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문법

[스크랩] 한문에서 단어상의 특징

장안봉(微山) 2014. 11. 6. 08:17
 

단어(單語)상의 특징


한문이 가지는 단어상의 특징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로 추릴 수 있다. 하나는 한문이 우리말과 달리 용언(동사, 형용사)이 활용을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 단어가 여러 가지 품사로 쓰인다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알아보자.


▶ 용언이 활용이 없다.

먼저 활용이란 ‘용언(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이나 서술격 조사에 변하는 말이 붙어 문장의 성격을 바꿈’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는데, 쉽게 말해 ‘먹다’라는 단어가 ‘먹-’이라는 어간에 ‘먹어라, 먹, 먹, 먹’ 등의 어미가 붙어 ‘먹다’라는 단어의 형태가 변하는 것을 ‘활용’으로 알면 된다. 그런데 한문에는 이러한 용언의 형태 변화가 없다. 이러한 용언의 무활용(無活用)은 한문 같은 고립어(孤立語)의 특징이다. 한문에서 용언이 변함이 없는 것은 일장일단이 있다. 한문에서 용언이 활용하지 않으니, 가령 영어 같으면 동사 활용인 동명사, 분사, 진행형 등을 공부해야 하지만, 이런 학습할 거리가 없어서 수고를 더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대신에 그 용언의 의미를 눈에 보이는 어미나 접사의 형태가 아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문맥에 주로 의존하여 해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吾昨日冷麵. (나는 어제 냉면을 먹었다.)

 梨與沙果, 孰. 速擇. (배하고 사과하고 무엇을 먹을래. 빨리 골라라.)

 欲壽, 則魚類. (오래 살려면, 생선을 먹어라.)


위의 예문에서 보듯이 각각 食자는 형태 변화가 없는데, 상황에 따라 ‘먹었다’, ‘먹을래’, ‘먹어라’ 등으로 형태가 변하여 해석이 된다. 이것은 食자가 겉으론 형태의 변화가 없지만,  평서문뿐만 아니라 의문, 명령 등에 두루 쓰인다는 것이다. 食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문맥에 의존하여 판단해야 한다. 


위에서 食은 아직 다른 품사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한문에선 용언이 다른 품사로 전환되어 쓰이는 품사 전성(轉成)도 용언의 형태 변화 없이 이루어진다.(품사 전성은 형태는 다른 품사로 쓰이지만, 기능은 본래의 품사 기능을 하는 것으로 기능까지 바뀐 파생어와는 다르다.) 우리말은 용언이 명사나 부사로 전성할 때는 물론이고, 형용사가 수식하는 용도(관형어)로 쓰일 때에도 전성해 쓰일 때도 그에 따른 어미가 단어(어간)에 붙어서 단어의 모양이 변한다. 한문에서 용언이 품사 전성이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한문에서 품사 전성이 된다고 가정하면, 역시 한문에서는 용언이 활용이 없으니까, 품사 전성이 일어나는 때에도 용언의 형태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할 때에는 모양은 동사(용언) 형태이지만, 명사 등으로 품사를 바꿔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자.


a) 百不如一. (백번 들음이 한번 봄보다 못하다.)

a-1) 所百聞不如所一見. (백번 들은 것이 한번 본 것보다 못하다.)

a-2) 所柔勝所强. (△)

b) 有人, 無人. (들은 사람은 있어도 본 사람은 없다.)

b-1) 有聞龍之人, 無見龍之人. (용을 들은 사람은 있어도 용을 본 사람은 없다.)


 우리말은 용언이 활용하여, ‘먹다’가 ‘먹’처럼, 어간에 ‘-음(ㅁ), -기, -한 것’이 붙어 명사형이 되고, ‘먹’처럼 ‘-는’이 붙어 관형사형이 된다. 그런데 한문에서 동사가 활용이 없으므로 문맥에 따라 동사를 다른 품사로 전환하여 적절하게 해석을 해야 한다. 위의 a 문장에서 본래 동사인 聞, 見자가 형태는 변화가 없지만, 명사형으로 전환되어 해석이 됨을 볼 수 있다. a-1처럼 어조사 所자가 용언 앞에 와서 용언이 명사적으로 전성되어 쓰임을 명료하게 나타낸다. 여기서 所자는 기능이나 성질이 우리말의 의존명사 ‘바(것)’와 비슷하고, 활용하는 어미로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 a-2처럼 所자가 형용사를 명사로 바꾸기 위해서는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위 b 문장에서 聞, 見자는 뒤 단어를 수식하는 관형사로 전성되어 해석이 된다. 그런데 보통 「동사+명사」 구조는 ‘서술어+목적어’로 해석이 많이 되어, 동사가 관형사로 전성되어 쓰일 경우와 잘 구별해야 한다. b-1처럼 수식하는 단어와 수식을 받는 단어 사이에 之자를 쓰기도 하는데, 수식하는 단어가 동사로 한 단어일 때는 之자는 잘 쓰이지 않는 듯하다.


