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권주(花山 權柱)
1457(세조 3)∼1505(연산군 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지경(支卿), 호는 화산(花山). 심(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항(恒)이고, 아버지는 이(邇)이며, 어머니는 송원창(宋元昌)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진사시에 합격, 1481년 친시 문과(親試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482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를 역임했고, 이후 강경 문신(講經文臣)으로 활약하였다. 1489년 공조정랑 재직중에 질정관(質正官)이 되어 요동을 내왕했고, 그 해 11월 지평(持平), 1492년 6월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1493년 부응교(副應敎)에 승진하였다.
같은 해 12월부터 다음 해 8월에 걸쳐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대마도(對馬島)를 내왕하였다. 귀환 뒤 사헌부로부터 사행(使行) 때 체통을 잃었다고 탄핵되었으나 용서받았고, 곧 응교에 승진하였다.
1494년 12월 직제학(直提學) 표연말(表沿沫), 전한(典翰) 양희지(楊熙止)와 함께 <대행왕행장 大行王行狀 : 成宗行狀>을 찬진하고, 1495년 3월 다시 <대행왕시책 大行王諡冊>을 지어 올렸다. 같은 해 8월에 집의(執義), 1498년 7월 통훈대부에 오르면서 직제학지제교 겸 경연시강관을 역임하였다.
1499년 2월에 찬진된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그 달에 홍문관부제학으로 올랐다. 승정원우부승지와 우승지를 거쳐 1501년 1월에는 도승지에 승진되고, 같은 해 윤7월 충청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502년 10월부터 이듬 해 3월에 걸쳐 동지중추부사로서 하정사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1503년 4월 동지중추부사로서 동지성균관사를 겸임했고, 같은 해 10월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504년 윤4월 정축일에 갑자사화가 발발하면서 1482년(성종 13)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의 사사(賜死) 때에 승정원주서로서 사약을 받들고 갔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 달 경진일에 사사시켜야 한다는 전지가 있었으나, 유순(柳洵)·김수동(金壽童) 등이 “권주는 당시에 주서로 단지 승지의 지휘에 따랐을 뿐이다.”는 계(啓)를 올려서, 사형만을 면하고 장형(杖刑)을 받은 뒤 평해(平海)로 귀양갔다.
그러나 1505년 6월 폐비 윤씨의 사사 때에 사약을 받들고 간 일이 거듭 논죄되면서 결국 사사되었고, 형제 자매도 아울러 외방에 부처(付處)되었다. 1506년(중종 1) 9월 좌참찬에 추증되면서 신원되었고, 같은 해 11월에 다시 장례를 치르도록 허용되었다.
젊은 나이로 등제했을 만큼 문학에 뛰어나 명성이 있었고, 중국어에 능통해 대명외교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성품이 검소하고 단아하면서 직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저서로는 1798년 (정조 22)에 간행된 ≪화산선생일고≫ 1책 58장이 있다.
화산 권주선생 신도비각과 선원강당 전경
화산 권주선생 신도비각
화산 권주선생 신도비
신도비명은 갈암 이현일 선생이 찬하였다
가일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新 신도비
선원강당 전경
화산 권주선생 묘소 전경-전분은 배위 고성이씨의 묘이고 후분이 화산 권주선생의 묘이다
배위 고성이씨묘
가선대부 예조참판 증 자헌대부 의정부 참찬 권주지묘
묘소에서 바라본 선원강당 전경
묘소 근처에 신축중인 경북도청 신청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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