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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동양사상』, 2004, 가을호, 「고전번역의 현주소―노자」
역사성과 보편성의 사이에서 ―우리 시대 『노자』번역을 돌아보며
김시천
1. 『노자』, 다른 목소리로?
서점에 나갈 때마다 새로운 『노자老子』 혹은 『도덕경道德經』을 만날 수 있다. 강력한 유학 전통이 지배하던 조선 시대 이래 명백한 이단異端의 책으로 지명되었음에도 『노자』는 오늘날 분명 ‘노자 르네상스’라 할 정도로 인기 있는 연구 주제이자 대중적인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어느 책이든 펼칠 때마다 저자 혹은 역자의 <서문>에는 늘 노자老子라는 어느 지식인이 쓴 저술의 원의原義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 고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펼쳐드는 『노자』는 역자에 따라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 노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노자』 하면 누구나 떠올리게 되는 『노자』 제1장의 유명한 구절에 대해 몇몇 번역자들은 다음과 같이 번역을 제시한다.
(1) 말할 수 있는 참(얼)은 늘(영원한) 참이 아니다. 이름할 수 있는 님은 늘(영원한) 님이 아니다. 없음의 님(무극)이라 하늘과 땅(우주)의 비롯이고 있음의 님(태극)이라 온갖 것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고픔(自我)이 없어져서 그 신비를 보고 언제나 하고픔이 있어서 그(별들의) 돎을 본다. 이 두 가지는 한 나옴(존재)인데 달리 이름 부름이라. (無‧有를) 함께 이르면 검님(하느님)이다. 아득하고 또 까마득하여(遠代한) 오묘한 것이 나오는 문이다.
(2) 길을 길이라 말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 이름을 이름지우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을 하늘과 땅의 처음이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온갖 것의 어미라 한다. 그러므로 늘 바램이 없으면 그 묘함을 보고 늘 바램이 있으면 그 가생이를 본다.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으로 나와서 이름을 달리했을 뿐이다. 그 같음을 가믈타고 한다. 가믈고 또 가믈토다! 뭇 묘함이 모두 그 문에서 나오는도다!
(3) 도가 말해질 수 있다면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 불려질 수 있다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만물의 처음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을 때 그 미묘함을 보고 항상 욕심이 있을 때 그 밝게 드러난 모습을 본다. 두 가지는 한곳에서 나와서 이름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것은 같으니 현묘하고 또 현묘해서 모든 미묘함의 문이 된다.
단지 번역된 문장만을 놓고 본다면, 상기의 번역들은 같은 책의 번역이라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이 번역문이 『노자』 제1장의 번역이라고 생각하기 가장 쉬운 것은 (3)일 것이며, 그 다음이 (2)일 것이다.
특히 요즘의 일반적 언어 생활에서 (1)을 보고 이것이 『노자』 제1장의 번역이라 생각할 독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1)의 경우 우선 첫 문장은 ‘참’ 또는 ‘얼’에 관한 논의라는 연상을 주며,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없음의 님’이라거나 ‘있음의 님’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구사하고 있다.
또한 번역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에 넣어 준 한자어는 과연 그것이 설명하고자 하는 용어와 같은 뜻의 말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상하다. 현대 한국의 독자 가운데 ‘하고픔-自我’나 ‘검님-하느님’이란 연상을 쉽게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앞에 제시된 세 번역은 순서대로 다석 유영모, 김용옥, 김홍경의 것이다.1]
적어도 앞의 세 『노자』 번역문 속에서 동일한 철학, 사상, 생각을 연상해 낸다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도대체 『노자』라는 같은 텍스트를 번역한 것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이 번역서들을 같은 『노자』의 번역서로 간주할만한 객관적 근거가 있는가? 만약 이 세 가지를 ‘다른 목소리’로 간주한다면, 그것들을 같은 『노자』의 번역서라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이와 같은 번역서들에 대해서 우리가 『노자』 번역의 정확성에 대한 평가를 한다거나, 혹은 해석의 타당성을 논의할 수 있는가?
