 지칭하는 陰陽이고,46) 나머지 하나는 風水란 陰陽의 조화에 따른 것47)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43) 靑龍, 白虎, 玄武, 朱雀은 軍이 행진할 때 대오를 상징하는 旗를 의미하지만(禮記 曲禮上),이는 天文용어로서 하늘의 四象을 대표하는 별자리의 이름을 風水에서 차용하고 있다. 김혜정, 앞의 책, p. 65.
44)錦囊經과 靑烏經을 풍수의 교과서적 경전으로 인정하는 데는 풍수의 어떤 유파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확고한 위치를 갖는 책들이다. 최창조, 앞의 책, p. 213. 靑烏經은 그 저술 시기에 대한 논란 때문에 최초 또는 한 대의 풍수지리서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靑烏經은 여전히 대표적인 초기 풍수지리 전적으로 통용되며 ‘風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언급한 문헌이기도 하다. 김혜정, 앞의 책, p. 124.
45) 先生漢時人也 精地理陰陽之術 而史失其名. 靑烏經 注.
46) 向定陰陽 切莫乖戾 差以毫釐 繆以千里. 靑烏經
47) 陰陽符合 天地交通 內氣萌生 外氣成形 內外相乘 風水自成. 靑烏經
구체적으로 靑烏經에서는, ‘태초의 혼륜한 상태에서 氣의 씨앗이 크게 퍼져나가 陰과 陽으로 나누어지고 맑은 것과 탁한 것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生老病死가 생겨났는데 실제로 누가 주관하는가. 그 처음도 없고 그
것을 의논함도 없었지만, 없다고 할 수 없으니 吉凶이 있기 때문이다’48)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태고의 혼륜한 기운이 움직여서 陰陽이 되고 陰陽의 기운으로 淸濁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이는 단지 생성론으로서의 陰陽의 의미일 뿐이며 吉凶과 관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문장을 주석한 楊筠松은, ‘아득한 옛날의 세계에는 陰陽의 설이 없어 禍福을 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陰陽의 설이 생긴 이후로는 吉凶이 감응하는 것이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 이치를 알고
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49)고 하여, 吉凶의 판단은 陰陽說로 말미암는다고 단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陰陽의 설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때는 생노병사, 길흉화복을 판단할 기술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陰陽說이 정립됨으로 인해 우주의 현상이나 인생의 禍福은 陰陽의 운행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이것에 의해서 禍福을 논하고 吉凶을 점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후세 사람들이 말하기를, 陰陽學에 빠져서 그렇다고 하지만, 어찌 上古로부터 陰陽의 이치가 없던 것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으며, 더욱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면 역시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50)고 하여, 陰陽說이 정립되기 이전에도 천지의 이치는 陰陽으로 전개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나아가 ‘만약 陰陽說을 가벼이 여길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나의 말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나의 말이 비록 무용지물이라 할지라도 이치는 즉 이를 뛰어 넘음이 없다’51)고도 하였다. 이에 따르면 唐代에서의 陰陽은 이미 術數化된 의미로서 이해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漢代의 靑烏經 이후 나타난 풍수서가 晉의 郭璞이 쓴 錦囊經52)인데, 그는 이 책에서 ‘經’을 인용하여 전거로 삼는다고 하였다. 그가 錦囊經에서 인용하고 있는(經曰氣感而應鬼福及人) 經이 靑烏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는 郭璞이전에 이미 풍수서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48) 盤古渾淪 氣萌大朴 分陰分陽 爲淸爲濁 生老病死 誰實主之 無其始也 無有議焉 不能無也 吉凶形焉. 靑烏經
49) 謂太始之世 無陰陽之說 卽亦無禍福之可議 及其有也 吉凶感應 如影隨形 亦不可得而逃也. 靑烏經 注.
50) 言後世 泥陰陽之學 曷如上古無之爲 愈旣不能無焉 則亦何惡之有. 靑烏經 注.
