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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산 2005.3월호
백두대간과 대장정(제3 구간)
글: 최명우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연구소장
(http://cafe.daum.net/gusrhdvndtn)
도대체 풍수지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일단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바람과 물이란 요소로 땅의 이치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풍수」라는 용어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로 잘 알려져 있는데, 장풍과 득수라는 풍수용어는《장서(葬書)》이라는 중국의 유명한 풍수고전에 나오는 말이다.
《장서(葬書)》은 중국 진(晉)나라의 곽박(郭璞: 276-324년)의 저서로서 가장 오래된 풍수 서적 중에 하나로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읽어보는 책으로 일명《장경(葬經)》,《금낭경(錦囊經)》이라고도 부른다. 이 책은 주로 형기풍수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이 책에 「풍수」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풍수지법 득수위상 장풍차지: 풍수의 법은 물을 얻는 것이 먼저이고 바람을 갈무리 하는 것이 다음이다.)』
그런데 「장풍득수(藏風得水)」라는 말은 인간의 눈을 통하여 땅의 형세를 보고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방법으로 즉, 유형(有形)의「형기풍수(形氣風水)」가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이기풍수(理氣風水)」로 말하자면「영생피살(迎生避殺)」이란 의미로 적당한 시기를 선택하여 묘나 집을 지어야 한다는 이론이 있다.
「영생피살」이란 건택조장(建宅造葬: 집을 짓거나 묘를 씀)하는 시기에 따라 적합한 시기를 왕(旺), 생(生) 이라고 하고 부적합한 시기는 퇴(退), 쇠(衰), 사(死), 살(殺)이라고 나누어 길흉화복을을 판단하는 방법으로 이 이론은 우리나라 왕조사에 등장하는 소위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과 같은 이론이다.
형기풍수의 장풍득수와 이기풍수의 영생피살
장풍득수가 주된 내용인 형기풍수(形氣風水)는 역학(易學)에서 말하는 「체(體)」가 되고, 학문에 비유를 하자면 ‘미술’과목에 해당되는 한편 영이기풍수(理氣風水)는 활용한다는 의미에서「용(用)」이 되며‘수학’과목에 비유된다.
체와 용은 우열을 비교하는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조화의 관계이므로 풍수지리학은 형기풍수와 이기풍수를 모두 알아야 비로소 완벽한 풍수지리 학문이 된다.
그런데 일부 풍수사는 형기풍수만 강조한 나머지, 「이기풍수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동양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인 체와 용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대원칙에 다르면 형기풍수와 이기풍수는 모두 필수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기존의 형기풍수의 이론은 대동소이하여 누구나 대체적으로 인정을 하지만 이기풍수에 있어서는 이론은 학파가 다양하고 자신의 이론만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풍수계의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풍수계에서는 아예 이기풍수를 부정하기에 이른 것으로 추측된다.
다양한 이기풍수 이론 중에 「현공풍수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우리나라 풍수계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편인데 여기에 간단히 소개하며 아울러 지기의 쇠왕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풍수지리에 대해설명하기 전에 동양 철학의 근간이 되는 《주역(周易)》에 대해 거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주역이라고 하는 부르는 이유는 중국 주(周)나라 시대에 만들었다는 시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한편 주역을 영어로는「The book of Change(변화의 책)」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변화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영역한 말을 감안하면 주역은 한마디로 변화의 이치를 설명한 책이다.
주역의 주된 이론은 크게「변역(變易)」과「불역(不易)」 두 가지로 대분된다.
「변역(變易)」이란 천지간의 모든 상황과 사물은 항상 변하고 바뀜으로써 음과 양의 두 기운이 교섭한다는 의미이다. 예들 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춘하추동이라는 계절이 생긴다는 것이다.
「불역(不易)」은 변하는 가운데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줄기가 있으니 예를 들면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 그 위치가 바뀌지 않는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기존의 이기풍수 이론은 시간성이 배제된 즉, 고정된 불역의 이치만 적용하였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결과 얻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풍수지리가 미신이라는 말조차 들어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현공풍수는 불역과 변역의 이치를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신묘한 결과를 나온다.
20년을 주기로 운이 바뀐다.
형기(形氣)풍수지리는 공간개념을 위주를 하는 분야이고, 이기(理氣)풍수지리는 시간개념을 위주로 하는 분야이다. 따라서 현공풍수법의 기본 원리는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배합한 풍수학문이다.
공간에 시간이란 개념이 더하면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기본적인 상식이며 만고의 진리이다.
현공풍수는 시기에 따라 운이 변화되는데 20년을 주기로 운이 바뀐다. 운은 1운에서 9운까지 있으며 9운이 지나면 다시 1운부터 연속적으로 되풀이된다.
1운에서 3운까지 60년간을 「상원(上元)」이라 하고, 4운에서 6운까지 60년간을 「중원(中元)」이라 하고 7운에서 9운까지 60년간을 「하원(下元)」이라고 하며, 이들을 총칭하여 「삼원구운(三元九運)」이라고 한다. 따라서 올해인 2005년은 8운 두 번째에 해당된다. (삼원구운 연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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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구운 연표 <매년 입춘기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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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元 |
1運 |
甲子∼癸未 |
1324∼1343 |
1504∼1523 |
1684∼1703 |
1864∼1883 |
2044∼2063 |
|
2運 |
甲申∼癸卯 |
1344∼1363 |
1524∼1543 |
1704∼1723 |
1884∼1903 |
2064∼2083 | |
|
3運 |
甲辰∼癸亥 |
1364∼1383 |
1544∼1563 |
1724∼1743 |
1904∼1923 |
2084∼2103 | |
|
中元 |
4運 |
甲子∼癸未 |
1384∼1403 |
1564∼1583 |
1744∼1763 |
1924∼1943 |
2104∼2123 |
|
5運 |
甲申∼癸卯 |
1404∼1423 |
1584∼1603 |
1764∼1783 |
1944∼1963 |
2124∼2143 | |
|
6運 |
甲辰∼癸亥 |
1424∼1443 |
1604∼1623 |
1784∼1803 |
1964∼1983 |
2144∼2163 | |
|
下元 |
7運 |
甲子∼癸未 |
1444∼1463 |
1624∼1643 |
1804∼1823 |
1984∼2003 |
2164∼2183 |
|
8運 |
甲申∼癸卯 |
1464∼1483 |
1644∼1663 |
1824∼1843 |
2004∼2023 |
2184∼2203 | |
|
9運 |
甲辰∼癸亥 |
1484∼1503 |
1664∼1683 |
1844∼1863 |
2024∼2043 |
2204∼2223 | |
땅에도 생왕휴수의 변화가 있다
사람에게 생노병사가 있고 계절에도 춘하추동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풍수지리에도 생왕휴수(生旺休囚)가 있어 일정한 시기가 되면 땅의 기운도 끝나기 마련이며 그리고 또다시 지기가 생성된다.