우리가 『노자』라는 책의 ‘번역’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와 같은 물음들에 대해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1]각각의 서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박영호 역·저, 『노자, 빛으로 쓴 얼의 노래―多夕 柳永模를 통해 본 노자의 도덕경』(두레, 1998); 김용옥, 『노자, 길과 얻음』(통나무, 1989); 김홍경, 『노자, 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들녘, 2003). 이 가운데 다석 유영모의 『노자』번역은 그가 1956년에 처음 출간한 것이 있으나, 너무 낯선 단어의 사용이 많아 새로이 번역, 해설하여 펴낸 것이므로 박영호의 것이라 해야 타당하겠으나, 일단 이 글에서는 유영모의 것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2. 『노자』, 그 천千의 얼굴
흔히 『도덕경』이라고도 부르는 『노자』는 고대 중국의 선진先秦 시대에 출현한 이래, 전통 동아시아의 사상과 문학, 예술, 종교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쳐 온 고전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중국 최초의 본격적 역사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비롯한 여러 고대 문헌에서, 유가儒家의 성인聖人 공자孔子가, 『노자』의 저자로 숭앙되는 노자에게 예禮를 물었다는 유명한 일화와 어우러져 『노자』는 그 출발부터 역사와 전설의 공간을 넘나들며 수많은 이야기들을 남겨 왔다.
때로는 성인 공자조차 예를 물었을 정도로 지혜로운 고대의 현인賢人으로, 때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불사의 선인仙人으로, 후한後漢 이래에는 교단화된 도교道敎의 신神으로, 또 때로는 불교적 진리를 체현한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되면서 전설적 인물 노자의 신비는, 그가 세상을 떠나 은둔하면서 남겼다는 『노자』를 그만큼 신비로운 고전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노자』는 고대 중국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관점과 배경에서 다채롭게 해석되어 왔다.
한대漢代의 문경文景 시대를 거치며 ‘경전’(經)에 오른 『노자』는 ‘오천언五千言’라 불릴 정도로 비교적 짧은 문헌이지만, 그 문장의 간결함과 함축성 있는 시적 성격은 지극히 다양한 해석을 통해 이해되어 왔다. 이미 후한 시대에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노자』에 대한 3가지 주석서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후 역대의 문인文人, 도사道士, 불승佛僧 등 다양한 출신 내력을 지닌 지식인들에 의해 대략 700여 종의 주석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그 가운데 약 350여 종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 또한 7세기 경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되었고, 18세기에는 몇몇 선교사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어 이것이 19세기에 영국에 소개된 이후 1990년까지 서양어로 번역된 『노자』는 250여 종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 번역된 숫자만으로 볼 때 『노자』는 『성서』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세계적인 고전이라 할 수 있다.4]
2] Wing-tsit Chan, The Way of Lao Tzu (Tao-te ching)(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1963), p. 77.
3]필자는 『노자』가 서구 세계에 소개된 과정과 번역상의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다. 김시천,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책세상, 2004), 제2장 참조.
4]Victor H. Mair, Tao Te Ching―The Classic Book of Intergrity and the Way(New York: Bantam Books, 1990), p. ⅺ.
그런데 똑같이 수많은 주석이 이루어졌던 유가의 대표적 고전 『논어論語』와 비교해 볼 때 『노자』에 대한 주석서들의 성격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논어』의 경우 비록 시대와 학자마다 독특한 개성과 철학적 논리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 왔다고 하더라도, 『논어』의 주석이 보여주는 성격은 기본적으로 ‘누적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논어』의 경우 특히 남송南宋의 주희朱熹 이후로는 선유先儒의 주석에 대한 엄밀한 검토와 평가가 수반되면서 『논어』의 본래 의미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이루어져왔지만, 『노자』의 주석 전통에서는 그에 비견할 만한 전통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노자』는 도교적인 해석, 불교적인 해석, 유가-성리학적인 해석이 아무런 마찰 없이 공존할 수 있었다.5] 이것은 『논어』가 주로 사대부 계층에 의해 주석되었고 또한 과거 제도가 정착되면서 일종의 정경화正經化가 이루어진데 비해, 『노자』는 시대에 따라, 주석자의 출신이나 관심에 따라 지극히 다채롭게 주석되었던 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노자』는 늘 하나의 『노자』가 아닌 다수였고, 이들은 각각 나름의 독자적인 논리와 해석을 지닌 여러 가지 얼굴의『노자』‘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대적인 ‘노자 읽기’ 또는 ‘역사적 노자 읽기’만이 있었을 뿐이다.
