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의 자료정리 성과ㆍ현황ㆍ과제
이 병 훈
(영남대 국사학과 강사)
1. 도산서원의 연혁 개략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번지(구: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에 위치하고 있는 陶山書院은, 1870년 대원군의 서원 훼철시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로 영남지역의 首院 역할을 해왔다.
도산서원은 1561년에 退溪 李滉이 강학과 수행을 위하여 건립한 陶山書堂과 隴雲精舍를 기반으로 하여 지어졌다. 사후에 그의 문인이었던 權好文, 琴蘭秀 등이 발의하여 서당이 있던 자리 위쪽에 서원을 건립하기로 하였다. 1574년 서원을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해인 1575년에 사액되어 石峯 韓濩가 쓴 편액을 국왕이 하사하였다. 1615년에는 사림이 논의하여 月川 趙穆을 종향하였다. 도산서원은 조선후기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총본산으로서 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러한 도산서원의 위상은 1792년 퇴계의 학덕와 유업을 추모하기 위하여 陶山別科를 시행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후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1796년에 試士壇이라는 碑閣을 도산서원 앞에 세웠는데, 비문은 영의정 채제공의 글이다. 시사단은 1973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이외에도 1963년에는 도산서원 강당인 典敎堂(보물 제210호)이, 1969년에는 別廟인 尙德祠 와 三門(보물 제211호)이 각기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상덕사를 지정할 당시에는 廟宇를 둘러싼 토담 역시 지정 대상이었지만, 1969년 보수공사 때 돌담장으로 모두 바꾸면서 지정항목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같은 해 5월 28일에 도산서원 전역이 사적지(사적 제170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에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도산서원 경내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조금씩 지대가 높아지고 남북으로 길게 축을 형성하면서 좌우에 건물들을 앉혔다. 정문을 들어가기 전 좌측에는 亦樂齋가 있으며, 정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陶山書堂, 좌측으로 隴雲精舍가 나오고 농운정사 뒤편에 下庫直舍가 있다. 중앙의 계단을 따라 오르면 進道門을 마주하는데, 그 좌우에 누각형태의 藏書庫였던 東·西光明室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진도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동·서재인 博約齋와 弘毅齋가 있고, 정면으로 강당인 典敎堂이 자리하고 있다. 강당 좌측에는 上庫直舍, 우측에는 藏板閣이 위치한다. 전교당의 뒤쪽 좌측 계단을 오르면 典祀廳이 나오고, 우측의 內三門을 들어서면 묘우인 尙德祠가 나온다. 이외에 1970년대에 건립되어 퇴계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 유물전시관 玉振閣이 있다.
(이하 건축 관련은 문화재청(2011),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상덕사 및 삼문:정밀실측조사보고서(상·하)』, 경상북도(1991),『도산서원:실측조사보고서』 및 기타 사항은 도산서원 홈페이지 http://www.dosanseowon.com 참조).
2. 소장 자료의 전래와 현황
1) 도선서원 고전적은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조성되었다. 이는 서적의 수납과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간행해온 각종 서책치부기를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우선, 도산서원이 사액될 때 나라에서 내린 ‘內賜本’이 있다. 이것이 도산서원 전적의 기초가 되었다. 이후로도 1588년, 1590년, 1793년, 1798년 등 수시로 내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치부기에는 『주자대전』,『주자어류』,『성리대전』등의 성리서와 『논어』,『춘추』,『시전』등 사서삼경이 내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둘째, 지방관아에서 도서를 간행하여 보낸 경우로서 대개 퇴계의 제자나 후학들이 수령을 맡고 있는 경우, 관아에서 간행했거나 비축하고 있던 도서를 보냈다. 셋째, 인근의 서원이나 문중에서 간행하여 보낸 경우이다. 넷째는 도산서원 자체의 판단에 의해 간행하거나 구입한 전적들이다. 『퇴계집』,『송재집』,『주자서절요』등 문집과 성리서를 직접 간행하였다. 또한 간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일기류와 통문 등의 관련 자료가 남아있어서 서적 간행에 따른 제반사항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闕里誌』,『春秋佐傳』등 적지 않은 책을 구입했는데, 이는 치부기에 ‘貿得’, ‘買得’으로 표기하고 있다.