기존의 이기풍수이론에서는 지운기간에 대한 명쾌한 이론이 없지만 현공풍수이론은 언제 지기가 소멸되는지 그 시기를 간단한 계산을 통하여 쉽게 알 수 있다.
지운이 끝나는 시기를 현공풍수에서는 「입수(入囚)」되었다고 하는데 입수가 되면 지기가 휴식상태가 되기 때문에 재정양패(財丁兩敗)가 되는데 그 피해의 정도는 아주 심하다.
다만 지운을 계산하는 방법은 전문적인 이론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락하고 지운기간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풍수지리를 실생활에 잘 활용하여 우리의 인생을 행복한 삶으로 만드는 이로운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인정을 하여 명당을 찾으려는 수고를 아끼지 않지만, 지운이 언제 끝나고 지운이 끝나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무조건 조상의 묘를 오랫동안 보존한다는 것은 현공법으로 보면 언젠가는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지운이 끝나는 시기에는 화장을 하여 국토를 이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화장을 할 경우 길흉화복의 유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화장을 하는 동시에 인체에 유전인자의 근본이 되는 DNA도 파괴되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화장을 하면 모든 것이 소멸되어 「무」의 상태가 되기 때문에 길흉화복도 자연히 소멸되므로 어떠한 풍수지리 이론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지운은 형기풍수로 판단하여 일반적인 땅과 특별히 좋은 명당에 따라 기간이 다르다.
지기의 쇠기운 〈표〉는 평범한 땅일 경우의 지운기간이고 특별히 좋은 땅일 경우에는 삼원이 거듭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땅을 삼원불패지지(三元不敗之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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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氣의 衰期運 <○안의 숫자는 當運 入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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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 坐 |
1運 |
2運 |
3運 |
4運 |
5運 |
6運 |
7運 |
8運 |
9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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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1883 |
1884∼1903 |
1904∼1923 |
1924∼1943 |
1944∼1963 |
1964∼1983 |
1984∼2003 |
2004∼ 2023 |
2024∼ 20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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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替 |
下 替 |
下 替 |
下 替 |
下 替 |
下 替 |
下 替 |
下 替 |
下 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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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 337.5∼352.5 |
5 |
5 |
1 |
6 |
7 |
9 |
3 |
7 |
9 |
7 |
1 |
2 |
6 |
2 |
3 |
1 |
8 |
6 | ||||||||
|
子 352.5∼007.5 |
9 |
9 |
6 |
6 |
2 |
7 |
8 |
7 |
9 |
9 |
5 |
5 |
2 |
2 |
7 |
2 |
4 |
6 | ||||||||
|
癸 007.5∼022.5 |
9 |
9 |
6 |
6 |
2 |
7 |
8 |
9 |
9 |
9 |
5 |
1 |
2 |
1 |
7 |
2 |
4 |
6 | ||||||||
|
丑 022.5∼037.5 |
7 |
9 |
8 |
7 |
9 |
7 |
1 |
2 |
2 |
2 |
3 |
1 |
1 |
6 |
5 |
5 |
3 |
6 | ||||||||
|
艮 037.5∼052.5 |
4 |
7 |
8 |
7 |
6 |
6 |
1 |
1 |
2 |
2 |
3 |
5 |
4 |
6 |
5 |
5 |
6 |
6 | ||||||||
|
寅 052.5∼067.5 |
4 |
7 |
8 |
9 |
6 |
6 |
1 |
1 |
2 |
1 |
3 |
2 |
4 |
6 |
5 |
5 |
6 |
6 | ||||||||
|
甲 067.5∼082.5 |
3 |
① |
6 |
6 |
5 |
5 |
6 |
6 |
7 |
9 |
8 |
7 |
9 |
⑦ |
1 |
2 |
4 |
2 | ||||||||
|
卯 082.5∼097.5 |
5 |
2 |
4 |
6 |
5 |
5 |
6 |
6 |
7 |
7 |
8 |
7 |
9 |
9 |
3 |
3 |
2 |
2 | ||||||||
|
乙 097.5∼112.5 |
5 |
2 |
4 |
6 |
5 |
5 |
6 |
6 |
7 |
7 |
8 |
9 |
9 |
9 |
3 |
3 |
2 |
1 | ||||||||
|
辰 112.5∼127.5 |
3 |
2 |
3 |
1 |
4 |
6 |
6 |
5 |
6 |
7 |
7 |
9 |
8 |
⑦ |
9 |
7 |
1 |
2 | ||||||||
|
巽 127.5∼142.5 |
2 |
2 |
3 |
② |
4 |
6 |
5 |
5 |
6 |
6 |
8 |
8 |
8 |
⑦ |
9 |
9 |
2 |
1 | ||||||||
|
巳 142.5∼157.5 |
2 |
① |
3 |
② |
4 |
6 |
5 |
5 |
6 |
6 |
8 |
8 |
8 |
9 |
9 |
9 |
2 |
1 | ||||||||
|
丙 157.5∼172.5 |
2 |
2 |
