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서원의 자료정리 성과ㆍ현황ㆍ과제
백 지 국
(영남대 국사학과 박사과정)
咸陽 蘫溪書院의 연혁
蘫溪書院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586-1(남계서원길 8-11)에 위치하고 있다. 一蠹 鄭汝昌(1450-1504)ㆍ桐溪 鄭蘊(1569-1641)ㆍ介庵 姜翼(1523-1567)을 배향한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해 1552년(명종 7)애 강익이 주창하고 지방유림과 및 함양군수 등 官의 협조 하에 건립되었다. 1559년(명종 14) 대부분의 건물이 완성되었고, 1561년(명종 16)에 사우의 완성과 함께 봉안하였다.
1566년(명종 21) <灆溪>의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 되어 공인과 책 등 경제적 지원을 받으나 정유재란(1597년)으로 서원의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6년 뒤 1603년(선조 36) 羅村으로 옮겨 지었다가 1612년(광해 4) 옛 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다.
1634년(인조 12) 別祠를 건립하여 강익을 제향하고 1642년(인조 20) 유호인과 정온을 병향하였다. 정온과 강익은 1677년(숙종 3), 1689년(숙종 15)에 本祠로 올려 배향하였다. 1820년(순조 20)에는 정홍서를 별사에 제향하였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조선시대 두 번째로 창건된 유서 깊은 서원으로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려 졌을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하였다.
남계서원서원의 건립과정과 초기 운영은 南冥 曹植의 문도들이 주도하였는데, 이는 南冥學派의 対社會活動의 첫 개가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계서원의 창립을 주도했던 姜翼, 林薰, 吳健, 盧禛, 金宇顒 등은 모두 남명의 핵심 문도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德川書院의 초기 원생으로 입록 된 鄭逑, 河渾, 安熹, 文景虎, 鄭慶雲 등도 남계서원에도 동시에 입록된 인물들이다. 그들은 이 지역 유학자로서 명망이 높았던 정여창과 조식을 선배 혹은 선생으로 받들어 道統淵源을 삼는 동시에 사림세력의 결집하고 향촌사회 내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
이밖에 서원의 건립과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림으로 정여창의 본손인 하동정씨를 비롯하여 풍천노씨, 진주정씨, 나주임씨, 동래정씨, 남원양씨 등이 있다. 남계서원의 원장은 영남우도의 명망유림 중에서 선출되었으나 무신난 이후에는 중앙 노론계 학자와 관직자 중에서 선출되었다.
한편 남계서원 경내의 건물로는 祠宇ㆍ典祀廳ㆍ明誠堂ㆍ養正齋ㆍ輔仁齋ㆍ愛蓮軒ㆍ詠梅軒ㆍ風咏樓ㆍ廟庭碑閣ㆍ庫直舍 등이 있다.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 보호되다가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로 승격되었다.
2. 소장자료의 전래
1) 서원은 도서를 보관하고 간행하는 도서관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남계서원도 건립 초기부터 서적 마련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원장인 강익은 유사를 임명하여 책을 마련하는 임무를 맡기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서를 늘여갔다.