▶ 한 단어가 여러 품사로 쓰인다.

한 단어가 여러 품사를 겸하는(一單語 多品詞) 것도 우리말과 다른 한문의 특징이다. 물론 한문에서 어떤 단어가 어떤 품사로 쓰였는지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도 있고, 굳이 무슨 품사로 쓰인다는 것까지 알지 알아도 된다. 그리고 한문에서 한 단어가 여러 품사로 쓰이는 사실도 한문 공부를 조금만 하다보면 금방 저절로 알아낼 수 있다. 우리말은 대개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품사로 쓰인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말에도 명사나 부사를 겸하는 단어가 더러 있다. 그러나 이는 한문에 비교하면 한 단어가 두 품사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동사나 형용사 중에 명사에서 파생한 것이 있는데, 이런 동사나 형용사에는 대개 뒤에 접사가 붙어서 명사와는 약간 다른 형태를 띠어, 서로 다른 단어로 간주된다.) 그래서 국어에서 한 단어가 명사로도 쓰이고 동사로도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영어를 보면 rain(비[명사] 비가 내리다[동사]), show(보이다[동사] 쇼[명사]), water(물[명사], 물을 끼얹다[동사]) 등의 단어가 명사, 동사 등을 겸하여 두 가지 품사 이상으로 쓰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한문에서도 한 단어(한자)가 두 가지 품사 이상으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간단히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ㆍ食 - 먹다(동사), 밥(명사)

 ㆍ衣 - 옷(명사), 입다(동사)

 ㆍ雨 - 비(명사), 비가 내리다(동사)

 ㆍ之 - 가다(동사), 그것(대명사)

 ㆍ遂 - 드디어(부사), 이루다(동사)

 ㆍ已 - 이미(부사), 그치다(동사), 뿐(어조사)

 ㆍ若 - 만약(부사), 너(대명사), 같다(형용사)

  

이렇게 한자가 한 품사에 고정되지 않고, 여러 품사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렇듯 하나의 한자가 두 가지 품사 이상으로 쓰이기 때문에, 간혹 어떤 한자가 어떤 품사로 쓰였는지 구분하기가 까다로워 해석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a) 美女, 女富男. -남자는 미녀를 좇고, 여자는 부유한 남자를 좇는다.

a-1) 窟攻我國. -적이 굴에서(굴을 통해) 우리나라를 침공해 왔다.

b) 夫夫妻妻, 家不和乎. -남편이 남편답고 아내가 아내다우니, 집이 화목하지 않겠는가.

 不王之王王, 豈國盛哉. -왕답지 않은 왕이 왕을 하니, 어찌 나라가 번성하겠는가.

c) 好酒, 無日不飮焉. -왕이 평소에 술을 좋아하여,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欲登山, 降雨乃止矣. -등산하려고 했으나, 마침 비가 내려 그만두었다.


위 예시 a에서 從자는 ‘좇다’라는 의미로 동사로 쓰였다. 이것은 우리가 웬만한 한자 실력만 있어도 알 수 있다. 그러나 a-1처럼 從자가 품사도 의미도 완전히 다르게 쓰이면 그 의미를 알아내기 어려울 수 있다. 예문 b에서 夫, 妻, 王이 의미는 비슷하나, 품사가 달리 해석되었다. 이렇게 의미는 비슷하나, 품사가 달리 해석되는 경우도 은근히 해석함에 헤맬 수 있다. 예문 c에서 보듯이, 일부 한자는 주된 의미로는 유추하기가 쉽지 않은 부사적인 의미로 쓰인다. 사실 적지 않은 한자가 이런 용도로 쓰인다. 이런 부사는 단순히 단어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고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데, 이것은 국어의 문장 부사와 성격이 비슷해 보인다.


a) 行.(동쪽으로 가다)    入.(성에 들어가다)

b) 男與花(於)也.(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주었다.)

 腕長(乎), 脚長(乎).(팔은 손보다 길고, 다리는 발보다 길다)


한자가 명사처럼 보이지만, 부사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말도 어떤 단어가 형태의 변화 없이 명사와 부사를 경우는 흔한데, 대개 이런 단어는 의미가 시간이나 장소와 관계가 있다. 예문 a에서 東, 城은 앞에 어조사 於가 없지만, 於가 있는 것처럼 부사적으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한자가 명사 같은데, 부사적으로 해석이 되는 경우는 예문 a에서 보듯이, 대개 그 한자 의 의미가 처소와 상관이 있을 때나 결합하는 동사(한자)의 의미가 처소와 상관을 가질 때이다. 특히 단어(한자)가 부사와 용언(동사, 형용사)이나 명사를 겸하는 경우에 이런 혼란이 더 심하게 된다. 예문 b처럼 어조사(개사)가 생략됐다고 볼 수 있는 상황도 명사가 부사로 해석이 된다.

출처 : 한문을 알자
글쓴이 : 한문궁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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