7 |
6 |
4 |
7 |
9 |
7 |
1 |
2 |
7 |
2 |
3 |
1 |
9 |
6 |
5 |
5 | ||||||||
|
午 172.5∼187.5 |
6 |
6 |
3 |
3 |
8 |
7 |
5 |
9 |
1 |
1 |
2 |
2 |
8 |
2 |
4 |
6 |
1 |
5 | ||||||||
|
丁 187.5∼202.5 |
6 |
6 |
3 |
3 |
8 |
9 |
5 |
9 |
1 |
1 |
2 |
1 |
8 |
2 |
4 |
6 |
1 |
5 | ||||||||
|
未 202.5∼217.5 |
7 |
6 |
5 |
5 |
9 |
6 |
7 |
9 |
8 |
7 |
9 |
7 |
1 |
2 |
2 |
2 |
3 |
1 | ||||||||
|
坤 217.5∼232.5 |
4 |
6 |
5 |
5 |
6 |
6 |
7 |
7 |
8 |
7 |
9 |
9 |
4 |
1 |
2 |
2 |
6 |
2 | ||||||||
|
申 232.5∼247.5 |
4 |
6 |
5 |
5 |
6 |
6 |
7 |
7 |
8 |
9 |
9 |
9 |
4 |
1 |
2 |
1 |
6 |
2 | ||||||||
|
庚 247.5∼262.5 |
6 |
7 |
9 |
7 |
1 |
2 |
2 |
2 |
3 |
1 |
4 |
⑥ |
5 |
5 |
4 |
6 |
7 |
⑨ | ||||||||
|
酉 262.5∼277.5 |
8 |
7 |
7 |
9 |
1 |
1 |
2 |
2 |
3 |
2 |
4 |
⑥ |
5 |
5 |
6 |
6 |
5 |
5 | ||||||||
|
辛 277.5∼292.5 |
8 |
9 |
9 |
9 |
1 |
1 |
2 |
1 |
3 |
2 |
4 |
⑥ |
5 |
5 |
6 |
6 |
5 |
7 | ||||||||
|
戌 292.5∼307.5 |
9 |
7 |
1 |
② |
2 |
2 |
3 |
1 |
4 |
6 |
4 |
5 |
6 |
6 |
7 |
9 |
7 |
7 | ||||||||
|
乾 307.5∼322.5 |
8 |
8 |
1 |
1 |
2 |
2 |
2 |
2 |
4 |
4 |
5 |
5 |
6 |
6 |
7 |
7 |
8 |
7 | ||||||||
|
亥 322.5∼337.5 |
8 |
9 |
1 |
1 |
2 |
1 |
2 |
2 |
4 |
4 |
5 |
5 |
6 |
6 |
7 |
7 |
8 |
⑨ | ||||||||
※ 풍수지리에서는 24방위로 나누는데 1개 방위(15도)는 다시 하괘와 체괘로 나누는데 하괘는 중앙의 9도이고 체괘는 왼쪽의 3도와 오른쪽의 3도이다.
※ 〈표〉보는 방법: 예들 들어 7운(1984∼2003년)에 자좌오향으로 건택조장을 하였다면 2운(2064∼2083)에 지운이 끝난다. 즉 지운기간은 2063년까지 이다.
석류속 같은 입술로 죽음에 입맞춘 논개
인걸은 지령이라고 했던가. 백두대간 덕유산 자락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지만 논개를 빼놓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위기의 선상에 처한 시기에 진주성 촉석루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장열히 순국한 의기 논개가 있다. 논개의 우국충절을 변영로 시인(1898~1961)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거룩한 분노(憤怒)는
종교(宗敎)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情熱)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論介 1574∼1593)는 임진왜란 중 2차 진주성싸움에서 이긴 왜군이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일 때 왜장을 남강가로 유인하여 끌어안고 강물에 빠져 순절한 의기이다.
논개가 18세 되던 해 1591년에 최경회와 부부의 인연을 맺고 무장현감으로 부임하는 최경회를 따라 장수를 떠났다. 최경회가 1593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하여 진주성싸움에 참가하게 되자 논개도 진주길을 떠났는데, 진주성 함락과 함께 순절하였다.
진주성싸움에서 살아남은 의병들이 최경회 장군과 논개의 시신을 낙동강에서 건져 비밀리에 운구하였지만 당시에 시신매장을 거부당하여 한 밤중에 몰래 경남 함양군 서상면 방지리 골짜기에 묻혀야만 했던 비극적인 사연은 당시의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논개를 천장지비(天藏地秘)의 풍취나대(風吹羅帶)라는 천하의 명당에 안장되었다. 19살 꽃 다운 나이에 의롭게 순절하고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힐 뻔 했지만 이른바 삼원불패지지의 명당은 논개의 이름을 땅속에서 만천하에 내놓고야 말게 된다.
땅이 알아 본 논개의 붉은 혼
구전돼 오던 논개의 순국 사실이 문자화된 것은 1620년 무렵 유몽인(柳夢寅)이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채록하면서부터이며, 논개가 순국한 바위에 ‘의암’(義岩)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논개의 충성심은 이미 의심할 바 없었는데도 일부 보수적인 사대부들은 편견을 내세워 임진왜란 중의 충신·효자·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논개를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진주사람들은 성이 함락된 날이면 강변에 제단을 차려 그의 의혼을 위로하는 한편, 국가적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결국 경종 1년(1721) 경상우병사 최진한(崔鎭漢)이 논개에 대한 국가의 포상을 비변사에 건의하여 그의 순국 사실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이후 영조 16년(1740) 경상우병사 남덕하(南德夏)의 노력으로 논개의 혼을 기리는 의기사(義妓祠)가 의암 부근에 처음 세워지게 되었다.
논개의 고향은 덕유산 육십령을 넘기 전 전북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주촌(朱村)마을이다. 최근에 이곳에는 논개의 생가가 복원되었으며, 전북 장수읍 두산리에는 의암사(義巖祠)라는 논개사당을 만들었으며 논개의 묘는 1998년에 묘역이 대대적으로 정화되고 의암논개반장의병추모비(義巖論介返葬義兵追慕碑)를 세웠다.