51) 萬一陰陽之學可忽 則又何取於予之言也 然予之辭 若贅疣 理則無越於此. 靑烏經 注.
52)錦囊經 또한 靑烏經과 함께 대표적인 초기 풍수지리 전적으로 꼽힌다. 그런데 錦囊經은 언제나 晉의 郭璞과 연계되어 거론되지만, 저자와 관련하여 그것이 郭璞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郭璞이 葬地의 선택에 능하였다는 기록들은 錦囊經이 그의 저서가 아니라 해도, 그 내용의 상당부분은 郭璞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혜정, 풍수지리학의 천문사상, p. 125.
하지만 錦囊經에서도 역시 陰陽의 개념이 직접 人事의 吉凶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무릇 陰陽의 두 氣는 불면 바람이 되고, 오르면 구름이 되고, 떨어지면 비가되며, 땅속으로 돌아다니면 生氣가 된다.53)
53) 夫陰陽之氣 噫而爲風 升而爲雲 降而爲雨 行乎地中 則爲生氣. 錦囊經 氣感編.
와서 쌓이고 멈춰서 모이면 陰陽이 조화를 이룬다.54)
54) 來積止聚 沖陽和陰. 錦囊經 因勢編.
陰陽이 조화를 이루고, 오색의 혈토에 네 가지가 갖춰지고 … 陰과 陽이 서로 어긋난 것이 첫 번째로 흉한 것이 된다 … 陰陽의 이치에 통해지면 功이 조화를 빼앗는다." 55)
55) 陰陽沖和 五土四備… 陰錯陽差爲一凶… 玄通陰陽 功奪造化. 錦囊經 貴穴編.
이 또한 陰陽개념의 기본적 의미 범주를 넘지 않고 있다.
그러나 錦囊經의 주석을 단 唐代의 張說에 의하면, ‘황제(玄宗)께서 일행 선사와 더불어 陰陽술법의 묘함을 토론하였다. … 위로는 天地陰陽의 신묘함을 다 밝히고 조물주의 길흉화복의 권한을 빼앗아서’56)라고 해석
함으로써 陰陽이 술법화 되고, 陰陽의 이치가 길흉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였다.
56) 上與一行禪師 論陰陽術法之妙… 上窮天地 陰陽五行之妙 下奪造化 禍福吉凶之權. 錦囊經序.
따라서 靑烏經과 錦囊經 라는 두 경전 자체의 내용에서는 陰陽이 실제로 길흉과 관련된다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보아 陰陽의 확대 해석이 일반적이었던 秦漢代이후라면 人事의 吉凶과 산천의 조화에 대한 感應을 언급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지만, 風水書에까지 직접적으로 적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리된 先秦시대의 저작인 呂氏春秋의 ‘節喪’에서는 感應으로 인한 吉凶판단의 계기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나타난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고 해서 도랑이나 골짜기에 버리는 것은 인정상 차마 못할 일이므로 장사가 생겨나게 되었다.
… 장사지낸다는 것은 감춘다는 것이다. 얕게 매장하면 여우나 이리가 파헤칠 것이요, 깊게 매장하면 물길에 닿게된다.
…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자를 위하여 생각하는 것 중에서 죽은 자가 옮겨지지 않게 하는 것과 무덤이 파헤쳐지지 않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옮겨지지 않고 파헤쳐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덤 안에 사람들이 이익으로 여겨 탐낼 만한 것이 없는 것보다 안전한 것은 없다. " 57)
57) 所重所愛 死而棄之溝壑 人之情不忍爲也 故有葬死之義… 葬不可不藏也 葬淺則狐狸抇之 深則及於水泉
… 以生人之心爲死者慮也 莫如無動 莫如無發 無發無動 莫如無有可利. 呂氏春秋孟冬紀節喪.
