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출생- 1807년
사망- 1863년
출신지- 경기도 양주
직업?- 시인
대표작- 영립(詠笠), 김립시집
김삿갓 1807(순조 7) ~1863(철종 14) 그의 본명은 김병연이다. 그렇다면 김병연 그가 왜 김삿갓을 자처하고 한평생을 방랑했는가? 1826년(순조 32년)에 김병연은 백일장을 보게 되었다. 백일장이란 초야(草野)에서 학문을 닦고 있는 무명유생(無名儒生) 들에게 학업을 권장하기 위해 각 고을 단위로 글짓기대회를 하는 일종의 지방과거와 같은 것이다. 이때 김병연의 나이는 갓 스물, 자(字)는 성심((性深)이요, 호(號)는 난고(蘭皐)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 살 전후에 이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 하였다. 게다가 시재(詩才)가 남달리 특출하고 역사에 각별한 흥미를 느껴 오고 있었던 그는 고금의 시서(詩書)와 사서(史書)를 닥치는 대로 섭렵(涉獵)해 왔기 때문에 모르는 글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시 글공부만 좋아했을 뿐이지 공명심이나 출세욕 같은데는 관심이 없었던 김병연이 이날 백일장을 보러 온 것은 홀어머니 이씨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인데 오늘날의 공무원시험 과도 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날 백일장의 시제는 다음과 같았다.
論鄭嘉山忠節死 (논정가산충절사) 嘆金益淳罪通于天 (탄김익순죄통우천)
-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보라.
이 시제는 홍경래의 난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홍경래가 평안도 용강(龍岡)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순조 11년인 1811년 신미년(辛未年) 12월 홍경래는 평서대원수(平西大元帥)라고 자칭해 가면서 반란군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1대는 가산(嘉山).박천(搏川)을 함락 시키면서 서울로 남진(南進)하였고, 다른 1대는 서북(西北)으로 진격하여 곽산(郭山). 정주(定州). 선천(宣川) 등을 불과 며칠 사이에 모두 석권(席捲)해 버렸다.
그 통에 가산 군수(嘉山郡守) 정시(鄭蓍)는 반란군과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가산 군수 정 시는 문관(文官)이면서도 그러했건만, 선천방어사(宣川防禦使) 김익순(金益淳)은 국가 안보의 중책을 맡고 있는 무관(武官)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싸우기는커녕 즉석에서 항복을 해버렸다. 그런 까닭에 정부는 반란군을 진압시키고 나자, 김익순을 역적이라는 낙인을 찍어 참형에 처해버렸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시제로 나오자 김병연은 평소부터 반란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가산 군수 정 시를 천고의 빛나는 충신이라고 존경해 왔던 반면에, 김익순을 백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고 몹시 경멸해 오고 있었다. 비겁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김익순이란 놈을 백일장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마침 잘 만났다. 오늘은 나의 필봉을 마음껏 휘둘러, 비겁하기 짝없는 네 놈을 뼈도 못 추리게 탄핵(彈劾)하리라.