『노자』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노자』속에서 삶의 위안을 찾으려 하고, 또 어떤 사람은『노자』를 병서兵書로 볼 것을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노자』에 나타나는 여성성에 대한 강조로부터 페미니즘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무예의 원리를 연역해 내려고도 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우리 사회 일부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기공氣功이나 신비주의 체험의 수행서로 보기도 한다. 『노자』는 현대 사회에서조차 지극히 다양한 관심과 주제로 읽혀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노자』가 하나의 단일 텍스트라기보다 그 존재 양식 자체가 ‘여러 개의 텍스트들’(texts)이라는 성격을 지니는, 태생적으로 다의적인 문헌으로 이해한다. 달리 말해 저자로 상정되는 ‘노자’가 역사와 전설 속에서 수많은 얼굴을 지닌 복수의 인물이듯이,『노자』 또한 ‘하나의’ 텍스트라기보다 그 출현과 이후의 존재 양식 자체가 ‘텍스트 집합체’라는 복수성을 지니는 다의적인 텍스트(multi- facial text)인 것이다.6] 이와 같은 성격으로 인하여,『노자』에 대해서는 어느 하나의 해석 체계가 ‘정통적’이라거나 어느 특정의 방법론이 가장 ‘타당한’ 접근 방식이라는 주장을 할 수 없다. 따라서『노자』해석의 세계는 다양한 ‘노자들’이 존재하는, 해석의 자율성이 숨쉬는 공간이다.
5]예를 들어 『老子想爾注』는 도교적이라 할 수 있고, 감산의 『老子道德經解』는 불교적이라 할 수 있고, 율곡의 『醇言』은 유가적 혹은 성리학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들 주석서들은 『노자』자체의 입장보다는 주석자 자신의 사상적 입장에서『노자』의 의미를 주석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감산과 율곡의 주석서는 우리말 번역이 있다. 오진탁 옮김, 『감산의 老子 풀이(서울: 서광사, 1990); 김학목 옮김, 『율곡 이이의 노자』(서울: 예문서원, 2001).
6]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학위 논문, 「노자의 양생론적 해석과 의리론적 해석―하상공장구와 왕필노자주를 중심으로」의 <서론> 또는 필자의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 제4장 참조.
3. 두 개의 『노자』, 공존의 시대
수없이 다양한 주석과 그것들 각각이 고유한 논리와 사상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노자』에 접근해 들어갈 때 어떤 주석 텍스트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상이한 해석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통행본『노자』의 3대 고본古本은 하상공본, 왕필본 그리고 부혁본傅奕本을 말한다. 이 가운데 부혁본의 경우는 북제北齊의 무평武平 5년(기원후 574년)에 발굴된 것으로서 『곽점노자』나 『백서노자』와 같이 판본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하지만 주석본이 아니므로 구체적인 해석상의 성격을 규정하기가 어렵다.
또한『노자』최초의 해석서라 할 수 있는 『한비자韓非子』의 「해로解老」와 「유로喩老」,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은『노자』해석의 역사에서 중요한 문헌이지만 그 자체가 별 개의 문헌을 이루고 있으므로 성격을 달리한다. 이외에 전한前漢 말 엄준嚴遵의 『노자지귀老子指歸』, 후한後漢 말 오두미교五斗米敎의 유행과 함께 성립된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 등은 모두 통행본『노자』와 편제가 달라 온전한『노자』 텍스트라 할 수 없다. 따라서 통행본『노자』를 기준으로 할 때, 현존하는『노자』주석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하상공과 왕필의 것이다.
필자의 분석에 의하면,『하상공장구』는 한초에 유행하던 황로학적 사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양생론養生論’의 입장에서『노자』를 해석하였다면, 『왕필노자주』는 위진魏晉 시대 현학玄學의 분위기 속에서 ‘의리론義理論’의 입장에서『노자』를 해석하고 있다. 이후『하상공장구』는 주로 도교와 한의학 전통에서 수용되고,『왕필노자주』는 주로 송대宋代 이후 문인들에게 수용되다가 청말淸末 이후 철학적 해석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양자는 이와 같이 이후의『노자』해석에서 두 가지 전형을 이룬다는 점에서 노학老學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지닌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하상공장구』와『왕필노자주』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하상공장구』와『왕필노자주』로 대변되는 두 전통은 어느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대체되는 전환의 관계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7] 필자는『하상공장구』와『왕필노자주』의 출현을『노자』 해석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분기分岐 8]이자 공존의 시작으로 이해한다.