2) 도산서원에는 易東書院에서 이전된 전적들이 있다. 역동서원 치부기에는 퇴계가 보낸 『성리대전』,『통감』,『소학집성』,『성학십도』등과 사서삼경 등의 서책이 상당수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인연으로 1868년 서원이 훼철될 당시 자연스레 도산서원으로 장서가 이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역동서원 장서는 퇴계가 생전에 보낸 서적들이 많은 까닭에 임란이전의 오래된 선본이 많으며, 이는 도산서원 장서 가운데 중요한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퇴계가 생전에 도산서당에서 소장하고 있던 手澤本이 서원의 장서에 편입되었을 것으로도 보인다. 퇴계 생전의 서적들이 그러할 것으로 짐작되지만, 명확히 구분이 되지는 않는다. 이외에도 문인이나 그 후손들이 퇴계와 관련된 전적을 서원에 헌정한 경우도 있다. 일례로, 『師門手簡』은 퇴계가 월천 조목에게 보낸 간찰과 시문을 묶어 첩으로 만든 것으로 월천의 후손들이 서원에 헌정한 것이다.
3) 도산서원 소장 전적은 서고인 光明室에 보존되어왔다. 그러나 서원초기부터 존재했던 시설은 아니고 후대에 와서 지은 건물이며, 처음에는 동서재의 협실에 보관해 왔다. 이후 서적이 많아지면서 공간의 부족과 화재의 위험으로 서고를 신축하여, 퇴계가 역동서원 서고에 명명한 ‘광명실’이란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광명실 신축은 알려진 1819년(己卯)과 치부기의 乙未年과 차이가 있으므로 상고할 필요가 있다.
4) 도산서원 소장 자료는 그간 일반인은 물론 전문연구자들 조차도 접근하기 매우 어려웠다. 이는 서원측이 소장도서의 반출과 일반인들의 광명실 출입을 院規로서 금지하는 등 그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왔기 때문이다. 서원측은 총칙에 광명실 개폐규정을 따로 두어 “반드시 三任(院長, 齋有司, 別有司)이 모두 모이거나 堂會시에만 개폐가 가능하고 한 두 사람으로 광명실 출입이 불가능하며,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原任에게 품의하여 처리”토록 했다. 또 인수인계조에 “서책은 별도로 장부를 비치해 두어야하고, 유사가 교체될 때는 먼저 목록을 가지고 확인하고 나서 포쇄를 하거나 당회가 있을 때 하나하나 대조 확인”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철저한 관리와 노력으로 인행 오늘날까지 도산서원 전적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5) 2003년 4월과 6월 양차에 걸쳐 광명실과 장판각에 소장된 고서, 고문서, 목판 전부를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였다. 이는 빈번한 문화재 도난의 위험과 충해와 습해로부터 소장 전적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였다.
6) 도산서원 자료는 1950년대 소장 典籍의 목록이 작성되어 소개되기 이전까지는 광명실 소장 서적 목록(傳掌記)의 기록이 전부이다. 이 전장기 역시 1940년대 이후부터는 작성된 것은 남아있지 않다. 1890년 6월 26일의 기록을 보면, 광명실에 소장된 각종 서책 현황은 성리학 관련 서적, 잡저, 문학관련 서적, 서원 관리상 필요한 제 장부나 문건, 역사 관련 서적, 일반 문집, 병법서, 향교 관련 문건과 서책 등 대략 490여 종, 2,991책이 기록되어 있다. 책판은 1796년 徐有榘가 작성한 『鏤板考』에 도산서원에 17종의 책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조사된 책판은 모두 34종 3,907판으로 18세기 말 이래로 퇴계집을 증보하면서 추가된 것과 19세기말 역동서원의 훼철로 인해 이전되어 것이 합쳐진 결과로 보인다.
7) 1969년 시행된 典籍조사에서는 모두 907종 4,338책이 조사되었는데, 동광명실에 195종 2,136책, 서광명실에 712종 2,202책이었다. 동광명실은 주로 경서류, 사류, 유가류, 문집류 등이며, 퇴계의 수택본을 위시하여 임란이전 판본들이 비교적 많았다. 서광명실은 근래에 발간된 문집류를 주로 보관하고 있었다. 역동서원 장서는 동광명실에 보관하였는데, 퇴계가 직접 수집한 책인 12종 113책으로 임란이전 판본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관리를 철저히 하여 零本이 적고, 타 서원문고나 도서관에서 보기 힘든 책들도 상당수 있었다.