曰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將軍桃李陵西落 烈士功名圖未高
왈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장군도이릉서락 열사공명도미고
신하라고 불려 오던 너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적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이 릉(李陵) 같은 놈이요
정 시의 공명은 송나라의 악비(岳飛)처럼 길이 빛나리로다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死 宣川自古大將邑 北諸嘉山先守義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사 선천자고대장읍 북제가산선수의
시인은 이런 일에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칼을 어루만지며 물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자고로 대장이 지켜 오는 큰 고을이기에
가산보다도 의를 앞서 가며 지켜야 할 곳이 아니었더냐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두 사람은 다 같은 조정의 신하였는데
죽어서야 할 곳에서 어찌 두 마음을 먹었더란 말이냐
태평 성대와 다름없던 신미년 그 해에
관서에서 풍운이 일었으니 그 무슨 변괴이더냐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募亮 同朝寯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모양 동조준신정충신 저장풍진립절사
주 나라를 존중하려고 충신 노중련이 나왔고,
한 나라를 돕기 위해서는 제갈량이 나왔듯이
우리나라에도 만고의 충신 정가산이 나와
풍진을 맨손으로 막아 내려다 죽지 않았더냐
嘉陸老吏揭名族 生色秋天白日下 魂歸南畝件岳飛 骨埋西山傍伯夷
가륙노리게명족 생색추천백일하 혼귀남무건악비 골매서산방백이
전사한 충신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 갈 것이니
그 이름은 가을 하늘에 태양처럼 빛날 것이요,
혼백은 남묘로 돌아가 악비와 같이 살게 될 것이고
뼈는 서산에 묻혀 백이 숙제와 이웃하게 될 것이로다.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綠客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객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행열순
서북으로부터 개탄할 소식이 들려오기에
어느 가문에서 나온 벼슬아치냐고 물어 보았더니
문벌은 명성이 드높은 장동 김씨요
항렬은 장안에서 소문난 순(淳)자 돌림이 아니더냐.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가문이 훌륭하여 성은도 두터웠을 것이니
백만 대적 앞에서도 의를 굽히지 않았어야 할 것을
청천강물에 고이 씻긴 병마는 어디다 두고
철옹산에 간직했던 궁시(弓矢)는 어떻게 했단 말이냐.
吾王庭下進退背 背向西域凶賊股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代王
오왕정하진퇴배 배향서역흉적고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임금님 앞에 꿇어 엎드리던 바로 그 무릎으로
서북 흉적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으니
너는 죽어 황촌에도 못 갈 놈이라
저승에는 선대왕이 계실 것이니 말이다.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 번 죽어서는 너무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다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치욕적인 이 사실은 역사에 남겨 길이 전해야 하리라
이런 시로 그는 장원급제를 했고 술 한잔 걸쭉하게 걸치고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그의 홀어머니에게 자랑을 시작하였는데 이게 웬 일인가! 이야기를 듣는 도중 어머니가 갑자기 기절하시고 이내 정신을 차리시며 이제까지 숨겨 오셨던 그의 집안 내력을 눈물 흘리시며 가르쳐 주시니 바로 김익순이라는 사람이 김병연의 할아버지이었던 것이다.
반역자는 3대를 멸하라는 그때의 법에 따라 마땅히 김병연도 죽어야 했지만 어머니가 김병연을 데리고 깊은 곳에 숨어사시고 때로는 도망도 다니시면서 김병연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신 것이다. 언젠가는 그가 집안을 다시 일으켜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집안내력을 숨겨왔는데 오늘과 같은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장원급제를 하였으니 그것도 반역자의 후손으로 말이다.
뒤에 어머님이 말씀해주시길 그의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주무시고 계시다가 갑자기 쳐들어온 반란군에게 포로로 잡히신 것이었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반항하실 틈도 없으신 것이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 말에 김병연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을 생각도 하며 울기도 하다가 문득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고 그의 아내와 이제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아이와 김병연만 바라보며 한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와 가슴 아픈 눈물을 뒤로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으니.
그가 삿갓을 쓴 이유는 스스로를 하늘과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없는 죄인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김병연이라는 이름보다 김삿갓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죽을 때까지 그의 삶은 길에서 길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가 스치고 지나는 곳마다 시가 있었다. 앞으로 하늘을 우르르지 못하는 죄인이니 삿갓을 쓰도록 하며 이름도 김병연을 지우고 김삿갓으로 스스로 부르리라.
漂浪一生嘆 (표랑일생탄)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我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아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집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거처도 없는 내 평생을 회고해보니 이내 마음 한 없이 서글프구나.