『하상공장구』와『왕필노자주』는 출현 이래 서로 다른 집단과 분야에서 수용되었다. 시대적으로 볼 때, 위진 이후 당대唐代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통용된 『노자』판본은 하상공본이었고,9] 돈황에서 발굴된 『노자』역시 대개 하상공본이었다.『왕필노자주』는 육덕명陸德明, 유지기劉知幾와 같은 소수의 학자들에 의해 선호되다가 송명宋明 시대 신유가新儒家에 의해 수용되어 청말淸末 이후 가장 중요한『노자』주석서로 간주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역사적으로『왕필노자주』가 적극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실상 송대宋代 이후이다.10]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자 모두가 2,000년이란 장구한 기간동안 커다란 갈등이나 논쟁 없이『노자』를 해석하는 전통으로 수용되어 왔다는 점이다.11]
7]바로 이 점에서 필자는『하상공장구』와 『왕필노자주』에 대한 전반적인 비교를 시도한 알란 찬과 의견을 달리한다. 알란 찬은『하상공장구』와『왕필노자주』의 주된 특징과 사상적 배경을 각각 한대의 황로학과 위진 시대의 현학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는 필자의 관점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는『왕필노자주』가 왕필 철학 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는 중시하지 않는다. 오로지 관심은『노자』에 대한 하상공과 왕필의『노자』해석의 차이에 있다. 따라서『노자』해석에 대한 양자의 위상을 평가하면서 한편으로는 하상공에서 왕필로의 ‘해석학적 전환’(hermeneutical turn)을 말하고(178~188쪽), 다른 한편으로는 양자가 모두 ‘도적’(Tao-ist) 비전의 대표자(159쪽)라고 규정하면서 하상공과 왕필의 주석은 전혀 상이한 것으로 분획할 수는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 더 나아가 그는『하상공장구』가 중시하는 ‘영적 실재’에 대한 믿음과『왕필노자주』가 중시하는 윤리적 관점의 통일(the unity of spirituality and ethics)을 희구하는(189쪽) 모순된 태도를 보여준다. Alan K. L. Chan, Two Visions of the Way―A Study of the Wang Pi and the Ho-shang Kung Commentaries on the Lao-Tzu(New York,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1).
8]오상무 또한 이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하상공장구』,『왕필노자주』, 『노자상이주』에 나타나는 ‘일一’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각각 황로학적, 현학적, 도교적 사유 패턴을 보여주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이를 ‘노학의 분기’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에게서 황로학, 현학, 도교는 단지 전제로서만 취급될 뿐 이들 텍스트를 통해 규정하고자 시도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불분명한 태도로 인하여 그는『왕필노자주』가 황로학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일정한 관련이 있다(66쪽, 주121)고도 말한다. 오상무, 「초기 『老子』注의 ‘一’의 해석으로부터 본 漢魏 老學의 分岐」, 『哲學』, 제53집(한국철학회, 1997. 11) 참조.
9]Alan K. L. Chan, Two Visions of the Way, pp. 6~8.
10]오상무, 같은 글, 34쪽.
11]『하상공장구』와 『왕필노자주』가운데 어느 해석을 채택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하다. 기원후 719년에 역사가 유지기는 과거 시험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에서 『하상공장구』를 폐하고『왕필노자주』를 취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唐 玄宗(712-755)은 『하상공장구』와『왕필노자주』두 가지를 모두 학생들의 교육에 사용하라는 칙령을 내린다. 이 사건에 관한 전말은 알란 찬의 책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Alan K. L. Chan, Two Visions of the Way, pp. 6~8.
4.『노자』의 철학, 그 왕필의 시대
따라서 하상공과 왕필의 관계는 전환이기보다 ‘분기’이며, 이후 ‘공존’해 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만약 『왕필노자주』의 해석만을 ‘정통’으로 간주하고 『하상공장구』의 해석을 무시할 때, 후한 이후의 도교 전통이나 한의학의 『황제내경黃帝內經』, 『동의보감東醫寶鑑』과 같은 문헌에서 수용하는 하상공적 『노자』 해석의 전통은 이해되지 않는다. 12] 마찬가지로 『하상공장구』만을 취하고 『왕필노자주』의 해석을 무시할 때 불교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성립된 ‘격의불교格義佛敎’, 이후의 도불道佛의 교섭과 갈등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의『노자』유행은 엄격히 말해 왕필의 유행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몇몇의 사례만 보아도 우리말 번역에서 왕필의『노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자』 제2장의 전반부를 살펴보자.