이와 같은 기록은 당시에 무덤이 파헤쳐지는 일이 흔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데, 이는 의도적이든 아니면 도굴로 인해서든 무덤이 파헤쳐짐으로 해서 나타난 유골의 상태는 시신이 묻혀 있던 장소의 선택에
대한 판단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파헤쳐진 무덤의 상태는 그 땅의 기운과 感應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 기회를 부여한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경험적 지식의 축적은 吉地의 선택과 吉凶의 판단을 부추기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 당시에 이미 만물을 이루는 근본적인 요소인 氣는, ‘같은 氣를 가진 무리끼리 서로 感應하는 성질이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도 변화된 것과 일체였으니, 죽음은 삶
과 더불어 하나’58)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곧 사람의 나고 죽음이란 형태만 바뀔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동일하며, 조상과 후손 간의 同氣는 자연스럽게 感應한다는 생각으로 연결된 것이다. 同氣感應은 그러한 인식을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조상의 遺骸를 훼손시키지 않음으로써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야말로 동기감응의 구체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程伊川은 葬說에서, ‘무덤을 선정한다는 것은 그 땅의 아름답고 추함을 고른다는 것이지 陰陽家들이 말하는 吉凶禍福을 점친다는 것이 아니다’59)고 하여, 당시의 風水가 陰陽家들의 술법에 경도되어 있음을 지
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朱子또한 山陵議狀에서 ‘장사지낸다는 것은 조상의 유골을 잘 갈무리한다는 뜻이다. 자손 된 이가 그 조상의 유골을 모실 때는 반드시 삼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 유골이 편안하고 오랫동
안 보존될 계책을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모양이 온전하면 신령이 편안함을 얻게 되고, 그러면 그 자손이 번성할 것이며 제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다.’60)고 함으로써 吉凶에 치우친
사고를 경계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靑烏經에서의 동쪽 산의 화염과 서쪽 산의 구름에 대한 비유,61) 그리고 錦囊經에서 구리로 만든 종과 구리 광산, 밤나무의 싹이 봄에 돋아나는 것과 저장한 밤이 싹이 트는 것의 비유62)를 인용하고 있
는 것은, 感應의 논리가 보편적으로 수용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이 자체가 類比의 확대해석임은 틀림없지만, 感應과 陰陽이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초기의 풍수서에 나타나는 陰陽의 개념 자체가 人事와 吉凶의 해석에 적용된 것이 아니라, 확대 해석된 유비적 感應논리가 길흉과 인사의 문제로 해석된 것이지만, 그 가운데 陰陽의 개념이 내재되고, 그것
또한 제한적 범위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58) 皆象其氣 皆應其類 淮南子 墬形訓. 未生之時 而與化爲一體 死之與生一體也. 淮南子 精神訓.
59) 卜其宅兆 卜其地之美惡也 非陰陽家所謂禍福者也. 葬說.
60) 葬之爲言藏也 所以藏其祖考之遺體也 以子孫而藏其祖考之遺體 則必致其謹重誠敬之心 以爲安固久遠之計 使其形體全而神靈得安 則其子孫盛而祭祀不絶 此自然之理也. 山陵議狀.
61) 東山吐焰 西山起雲 穴吉而溫 富貴延綿. 靑烏經.
62) 是以銅山西崩 靈鐘東應 木華於春 栗芽於室. 錦囊經 氣感編.
