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스크랩] 장계(張繼)-풍교야박(楓橋夜泊)

장안봉(微山) 2014. 10. 31. 14:24

 

 <느낌이 있는 여행>

 

楓橋夜泊(풍교야박)... 밤배 풍교에 깃들다. 

 

 

풍교야박(楓橋夜泊)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장계(張繼)가 과거시험에 응시 했다가
세 번 째 낙방을 한 직후에 쓴 시(詩)라는 점부터 알아야 한다.

그의 나이 56세 때 그러니깐 당나라 중기 현종 때 쓴 詩다.

중국은 나라가 크고 넓다보니 과거를 보러 한번 장안에 왔다 가려면 근 일 년이나 걸리는

먼 거리가 많았다.

죽어라 공부하여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장안에 와 시험 보고 운 좋게 합격하면 그보다 더 큰 영광과 출세는 없지만

재수 없이 낙방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면,

다음 과거시험까지 보통 5년에서~10년이란 세월이 휭~하니 지나가버리는 게 

장안에서 먼 강남살던 과객들이 겪는 당시의 현실이였다.

장계는 그런 고단한 시험을 세 번 씩이나 낙방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 했겠는가~~

강남땅에 사는 장계는 평생을 오로지 과거시험에 희망을 걸고 준비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楓橋夜泊(풍교야박)은

썩어빠진 조정의 암담한 현실과 자신의 절망이 깊게 밴 짧으면서도 의미 깊은 시(詩)로

강가의 쓸쓸한 밤 풍경을 빗대어 고뇌찬 심정을 쏟아냈다.
현실의 벽 앞에 절망하는 한 지식인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녹아 든 주옥같은 名詩다.

 


그는 사실 실력이 모자라서 과거에 낙방한 게 아니라
장계가 과거를 보던 당시 당(唐)나라 조정은 시제(試題)를 사전에 유출시킬 만큼 타락해 있었고,
벼슬자리를 사고 파는 매관매직이 성행 해
부패가 온 나라를 뒤덮은 암울한 시기였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고, 뜻 있는 선비들은 초야로 숨어들고

 크고 작은 변란은 끊임없이 일어나던...
장계는 그러한 절망적인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세 번 째도 과거에 낙방을 해
암담한 현실의 절망과 서러움에

울분을 삼키며 나룻배를 타고 홀로 고향으로 돌아가던 장계는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에 이르렀는데

그날도 날이 저물었다.

 

 

楓橋夜泊(풍교야박)...밤배 풍교에 깃들다

月落烏啼霜滿天 (월낙오제상만천)
달 지고 까마귀 울고 하늘엔 찬서리 가득하고...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강가의 고깃배도 시름속에 잠 못 드네...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한산사의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깊은 밤 종소리가 뱃전에 이르는구나.

 

 

- 주(註) -

풍교야박(楓橋夜泊)에 녹아 든 속뜻을 직역하자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 풍교(楓橋) 밑에 배를 대고

지친 몸을 추스리며 뱃전에 누어 늦은잠을 청하려는데...
고깃배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처량하게 눈에 들어온다.
물고기를 잡아 하루 하루 연명하는 저 어부의 고된 삶의 현실이나,
인생 전부를 과거시험에 건 삶이었건만

내 생애 마지막 시험마저 낙방하고 절망하는 내 신세나,

다를 바 뭐가 있으랴...
 달은 기울고 까마귀 처량하게 울고, 찬서리 하늘 가득 내리는 이 밤,

강가의 밤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드는데...

아~!

 암울한 조정의 절망적인 현실이 너무도 괴롭구나,

시름속에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 차디 찬 가을밤...
한산사(寒山寺)의 애끓는 종소리가 뱃전에 와 부서지니,

서리서리 얼켰던 절망적 서러움이 울컥 치밀어 올라

허무하게 늙어 간 못난 이 몸이

이 밤 더더욱 서럽구나~!!.-

 

그랬다. 정말 그랬다...

 이 뼈저린 좌절은 오늘날까지도 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키며

위로와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는 긴 여운의 名詩다.

 

  

풍교야박(楓橋夜泊)은

우리나라로 치면 소월의 시 "진달래꽃"처럼 대중에 널리 알려지고 읽혀지는
대중성 짙은 명시(名詩)다.
중국인이면 대부분이 이 詩를 암송을 한다.

중국 교과서는 물론이고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에도 시가 실릴정도로 유명해
일본인들은 이 詩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소주(蘇州)의 풍교와 한산사(寒山寺)를 연말이 되면 많이들 찾아온다.

본 詩에 나오는 한산사의 종(鐘)은 청나라 때 이르러 어찌어찌하다보니 사라지고 없자.

장계의 詩 "풍교야박"을 애창하는 일본인들이, 안타까움에 새로 만들어 한산사에 기증했고.

그 종(鐘)이 지금 한산사에 걸려 있다.

 

 

소주(蘇州)의 풍교는 사실 폭이 좁은 수로에 놓인 자그마한 아치형의 돌다리다.
당시 소주를 비롯한 강남의 대부분 수향도시(水鄕都市)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운하나 수로가 도로역활을 했으므로
모든 교통과 운송이 수로를 통해 이루어져

배는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처럼 필수품이다.

소주시는 운하를 파낸 흙을 돋우고 그 위에 집들을 지은 도시라

지대가 매우 낮고 평평하며 습하다.

 

 

훗날 청나라의 강희황제도 본 시(詩)를 접하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고
詩의 모델인 강소성 소주의 풍교(楓橋)를 찾아와 선,

 장계의 마음을 헤아리며 또 한번 울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곳이 바로 풍교다.

장계(張繼)는

풍교야박(楓橋夜泊) 단 한 편의 詩로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며 유명 詩人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꼭 시를 많이 짓고 시집을 내야 시인은 아니다.

평생 단 한 편을 지어도 장계의 詩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감동할 시를 지었다면

그를 진정 詩人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오렌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출세를 바라는 관리들이나

시험에 합격을 기원하는 수험생들이 풍교의 장계동상을 찾아 손을 어루만지고
혹은 쓰다듬으며 소원을 비는 명소가 된지 오래다.

 

 

소주(蘇州)나 항주(抗州)를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소주시(蘇州市)의 거미줄처럼 얼켜진 운하에 놓인 자그마한 아치형의 돌다리인 풍교에 들러서
시향(詩香)에 빠져 보시고,

명사들의 일화와 역사가 깃든 2천5백 년의 고도(古都) 소주(蘇州)에서
풍류(風流)에 취해보시는건 어떠신지요~?.

 

출처 : 학 마 을
글쓴이 : 천마리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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