2) 남계서원의 「서원보부록」에는 기증, 院備, 內賜 등의 방법으로 서적을 마련한 방법과 서책의 목록, 권수가 기재되어 있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기 전까지 소장한 서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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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련방법 |
기증자 |
서명과 책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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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
경상감사, 충청감사, 도사, 밀양부사, 함양군수, 담양군수, 장성현감, 나주목사, 都事, 상주목사, 진주목사, ○○현령, 찰방, 正字, 典籍 등 23인(실인원 19인) |
주자어류, 주자대전, 예기, 언행록, 史略, 심경, 좌전, 이락연원록, 맹호연집, 통감, 통감소전, 당감, 성리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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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
유학 정업 등 함양사림 25인 |
춘추, 근사록, 송감, 논어, 주자대전, 격양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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院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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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 가례, 주자실기, 주자서절요, 숙흥야매잠, 추강집, 황명명신언행록, 속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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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賜 |
(사액 받을 때) |
논어, 맹자, 중용, 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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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주자대전, 주자어류, 先儒錄, 精忠錄, 언해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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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千秩) |
<표>에서 보듯 기증은 지방관과 중앙의 관료, 함양의 사림들이었고, 사액을 내릴 때 교육을 격려하는 의미에서 나라에서 내려준 내사본들이 있었고, 나머지는 서원에서 돈을 마련하여 구입한 서책들이었다. 특히 지방관들이 기증한 책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감사나 고을 수령이 순행이나 부임 인사로 서원에 들러 알묘하면서 책을 기부하였고, 서원에 모셔진 선현의 후손이나 외손 등 혈연 관련이 있는 고을 수령들이 책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지방관이 보낸 책은 자기의 책일 경우도 있고, 현직에 있을 때 관권을 이용하여 간행한 책인 경우도 있고, 또한 예전에 고을에서 간행해서 관아에 보관하고 있는 책을 보냈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3) 서적의 종류는 논어, 시경 등 경전류, 근사록, 주자대전, 주자어류 등 성리서류, 사략, 통감, 춘추 등 역사서, 그리고 문집류 등이었다. 서원도서가 경사류, 문집류 중심으로 이루어져 도서의 편파성, 편당성, 학문 경향의 침체성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이는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 양반들의 학문 경향과 사회 지향을 보여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4) 남계서원의 도서들은 정유재란 때 왜군들의 분탕질로 모두 약탈되거나 불타버렸다. 심지어 내사 받은 서적도 분실할 정도였다. 전란 뒤에 도서 확보에 노력을 하여 향교의 서적을 옮겨오기도 하고, 지방관의 기증, 사림들의 희사, 서원에서의 구입 등의 방법으로 도서를 확보해 나갔다. 그리고 종이를 구입하다가 판본이 있는 전라도 고을에 보내 책을 찍어오기도 하였다.
5) 남계서원에서는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서적관리에 유의하여 습기 찬 책들을 햇볕에 내어 쪼이는 曝書를 하기도 하였고, 간혹 도서를 간행하기도 하고 간행한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도 갖추고 있었다.
3. 소장자료 조사 현황 및 발간
1) 남계서원은 경남지역 내 중요한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 서원 중 하나이다. 남계서원에 대한 대표적인 조사는 다음과 같다.
2) 1969년 국회도서관에서는 당시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서원 소장 도서의 목록을 조사하여『李朝書院文庫目錄 : 李朝書院文庫目錄考』를 간행하였다. 성균관대학의 이춘희 교수가 전국을 실지 답사해 가며 조사ㆍ정리한 것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 전국에 남겨둔 47곳의 서원 중 1969년까지 대한민국에 존속하고 있는 서원은 모두 36곳이었다. 이 중 강원도의 褒忠祠와 忠烈書院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실재 현존 서원 수는 34곳 이였다. 지방별로 보면 경상도가 14곳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경기도 11곳, 충청도 5곳, 전라도 3곳, 강원도 3곳 순이다. 34곳의 서원중 실지 답사하여 서책의 유무를 확인한 곳은 17곳, 서신에 의해 확인 한 곳은 서원이 4곳으로 총 21곳의 서원에서 藏書를 보유하고 있었다. n가로
남계서원의 경우 59種 317冊을 보유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목록은 국회전자도서관에서 제공해주는 『李朝書院文庫目錄 : 李朝書院文庫目錄考』의 원문DB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 최근 남계서원 소장 자료에 대해 조사한 것 중 가장 상세한 것은 2005년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수행한 것이다. 당시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는 경상남도 10개시ㆍ군의 일반동산문화재 다량 소장처 44곳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를 조사하여 『경상남도 일반동산문화재 다량 소장처 실태조사보고서 : 마산시ㆍ밀양시ㆍ산청군ㆍ양산시ㆍ진해시ㆍ창녕군ㆍ창원시ㆍ하동군ㆍ함안군ㆍ함양군』1ㆍ2와 『경상남도 일반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 실태조사 보고서 : 책판목록』3 총 3종의 조사 보고서를 간행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계서원에는『寒州先生文集』ㆍ『桐溪先生文集』ㆍ『松灘集』등 여러 학자들의 문집류를 포함한 고서류가 147건, 각종 장부와 통문, 간찰 등의 고문서가 717건, 현판을 포함한 민속ㆍ유물자료가 5건, 『일두선생문집(一蠹先生文集)』ㆍ『개암선생문집(介庵先生文集)』 책판 377건이 소장되어 있다. 희귀한 자료가 많은 것은 아니고 주로 근현대에 만들어진 자료가 많다.