6. 風水에서의 感應과 吉凶
현실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의해 生老病死가 이루어지는 유한한 세계이며, 인간 역시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려는 상징화가 현실세계 속에서 이루어지곤 하는데, 종
교에서의 의례행위 등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의례행위에서 제의 공간을 물과 불 또는 황토나 소금 등으로 정화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현실세계의 한 공간을 차지할지라도 영원을 상징하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風水에서 말하는 明堂또는 吉地가 이와 같은 공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비현실세계가 지닌 온갖 힘 이를테면 發福과 같은 미래사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明堂을 찾고 머문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존재의 전환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통해 있어야 할 것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風水란 궁극적으로 땅의 기운을 陰陽五行의 해석에 접목시킴으로써 온전함을 지향하고자 한다. 이는 마치 한 알의 씨앗이 어느 곳 어느 때에 떨어지는가와 같은 의미로서, 사람의 운명이나 吉凶禍福또한 그 땅의 生
氣에 감응 받는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風水는 趨吉避凶의 욕구를 明堂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춘 논리로서, 결핍된 현재를 벗어나 변화된 양상을 꿈꾸는 인간존재의 무한한 상상력의 발로
라 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風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적인 發福은 결국 개인의 영달과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明堂과 吉地의 핵심은, 陰陽의 이치로 형성된 만물은 그 기운의 조화와 치우침에 의해 형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산과 물의 모양 역시 陰陽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곳이라야 한다는 데 있다. 또한 그곳이 陰
宅이라면 感應의 원리에 따라 후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며, 陽宅이라면 산사람의 생활이 활기 있고 조화롭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와 같은 陰陽의 이치가 단순한 조화의 의미를 넘어서서 趨吉避凶의 욕구가 실현되는 人事와 發福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陰陽과 感應개념의 類比해석
이 확대 적용된 이후의 일이지만, 그 한계는 모호할 뿐이다. 예를 들면 風水에서 산과 물의 영향에 따른 發福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는 이미 術數化된 陰陽의 의미로서 唐代이후의 風水書에서 風水를 ‘陰陽之術’이라 표현하면서부터 이다.
"물로 인한 禍와 福은 곧바로 일어나지만, 산의 감응은 더디다.63)
63) 水之禍福立見 山之應驗稍遲. 雪心賦.
산은 본래 그 성질이 고요한 것이어서 陰에 속하고, 물은 본래 그 성질이 움직이는 것이어서 陽에 속한다. 陰의 도는 본체에 해당하고, 陽은 변화를 주관한다.그러므로 길흉화복은 물에서 나타나는 것이 더 빠르다."64)
64) 山靜物而屬陰 水動物而屬陽 陰道體上 陽主變化 故吉凶禍福 見於水者尤甚. 地理新法 水論.
風水에서의 물의 역할이나 중요성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인 해석 방법은 陰陽과 조화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이를테면 산은 일정한 장소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陰이
되고, 물은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陽이 된다는 것은 陰陽의 속성에 따른 해석이다. 그러나 물이 유동적이기에 더욱 중요하며 또한 그것이 發福의 속성과 연결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陰과 陽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이, 산과 물 역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산은 陰이고 물은 陽이므로 山水가 서로 어울려야 陰陽이 조화된다는 해석을 넘어선다면, 이는 지나친 類比이다.
사실상 陰陽論은 전개 발전되는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사물을 분류하는 원리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물을 분류했다고 해서 사물을 인식했다고 할 수 없으며, 분류된 사물과 사물간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陰陽은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물과 사물을 관계 짓는 인식의 틀이기도 하다. 그러나 陰陽은 단지 대상을 해석할 수 있는 틀로서의 의미이지, 그것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범주는 아니다. 억지로 견강부회하지 않는 한, 현상이나 사태가 발생한 사물과의 관계를 해석하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陰陽은 해석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예측한다고 하는 실천적 원리로 확대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설명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측한다는 것에 궁극적인 가치를 두고, 해석과 예측을 등치시켰던 것이다.
실제 이와 같은 내용에서 언급되는 陰陽이 의미하는 바는 漢代이후 확대 해석된 부분을 적용하여 지나친 類比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吉凶禍福을 陰陽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吉凶禍福을 陰陽으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이러한 해석은 陰陽으로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陰陽의 영향을 말하거나 陰陽의 요소로서 해석하려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제한적인 의미의 적용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상을 陰陽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상대성만이 아니라 절대성 또한 언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시각이 분명히 전제되지 않는다면, 자연과 인간, 나아가 吉凶禍福과 人事그리고 災異의 문제들은
모두 계통화 되어 버린다. 이와 같은 계통화는 자연스럽게 자의적으로 확대되어 하늘과 땅의 관계로부터 發福의 관념을 도출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성과 절대성을 혼동하고 있는 陰陽개념의 추상성이 風水이해의 왜곡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할 것이다.