물론 이렇게 된 사실은 살신성인한 논개의 충절에 대한 당연한 일이지만 풍수지리적 시각에서 보면 풍취나대의 명당에 안장된 논개묘의 명당바람은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비단 옷고름처럼 논개의 기상은 삼원불패로 영원히 휘날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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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사고전서 술수부에 나오는 풍수서 《장서(葬書)》의 첫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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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논개의 묘는 삼원불패지지의 영원한 명당의 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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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과 풍수지리
월간 산 2005.2월호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고리봉에서 고기리(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로 하산하면 백두대간이라라고 할 만한 큰 산줄기가 보이지 않고 평평한 고원지대가 나온다.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백두대간을 찾지 못하고 헤메기 쉽상이다.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고기리에서 주촌리(전북 남원시 운봉읍 주촌리)로 가는 길이 백두대간임을 확인하고 백두대간을 따라가면 어이없는 아스팔트로 포장한 길이다.
*백두대간과 정맥은 풍수에서 간룡과 지룡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용의 대소에 따라 간룡(幹龍)과 지룡(枝龍)으로 나눈다. 백두대간을 풍수지리와 비교하지면 백두대간은 간룡에 해당되고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산줄기는 지룡에 해당된다.
본래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는 용어나 풍수지리에서 간룡(幹龍)이란 용어는 산을 나무에 비유하여 줄기[幹]와 가지[枝]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백두대간은 다시 여러 개의 정맥(正脈)으로 나누어 지는데 정맥은 가지에 해당이 된다.
나무의 줄기에서도 열매가 맺히기기도 하지만, 대개는 가지에 열매가 맺히듯이 같은 이치로 풍수지리에서도 간룡보다는 지룡에 혈(穴)이 생긴다. 따라서 백두대간이 비록 큰 산줄기이지만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은 열매가 잔가지에서 열매가 맺히듯이 백두대간에서 다시 뻗어나온 가지에 명당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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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뿌리로 해서 나무에 비유하여 본 백두대간과 한반도의 모습. 월간「산」1994. 3월호에서 인용) |
우리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명당은 많이 남아있다. 다만 어디에 명당이 있는지 모를 뿐이다. 이 지역에도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가지에 명당이 남아있다. 주촌리에 구룡부주(九龍負舟, 또는 黃龍負舟)라는 대명당이 있다는 기록이 《남기록(覽奇錄)》이라는 필사본 명당결에 전해지고 있다.
*용이 배를 지고 항해하는 명당
황룡부주라는 명당은 용이 배를 등에 지고 간다는 생김새의 명당이다는 뜻이다.
이 곳은 지리산 깊은 산촌인데도 불구하고 주변의 지명을 살펴보면 이상하게도 황룡부주에 걸맞는 풍수지리적인 지명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주촌리’(舟村里:전북 남원시 운봉읍 주천리로 [배말]이라고도 부름)는 이상하게 배[舟]를 뜻하는 지명이 있고, 용(龍)이란 뜻의 ‘용동’(龍洞: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이란 지명도 있고, 용동마을 서쪽에 있는 들을 ‘용동번덕’이라고 부르고, 배를 고리에 매어둔다는 의미의 ‘고리봉’[環峰.1172m ]도 있는데 이 지명들이 황룡부주의 명당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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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록(覽奇錄)》이라는 명당의 위치와 내용을 적어놓은 필사본 명당결이 있다.여기에 황룡부주(黃龍負舟)명당의 위치와 발복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
실제로 황룡부주의 명당은 해방 전에 이곳에 명당을 쓰고 크게 발복을 받았다고 한다. 마을 주민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황룡부주 명당에 모인이 묘를 쓰고 발복을 받아 묘의 후손들이 모이면 자유당 당시에 자가용이 귀한 시절이 이었는데도 수십 대의 자가용이 즐비하게 주차를 하여 그 당시에는 장관이었다고 전한다.
황룡부주가 명당이 되는 이유는 용이 배를 등에 항해를 하는데 무게중심을 잃으면 배가 등에서 떨어지게 되면 전복이 되므로 바짝 긴장을 하며 온 정신을 집중하여 배가 기울지 않도록 무게 중심를 잘 잡고 가기 때문에 명당이 된다.
그런데 만약에 황룡부주의 명당에 석물(石物: 무덤 주변에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으로 망주석(望柱石),상석(床石),석인(石人), 석수(石獸)등이 있다.)을 설치하면 배가 뒤집혀 엎어지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명당에 석물을 설치하면 오히려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풍수지리 이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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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부주 대명당으로 알려진 묘.이곳에 묘를 쓰고 크게 발복을 받았는데 이후에 석물을 설치하고 피해를 본 뒤에 석물을 철거하여 지금은 석물의 흔적만 남아있다. |
이 황룡부주의 명당에 묘를 쓰고 자손들이 크게 발복을 받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게 되자, 상석과 방주석 등의 석물을 설치하였다. 이 이후로 많은 후손들은 피해를 보게 되었고, 석물설치 때문이일고 생각하 나머지 석물을 모두 철거하여 땅에 묻었는데 그 흔적이 지금도 묘주위에 남아 있다.
풍수지리의 이론에는 크게 형기풍수와 이기풍수로 대분된다. 형기풍수는 산과 물을 위주로 보는 방법이고 이기풍수는 음양오행,하도와 낙서 그리고 주역의 팔괘등의 복잡한 이론으로 구성된 내용이다.
* 물형론 풍수란?
형기풍수중에는 ‘물형론(物形論)’이라고 하여 산을 어떤 사물에 비유하여 보는 방법이 있다.