3) 광복이후 남계서원 소장 자료 발간 목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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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명 |
저작자 |
발행자 |
발행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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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濫溪書院尊衛錄 |
濫溪書院 編 |
濫溪書院 |
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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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咸陽灆溪書院尊衛錄 |
灆溪書院 編 |
灆溪書院 |
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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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蘫溪書院誌 |
灆溪書院 編 |
灆溪書院 |
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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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李朝書院文庫目錄 : 李朝書院文庫目錄考 |
李春熙 編 |
國會圖書館 |
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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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古文書集成. 24 : 남계서원篇 |
[韓國精神文化硏究院]國學振興硏究事業推進委員會 編輯 |
韓國精神文化硏究院 |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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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경상남도 일반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 실태조사 보고서1ㆍ2ㆍ3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문화재청 |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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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古文書集成. 77-91, 93-98 |
- |
韓國學中央硏究院 |
2005-2010 |
4. 소장자료 종류
문화재 지정 기록자료
-『일두선생문집(一蠹先生文集)』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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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586-1(남계서원길 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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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번 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 166호 (1979.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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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량 / 면 적 |
368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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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및 관 리 |
남계서원 |
-『개암선생문집(介庵先生文集)』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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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586-1(남계서원길 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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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번 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1979년 12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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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량 / 면 적 |
186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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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및 관 리 |
남계서원 |
이밖에 남계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서ㆍ고문서 자료를 유형 및 성격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서원의 조직ㆍ운영 관계자료
서원의 조직ㆍ운영 관계자료는 남계서원지蘫溪書院誌를 비롯하여 경임안經任案ㆍ원생록院生錄(院錄)ㆍ부보록裒寶錄, 그리고 이들 단회성單回性 기록을 종합한 존위록尊衛錄 등이 있다.
① 『남계서원지(蘫溪書院誌)』;
• 필사본으로 남계서원 건립연혁, 배향인물 등 사적(事蹟)을 기록하고 있다.
• 일제시대 서적간행에 대한 검열이 심할 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치안담당관의「출판허가(出版許可)」의 검인이 찍혀있으며 내용 중간에 검열한 흔적이 엿보인다. 일본의 출판문에 대한 검열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 범례에 의하면 원지는 1875년(乙亥)에 처음 만들어 졌으며, 남계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은 두번째로 편찬된 것이다.
• 내용은 권 1ㆍ2(一ㆍ二)로 나누어져 있다. 권 1에는 지명연혁ㆍ서원사적, 권 2에는 별묘사적(別廟事蹟)ㆍ선생사실절략(先生事實節略)ㆍ뇌계선생사실절략(㵢溪先生史實節略)ㆍ개암선생년보절략(介庵先生年譜節略)ㆍ동계선생년보절략(桐溪先生年譜節略)ㆍ송탄선생사실절략(松灘先生事實節略) 등이 실려 있다.
• 남계서원에서는 이상의 『남계서원지』 외에 2종의 남계서원지를 소장하고 있다.