"陽山과 陽水는 길흉이 陽에서 나타나는데, 陽은 곧 남자의 무리다. 陰山과 陰水는 길흉이 陰에서 나타나는데, 陰이란 곧 여자의 무리다."65)
65) 陽山或陽水 則吉凶必見乎陽 陽則男之類也 陰山或陰水 則吉凶必見乎陰 陰則女之類也. 地理新法 山論.
하늘과 땅 사이에서 陰陽의 바른 기운을 받고, 오행의 기운이 온전하며, 팔괘의 쓰임이 구비되면 비록 세대의 흥망성쇠의 인물은 시운에 달려 있다고 하지만, 그 發福은 이어져 사라지지 않는다."66)
66) 天地之中 受陰陽之正 五行之氣全 八卦之用備 雖世代盛衰人物豊約在於有時 然終綿綿不替也. 明山論 三十六龍順會.
風水에서의 감응 매체는 조상의 遺體이다. 조상의 遺體는 陰宅의 地氣를 후손에게 감응시키기 때문에 生氣가 충만한 陰宅이라면 후손은 조상의 遺體를 통해 生氣를 누리게 되지만, 치우친 氣의 陰宅이라면 마찬가지로 치우친 氣를 전달받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길흉과 관련되어 해석된다는 것이 風水에서의 感應論의 핵심이다. 심지어 최대의 福은 王도 될 수 있는 반면 가장 심한 禍는 絶孫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感應의 해석에 있어서 또 다른 문제는 인식주체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天人感應이란 원래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의미이지만, 風水에서는 자연에 의한 인간의 일방적 규정을 의미하거
나, 아니면 인과관계가 배제된 자연과 인간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의미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자연에 의한 인간의 규정은 중요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인간의 반작용과 또한 그 스스로 또 하나의 자연인 인간 자신의
독자적인 운동이 배제되어 있다. 다시 말해 기계적이고 결정론적인 인과론이 인과관계의 한 부분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측면만이 확대된 感應만이 이야기 되고 있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風水는 陰陽의 類比를 기초로 하고, 感應의 개념을 실제적으로 응용하여 체계화된 것이다. 類比란 대상 간의 유사성에 기초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부터 모르는 영역으로 옮기는 방법이다. 하지만 類比
는 이론적 근거가 불충분해서 이 방법으로 얻은 추론에는 개연성이 따르게 된다. 이를테면 ‘類가 다른 것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형식논리의 원칙이 많은 경우 방기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대략적인 설명은 할 수 있어도, 세부에 깊이 들어갈 수 없으며, 개념의 내포 및 외연은 명확히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所主吉凶論으로써 感應의 일방적 인과를 보완하고자 하지만, 積善과 積德이 吉地의 선택 조건이라는 것은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가지만, 실상은 그 類가 다른 것이다.
7. 결 론
風水는 역사적인 사실로서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현상임에는 분명하다. 이는 세계의 모든 민족이 비록 문화적인 차이는 있으나, 주거지를 인식하는 태도에서나 그 의미 면에서 볼 때, 風水에
서 추구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터인 陽宅이나 陰宅을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거기에 정주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역시 그러하다. 이는 모든 나라의 공통된 현상으로 고대 대부분의 민족들이 모두 자신들이 사는 땅이 곧 세계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으며, 그 곳을 ‘대지의 배꼽’67)으로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 이다.
67) Greece Delphi 神殿의 Omphalos는 배꼽이란 뜻으로 대지의 중심을 상징하며, Andes 산맥에 있는 Inca 도시 Cuzco도 배꼽이라는 의미이다. 태평양의 Easter Island는 Rapa-Nui는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다. Jerusalem에서는 神殿의 초석을 ‘대지의 배꼽’이라고 하였다. 또한 中國의 戰國時代동북방의 문화 중심이었던 齊역시 배꼽이라는 의미를 가진 臍의 假借字였음이 밝혀졌다.