[원문]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왕필의 해석] ‘아름다움’(美)이란 사람의 마음이 나아가고 즐거워하는 것이고 ‘추함’(惡)이란 사람의 마음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이란 기쁨과 노여움과 같은 것이고, 좋음과 좋지 않음은 옳음과 그름과 같은 것이다. 기쁨과 노여움은 그 뿌리가 같고, 옳음과 그름은 그 나오는 문이 같다. 따라서 어느 한 쪽만을 들어서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는 ‘스스로 그러한’ (인간의 정을) 나열한 것이니 어느 한 쪽만을 들 수 없는 ‘상대적 개념’(名數)들이다
[하상공의 해석]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뽐내니 위태롭거나 죽게 된다. 공명功名이 있으니 이는 사람이 다투는 것이다. 있는 것을 보거든 없는 것을 행하고, 어려운 것을 보거든 쉬운 것을 행하고, 단점을 보거든 장점을 행하고, 높은 것을 보거든 낮게 처한다. 위에서 부르면 아래가 반드시 화답하며,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반드시 따른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의 당대唐代에 하상공과 왕필의 주석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을 때, 당의 현종玄宗은 양자 모두를 인정하는 칙령을 내렸으나 정작 자신이 펴낸『노자』에서는 하상공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당시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노자』는 일차적으로 하상공이 일차적 중요성을 갖는 해석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20세기 한국에서 이루어진『노자』번역본 가운데 왕필이 아닌 하상공식의『노자』해석을 취하는 사람은 없다.
앞의 인용문에서 보듯이『노자』제2장의 논의는 왕필식의 이해가 아닌 하상공식의 전혀 다른 이해를 상정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인용된『노자』의 원문을 따진다면, 대개의 경우 왕필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고 말하기가 쉽다. 하지만 수많은 다른 곳의 예를 가지고 본다면 왕필에 비해 하상공의 해석이 더 타당한 곳도 많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둘 가운데 어느 쪽의 해석이 ‘타당한가’가 의 여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왕필의 해석이 아닌 다른 해석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다. 필자가 일별해 본 대개의 번역본들은 왕필의 해석을 말하든 말하지 않든, 왕필의『노자』에 해당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지금 우리가 읽는 대개의『노자』는 왕필의『노자』라고 말해야 하며, 따라서 번역을 통해『노자』를 읽는다는 것은『노자』를 읽었다기보다 왕필을 읽었다고 말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가 이미 상론한 바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13]
12]허준 엮음, 동의과학연구소 옮김, 『東醫寶鑑-內景篇』(서울: 휴머니스트, 2002), 1921쪽 참조.
13]필자는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 제1장에서 우리 시대의『노자』읽기 방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철학’으로 제한되었고 또한 왕필의 해석을 정통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추적하여 논한 바가 있다.
5. 우리 시대의 읽기,『노자』번역의 시작
지금까지 필자가 한 논의는 20세기 한국에서 최초로 번역되어 나온 신현중의『국역 노자』14]에서 최근의 번역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문제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필자가 처음에 다석 유영모, 김용옥, 김홍경의 번역을 예로 삼아 논의를 출발하였던 것은, 이 세 가지 번역본이 20세기 한국에서 이루어진『노자』번역의 세 가지 조류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김갑수의 연구에 따르면,15] 20세기 한국에서 번역된『노자』는 50년대에 2종, 60년대 2종, 70년대 14종, 80년대 21종, 90년대 31종, 2000~2003년까지 23종이나 된다. 50년대의 것으로는 신현중의『국역 노자』(1957)와 유영모의『늙은이』(1958)가 있는데, 이 가운데 신현중의 것은 최초의 완역『노자』로서 인쇄되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지만, 유영모의 것은 등사본 형태로 특정 집단 내부에서 유통된 것이다. 이후『노자』의 번역은 70년대에 갖가지 사상 전집류에 포함되어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수적으로 급증하게 된다.
이 가운데 1957년의 신현중과 1983년의 김경탁의『노자』 제1장에 대한 번역문을 옮겨본다.
