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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구 달성] 사성김해김씨(賜姓金海金氏) 시조 김충선(金忠善) 묘

장안봉(微山) 2015. 1. 12. 17:46

사성김해김씨(賜姓金海金氏)-우록김씨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조선 중기 정유재란 때 귀화한 항왜 출신 김충선(金忠善)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다른 김해 김씨와 구별하여, 김충선계 김해 김씨, 사성 김해 김씨라고도 부른다. 후손 가운데 일부는 집성촌이었던 우록동(현- 가창면 우록리)의 이름을 따서 우록김씨(友鹿 金氏)를 관향으로 하고 있으나 매우 소수이다.

2000년 인구 통계에 따르면, (사성)김해 김씨는 대략 20만명, 우록 김씨는 500명 정도이다. 일부는 일본계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는 경남, 경북에 살면서 지역 본관에 속하였다.

병자호란 때 항왜병들은 북방 경비로 가게 되면서 함경북도, 함경남도에 집중 배치되었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이 전쟁이 끝나고 함경도에 정착하였다. 북한 지역의 (사성)김해 김씨 또는 우록 김씨의 인구 통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김충선(金忠善)

 

본명은 사야가(沙也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선지(善之), 호는 모하당(慕夏堂).

 

1592년 임진왜란 때 가토(加藤淸正)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침입하였다가 경상좌병사 박진(朴晉)에게 귀순하였다.

그 뒤 경주·울산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첨지의 직함을 받았으며, 정유재란 때는 손시로(孫時老) 등 항복한 왜장과 함께 의령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러한 전공을 가상히 여긴 조정으로부터 가선대부를 제수받고, 이어서 도원수 권율(權慄), 어사 한준겸(韓浚謙) 등의 주청으로 성명을 하사받았으며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품되었다.

뒤에 야인들의 침입으로 변경이 소란하자 종군을 자원하여 10여년 동안 방수(防戍 : 변방 방위)에 봉직하였으며, 1613년(광해군 5) 정헌대부(正憲大夫)가 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그 부장 서아지(徐牙之)를 잡아 죽인 공으로 사패지(賜牌地)를 받았으나 사양하고 수어청의 둔전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스스로 광주(廣州)의 쌍령(雙嶺)에 나아가 싸워 큰 전과를 올렸다. 1643년 외괴권관(外怪權管)으로 국경수비를 맡고 있던 중 청나라 칙사의 항의로 해직되어 대구의 녹리(鹿里 : 목장을 할 수 있는 땅으로 在野를 의미함)로 돌아왔다.

목사 장춘점(張春點)의 딸과 혼인하여 살면서 가훈·향약 등을 마련하여 향리교화에 힘썼다. 저서로는 1798년(정조 22)에 간행된 『모화당집』 3권이 전한다.

 

 

 

사성김해김시조묘역전경

사성김해김씨 시조 김충선(金忠善)/배위 인동장씨/ 배위 청도김씨의 묘

 

 

증정헌대부병조판서김해김공휘충선지묘

 

 

묘후경

시조 모하당 김충선의 차자 묘(하)

 

증공조참판김해김공지묘-시조 모하당의 차남 김경신의 묘이다

 

 

 

 

녹동서원

녹동서원에 세워져 잇는 시조 모하당공의 신도비

 

 

 

 

 

 

충절관 전경(녹동서원 좌측에 위치한다)

 

 

한일우호관(녹동서원 우측에 위치한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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