이와 같은 風水의 핵심은 곧 땅의 기운이다. 다시 말해 地氣를 어떻게 느끼고 이해하며 그것을 통하여 인간 생활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의 경험이 집적된 땅
에 대한 깨달음과 자연에 대한 세심한 통찰력이 만들어낸 지혜이다. 때문에 이를 좁은 뜻으로 해석하면 주거의 입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고, 넓은 뜻으로 해석하자면 인간과 환경의 관계 설정 방식을 설명하는 체계, 또는 자연에 대한 해석 체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風水를 擇地의 기술이라든가 地理에 대한 지혜 또는 전통적인 환경 사상이라 표현하더라도, 이들이 풍수적 사유를 표현하는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정의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風水는 땅에 대한 이치를 究明하고자 하는 경험 과학적 논리 체계와 地氣가 어떻게 人事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밝히는 感應的인식 체계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경험적 논리 체계의 부분에도 오해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감응적 인식의 분야는 매우 주관적이고 직관적이라서 곧바로 풍수 비판의 빌미가 된다.
하지만 현대의 자연 과학에서조차 완벽한 현상 해석 이론은 없다는 점에서 보면, 감응적 인식의 분야에 대한 객관성이나 논리적 체계화는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상징이나 시적 이미지같은 역설적인 표현 방법을 씀으로써, 언어와 그 직선적인 사유로 비롯되는 한계를 비껴나가고자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점 때문에 風水에 대한 기대감이나 적응성은 오늘날까지도 살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陰陽, 五行그리고 氣로 이해되는 동양의 질적 세계관이 유일하게 통용되는 부분인 한의학을 제외하고는, 신비적이거나 비합리적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살아있는 인체를 다루는 의학 분야가 유기체적 자연관을 표방하고 있는 동양의 범주들로서 해석될 때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한의학 분야는 수없이 많은 검증의 절차를 거치면서 그 체계를 완
성해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동양사유에 있어서 陰陽의 類比에 의한 확대 해석이 가져왔던 실체적이고 오랜 영향은 비단 風水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사회사상과 관념형태의 영역에 침투하여 잘못된 많은 사고의 틀이 만들어졌
으며, 그것들은 오랜 시간 소멸하지 않은 채 인간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작용하여 행위와 사상에 있어서 자각되지 않은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風水또한 그 범주 안에서 보려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陰陽개념의 확대 해석에서부터 感應논리의 일방적인 적용 등이 風水비판의 초점이 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陰陽의 해석에서부터 人事災異의 문제, 그리고 發福에 대한 무제한적 적용 등은
風水를 연구의 대상으로서 부적절함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風水의 해석에도 최소한의 객관성이 확보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風水를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이 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생태적 자연관과 정서적 공간관은 현대 주거공간의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風水이론은 전통적인
사고와 맞물려 있는 개념으로서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공간 인식이기도 하다.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통한 행복추구라는 관점은 현대의 환경심리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환경의 지원성과도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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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조, 청오경 금낭경, 민음사, 2004.
Abstract
The cosmic dual forces and fortune in Feng Shui
― Kim Jong Eui ―
Feng Shui designates the methodology that helps to decide adequate place for building a house, settling a grave and so on. This theory, based on the notion of the life force, systematizes the thought that the good or ill luck is connected with the geomantic topography of the situation and the shape of the land by quoting the principle of the ancient astronomy, the study of calendar, the cosmic dual forces and the Five Elements. on the other hand, some people have complained that Feng Shui not only stretches the lies but also mentions the human matters or the good or ill luck. In fact, the overinterpretation in the notion of the cosmic dual forces and the one-sided application in the logic of response are inadequate parts to make a study. However, if understanding exactly the core of problem, there would be no objection to the theory of Feng Shui that it explains the inherent wisdom of harmony of human and nature. Furthermore, a view like this coincides with the basic concept and the fundamental principle in ecological gardening and ecological architecture.
※ Key Words: Feng Shui, cosmic dual forces, good or ill luck.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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