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오 백록동규도 (第五 白鹿洞規圖)
동규후서(洞規後敍)
백록동(白鹿洞) ; 중국 강서성 성자현 백록동에 있는 서원을 말함,
規 ; 법, 법칙, 규약, 敍 ; 처례, 서문,
동규후서 설명
희(熹)가 가만히 살펴보니, 옛날의 성현이 사람들을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한 뜻은 어느 것이나 다 의리를 강명(講明)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닦은 다음에 그것을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치게 하려는 것이지, 한갓 낡은 것을 외는 데 힘쓰고 문장을 일삼음으로써 명성이나 구하고 이록(利祿)이나 취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학문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와 반대된다.
그러나 성현이 사람들을 가르치던 법은 경전에 갖추어져 있다. 뜻 있는 선비는 마땅히 숙독(熟讀)하고 깊이 생각하여 묻고 변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이의 당연함을 알아가지고 자신을 책하여 반드시 이에 따르게 한다면, 준칙과 금방(禁防)을 어찌 다른 사람들이 마련하여 준 뒤에 지켜지길 기다리겠는가.
근세 학교에는 규약이 있지만, 학자를 대함이 이미 천박하고, 그 법이 또한 결코 옛 사람들의 뜻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학당에서는 그것을 되풀이하여 시행하지 않겠으며, 특히 성현들이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한 큰 근본을 취하여 위와 같이 조목을 지어 처마 현판에 게시한다.
제군이 이것을 서로 강명하고 준수하여 몸소 실행하도록 한다면, 사려·언행에서 그 계근공구(械謹恐懼)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저 규범보다 더 엄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혹 규칙 밖으로 벗어나는 점이 있다면, 저 이른바 규약이란 반드시 취하여야 할 것이지 참으로 생략할 수 없는 것이다. 제군은 그것을 명심하도록 하라.
퇴계선생 말씀
위의 규는 주자가 지어 백록동(白鹿洞) 서원의 학도에게 게시한 것입니다. 이 백록동은 남강군 북쪽, 광려산 남쪽에 있는데, 당의 이발이 여기에 은거하여 흰 사슴을 기르며 지냈으므로, 백록이라는 것이 그 동의 이름으로 되었습니다. 남당 때에 서원을 세워 국상이라 하였는데, 학도가 항상 수백 명씩 되었습니다.
송태종이 서적을 나누어 주는 한편, 동주에게 관직도 주며 아끼고 권장하였습니다. 중간에 황폐된 일도 있었으나, 주자가 지남강군사로 왔을 때 조정에 청하여 중건하고 학도를 모아 규를 만들어 도학을 앞장서 밝히자 서원의 가르침이 마침내 천하에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이제 삼가 규문의 본 조목에 의하여 이 그림을 만들어 보고, 살피시기에 편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원래 당우 시대의 가르침은 오품(五品)에 있었고, 삼대의 학문은 모두 인륜을 밝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왕의 학문은 그 준칙과 금지의 조목이 비록 일반 학문과 서로 다 같지 않지만, 이륜(彛倫)에 근본을 두고서 궁리를 하고 역행하면서 저 심법의 절실히 요긴한 점을 구하는 것은 같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이 도도 함께 바쳐, 아침 저녁으로 아뢰는 설어(說御)의 잠언에 보태는 것입니다.
이상 다섯 도는 천도에 근본한 것인데, 그 공은 인륜을 밝히고 덕업을 힘쓰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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