[신현중] 도를 도라 할 수 있을 때 그것은 벌써 길이 변함 없는 도가 아니요,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을 때 그것은 벌써 길이 변함없는 이름이 아니어니 이름할 수 없는 것이 천지의 비롯이오, 이름있는 것은 만물의 어미라. 그러므로 없음 그대로에서 오묘한 구석을 보고자 하고, 있음 그대로에서 만물을 가름을 보고자 하느니라. 이 둘은 같이 생겨나 이름만 다를 뿐 함께 일러 그윽함이라 하나니 그윽하고 또 그윽한 그것이 온갖 오묘한 것의 문이니라.16]
[김경탁] 말할 수 있는 도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도가 아니요,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을 때에는 우주의 근원이요, 이름이 있을 때에는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항상 무위무욕함으로써 그 미묘한 본체를 살펴보고, 항상 유위유욕함으로써 그 순환하는 현상을 살펴본다. 이 두 가지는 다 같은 근원에서 나오고서도 이름을 달리 부르지만, 둘 다 현묘한 것이라고 한다. 현묘한 가운데 또 현묘한 도는 모든 사물의 묘리가 거기서 나오는 문호가 된다.17]
신현중의『국역 노자』에서 우리는 그의 번역이 왕필의 해석에 충실하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뒤이어지는 김경탁의『노자』는 왕필의 해석에 바탕하되, 보다 철학적인 맛과 철학적 해석의 성격이 강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천지’는 우주로 바뀌고, ‘오묘한 구석’과 ‘만물의 가름’은 ‘미묘한 본체’와 ‘순환하는 현상’이라는 현대적 감각의 철학 개념으로 대체되고 있다. 재미있게도 김경탁의 번역서에는『노자』전편을 새롭게 편제, 주제별로 분류하여 영어로 옮긴 ‘진리와 자연’(Truth and Nature)이라는 제목의 영문 번역이 실려 있다.
필자는 20세기 한국에서 이루어진 이와 같은 방식의『노자』해석과 번역이라는 역사적 과정이 이른바 ‘철학 만들기’라는 전통 학문의 근대화 과정이라 분석한 바 있다. 즉, 동아시아의 고전『노자』를 읽고 번역하고 해석하는 과정의 이면에 작동하였던 중요한 기제는,『노자』텍스트 본래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살리는 데에 주안점이 있었다기보다,『노자』가 근대적 ‘철학’이라는 현대 학문의 영역에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는 방식으로 텍스트가 선정되고 해석,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18]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70년대 이후『노자』의 번역은 수적으로 엄청나게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개 번역본 사이에 커다란 차이나 중요한 해석학적 의미를 갖는 번역본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김용옥의『노자, 길과 얻음』(1989)은 왕필본에 충실하면서 가장 깔끔한 언어를 구사하는『노자』번역본으로서, 20세기 한국에서 이루어진 세 가지『노자』번역의 흐름 가운데 하나를 대표한다.
유영모의『노자, 빛으로 쓴 얼의 노래』와 김홍경의『노자, 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는 이와 다른 두 계열을 대표한다. 나는 이 세 가지『노자』번역의 조류에 대해 각각 철학적 번역, 종교적 번역, 역사적 번역이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19]
14] 韋郞 愼弦重 著,『國譯 老子』(靑羽出版社, 1957).
15]김갑수, 「한국 근대에서의 도가 및 제자철학의 이해와 번역」,『시대와 철학』 제14권 2호(한국철학사상연구소, 2003 가을호); 김갑수, 「1960년대 이후 도가 및 제자철학 원전 번역에 대한 연구」,『제25회(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학술발표회 자료집』, 257~280쪽 참조.
16]신현중 저, 같은 책, 23쪽.
17]김경탁,『노자』(양현각, 1983), 43쪽.
18]김시천,『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 제1장 「철학 ‘만들기’에서 철학 ‘하기’까지」 참조.
19]물론 여기서 필자가 제시하는 개념 규정은 잠정적인 것이다. 또한 각 계열의 대표적 번역본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이 글에서 구체적인 번역서를 대상으로 번역의 정확성이나 일관성을 주된 논의 주제로 삼지 않고, 이와 같이 거시적인 접근을 시도한 것은 이러한 방식의 접근이『노자』번역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데에 보다 더 일차적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6.『노자』번역에서의 역사성과 보편성
유명한 영역본『노자』를 낸 웨일리(Arthur Waley)는『노자』번역의 두 가지 방식을 구분한 바 있다. 하나는 ‘경학적’ 번역으로서, 이것은 하나의 텍스트가 시대를 초월하여 갖는 의미에 보다 주안점을 두고 번역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역사적’ 번역으로서, 이것은 어떤 텍스트가 처음 성립될 때 당시의 독자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즉 ‘경학적’ 번역이 보편성을 중심에 둔 번역이라면, ‘역사적’ 번역은 역사성에 중심을 둔 번역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웨일리의 구분에 의존한다면, 앞서 필자가 철학적, 종교적, 역사적이라 나누었던 우리 시대『노자』번역의 세 가지 조류는 다음과 같이 다시 재분류할 수 있다.
1) 보편성 중심의 번역
- 철학적 번역
- 종교적 번역
2) 역사성 중심의 번역
그렇다면 도대체 역사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가운데 어느 것을 우위에 두느냐에 따라『노자』읽기는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가?
