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중국)

[스크랩] 산동성 강태공 의관총

장안봉(微山) 2012. 12. 27. 22:40

중국 산동성 강태공 의관총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강태공 사당 입구 전경

강태공 사당(姜太公祠 - 장타이궁츠)

 

중국 산둥성[山東省] 쯔보[淄博]에 위치한 강태공 사당으로 쯔보[淄博] 시내에 위치하며, 중국 전통 방식인 좌우 대칭의 사당 건축물로서 1993년에 강태공(姜太公)의 묘 부근에 세웠다. 강태공은 주(周)나라 정치가로 제(齊)나라 제후에 봉해진 인물이다.

▲ 강태공 사당 입구에서 돌아 본 모습

강태공 사당

▲ 강태공 사당 입구

▲ 강태공 사당 내부 전경

강상(姜尙, 강태공)은 기원전 1211년(은나라 경정[庚丁] 8년)에 출생하여 기원전 1072년(주강왕 6년)에 사망할 때까지 나이가 139세에 달했다. 중국 기록은 약간 차이가 난다. 또다른 중국 기록에서 강상은 기원전 1140년 9월 12일(음력 8월 3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 강태공 사당

기원전 11세기 중국의 은나라를 멸망시킨 인물로 염제신농의 후손이라고 전해오며, 동해가 고향이다. 동해는 동해상으로도 불린다. 성은 강(姜), 이름은 상(尙), 자는 자아(子牙)이며, 호는 비웅(飛熊)이다. 주왕이 항시 꿈에서라도 바라던 인물이 비로소 나타났다하여 흔히들 태공망이라고도 불렸다

▲ 강태공 사당 건물 내부로 들어가 봅니다.

▲ 중앙에 강태공 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 강태공 상 좌우로 제정공 상과 제환공 상이 함께 모셔져...

▲ 사당 내부 좌우로 벽화 그림이 있습니다.

강태공의 본관은 천수강씨(天水姜氏)이며 염제신농씨의 후손이다.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한 일등공신이며, 전국칠웅인 제(齊)나라의 제후가 되었다.

▲ 강태공 사당 좌측에 위치한 오현전(五賢殿)

▲ 오현전 내부에는 제나라의 정치가/병법가인 5명(관중/손무/손빈/사마양저/전단)의 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강태공의 자손들(강급, 강소백 등)이 대대로 제나라를 이끌어왔으며 이 시기에 중국의 고(高), 노(盧), 여(呂), 허(許), 구(丘,邱), 강(强), 방(方), 정(丁), 장(章), 사(謝), 제(齊), 하(賀), 향(向), 가(柯), 뢰(賴), 초(焦), 기(紀), 최(崔), 좌(左), 역(易)씨 등 수많은 성씨들이 강태공의 자손들로부터 갈라져나갔다.

▲ 강태공 사당 우측에 위치한 오조전(五祖殿)

▲  오조전 내부에는 도교의 신선 5명(동화제군/여동빈/장천사/왕중양/구장춘)의 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강태공 사당에는 해마다 강태공의 후손들과 강씨에서 분파된 성씨들이 대거 참례를 온다. 현재 강태공의 후손은 한국의 진주강씨와 중국의 천수강씨가 있다.

▲ 구조전(丘祖展) 전경

생애

 

강상은 염제신농황제(炎帝神農皇帝)의 51세손이요, 백이(伯夷)의 36세 손이기도 하다. 주나라 문왕, 무왕, 성왕(成王), 강왕(康王) 4대에 걸쳐 태사(太師)를 지냈으며 춘추전국 시기의 제(齊)나라의 창시자요, 딸은 주 무왕의 왕후이다.

▲ 강태공의 아들인 구목공 사당 입구 모습

▲ 구조전으로 들어가 봅니다.

▲ 구조전 내부에는 세계구씨 대시조인 구목공 추모비를 우리나라의 평해구씨 대종친회에서 건립(1997년) 했다고...