3. 자료조사 현황과 기타 기록자료
1) 도산서원 소장 藏書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1956년 한국어문학회에서 「陶山書院藏書目錄」(『어문학』1집, 1956)을 소개한 이래로, 1969년에는 이춘희 등이 陶山, 玉山, 紹修, 屛山書院을 현지 조사하여 『李朝書院文庫目錄』(국회도서관, 1969)을 간행하였다. 이 책에는 도산서원 동·서 광명실의 藏書목록이 있는데, 특이한 것은 易東書院 藏書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역동서원의 장서를 당시에 도산서원으로 이관하여 보관해왔기 때문이다. 1969년 당시 조사에서는 역동서원 장서는 별도로 표시하여 목록을 작성하되, 총 수량은 구분치 않았다. 이때 조사된 수량은 907종 4,338책으로써, 고문서는 조사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역동서원 소장본 및 서지사항은 李春熙, 『李朝書院文庫目錄』(국회도서관, 1969)의 「陶山書院 藏書目錄」 참조.)
2) 도산서원은 소장 자료(고문서)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1994년 단국대학교 퇴계학연구소에서 도산서원 소장 자료에 대한 조사를 거쳐 院規, 儀禮, 日記, 通文類 등을 정리하여 『陶山書院古文書(Ⅰ)』(1994)으로, 土地賣買文記, 노비매매문기 및 점련문기, 所志, 牌旨, 立案, 完議, 完文, 關文, 牒呈, 書目, 告目, 帖, 標記, 戶籍, 單子, 記錄類, 擇日記, 物目單子, 行祀節義, 答通, 簡札類 등을 정리하여 『陶山書院古文書(Ⅱ)』(1997)로 편간하였다. 여기에 실린 고문서는 모두 원본사진과 正書를 같이 기재하여 연구에 편의를 도모하였다.
3)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朝鮮時代 嶺南書院資料』(1999)에는 단국대 퇴계학연구소에서 간행한 자료집에 누락된 성책고문서들의 목록만을 수록하고 있다. 이는 서원경제 관계 자료 등이 너무 방대한 규모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 자료를 선별 수록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때문이었다. 소개된 것은 院任錄·遊院錄·執事分定記 등 서원의 인적구성과 그 운영과 관련된 자료 및 土地案·奴婢(身貢)案·秋收記·打作記·傳掌記(경리장부) 등 서원경제 관계 자료들이다.
4) 도산서원 소장 자료는 2003년 4월부터 2007년 6월까지 단계적으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였다. 이들 기탁자료는『陶山書院 古典籍』(2006)이라는 목록집으로 간행되었으며, 현재 유교넷(http://www.ugyo.net)으로 원문이미지와 해제를 서비스 하고 있다. 위 책에는 고서류 1,026종 4,605책, 고문서류(성책 : 702점 포함) 2,128점, 목판류 57종 4,014점, 서화류 11점, 기타(관모, 궤, 함, 연갑, 제복, 향상 등) 9종 30점 등 총 10,788점의 도산서원 유물의 목록과 서지사항이 조사되어 있다.
5) 도산서원과 관련한 연구는 도서의 반출이 어려운 관계로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는 소장 자료의 현황이 파악되지 않은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도산서원 장서에 대한 목록화 작업이 우선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서원 소장 자료를 활용한 연구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제 분야에 걸친 본격적인 연구는 1980년대부터 서원 관련 자료집과 보고서가 출간되면서 시작되었다.
▷ 참고문헌
ㆍ한국어문학회,「陶山書院藏書目錄」『어문학』1집, 1956.
ㆍ李春熙, 『李朝書院文庫目錄』, 국회도서관, 1969.
ㆍ문화재관리국, 『도산서원 중수지』, 1970.
ㆍ도부학, 「역락서재 재재론 ; 도산서원의 교육적 기능추구」『퇴계학보』4, 1974.
ㆍ이원회, 『도산서원요람』, 1975.
ㆍ이가원, 「도산서원 의례고」, 『퇴계학보』37, 1983.
ㆍ이수환,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 소수, 옥산, 도산서원을 중심으로」『민족문화논총』2·3집, 1982.
ㆍ서경태, 『도산서원 건축에 관한 연구』,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ㆍ이가원, 「도산서원 십이곡」『퇴계학보』60, 1988.
ㆍ김석하, 「도산서원 전임안 해제」『퇴계학연구』2, 1988.
ㆍ정세환, 『조선후기 안동 도산서원의 경제기반 연구 : 도산서원 고문서의 분석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9.
ㆍ이건식, 「도산서원 소장 소학집설의 난상구결에 대하여」『도솔어문』6, 1990.
ㆍ이수환, 「도산서원 원임직 소통을 둘러싼 적서간의 향전」『민족문화논총』12, 1991.
ㆍ안동군(경상북도),『도산서원:실측조사보고서』, 1991.
ㆍ김연경, 「안동지방의 서원현황」『안동사연구』4, 1991.
ㆍ최순희, 「조선시대 중기이후 전민매매의 실상 : 도산서원 소장 문기(명문)을 중심으로」『중재 장충식박사 화갑기념논총』, 1992.