『노자』제11장은 이러한 논의를 하기에 아주 적합한 예가 될 수 있다.
[원문] 三十輻共一,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김용옥] 서른개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머리에 모인다. 그 바퀴머리의 빔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든다. 그 그릇의 빔에 그릇의 쓰임이 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든다. 그 방의 빔에 방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이가 됨은 없음의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노자』 제11장의 이 구절은 무가 지닌 위대한 효용을 설명한 것으로 흔히 해석된다. 더욱이 김용옥은 그의 『노자와 21세기』에서 바퀴가 지닌 문명의 상징성을 강조하면서,『노자』의 이 구절이 그 유명한 ‘허虛'의 철학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즉 그에게서『노자』는 무엇보다 문명과 자연의 괴리, 인위와 자연의 대립을 극복하고 나온 철학으로의『노자』가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기』 「전경중완세가」에는 재미난 일화가 실려 있다. 제齊 나라 직하稷下에서 활동하였던 순우곤淳于髡은 위왕威王이 추기자鄒忌子를 재상으로 삼자, 추기자를 찾아가 시험하며 갖가지 질문을 한다. 이 때 순우곤이 추기자에게 활, 바퀴축, 큰 수레 등의 비유를 들어 말할 때마다, 순우곤은 측근을 잘 관리하겠다거나 백성들과 거리감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거나 적절한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식으로 치술治術에 관한 답변으로 일관한다. 그러자 순우곤은 추기자가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답변하였다고 칭찬한다. 20]
적어도 『사기』에 실려 있는 순우곤과 추기자의 문답은 당시 ‘바퀴’라고 하는 것이 실제 어떠한 은유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된다. 하상공의 해석은 이와 같은 방식의 은유를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듯이 치술의 맥락에서 이를 풀이한다. 달리 말하자면,『노자』 제11장의 문장이 ‘허虛’의 철학을 전개하는 것으로 해석하더라도, 당시에 바퀴, 바퀴축, 바퀴살의 은유적 맥락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를 염두에 둘 때, 해석은 전혀 상이한 맥락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김용옥의 번역과 해설은 현대적인 철학의 문제 의식에서 본『노자』로서, 모든 문명의 논리에 대한 전제를 상정하는 보편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유영모가『노자』제1장의 ‘도’를 ‘얼’로 해석하면서, “노자의 도는 예수의 얼(프뉴마, πνεμα), 석가의 법法(Dharma), 중용의 성性과 같은 참나(眞我)를 뜻한다” 21] 고 한 것은, 이른바 전형적인 보편적 해석의 예가 된다. 여기서 유영모가 가한 보편적 해석은 김경탁이 ‘미묘한 본체’나 ‘순환하는 현상’이라고 해석한 것과 커다란 차이가 없다. 다만 유영모가 동아시아 전통 사상인 불교와 유교가 외래 종교인 기독교 사상의 핵심 개념들을 화해적으로 소통시키는 매개 개념으로『노자』의 핵심 용어들을 이용한 것이라면, 김경탁의 해석은 서구 철학 개념과 소통시키려 한 것만 다를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다석 유영모의『노자』번역은 김경탁이나 김용옥의 것과 비교할 때 그 번역어의 문장과 표현은 아주 다르지만, 양자는 모두 서구의 종교와 철학이라는 새로운 세계관과 마주하여 양자를 소통시키고 화해시키려는 의도의 산물인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서는 보편성이 강조되고 역사성이나 구체성은 추상화, 탈역사화 된다. 다만 양자에는 철학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의 중요한 차이가 개재되어 있다. 보편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동일시될 수 있지만, 유영모의 해석은 20세기 전반에 우리 민족이 겪었던 심대한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각인되어 있어 그 미세한 면모는 김경탁이나 김용옥의 해석과는 또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 다르다.
『노자』의 추상적, 시적, 압축적 언어의 묘미는 이러한 관심의 번역자, 사상가, 철학자들에게『노자』를 아주 매력적인 문헌으로 만들어 준다. 이 점은 왜 『논어』나 『맹자』와 같은 유가 문헌들에 비해, 그리고 같은 도가에 속하는 『장자』에 비해 동서양의 사유를 접목시키고자 하는 사상가나 철학자들에게 가장 자주 이용되는 문헌이『노자』인가를 잘 설명해 준다. 왕필의 해석에 의존해야 하는 이유, 왕필의 시각에서『노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왕필의『노자』가 다른 어떤 주석서들보다『노자』를 추상적 언명의 체계로 읽을 수 있는 보편적 해석의 기반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20]정범진 외 옮김, 『사기세가』 下(까치, 1994), 402~403쪽.