예들 들면 갈마음수(갈마음수: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노서하전(老鼠下田: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형국),선인무수(仙人舞袖: 신선이 소매자락을 날리며 춤추는 형국)등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이 물형론 풍수법 이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있으며, 송나라 요우(廖禹 1014∼1075년)가 지은 갈형취류(喝形取類)라는 책은 내용 전체가 물형론 풍수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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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나라 요우가 지은 갈형취류(喝形取類)라는 책은 내용 전체가 물형론 풍수이론으로 되어있다. |
우리나라의 명당을 기록한 책으로는〈옥룡자유산록(玉龍子 遊山錄)〉이라는 풍수책이 필사본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책제목에 나오는 옥룡자인데 옥룡자가 바로 우리나라 풍수지리계의 비조라고 일컫는 신라말기의 승려인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년)이다. 풍수계에서는 도선국사라는 호칭보다는 옥룡자라고 불리운다.
〈옥룡자 유산록〉명당결도 명당마다 물형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전남 나주(羅州)편에 「황룡부주」 명당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이 대목을 통하여 황룡부주라는 명당의 실체를 살펴보자.
「황룡부주(黃龍負舟)」하고 자취없이 숨었으니
아마도 이 한 혈(穴)이 기기묘묘(奇奇妙妙) 하겠구나
대강(大江)은 재전(在前)하고 대로(大路)는 재후(在後)로다
간행이절(艮行二節) 해삼절(亥三節) 을수귀미(乙水歸未)하고 임좌(壬坐)로다
손신간병(巽辛艮丙)이 상대하고 건곤자오(乾坤子午)가 상봉(相逢)하니
용두봉(龍頭峰) 수구(水口)막이는 주산(珠山)이 완연하다
혈성(穴星)이 원후(圓厚)하여 천륜(天輪)전대 둘렀으니
오척칠촌(五尺七寸) 파게 되면 석함(石函)중에 쌍이(雙鯉)로다
상(傷)하지 말고 쓰게 되면 육십팔대(六十八代) 장원(長遠)하리라
혈(穴)을 보고 주인 보니 금토성(金土姓)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황룡부주」명당의 주변에는 강과 도로가 있다고 하였고 그중에 자취없이 숨었다고 하는 표현을 보아도 역시 황룡부주(黃龍負舟)명당은 낮은 곳에 있으며 산줄기가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용세의 모양에 따른 분류법
풍수지리에서는 용세(龍勢)에 따라 세가지로 나눈다. 즉,「산룡지세(山壟지세)」,「평강지세(平岡之勢)」,「평지지세(平地之勢)」로 나누어 본다.
「산룡지세」는 그 산세가 변화무쌍하여 용처럼 힘차게 내려오며 기복을 하는 모양으로 일명 기복격(起伏格)이라고 한다.
「평강지세(平岡之勢)」는 뱀이 좌우로 변화를 주는 모양으로 일명 선대격(仙帶格)이라고 한다.
「평지지세(平地之勢)」는 평평한 밭두렁 모양으로 일명 평수격(平受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명당의 대부분은 기복격이나 선대격으로 되었으며 평수격으로 된 명당은 드물기 때문에 평수격으로 된 명당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황룡부주의 명당은 평지지세도 속하기 때문에 옥룡자유산록에서도 자취없이 숨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백두대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수정봉, 여원치를 지나면 고남산(古南山.846m)이 우뚝 솟아있는데 이산 정상에서 남원시 산동면 태평리로 내려가면 산룡지세로 된 속칭 공알명당으로 소문난 명당이 있다.
*공알명당과 여근곡명당
공알이란 말은 말 그대로 비어 있는[空] 가운데 알[實]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풍수지리에서도 여자의 생식기처럼 생긴 명당을 공알명당이라고 부른다. 남자의 생식기를 이실일허(二實一虛)라고 하고 여자는 일실이허(一實二虛)라고 하는데, 이실이허에서 이실는 속이 꽉 찬 고환이고 일허는 속이 비허있는 요도관인 음경에 해당되며 또한 일실이허에서 일실은 음핵(공알)에 해당하고 이허는 요도구와 질구를 뜻한다. 이렇게 남녀의 생식기도 묘한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을 쉽게 설명할 때에 꽃이나 여자의 생식기에 비유하여 곧잘 설명을 하는데 실제로 여자의 생식기에 해당하는 명당도 있다.
먼저 《삼국유사》를 통해 잘 알려진 여근곡(女根谷)이야기가 있다. 삼국유사 제1권 선덕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편에 나온다. 지기삼사는 선덕여왕이 재임 기간중에 예견한 세 가지 사실이다. 그 중 하나가 여근곡 이야기이다. 다음은 삼국유사에 여근국에 나오는 대목이다.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도 개구리가 많이 모여 삼사 일간을 울어댄 일이 있었다. 나라 사람들은 괴상하게 여기고 왕에게 물었다. 이에 선덕여왕은 두명의 각간에게 정병 2천명을 뽑아 가지고 속히 서교로 가서 「여근곡」을 찾아가면 반듯이 적병이 있을 것이니 엄습하여 모두 죽이라고 했다. 두 각간은 명령을 받고 각각 군사 1천명씩 거느리고 서교로 가서 「여근곡」을 찾았다. 부산(富山)아래에 과연 여근곡이 있고 백제 군사 5백명이 「여근곡」에 숨어 있었는데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이후 선덕여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여근곡」에 백제군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선덕여왕은 『개구리가 성난 모양을 하는 것은 병사(兵士)의 형상이다. 옥문(玉門)이란 여근(女根)이다.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백색인데 백색은 서쪽을 뜻한다. 그러므로 군사가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남근(男根)이 여근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다. 그래서 잡기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삼국유사에 나온 이야기이지만 경남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 뒷산에는 삼국유사 속의 여근곡이 실제로 있고 가서 직접 여근곡을 바라보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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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나오는 경주의 여근곡 |
실재하는 남원의 여근곡 명당 |
이와 모양이 같은 명당이 전북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 중절마을 뒷산에 소위 공알명당이 있다.
이 명당은 고남산에서 북서쪽으로 산등선이 기복(起伏)하면서 힘차게 내려오는 산줄기가 마지막에서는 힘을 쓰며 불쑥 솟아 세갈래로 나누어진 가운데 줄기에 혈이 있다. 풍수지리를 잘 모르더라도 천천히 살펴보면 공알명당을 찾아 볼 수 있고 경주의 여근곡과 비교하여 보면 아주 비슷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공알명당에서 요천강(섬진강 상류)건너편에 남원시 산동면 태평리에는 남근(男根)에 해당하는 산줄기가 곧게 뻗어 내려오고 있다. 그러니까 강을 사이에 두고 한 쪽에는 여근이 있고 반대편에는 남근이 있다.
