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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적(史蹟) 제121호 사직단(社稷壇)

장안봉(微山) 2015. 8. 11. 05:49

사적(史蹟) 제121호 사직단(社稷壇)

 

 

지정일  : 1963. 1. 21.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사직동 1-28              

시    대  :조선 시대                관리자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울사직단 → 사직단)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가 한양에 수도을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함께 만들었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제사는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 그믐에 지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그리고 풍년을 비는 기곡제들을 이 곳에서 지냈다.

1902년 사직단과 사직단의 임무를 맡는 사직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삼았다. 1940년 정식으로 공원이 된 사직공원이 옛 사직단의 자리이다.
 
전문 설명
사직단은 조선(朝鮮) 태조(太祖)가 한양(漢陽)에 서울을 정하고 궁궐(宮闕), 종묘(宗廟)를 지을 때 함께 만든 것이다. 태조 3년(1394)에 고려(高麗)의 예(例)를 따라 토신(土神)을 제사하는 국사단(國社壇)은 동쪽에, 곡신(穀神)을 제사하는 국직단(國稷壇)은 서쪽에 배치하고 신좌(神座)를 각각 북쪽에 모시었다.
 
1897년 고종(高宗)이 황제위(皇帝位)에 오르자 이곳을 태사(太社)·태직(太稷)이라고 고쳐 부르기도 했는데, 이 사직(社稷)을 종묘와 함께 중하게 여겨 중춘(仲春)과 중추(仲秋)와 납일(臘日)(동지(冬至) 후 세번째 되는 개날(戌日))을 택하여 1년에 세 번 제사를 지냈다.
 
 
서울사직단 전경
 
 
사직단 제사
 
 
사직단 제사
출처 : 솔바람소리
글쓴이 : 구름에 달가듯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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