※ 다른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남계서원지』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藍溪書院誌』(등록번호 : a44013242;y01)
- 남명학고문헌시스템 소장 『藍溪書院誌』(소장번호)
② 經任案類 : 經任案은 院任案 또는 院任錄이라고도 하며 院長ㆍ有司ㆍ典穀有司 등 서원 임원을 지낸 인물들의 명단으로 서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던 인물들이 실려 있다. 경임안은 成冊된 분량만큼 명단을 追記하다가 문서가 마멸, 혹은 훼손이 있을 경우 다시 別冊을 정正書하였다. 1612년(광해 壬子)~1682년(숙종 壬戌) 71년간의 경임안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전란으로 인해 이때의 기록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③ 院錄類 : 院錄은 院生錄ㆍ入院錄ㆍ書院儒生案이라고도 하는데 서원에 入籍한 인물들의 명단이다. 초기의 원록을 보면 정구에 하응도ㆍ박이장ㆍ하혼안도ㆍ문경호ㆍ정경운 등 南冥의 핵심 문도들이 망라되어 있어 남계서원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④ 裒寶錄類 : 裒寶錄의 용도와 그 모금 경위에 대해서는 1565년(명종 20) 강익의 43세때의 연보에 비교적 자세히 밝혀져 있다. 「裒寶」란 서원운영을 위해 서책과 재곡을 모은다는 뜻으로 부보록은 일종의 기부금 장부라 할 수 있다. 부보록에는 「加寶」란에 그 명단 및 기부금 액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부보한 내역을 살펴보면 벼, 콩, 書籍, 奴婢, 魚物, 鹽, 종이 등 다양하였다. 남계서원에 있어서 부보의 관행은 서원의 경제적 측면, 그리고 교육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⑤ 尊衛錄類 : 남계서원의 역대 사적 중 원생안(원록)ㆍ경임안ㆍ부보록 3편을 각각 정리하여 묶은 책이다. 존위록은 「朝野縉紳」및 領南名門 태반이 입록되어 있는 서원의 400년 事蹟 보존을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존위록은 1961년(辛丑) 겨울에 院議로써 간행에 착수하여 1962년(壬寅) 가을에 완성, 배포하였다. 편찬은 각 문중별로 정단을 통해 이를 편집, 간행하였다.
존위록은 모두 4종류가 있는데 먼저 제출한 單子를 편차를 거쳐 편집한 草稿本, 그리고 이것을 다시 정서한 抄本(本書 揭載), 그리고 이것을 활자로 찍은 인쇄본이 있다. 跋文에서도 밝혀 두었듯이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웬만한 인물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회사 연구 중요한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⑥ 參祭錄類 : 參祭錄은 서원의 春秋祭享 때 獻官ㆍ大祝ㆍ執禮ㆍ判陳ㆍ執事ㆍ學生 등 職任을 맡은 사람을 기록한 명단이다.
2) 각종 치부기록류(置簿記錄類
각종 置簿記錄類는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量案에 기재된 남계서원 소유 전답의 내역을 기록한 문서 2건(蘫溪書院田畓量按謄書ㆍ蘫溪書院田畓量案)과 일제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蘫溪書院田畓量案) 1건이 있다.
1910년대 이후 1980년대에 이르는 70여 년 간의 秋收記가 있다. 토지 소재지ㆍ斗落ㆍ소작인ㆍ소작료 등을 차례로 기재하였다. 소작료 액수를 제외한다면 量案의 작성 방식과 유사하다. 토지는 주로 함양 인근에 분포되어 있다. 일제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추수기가 연속해서 남아있기 때문에 농업경영에 관한 사례 연구 자료로 활용가치가 높다.
3) 其他文書로 蘫溪書院完文ㆍ蘫溪書院門樓上樑文ㆍ上樑時執事錄ㆍ風咏樓重修記ㆍ景一齋記ㆍ蘫溪書院春秋享禮儀節ㆍ院規ㆍ小作契約書ㆍ書院建置圖ㆍ蓮桂案ㆍ咸陽鄕案 등이 있다.