혈앞은 인체의 그 부분처럼 급경사로 되어 있고 좌향은 사좌해향(巳坐亥向:거의 북향)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묏자리를 선택할 때에 볕이 잘 들어 잔디가 잘사는 남향을 선호하고 있다. 묏자리에서 남향을 선호하고 북향은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풍수지리에서는 24좌향를 가리지 않는다. 좌향은 산세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향이다고 싫어하거나 망인(亡人)과의 좌향이 맞지 않는다는 등의 말은 풍수지리의 이치를 모르는 말이다. 이 묘는 류모씨가 구한말기에 이미 명당자리를 차지하였고 당연히 후손들이 크게 발복을 받아 일정때에 수천석의 부자도 나왔고 국회의원도 나온 명당자리이다.
그런데 지난 1986년에 개통한 88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청룡과 백호자락이 절개되었다. 형국론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사람의 양쪽 허벅다리에 해당되는 산줄기가 잘려 나가게 된 것이다. 이후로 이 집안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소위 공알명당이나 여근곡이라는 명칭은 풍수지리 고전에서는 옥녀개화(玉女開花)형이라고 점잖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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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명우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연구소장(http://cafe.daum.net/gusrhdvnd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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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는 2005년 1월호 "산"이라는 월간지에 연재할 내용입니다.
풍수지리로 본 백두대간과 지리산 (1편)
필자: 崔明宇(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연구소장)
중국의 곤륜산(崑崙山)에서 시작한 산줄기중 하나가 동쪽으로 뻗어와 백두산이 되었다. 여기에서 곤륜산은 중국전설 속에 나오는 산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중국의 티베트고원 부근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산이다.(여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본지 2004년 3월호-6월호에 연재한 박용수의 「곤륜산을 다시 생각한다」을 참고바람)
조선시대 중기의 지리학자인 이중환(靑華山人 李重煥: 1690-1756년)선생이 지은 《택리지(擇里志)》의 팔도총론(八道總論)첫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곤륜산(崑崙山)의 한 산줄기가 대사막(大沙漠: 고비사막을 지칭)의 남쪽을 지나 동쪽에 이르러 의무려산(醫巫閭山: 중국 요령성에 있는 산)이 되었고, 여기에서 크게 끊어져 요동(遼東)평야가 된다. 평야를 지나서 다시 일어나 백두산(白頭山)이 되는데, 《산해경(山海經)》에서 말하는 불함산(不咸山)이 이것이다.
산의 정기(精氣)가 북쪽으로 천리를 뻗고, 두 강을 사이에 끼고 남쪽으로 향한 것이 영고탑(寧固塔: 중국 길림성에 있는 지명)이 되었으며, 뒤쪽으로 높게 뻗은 일맥(一脈)이 조선 산맥(朝鮮山脈)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우리나라 산맥체계인 백두대간을 거론하는데 필자나 《택리지》에 중국의 곤륜산을 거론하는 이유는 산줄기를 따라 근원을 찾기 위함이지, 과거의 모화사상의 때문이 아니다. 중국 역대 왕조 국경개념으로 보면 곤륜산이나 백두산은 만리장성 밖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지리학에서는 산맥(山脈)이란 말을 익히 사용하지만 전통풍수지리에서는 간룡(幹龍: 큰 산줄기)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아래 그림은 풍수지리학의 백과사전격인《인자수지(人子須知: 중국 송나라의 徐善繼형제가 지은 풍수서적)》에 나오는 「중국삼대간룡총람지도(中國三大幹龍總覽之圖)」이다. 이 지도를 보면 앞서 거론한 곤륜산의 그림과 산이름이 명기되어 있고 또한 제목중의 간룡이란 말이 있듯이 풍수지리학에서는 이미「간룡(幹龍)」이란 용어를 오래전부터 사용하였다.
<풍수고서 인자수지에 나오는 중국의 대간룡도>
풍수지리에서는 산이란 말 대신에 「용(龍)」이란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 산이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산줄기가 상하좌우로 기복을 하고 굴곡을 하면서 천변만화하여야 좋다는 뜻에서 단순히 정적인 뜻을 가진 산이란 말 대신에 용이라고 부른다.
또한 맥의 의미는 용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용(龍)」이란 실제로 눈으로 보이는 산세(山勢)를 뜻하는 반면에 「맥(脈)」은 눈에 보이지 않고 땅속에서 움직이기 기세(氣勢)의 의미를 두고 있다. 따라서 풍수지리에서는 「용」또는 「맥」이란 용어와 함께 용맥(龍脈)이라는 용어를 곧잘 사용한다.
우리나라 백두산에서 시작은 백두대간은 설악산, 자병산,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에서 일단 끝이 난다. 지리산에서 더 작은 단위로는 호남정맥으로 이어져 있는데,《택리지》에 의하면 월출산(전남 영암군 소재)에 이어 전남 해남군의 산으로 이어지며 섬을 따라 바다 건너 제주도 한라산에 이어지고 유구국(琉球國: 현 일본의 오끼나와)까지 이어진다고 하였다.
한국의 백두대간이 멈추는 지리산은 천하의 대명당이 산재하고 있다. 《택리지》를 보면 「고어왈천하명산승점다(古語曰天下名山僧占多: 천하의 명산중에 중이 많이 차지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역시 지리산에도 유명한 사찰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리산 산자락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전북 남원시), 화엄사(전남 구례군), 연곡사(전남 구례군), 쌍계사(경남 하동군 소재), 법계사(경남 하동군), 벽송사(경남 함양군) 등의 명찰이 있다.