ㆍ곽동하·장석하,「도산서원 배치에 관한 연구 -도산서원 영건기의 내용을 중심으로-」『경일대학교 논문집』9, 1993.
ㆍ안동문화원, 『안동의 서원』, 1994.
ㆍ단국대학교 퇴계학연구소,『陶山書院古文書(Ⅰ)』, 1994.
ㆍ도산서원, 『선비정신의 참모습』, 도산서원관리사무소, 1996.(연간)
ㆍ단국대학교 퇴계학연구소,『陶山書院古文書(Ⅱ)』, 1997.
ㆍ권영한, 『도산서원과 현판』, 한빛, 1998.
ㆍ윤천근, 『퇴계선생과 도산서원』, 지식산업사, 1999.
ㆍ국사편찬위원회,『朝鮮時代 嶺南書院資料』, 1999.
ㆍ이영기, 「도산서원 헌관 參祭記」, 『法曹』48, 1999.
ㆍ안병걸, 「도산서원」『서원, 한국사상의 숨결을 찾아서』1, 2000.
ㆍ전영일·박용재, 「퇴계 이황의 “敬”사상을 통한 도산서원 건축공간의 고찰」『동국논총』39, 2000.
ㆍ박미정, 『퇴계문집을 통해서 본 자연관과 건축관 :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ㆍ이우성, 『도산서원』, 한길사, 2001.
ㆍ이상해,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에 반영된 퇴계의 서원 건축관」『퇴계학보』110, 2001.
ㆍ김영태, 「건축과 회화 : 도산서원」『건축』45, 2001.
ㆍ이경숙, 『도산서원의 관광자원 자치재고방안에 관한 연구 : 관광객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ㆍ이상현,「월천 조목의 도산서원 종향논의」『북악사론』8, 2001.
ㆍ남풍현, 「도산서원의 고문서에 대하여」, 『퇴계학연구』16, 2002 ; 『한국의 서원과 학맥연구』, 국학자료원, 2002.
ㆍ설석규,「한국국학진흥원 소장 필사본 <월천선생문집>해제」『국학연구』5, 2004.
ㆍ한국국학진흥원,『(도산서원광명실소장) 월천선생문집』, 2004.
ㆍ백세현,『도산서원과 돈암서원의 건축적 특성 연구 : 조선중기 예학의 배경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산업경영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4.
ㆍ한국국학진흥원,『경북지역의 목판자료(1)』, 2005.
ㆍ한국국학진흥원,『도산서원 고전적』, 2006.
ㆍ정진호,『(도산서원)혼천의』, 안동시, 2006.
ㆍ서정문,『조선중기의 문집편간과 문파형성』,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7.
ㆍ안경식,「교육공간을 향한 퇴계의 시선」『교육사상연구』22, 2009.
ㆍ정혜림,『도산잡영과 도산십이곡 비교연구』,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ㆍ문화재청,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상덕사 및 삼문 :정밀실측조사보고서』(상·하), 2011.
ㆍ국립문화재연구소, 『서원향사 -소수서원·도산서원-』, 2011.
6) 각종 문집에서 散見되는 도산서원 관련 글.
① 도산서원과 관련한 글들은 대부분 영남지역을 유람하면서 도산서원을 들러 그 감회를 읊은 시와 도산서원에 致祭한 후 쓴 글로 크게 나눠진다. 이들은 퇴계의 문인과 후학 들이 대부분이며, 정조와 장헌세자와 같이 왕실의 인물들도 있다. (「한국고전종합DB」(한국고전번역원) 및 『영남문집해제』(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 1988) 참고).
ㆍ郭鍾錫, 『俛宇集』권3, 「陶山書院」
ㆍ權相翊, 『省齋集』권4, 「陶山書院士林」.
ㆍ權周郁, 『逋庵集』권2, 「陶山僉座」.
ㆍ權文海, 『草澗集』권2, (七言律詩)「陶山. 次李逢原韻述感懷」; 권5, 「陶山諸子錄」.
ㆍ權斗寅, 『荷塘集』권3, 「陶山士林」.
ㆍ權好文, 『松巖集』권3, 「陶山歸路 得辛上舍五言次之」,「題先生陶山記後」; 속집 권4,「次陶山梅韻」「次憶陶山梅韻二首」; 별집 권2,「望後二日 和裵上舍汝友遊陶山韻」
ㆍ琴蘭秀, 『惺齋集』권1,「陶山祭後登天淵臺有感」; 권3,「陶山書堂營建記事」.
