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김씨(善山金氏-김추계)
선산은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지선주군사(知善州郡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선산군이 되었고 2년 뒤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선산김씨의 선계(先系)를 기록한 김종직의 『이준록(彛樽錄)』에는 시조 김추(金錘)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 해를 입힌 자를 찾아 목을 벤 뒤 관에 자수하여 처벌을 자청했으나 오히려 효자라고 표창을 받았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김추는 김알지의 28세손인 경순왕의 여덟째아들로, 경순왕과 고려 태조 왕건의 딸인 낙랑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후에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졌으며 고려 개국의 일등공신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일선으로 하였는데 조선 태종 때 일선이 선산으로 개칭됨에 따라 본관을 선산으로 고쳤다.
시조의 17세손인 김성부(金成富)가 호조판서를 역임하고 18세손인 김기(金起)가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짐으로서 명문으로 번성하였다. 김기의 아들 김경도(金敬道)와 김경적(金敬迪)은 교수(敎授)를 지냈다. 유학은 물론 의학에 밝아 많은 환자를 치료한 김취성(金就成)은 『진락당집(眞樂堂集)』을 저술했다. 구암 김취문(金就文)은 청백리로 유명하며, 사성(司成)과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김취문의 아들 김종무는 임진왜란 때 상주 북천전투에서 순국하여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상주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김천영(金天英)은 세자사부(世子師傅)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금오산에서 여생을 마쳤다.
선산김씨 세거지는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들성) 일대로 김취문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전성기에는 130여 호에 달하였으나 근래에는 40~50호로 줄었다. 최근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집성촌은 거의 철거 되었다. 다만 경상북도 기념물 제132호인 김종무충신정려비(金宗武忠臣旌閭碑)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3호인 대월재(對月齋) 등 지정문화재와 재사 등 건축물 4점이 인근에 있는 문중 소유의 야산에 이건 되었다.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포상동 하송산에 김기의 묘소가 있다. 그밖에도 김종무 정려각, 김성부 추모비, 낙봉서원(洛奉書院), 남강서원(南岡書院), 충렬사(忠烈祠), 서산세덕사(西山世德祠), 하송재(下松齋), 상두재(上斗齋), 대월재(對越齋), 대혜재(大惠齋), 숭남재(崇南齋), 점현재(店峴齋), 경파재(景坡齋), 긍운정(肯雲亭), 만산재(晩山齋), 백운재(白雲齋), 경락재(景樂齋) 등이 있다.
시조 단소및 재실 하송재 전경
재실 하송재 전경
입향조 화의군 김기(金起)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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