4) 이밖에 「한국고전종합DB」(한국고전번역원) 및 『영남문집해제』(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에 수록된 남계서원 관련기사는 다음과 같다.
- 姜翼, 『介庵集』上, 初建蘫溪書院」.「蘫溪書院記」 下 附錄,「蘫溪書院奉安時告文」.
- 盧相稷,『小訥集』, 卷17, 「灆溪書院諸公」.
- 盧禛, 『玉溪集』, 卷2, 「灆溪書院春秋享祭」
- 宋啓欽, 『湖隱集』, 卷1, 「濫溪書院士林」.
- 鄭汝昌,『一蠹集』一蠹先生遺集,卷3, 附錄.「蘫溪書院春秋享祝文」,「蘫溪書院廟庭碑」,
「蘫溪書院請額啓」ㆍ「蘫溪書院記」.
- 趙南琥, 『畏庵漫錄』, 卷1, 「灆溪書院僉座」.
- 李滉,『退溪集』 退溪先生文集攷證 卷3, 第四卷詩 「灆溪書院」.
5. 향후활용과제
1) 학술적 활용 방안 : 서원 소장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등 일록류 혹은 관찬자료들이 보여주지 못한 당대의 새롭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서원소장 자료를 통해 다양한 연구 성과가 발표되고 있는 사정이지만 남계서원의 경우 아직까지 학계의 연구 성과는 적은 편이다. 남계서원에 대한 개략적인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ㆍ노재현, 2009,「치(置)와 화(和)의 개념으로 분석한 남계서원의 경관짜임」『韓國造景學會誌』37. 韓國造景學會.
ㆍ박기용, 2004,「교육 : 전통교육의 현장을 찾아서 ; 도학적 이상세계를 희구한 정여창-남계서원 편」『선비문화』2, 남명학연구원.
ㆍ송준식, 2003,「남명학파의 서원건립운동」『남명학연구』15, 남명학회.
ㆍ윤상기, 2005,「경남 함양군의 서원 판본에 대한 연구」『서지학연구』32, 서지학회.
ㆍ윤희면, 2008,「경상남도 함양의 남계서원 연구 」『남명학연구』26, 남명학회.
ㆍ이정희, 1984,「16ㆍ17세기 함양지역 재지사족의 동향」『이화여대사학』22,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ㆍ정기철, 2000,「남계서원의 건축사적 의미」『동양예술』1, 한국동양예술학회.
역사ㆍ건축 등의 분야에서 접근이 이루어졌지만 함양 지역사회와 조선시대에 향촌사회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계서원 소장 자료를 활용한 다각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남계서원 소장 자료의 발간사업은 다른 서원에 비해 부진한 편이다. 지속적인 조사ㆍ정리작업을 통해 書院誌등 소장 자료에 대한 발간사업이 요구된다.
2) 교육 및 전시 : 조선시대 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사와 향촌사회 교화와 여론의 형성 외에도 지식의 전달을 위해 서적을 출판하고 문고를 두어 서책과 문헌을 보존하여온 도서관적 기능도 담당하였다. 서원의 사고는 우리나라 도서 및 인쇄, 서적의 集散 보존 등 출반문화와 도서관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인에게 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를 비롯하여 출판ㆍ인쇄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의 장으로서 서원사고는 그 활용가치가 높다.
한편, 남계서원의 경우 소장 자료를 보관 할 뿐 따로 전시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서원 소장자료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료이다. 전시장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남계서원 소장 자료를 공개ㆍ전시함으로써 방문객들에 건축물 외에 고문서에 남겨진 조선시대 함양인들의 삶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전시장을 통한 관광효과도 기대된다.