ㆍ琴 輔, 『梅軒集』권1,「陶山書院董役之暇 吟示諸公」; 권2, 「陶山記考證」.
ㆍ奇大升,『高峯續集』권1,「陶山書堂」,「時習齋」,「淨友塘」,「觀瀾軒」,「止宿寮」,「節友社」,「幽貞門」,「谷口巖」,「天淵臺」,「玩樂齋」,「芙蓉峯」; 권2,「退溪先生陶山記文跋」
ㆍ金昌翕, 『三淵集』권8, 「陶山書院」.
ㆍ金道和, 『拓庵集』권3, 「陶山書院廟變後請復」.
ㆍ金澤龍, 『操省堂集』권3, 「陶山書院月川趙公從享時告元位退溪李先生」.
ㆍ金正漢, 『芝谷集』권2, 「陶山齋儒」.
ㆍ金邦杰, 『芝村集』권3, 「退溪精舍山長」,「退溪士林」,「退溪精舍奉安陶窩先生朴公」.
ㆍ金鴻洛, 『某溪集』續集 권2, 「陶山書院答通」.
ㆍ金宗洛, 『三素齋集』권2, 「陶山士林」.
ㆍ朴在馨, 『進溪集』권7, 「陶山至言」.
ㆍ朴勝振, 『聽荷集』권11,「通陶山書院」; 권13,「書從先祖忍庵公家藏陶山柬帖後」.
ㆍ柳台佐, 『鶴棲集』권4, 「陶山會中」.
ㆍ申佐模, 『澹人集』권8, 嶠南紀行 丙子「奉審陶山書院敬述」.
ㆍ宋秉璿, 『淵齋集』권2, 「謁陶山書院」.
ㆍ尹鳳九, 『屛溪集』권2, 「謁陶山書院」.
ㆍ李 瀷, 『星湖全集』권53, 「謁陶山書院記」.
ㆍ李頤淳, 『後溪集』권7, 祝文「陶山書院致祭時告由文」
ㆍ李德弘, 『艮齋集』권1, 「陶山述懷」「陶山懷古」「次金希仲過陶山見盆梅有感」; 권2「訪陶山梅有感」
ㆍ李 滉, 『退溪集』권3,「陶山雜詠幷記」; 권43, 「陶山十二曲」.
ㆍ李象辰, 『下枝集』권4, 「答陶山書院文」.
ㆍ李 選, 『芝湖集』권1, 「陶山書院有吟」
ㆍ李萬敷, 『息山集』別集 권2, 地行錄 4 「陶山書院 3首」
ㆍ李 植, 『澤堂集』권4,「謁陶山退溪先生祠院」.
ㆍ李裕元, 『林下筆記』권17,「畫進陶山精舍」.
ㆍ李翊鎬, 『晩圃集』, 「陶山書院通道內文」.
ㆍ李晩寅, 『龍山集』권6, 「柳文用所編陶山門人錄」.
ㆍ李家淳, 『霞溪集』권6,「陶山齋任」; 권8,「陶山移安告由」; 권9, 「陶山光明堂」.
ㆍ莊獻世子, 『凌虛關漫稿』권1, 「禮安 陶山書院」
ㆍ正 祖, 『弘齋全書』권22, 祭文4「陶山書院 致祭文」.
ㆍ全 雨, 『睡足堂集』권下, 「退溪書院奉安文」.
ㆍ丁若鏞, 『與猶堂全書』제1집 권22, 「陶山私淑錄」.
ㆍ鄭宗魯, 『立齋集』권6, 「敬次陶山雜詠十八首」
ㆍ鄭 逑, 『寒岡集』권5, 「答陶山書院諸生」.
ㆍ鄭來成, 『思軒集』권3, 「陶山士林」.
ㆍ鄭鎭伯, 『石儂集』권3, 「陶山書院改造主」, 「陶山書院」.
ㆍ曺兢燮, 『巖棲集』권15, 「答陶山書院代道東書院」
ㆍ趙星臣, 『恬窩逸稿』권2, 「陶山別曲」
ㆍ趙德麟, 『玉川集』권8, 「從弟久之家武夷陶山圖帖後」
ㆍ趙 穆, 『月川集』권1, 「陶山祭後登天淵臺」,「自淸凉宿陶山 歷訪李大用」; 권6, 「陶山書院尙德祠春秋常用祝文」, 「陶山書院奉安文」; 부록, 「陶山書院從享賜祭文」.
ㆍ趙錫胤, 『樂靜集』권1, 「過陶山書院」; 권5, 「謁陶山書院 丙子」
ㆍ趙秉時, 『枕溪集』권5, 「權君孟範達榮陶山四詩吟詩帖」.
