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미륵대원지 (忠州 彌勒大院址)
사적 제317호. 지정면적 80.454㎡. 사지가 있는 곳은 평균해발 378m 이상의 비교적 높은 지대로서 사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하늘재’라고 하는 한훤령(寒暄嶺)을 넘어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 접하고 있다.
이 절터는 1977년·1978년·1982년 세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절터의 규모와 성격이 부분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석굴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쌓아올린 뒤 나무로 만든 목조가구(木造架構)로 조성하였는데, 이러한 석굴형식은 경주 토함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 석굴의 돔형(dome形) 지붕과는 다른 방식으로 된 것이나, 근본적으로는 석굴암 석굴을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남아 있는 석굴에는 본존불로 모셨던 석불입상이 있고, 석굴벽에는 이 본존불을 장엄하기 위하여 조각한 여래좌상·삼불좌상(三佛坐像) 등이 있다. 그리고 사역(寺域) 내에는 화강암제의 괴산미륵리오층석탑(보물 제95호)·석등(石燈) 등이 남아 있다.
특히, 괴산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96호)은 모두 4개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높이 10.6m에 이르는 거대한 석불로서 정면을 위주로 조각되어 마치 돌기둥을 세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이른바 석주형(石柱形)의 거대한 석불입상은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灌燭寺石造彌勒菩薩立像, 보물 제218호)이나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大鳥寺石造彌勒菩薩立像, 보물 제217호) 등의 예가 있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수습된 유물 가운데 ‘彌勒堂(미륵당)’·‘彌勒堂革(미륵당혁)’·‘院主(원주)’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조각이 있고, 지금도 이곳의 지명이 미륵리로 되어 있어 원래 석굴사원의 이름이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굴 축조에 관하여는 고려 태조 왕건의 경영설, 고려 초기 충주유씨(忠州劉氏)의 지원설이 있으며, 또한 석굴축조와 석굴입상 조성을 동일시기로 보는 견해와 서로 다른 시기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동일시기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 절에 얽힌 전설로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의 망함에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입산(入山)하러 가던 길에, 누이인 덕주공주(德周公主)는 월악산(月嶽山) 덕주사(德周寺)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였고, 태자는 이곳에 석굴을 창건하고 불상을 북쪽으로 두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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