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老巨樹)도 묘목이던 당시에는 같은 수종의 나무 여러 그루가 주변에서 함께 자랐을 것이다. 나무는 한 곳에 붙박이처럼 머문 채 살아간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른 나무는 모두 죽었지만 오래도록 살아 남은 한 그루만 문화재로 지정됐다.
노거수가 뿌리를 내린 땅은 다른 곳보다 가뭄에 견딜 만큼 수분이 풍부하고,병충해에 내성이 강할 수 있게 영양분도 알맞은 곳일 터다. 바람이 휘몰아치지 않는 곳이거나 햇빛도 알맞은 곳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나무가 한 곳에서 천년을 넘게 살았다면 그곳은 나무가 건강하게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요소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산다면 사람도 장수와 복을 누릴 것이 분명하다. 노거수가 입지한 터는 생기가 충만한 풍수적 길지로 볼 수 있고 풍수에서 찾는 혈,즉 명당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인생은 짧지만 나무는 오래 산다. 노거수는 수령이 100년 이상이면서 수관이 크고 넓은 나무다. 유서 깊은 마을의 동구 밖에는 대개 동제를 지내는 당산나무가 서 있다. 오랜 세월 모진 풍상을 헤치고 사는 동안 마을의 전설이 깃들어 나무 자체가 신성시되기도 한다.
장년층은 이런 나무 밑에서 뛰놀던 추억을 갖고 있다. 고향을 생각할 때 정자나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곽재우 장군이 뜰 앞의 나무에 북을 매달고 의병을 훈련시켰다는 의령의 현고수(懸鼓樹),오랑캐의 발부리를 노리던 강화의 탱자나무,임금의 행차를 돕기 위해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려 높은 관직을 하사받은 정이품송 등 우리 주변에는 선조들과 호흡을 같이한 노거수가 적지 않다. 이 중에는 수령이 몇 백년 혹은 천년을 넘긴 것도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를 받는 나무도 상당수다. 어떤 노거수에는 지나던 풍수에 능한 과객이 이곳이 명당임을 알고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천의 반룡송은 한국 풍수학의 시조인 도선 국사가 그 일대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올 것을 예언하며 심었다고 한다.
따라서 노거수의 입지 환경을 연구하는 것은 풍수의 기본 방향과 원칙에도 부합한다. 사람이 살 터를 정하는 방법론으로도 탁월하다. 사람도 나무와 같이 지기와 바람의 기운에 의해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생명체인 까닭이다.
노거수가 뿌리를 내린 터는 지기가 길게 뻗어가고,햇빛과 바람을 비롯한 양기도 우수하다. 사람 역시 건강하게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터다. 명당의 기를 받고 싶으면 멀리 갈 필요 없이 노거수가 있는 곳을 찾아가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
그곳의 지기는 우리 몸에 좋은 기운을 충전시켜 활력을 되찾게 한다. 우수한 양기는 삼림욕을 한 것처럼 몸에 엔도르핀이 돌게 한다.
노거수의 수형과 표피의 문양은 시간과 생명이 빚어낸 예술 그 자체다. 노거수의 수형은 모두 신비한 기상이 느껴지고 멋있어 보인다. 자연이 빚은 최고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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