ㆍ蔡彭胤, 『希菴集』권20, 奉使錄(己酉)「…轉謁陶山書院…」
ㆍ許 薰, 『舫山集』권6, 「請復造陶山書院位版疏」; 권18, 祝文「陶山書院復設位版告由文」
ㆍ黃應奎, 『松澗集』권4, 「陶山及門諸賢錄」
② 그리고 이밖에 문서로 다른 기관에 소장된 자료로 ㉠ 장서각 16점(경주 용산서원 4점, 독락당 8점, 주촌진성이씨 3점, 무실종택 1점, 미상 1점) ㉡ 한국국학진흥원 1점(간찰, 제산종택 고문서)이 있다.(이상 역사정보통합시스템 검색) 이외에 영양향교 2점, 설월당 간찰 3점이 있다.(한국학자료센터 영남권역센터 검색)
4. 전승 자료의 내용과 특성
1) 서원소장 고서
도산서원 고서는 경부가 98종 614책, 사부가 161종 1,108책, 자부가 63종 384책, 집부가 704종 2,499책으로 총 1,026종 4,60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산서원은 국가적 관심속에 자주 내사가 이루어졌고, 문도와 후학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도서가 수집되었다. 또한 관리가 철저히 이뤄진 까닭에 임란이전 시기의 선본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 희귀, 귀중본
『國朝五禮儀』, 『國朝五禮序列』(명종·성종연간 刊)
『後漢書』(을해자본, 120권 32책 完帙), 『晉書』(초주갑인자본, 130권 43책 完帙)
『精忠錄』(1585, 재주갑인자본), 『闕里誌』(1512, 13권 13책 完帙)
『性理大全書』(1570, 完帙), 『朱子大全』(1575, 복간본, 100권 76책 完帙)
『朱子語類』(1575, 병자자본(복간))
『退陶先生集』(20책, 필사본, 原稿本 : 李安道, 金誠一 등)
『退溪先生文集』(52권 40책, 零本, 草稿本, 교정자 : 柳雲龍, 金誠一, 柳成龍, 金垓 등)
『退溪先生文集』(27책, 零本, 草本, 1600년 이전)
『退溪先生文集』(51권 32책, 현전 最古 목판본)
『退溪先生文集』(21책 零本, 庚子本(1600))
『退溪先生文集』(27책 零本, 경자복각본)
『退溪先生續集』(초고본, 8권 4책 完, 李守淵 편, 1746)
『陶山及門諸賢錄』(초고본, 필사본)
▷ 고서의 목록은 한국어문학회,「도산서원 장서목록」(『어문학』1, 1956), 李春熙, 『李朝書院文庫目錄』(국회도서관, 1969), 한국국학진흥원, 『도산서원 고전적』(2006)을 참조하기 바람.
2) 서원소장 고문서
도산서원 고문서는 총 2,128점에 이른다. 그 가운데 所志, 明文, 通文, 置簿記, 望記, 祭文, 座目 및 成冊 고문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 고문서는 도산서원의 존립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현실적인 존재양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 도산서원고문서 분류표(한국국학진흥원,『도산서원 고전적』(2006) 참조.)
|
분류 |
점수 |
분류 |
점수 |
|
所ㆍ箚ㆍ狀ㆍ啓類 |
44 |
詩文ㆍ記錄類 |
24 |
|
牒ㆍ關ㆍ通報類 |
39 |
行狀ㆍ祭文類 |
63 |
|
戶籍類 |
2 |
事目ㆍ節目類 |
13 |
|
證憑類 |
3 |
名簿類 |
83 |
|
明文ㆍ文記類 |
50 |
成冊古文書 |
702 |
|
書簡ㆍ通告類 |
774 |
其他 |
3 |
|
置簿記類 |
328 |
계 |
2,128 |
① 所志(43점) : 대개 서원소유 노비들의 소유권문제와 관련하여 잘못된 처분의 시정을 관에 진정하는 내용이 주류이다. 이외에 1855년(철종 6)에 사도세자 추존상소가 있다. 소위 萬人疏로 널리 알려진 이 상소는 李彙柄을 所首로 하고 모두 1,0094명이 참여했으며, 길이는 100M에 가깝다. 이를 통해 서원이 학문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정치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② 明文(38점) : 田畓을 매매하거나 매도한 증명서로서 16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고루 분포하고 있다. 이 전답들은 서원의 유지와 교육 사업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되었다.