또한 옛말에 지세가 뛰어나 선비가 많이 배출한 좋은 고을을 꼽을 때에「경상도는 좌안동 ․ 우함양이고, 전라도는 좌남원 ․ 우장성」이라는 말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이 네 고을 중에 남원과 함양이 지리산 자락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역시 지리산지역은 명당이 많은 길지(吉地)이다는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명산인 지리산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수난을 당한 적도 있다. 조선 말기의 유학자인 매천 황 현(黃玹)선생이 지은《매천야록(梅泉野錄)》의 기록 의하면 지리산의 맥을 끊으려고 시도한 대목이 나온다.
「안영중(安永重)이란 광무 5년(1901년)에 고종(高宗)과 독대를 하고 『지리산의 산맥이 바다를 건너 일본 땅이 되니 지리산의 맥을 끊으면 일본이 스스로 망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이 말을 들은 고종은 기특하게 생각하고 안영중을 양남 도시찰사(兩南 都視察使)로 임명하였고, 많은 장정을 동원하여 운봉(현 전북 남원시 운봉읍)으로 뻗은 산맥을 끊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한 시기가 겨울철인데다가 암반이 나오고 물도 솟아올라 삽으로 팔수가 없었다. 이때에 관찰사인 조한국(趙漢國)이 누차 철수를 요청하였으나 듣지 않고 있다가 안영중이 산의 울음소리를 듣고 두려움을 느껴 중지하였다.」라는 기록과 함께 이때에 지리산이 3일 동안 울었는데, 그 울음소리가 수 백리까지 들였다고 전한다.
본래 《매천야록》은 재야학자가 관찰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오전(誤傳)도 있어 전적으로 신빙할 수는 없으나 「지리산맥 끊기」사건은 당시에 황 현 선생이 운봉에서 가까운 구례에 살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이 사실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기록이다.
당시의 사건현장은 지금도 고기리(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 너무 오래되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한편 지리산에는 유명한 청학동이 있다고 여러 문헌에 전해지고 있다. 청학동(靑鶴洞)에 관한 기록은 《택리지(擇里志)》산수편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면,
「만수동(萬壽洞)과 청학동(靑鶴洞)이 있다는 말이 예전부터 전해온다. 만수동은 지금의 구품대(九品臺)이며, 청학동은 지금의 매계(梅溪)로 근래에 비로소 인적이 조금씩 통한다.」
이중환 선생도 청학동에 대한 말은 들었으나 정확히 어디인지는 몰랐으며 물론 지금도 청학동의 확실한 소재를 모르고 있다.
청학동(靑鶴洞)은 이상향으로 전해오는데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청학동은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데 들어가는 입구에 폭포가 있고 폭포를 지나면 석문(石門)이 나오고 석문동굴 (石門洞窟)을 따라 수 십리를 들어가면 주위가 넓은 평야지대의 별천지가 있다.
이곳에 석정(石井)이 있는데 석정의 물을 마시면 오래 산다고 하였으며 특히 청학동에서 인재가 많이 날 것이라고 전하는데 특히 청학동도(靑鶴洞圖)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 이름과 장소가 신비로워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청학동의 지리산 도처의 마을에서 각기 청학동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그 진위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이른바 「도인촌(道人村)」이라고 알려진 청학동은 매스컴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어린이 서당교육으로 인기가 높다.
다음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명당결(明堂訣)이라는 책의 말미에 조선초기의 무학대사가 지었다는 청학동기 원문을 소개한다.
靑鶴洞(又無學論)
余遊於方丈山, 入于靑鶴洞, 草宿數三, 而夜觀天象, 晝觀山勢. 吁然嘆曰, 美哉, 山水之美也. 大哉, 星辰之應也. 余未曾聞於大仙師, 天下山水第一美者, 唐國洛陽汴京山水, 次則朝鮮三神山云. 故數年逼(逗의 오기)遛於蓬萊, 數年逼(逗의 오기)遛於臨海之間, 而未見方丈山. 故恒是營營, 今來觀之焉, 可謂天下明山也. 幽同抱大作聖君之象, 案山羅烈(列의 오기)重重, 羣臣烈(列의 오기)侍之象. 以理言之, 聖帝明王之朝, 忠臣達士, 世世而出矣. 倉庫文昌, 特立其方, 文章名筆, 達人賢士, 運回則世世無數而富貴功名不可勝數也. 壽井在內, 老人星在天爲案, 人人其壽, 可期百世, 福德星左右特立, 孝子道學之士, 世世多出. 靑鶴左右之翼, 引作龍虎回抱, 而水口明淂(?), 昭然應矣. 家家人人本外孫, 不可勝數而多矣. 若非運回, 則豈能然哉 運到何時. 申午數運, 未及開闢運, 是也. 開闢何時.「合三爲三, 一人一止, 人來兎走之年,」 是也. 雖然入此種裔, 在三十六姓, 俱入大昌, 其外各姓, 無非大昌之地, 豈不美哉, 豈不美哉. 仙鶴出谷, 柳之吉地, 物各如右, 不記山形, 以木體入首, 以鶴形作局. 故世人謂之靑鶴云. 白雲三峰爲案, 以子坐壬坐爲基, 木姓以水星爲基, 水姓以金爲基, 火姓以木爲基, 三十六姓皆有定基, 勿失理而爲之, 可也. 我東方首基也, 疾病不入, 凶年不入, 兵革不入矣. 豈有如此勝地乎? 然後世之人, 能識此山者無幾矣. 或有知者, 富者吝其財而不入 貧者無其財而不入 雖欲入者未指示之人而不入 愚者不入 多疑者不入 不知者不入 無福者知而不入 若非積善積德之人, 豈可得此山入乎. 李蒼(?)之後, 天下大勢, 爭雄於靑邱一片之中矣. 畿西畿東湖南湖北, 安能平安無事乎? 後世人, 勿爲泛於此山, 可也. 草宿三日, 遂拜山而去焉.
청학동 (무학론: 무학대사의 글이다.)