때는 기원전 1046년 2월 겨울, 은나라 주왕의 흉폭한 정치가 계속되어 천하가 비탄에 젖어있을 시 홀연히 나타나 주 문무왕의 스승이 되어 4만 5천의 군사로 72만의 은나라군을 대파하는 기적적인 전쟁을 일구어낸 동이지사(東夷之士)이며 기인(奇人)이다.

▲ 구조전 좌측에 위치한 전시실 모습

이 전쟁을 목야전쟁(牧野戰爭)이라 하며, 목야전쟁이 주는 의의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섬멸한 기적의 전쟁이요,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정의(正義)는 반드시 필승(必勝)한다는 정법을 확립시킨 정의 필승의 전쟁이며, 대륙을 통일한 천하통일전쟁이라 할 것이다. 이후 제나라를 일으켜 제1대 초대 국왕으로 제나라는 32대 근 800여 년을 존속하였다.

▲ 노태우 전대통령이 2000년에 강태공 사당에 방문하여 방명록에 기록하는 사진과 내용도 사진틀에 전시해 놓았습니다.

▲ 노태우 전태통령 일행/한국의 강씨종친회 일행 등 한국에서 방문한 단체들의 사진들이 전시실 벽에 걸려있습니다.

강태공 의관총

▲ 강태공 사당 뒷편으로 강태공 의관총이 있습니다.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 무왕의 스승이자 장인이며 천하의 스승국의 위치로 군림하여 제나라의 왕이 되었다. 제나라의 2대 왕좌를 큰아들 강급(姜及)에게 물려주었고 강급은 제 정공(齊丁公)이라고 불렸다. 강태공을 이어 제나라가 가장 흥한 시기는 제 환공 강소백(姜小白) 시기로 강소백은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가 되기도 하여 강태공의 얼을 이었다. 제나라 최전성기에는 사방 5,000리를 이룩한 대국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 의관총 입구 전경. 비석 뒷편으로 보이는 큰 봉분이 강태공 의관총입니다.

▲ 의관총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강태공 의관총 표석이 있으며, 좌우로 의관총을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강태공이 남긴 유명한 명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수불반분'(한번 엎지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이다. 강태공의 전 부인 마씨는 강태공이 주문왕을 만나기전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강태공 곁을 떠났는데, 이후 강태공이 성공했을때 다시 돌아와서 아내로 맞아주길 요청했다.

▲ 강태공 의관총 뒷편 모습입니다.

이에 강태공은 하인더러 물을 떠오라고 한 후 그 물을 땅에 엎었다. 그리고 돌아온 아내에게 지금 바닥의 그 물을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면 아내로 맞이 해주겠다고 했다. 즉, 한번 떠난 마음은 두번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것이다.

▲ 강태공 의관총 뒷편으로 돌아보면 강태공 추모비 등 여러 성씨의 큰 비석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 강태공 의관총 뒷편에서 바라 본 모습

강태공은 기원전 1072년에 신선계에 드셨으며 그때 연세는 139세셨다. 의관을 서주(西周) 호경(鎬京)에다 안장하였다. 제나라 사람들은 강태공의 덕을 생각하여 제나라에다 강태공 의관총(衣冠塚)을 세웠다. 강태공은 주역(周易)의 확립자이며 강태공이 저술한 육도삼략(六韜三略)이 현재에도 전해져 오고 있다.

▲ 강태공 의관총 좌측 뒷편에서 바라 본 모습과 철문은 잠겨 있지만 봉분 위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네요...

육도삼략은 중국 고대병서의 최고봉인 무경칠서(武經七書) 중의 둘을 차지한다. 후대인 손무의 손자병법도 강태공의 육도삼략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후일 대륙을 정복한 청나라 황실에서조차 강태공을 무성왕(武成王)으로 칭하여 천하통일을 이룬 왕으로 인정하였다.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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