③ 簡札(402점) : 『도산급문제현록』간행과 관련해 보낸 것이 많은데, 급문제현의 후손이 급문록 간행을 축하하며, 선조의 사적을 보내니 참고하라는 내용이다. 또 간역에 부조금을 보낸다거나, 선조의 기록 중 누락된 부분에 대한 이의제기 및 보완요청도 있다.
④ 通文(357점) : 개인 내지 타 서원에서 보내온 것이며, 모두 도산서원과 관련된 것이다. 통문을 보면 도산서원은 지역사회에서 공론을 모아야할 사안이 발생하면 그 판단자의 입장에 섰으며, 전체적으로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통문은 도산서원의 입장을 직접 반영하지는 않지만, 당시 도산서원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과 도산서원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 내용은 『도산급문제현록』간행을 둘러싼 문제, 사도세자 추존 및 서원훼철이나 위정척사와 관련한 만인소를 제작할 당시의 상황, 한려시비ㆍ병호시비, 嫡庶간의 是非와 관련한 내용 등이 있다.
⑤ 성책고문서(702점) : 내용적으로 置簿記, 座目, 日記, 通文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장 많은 것은 米穀을 비롯한 제반 물자의 출납, 서원소유 토지장부, 소출과 지세납부 상황, 집사분정, 각종 행사시 좌목, 광명실 소장 서적목록, (刊行)扶助記, 중건 및 수리시 금전출납, 所屬奴婢案, 守護軍案 등이다. 특히, 서적 목록은 당회나 포쇄시, 新舊有司遞任時 작성한 것으로 서원 소장 전적의 내력과 현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 고문서 목록은『도산서원 고전적』(한국국학진흥원, 2006)을, 해제는 유교넷(http://
www.ugyo.net) 의 <도산서원 고문서>를 참조 바람.
3) 서원소장 판목
판목은 책판, 시판, 서판, 현판 등이 있는데, 모두 57종 4,014점이다. 책판, 시판, 서판은 2003년에, 현판은 2007년 6월에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되었다. 책판은 28종 3,928점으로 가장 많은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584년에 제작된 松齋 李堣의 『松齋先生文集』55점이다. 『陶山及門諸賢錄』책판은 102점으로 1914년에 제작되었지만, 筆寫校訂本, 刊役時日記와 간행과정을 기록한 각종 고문서까지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시판은 8종 43점이며, 서판은 9종 30점, 현판은 12종 13점이 있다.
|
번호 |
분류 |
명칭 |
수량 |
|
1 |
책판 |
계몽전의(啓蒙傳疑) |
42 |
|
2 |
책판 |
계산세고(溪山世稿) |
56 |
|
3 |
책판 |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 |
26 |
|
4 |
책판 |
교남빈흥록(嶠南貧興錄) |
24 |
|
5 |
책판 |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 |
102 |
|
6 |
책판 |
몽재유고(蒙齋遺稿) |
49 |
|
7 |
책판 |
문순공퇴도이선생묘갈명(文純公退陶李先生墓碣銘) |
2 |
|
8 |
책판 |
송재선생별집(松齋先生別集) |
40 |
|
9 |
책판 |
송재선생속집(松齋先生續集) |
21 |
|
10 |
책판 |
송재시집(松齋詩集) |
55 |
|
11 |
책판 |
오가산지(吾家山誌) |
37 |
|
12 |
책판 |
온계선생문집(溫溪先生文集) |
119 |
|
13 |
책판 |
운암일고(雲巖逸稿) |
6 |
|
14 |
책판 |
월천선생문집(月川先生文集) |
109 |
|
15 |
책판 |
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 |
300 |
|
16 |
책판 |
자성록(自省錄) |
42 |
|
17 |
책판 |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
462 |
|
18 |
책판 |
진성이씨족보(眞成李氏族譜) |
10 |
|
19 |
책판 |
치재유고(恥齋遺稿) |
70 |
|
20 |
책판 |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 庚子本) |
753 |
|
21 |
책판 |
퇴계선생문집속집(退溪先生文集續集) |
150 |
|
22 |
책판 |
퇴계선생문집신판(退溪先生文集 甲辰重刊本) |
1,143 |
|
23 |
책판 |
퇴계선생언행록구판(退溪先生言行錄舊版) |
102 |
|
24 |
책판 |
퇴계선생언행록신판(退溪先生言行錄新版) |
100 |
|
25 |
책판 |
퇴계연보(退溪年譜(新)) |
65 |
|
26 |
책판 |
퇴계연보(退溪年譜(舊)) |
40 |
|
27 |
책판 |
무서변파록(誣書辨破錄) |
1 |