21] 박영호 역·저, 같은 책, 21~22쪽.
7. 보편성에서 역사성으로
90년대 들어서면서『노자』의 번역은 새로운 차원으로 탈바꿈한다. 90년대『노자』번역에서 두드러진 현상은『노자』자체에 대한 수많은 번역의 시도 이외에『노자』주석서의 번역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김학목은 왕필의『노자주』, 율곡의『순언』, 홍석주의『정노』, 박세당의『신주도덕경』 등을 번역해 냄으로써,『노자』를 보는 역사적 시각들이 얼마나 다양했는가를 보여주는 데에 밑거름 다지기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새롭게 발굴된『곽점노자』의 번역은 양방웅에 의해,『백서노자』는 김홍경과 이석명에 의해 번역되어 일반 독자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여러 사람들의 주석을 함께 엮어서 번역한 이현주의『노자익』도 있으며, 원로 학자 김충렬은 곽점본과 왕필본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와 철학적 연구를 통합한 저서 『노자강의』를 출간한 바 있다.
그렇다면『백서노자』나『곽점노자』 또는 여러 가지『노자』주석서들이 번역된다는 것이 ‘『노자』의 번역’이라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새롭게 출토된 판본, 여러 가지 주석서의 번역이 의미하는 바는,『노자』가 역사 속에서 내밀었던 수많은 ‘얼굴들’을 확인하는 작업이자 동아시아의 구체적인 역사의 장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노자』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것은 아직 보이지 않는 보편성을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과 생각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에 대한 반성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경험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없이 객관적 보편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애매모호한 것인가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90년대 이후『노자』번역의 기조는 보편성에서 역사성으로, 번역의 지향이 전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노자』주석서의 번역이『노자』번역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노자』는 어느 특정 문헌 하나의 이름일 수 없다. 전통 동아시아 사회에서 유통되었던『노자』는 하상공본 노자이거나 왕필본 노자이거나 임희일의 노자이거나 박세당의 노자였다.22] 따라서『노자』번역의 현황이나 구체적 번역을 다룬다는 것은 몇몇 번역본의 비교 작업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불가능한 주제이다. 해석자가 근거하는 주석이나 판본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드러나는 문헌에 대해, 몇 가지 논리적 기준이나 문장상의 차이만을 갖고 번역의 현황이나 수준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논의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시대의『노자』번역이라는 넓은 범위의 주제 영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왜 그러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는가에 대한 폭넓은 밑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을 뿐이다.
필자가 처음 인용하면서 시작하였던 다석 유영모의 노자와 김용옥의 노자 그리고 김홍경의 노자를 동일한 하나의 잣대에서 비교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가능한 것은 왕필『노자주』의 번역본인 임채우와 김학목의 것,『백서노자』의 번역인 김홍경과 이석명의 것을 비교, 평가하는 작업은 가능하다. 하지만 ‘『노자』의 번역’이라는 주제는 어느 하나의 판본을 중심으로 성립되는 개념이 아니기에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는『노자』번역의 현주소라는 주제 아래에서, 기존에 나와 있는『노자』번역들이 도대체 왜 그렇게들 다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그러한 다름이 나오게 된 역사적 과정을 소개하고, 이어서 20세기 한국에서 출간된『노자』번역서의 주된 세 가지 경향을 철학적, 종교적, 역사적인 것으로 구분해 보았다.
또한 이러한 세 가지 경향은 크게 보면 보편성 지향의 번역과 역사성 지향의 번역이 있으며, 이렇게 번역의 경향을 달리하는 번역서들은 그 자체가 또 다른 노자‘들’을 형성하는 20세기 한국의 역사적 과정의 일부임을 암시하였다. 적어도『노자』의 번역을 문제 삼기 위해서는『노자』학 자체가 가진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한 뒤에라야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필자는 밑그림을 그리는 데에서 만족하고, 필자보다 더 넓은 시야에서 이와 같이 구분되고 갈라지는 구도를 통합적 시각에서 새롭게 평가할 기준을 지닌 현자를 기다려야 할 듯하다.
22]우리가 판본학상의 문제를 개입시키게 되면,『노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단일 문헌으로 유통되었던 것이 아니라 중요한 주석자로 간주되는 이들의 손에 의해 편집, 교정, 주석되어 유통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노자』의 유행은 판본상으로나 해석적 입장에서나 왕필본의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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