짚신신고 죽장 짚고 가는 초라한 나의 인생여정 천리 길 머나먼데
김병연은 할아버지를 단죄한 것에 대한 자책과 역적의 자손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대한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는 집을 나와 삿갓을 쓰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의 아들이 안동·평강·익산에서 3번이나 그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매번 도망했다고 한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현의 어느 땅(지금의 전남 화순군 동복면)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살았고, 그 뒤 지리산을 두루 살펴본 뒤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죽었다고 한다.
그의 시는 몰락양반의 정서를 대변한 것으로 당시 무너져가는 신분질서를 반영하고 있다. 풍자와 해학을 담은 한시의 희작(戱作)과, 한시의 형식에 우리말의 음과 뜻을 교묘히 구사한 언문풍월이 특징이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었다. 방랑의 동반자요 거처가 되었으니 발길 닿은 산천경개는 모두 그의 노래가 되었다.
화가가 아름다운 봄의 경치는 그릴 수 있겠지만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는가. 구전되어오던 그의 시를 모은 <김립시집>이 있다. 1978년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 기슭에 그의 시비(詩碑)를 세웠고, 강원도 영월에도 전국시가비동호회에서 시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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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순조 7) 경기 양주~1863(철종 14) 전라 동복(同福).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性深), 별호는 난고(蘭皐), 호는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 그의 일생은 여러 가지 기록과 증언들이 뒤섞여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6세 때에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평안도농민전쟁 때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자, 그는 황해도 곡산에 있는 종의 집으로 피했다가 사면되어 부친에게 돌아갔다. 아버지 안근(安根)이 화병으로 죽자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廢族)의 자식으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그는〈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과시(科詩)로 향시(鄕詩)에서 장원하게 되었다. 그뒤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의 자식이라는 세상의 멸시를 참지 못해 처자식을 버려두고 집을 떠났다. 자신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면서 삿갓을 쓰고 방랑했으며, 그의 아들이 안동·평강·익산에서 3번이나 그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매번 도망했다고 한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현의 어느 땅(지금의 전남 화순군 동복면)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살았고, 그뒤 지리산을 두루 살펴본 뒤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죽었다고 한다.
불어오는 봄바람 따라 제비 날아와
팥배나무 아래 그대 옛집 찾아왔네
봄이 가면 그대 또 집을 떠나 멀리 날아가서
팥배나무 꽃피는 내년 봄을 기다리리
북망산 아래 새로은 무덤하나
천번만번 불러도 대답이 없네
서산에 해지니 마음은 쓸쓸한데
산위에 들리는 것은 오직 솔바람 소리뿐
부자는 부자대로 걱정 가난한자는 가난한 대로 걱정
배고프고 배부름은 비록 다르나 걱정은 모두 같네
가난과 부자 이 모두 내가 바라는 바 아닐세
내 소망은 부자도 아니고 가난도 아닌 그런 사람이라네
새는 둥지가 있고 짐승도 제 굴이 있어 보금자리가 있는데
내 평생 돌아보니 나만 홀로 상처뿐이구나
짚신 신고 대지팡이 짚고 천리 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방랑하니 사방이내 집이로다
머나먼 천리 길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남은 엽전 일곱개 오히려 많은 편
너만은 주머니 속에 깊이 있으라고 타일렀건만
석양에 들녘 주점에서 술을 보니 어찌하랴
바람은 옛날에 다니던 길을 잊었고
달은 새로 비칠 곳을 얻었네
바람이 움직이면 나뭇가지도 따라 움직이고
달이 떠오르니 연못의 물결도 높아지네
나는 청산을 향해 가는데
녹수야 너는 어디서 오느냐
초가집 밥짓는 연기 사라지고
날이 저무니 새들도 집으로 돌아가네
나무꾼도 밝은 달 바라보며
긴 노래 부르면서 푸른 산을 내려가네
새들은 같은 가지에서 잠을 자지만
날이 밝으면 뿔뿔이 흩어져 날아가네
인생살이 또한 그와 같은데
어찌하여 그대는 눈물 흘려 옷깃을 적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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