3) 원문 DB작업 : 현재 남계서원 소장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ㆍ국사편찬위원회ㆍ남명학 고문헌시스템ㆍ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등에서 제공되고 있다. 이중 한국고문서자료관에서 제공되는 이미지 목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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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
발행일 |
소장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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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552~1687년 蘫溪書院經任案 |
1552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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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552~1913년 裒寶錄 |
1552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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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552년경~1705년 經任案 |
미상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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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552년경~1705년 經任案 |
미상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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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1555~1559년 乙卯年書院裒寶錄 |
1555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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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651, 1658, 1671년 院錄 |
1651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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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1733~1737년 蘫溪書院田畓量案謄書 |
1733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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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1740년 咸陽郡 蘫溪書院田畓量案 |
1740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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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1777~1795년 經任案 |
1777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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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795~1852년 經任案 |
1795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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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1843년 蘫溪書院完文 |
1843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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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1846~1886년 參祭錄 |
1846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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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1849년 上樑時執事錄 |
1849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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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1849년 河龍圖 蘫溪書院門樓上樑文 |
1849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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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1881년 張時杓 京一齋記 |
1881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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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1886~1917년 經任案 |
1886 |
남계서원 |
|
17 |
1888~1910년 參祭錄 |
1888 |
남계서원 |
|
18 |
1910년(?) 蘫溪書院田畓案 |
1910 |
남계서원 |
|
19 |
1911년 辛亥秋捧記 |
1911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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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1915년 乙卯院畓秋收記 |
1915 |
남계서원 |
|
21 |
1917~1993년 經任案) |
1917 |
남계서원 |
|
22 |
1919년 己未秋捧記 |
1919 |
남계서원 |
|
23 |
1920~1930년 蘫溪書院地稅分排收斂 |
1920 |
남계서원 |
|
24 |
1922년 壬戌年院畓秋收記 |
1922 |
남계서원 |
|
25 |
1923년 院規 |
1923 |
남계서원 |
|
26 |
1923년 鄭在輦 小作契約書 |
1923 |
남계서원 |
|
27 |
1924년 秋收記 |
1924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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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1928년 許吉五 小作契約書 |
1928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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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1930년 蘫院地稅半額收納冊 |
1930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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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1931년 地稅收捧冊 |
1931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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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1933년 金錫九 蓮桂案 |
1933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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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1933년 地稅收捧冊 |
1933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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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1935년 蘫溪書院誌 |
1935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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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1940년 閔丙承 風詠樓重修記 |
1940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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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1941년 辛巳年度蘫溪書院秋收記 |
1941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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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1942년 昭和十七年度秋收記 |
1942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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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1962년 經任案正單 |
1962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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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1962년 院錄 |
1962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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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1962년 鄭淳永 裒寶錄正單 |
1962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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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1969년 咸陽鄕案 |
1969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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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蘫溪書院春秋享禮儀節 |
미상 |
남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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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書院建置圖 |
미상 |
남계서원 |
한편 한국고문서 자료센터에서는 소장처별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함양 남계서원 및 남계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ㆍ유물과 유적 등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제공함으로서 자료에 대한 접근과 이해도를 높여준다.
원문제공 서비스는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소장 자료의 일부분만 제공되고 있을 뿐이다. 원문 이미지 제공 사이트 역시 각각 운영되는 탓에 자료의 중복 및 남계서원의 어떠한 자료가 웹상에서 제공되고 있는지 목록 또한 제공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4) 경남 유교문화의 허브(hub) 남계서원
서원을 비롯한 유교문화산업은 향후 성장 잠재력이 높은 산업이다. 하지만 경남지역의 경우 아직까지 경북에 비하여 유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낮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남계서원을 중심으로 지역 내 혹은 인접한 타 지역에 위치한 여러 기관들을 활발한 상호교류ㆍ협력을 통한 산업적ㆍ문화적ㆍ관광적 경쟁력 확보가 절실하다.
남계서원의 경우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이자 남명학 및 경남 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으로서 이 지역 유교문화 클러스터(cluster) 산업의 허브(hub)로서 그 역할을 담당할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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