내가 방장산(方丈山; 현 지리산)에 놀러갔다가 청학동(靑鶴洞)에 들어갔다. 3일 동안을 풀밭에서 잠을 자면서 밤에는 천상(天象; 별자리)을 보고 낮에는 산세(山勢; 산의 기세)를 보았다. 아! 감탄하면서 나는『아름답구나. 산수(山水)의 아름다움이여. 위대하구나. 성신(星辰)의 응함이여.』라고 말하였다.
내가 대선사(大仙師)께 들은 적은 없지만, 천하의 산수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당(唐)나라 낙양(洛陽; 중국 주, 동한, 당나라 등 중국 여러 나라의 수도였으며 현 중국 하남성 낙양현)과 변경(汴京, 後梁과 北宋의 도읍으로 현 하남성 개봉현)이요, 그 다음은 조선(朝鮮)의 삼신산(三神山)이라 하기에, 몇 년간은 봉래산(蓬萊山: 삼신산 중에 하나로 금강산의 별칭)에 다가가 머물고, 몇 년간은 임해산(臨海山; 삼신산 중에 하나로 한라산의 별칭)사이에 다가가 머물었으나, 미처 방장산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늘 오락가락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천하의 명산(明山)이라 할 만하다.
그윽하게 돌아 쌓아 성군(聖君)의 형상으로 크게 만들어, 안산(案山)이 거듭거듭 늘어서서 주인을 섬기는 것은 여러 신하들이 모시고 늘어선 형상이다. 이치로 말하자면, 성스럽고 밝은 제왕(帝王)의 조정에 충성스런 신하와 뛰어난 선비가 대대로 나오는 것이다.
창고사(倉庫砂: 산의 모양이 등변사다리꼴 모양의 산)와 문창성(文昌星: 산의 모양이 붓끝처럼 생긴 산)이 제 자리에 빼어나게 섰으니 문장가, 명필, 달인, 현사가 시운(時運)이 돌아오면 대대로 수 없이 많은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
수정(壽井; 노인성 별에 상응하는 청학동에 있다는 지명)이 안에 있고 노인성(老人星; 남극 부근에 있는 별자리로 2월 무렵에 남쪽 지평선 가까이에 잠시 보이는 별로 용골자리에 위치하며, 고대 천문학에서는 사람의 수명을 맡아보는 별이라 하여 이 별을 보면 오래 산다고 믿었다. 일명 남극성(南極星)또는 수성(壽星)이라고도 함)이 하늘에서 안대(案對)가 되니, 사람마다 그 수명이 100세를 기약하고, 복덕성(福德星; 木星을 이르는 말로 길한 의미임)이 좌우로 특별히 뛰어나니, 효자(孝子)와 도학(道學)하는 선비가 대대로 많이 나온다.
청학(靑鶴)의 좌우 날개가 길게 뻗어 좌청룡과 우백호가 되어 둘러 싸안고, 수구(水口;물이 나가는 곳)를 잘 얻어 밝게 응한다. 집안마다 사람마다 본손(本孫)과 외손(外孫)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만약 운(運)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시운이 언제 이를 것인가? 신(申: 낙서수로 2를 뜻함)과 오(午: 낙서수로 9를 뜻함)의 숫자 운(運)인데, 아직은 개벽(開闢)운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이것이다.
개벽은 언제인가? 「合三爲三一人一止人來兎走之年(합삼위삼일인일지인래토주지년)」의 해이다. 비록 이곳에 여러 성씨가 들어와 모두 크게 창성하게 되고 그 밖의 각 성씨도 크게 창성하지 않음이 없는 땅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선학(仙鶴)이 골짜기에서는 유(柳)씨의 길지(吉地)로서 물형(物形)이 각각 다음과 같으니, 산의 형태를 모두 기록하지 못하지만, 목체(木體; 산이 솟고 산봉우리가 원형모양으로 산)로 입수(入首)하여 학(鶴)모양의 국(局)을 이루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청학(靑鶴)」이라고 일컬으면서 말하기를, 백운산(白雲山: 전남 광양에 있는 산)의 3개의 봉(峰)을 안대(案對: 정면으로 보이는 산)로 삼고, 자좌(子坐: 풍수지리에서 사용하는 24방향중 하나로 정남향)와 임좌(壬坐: 풍수지리에서 사용하는 방향으로 정남향에서 남쪽으로 15도 기운 방향)로 터가 된다.
목성(木姓)은 수성(水星)을 터로 잡고, 수성(水姓)은 금성(金星)을 터로 잡고, 화성(火姓)은 목성(木星)을 터로 잡아, 36개의 성씨가 모두 정한 터가 있으니, 이치를 잃지 않도록 해야 되며, 우리나라의 으뜸가는 터이니, 질병이 침입하지 못하고 흉년(凶年)이 침입하지 못하며 병화(兵禍)가 침입하지 못한다. 어찌 이와 같은 승지(勝地)가 있겠는가!
그러나 후세 사람은 이 산을 제대로 알아보는 자는 거의 없다. 간혹 아는 자가 있어도 부자는 자기 재물에 인색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재물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한다. 비록 감히 들어가고 싶어도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가 들어가지 못하고, 의심이 많은 자도 들어가지 못하며, 지혜가 없는 자가 들어가지 못하고, 복이 없는 자는 알면서도 들어가지 못한다. 만약 선(善)을 쌓고 덕(德)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산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조 창업[李蒼] 이후 천하의 대세는 청구(靑邱;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일대에서 자웅이 다투니, 기서(畿西; 경기 서부), 기동(畿東; 경기 동부), 호남(湖南; 전라도), 호북(湖北; 충청도)지역이 어찌 평안하고 무사할 수 있겠는가?
후세 사람은 이 산을 널리 알리지 말아야 된다. 3일 동안을 풀밭에서 노숙하고 마침내 산에 절하고 나왔다.
이 청학동기(靑鶴洞記)는 누구의 글인지 그리고 혹시 모종의 의도성이 있는 글인지는 모르지만 내용중에「合三爲三一人一止人來兎走之年(합삼위삼일인일지인래토주지년)」는 개벽의 시기를 알려주는 대목인데 독자분의 고명한 해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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