|
28 |
책판 |
후계집(後溪集) |
2 |
|
29 |
시판 |
퇴계시(退溪詩) |
5 |
|
30 |
시판 |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
3 |
|
31 |
시판 |
회재시(晦齋詩) |
5 |
|
32 |
시판 |
도산잡영(陶山雜詠) |
8 |
|
33 |
시판 |
매화시(梅花詩) |
13 |
|
34 |
시판 |
성재팔영(惺齋八詠) |
4 |
|
35 |
시판 |
사시음(四時吟) |
4 |
|
36 |
시판 |
이정두 근제(李廷斗 謹題) |
1 |
|
37 |
서판 |
적선(積善) |
1 |
|
38 |
서판 |
병명(屛銘) |
9 |
|
39 |
서판 |
사물잠(四物箴) |
4 |
|
40 |
서판 |
篆書體 |
1 |
|
41 |
서판 |
무자기 신기독(無自欺 愼其獨) |
1 |
|
42 |
서판 |
송주희서(宋朱熹書) |
1 |
|
43 |
서판 |
사무사 무불경(思無邪 毋不敬) |
1 |
|
44 |
서판 |
징분질욕(懲忿窒慾) |
1 |
|
45 |
서판 |
대보잠(大寶箴) |
11 |
|
46 |
현판 |
청계서원(淸溪書院) |
1 |
|
47 |
현판 |
청량정사(淸凉精舍) |
1 |
|
48 |
현판 |
계현사(啓賢祠) |
1 |
|
49 |
현판 |
향현사(鄕賢祠) |
1 |
|
50 |
현판 |
역락서재(亦樂書齋) |
1 |
|
51 |
현판 |
암서헌(巖棲軒) |
1 |
|
52 |
현판 |
관란헌(觀瀾軒) |
1 |
|
53 |
현판 |
광명실(光明室) |
2 |
|
54 |
현판 |
도산서원(陶山書院) |
1 |
|
55 |
현판 |
농운정사(隴雲精舍) |
1 |
|
56 |
현판 |
시습재(時習齋) |
1 |
|
57 |
현판 |
완락재(玩樂齋) |
1 |
|
소계 |
57종 |
4,014 | |
※ 출전 : 『도산서원 고전적』(한국국학진흥원, 2006)
4) 서원소장 자료의 가치
첫째, 도산서원은 4,600여 책에 이르는 방대한 古書와 4,000점이 넘는 목판, 약 2,100여 점의 고문서를 보존, 전승해 왔다. 이들 자료는 임고서원 소장전적(보물 1109호)과 필암서원 문서일괄(보물 587호)에 비하여 시대적으로나 내용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또한 서원운영과 관련하여 당시에 바로 작성된 고문서류가 거의 대부분 소장되어있다는 점에서 이들 자료는 조선후기 서원 운영내지 향촌사회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둘째, 도산서원 고서는 퇴계의 수택본과 역동서원 소장본 및 도산서당 소장본 등 임란이전 시기에 지어진 서적이 상당부분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서원 자체로 발간한 서적도 많았는데, 특히, 『퇴계집』, 『도산제현급문록』의 간행과 관련한 각종 필사본과 간행본이 남아있어서 조선시대 私撰 서적간행의 과정과 내용을 거의 정확히 알려준다. 또한 국내에 현존하는 『퇴계집』중 가장 이른 시기에 간행된 목판본이 남아있어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셋째, 고문서는 조선시대 서원 내지 향촌사회의 구체적인 실상을 보여주는 일차적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현전하는 고문서류는 시기적으로 18세기 이후에 작성된 것이 대부분이며 특히 서원의 재정과 관련된 것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즉, 명문과 소지는 토지매매와 노비 신공과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루며, 기타 성책고문서는 각종 제향 및 도회시에 소용되는 물목을 기록한 것이다.
넷째, 서원의 인적교류 및 운영과 관련된 고문서류이다. 특히, 심원록은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대부분이 남아있으며, 이외에도 집사 분정기와 건물 중수 및 수리시 일기, 치제시 일기 등이 남아있어서 당시의 준비사항과 진행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다섯째, 도산서원은 16세기 말 이래로 경상좌도의 서원과 사림들의 동향 및 그들을 이끌어 가는 이념을 형성하였다. 다시 말해 그들의 중심에 서서 시비를 조정하고, 향론을 모아 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로부터 접수된 다양한 형태의 자료(통문, 간찰 등)를 소장하고 있으며, 이는 조선후기 영남 내 사회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것이다.
5. 향후 활용의 과제
1) 현전 소장 자료의 문화재 지정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전하는 고문서 자료들을 일괄하여 문화재로 지정하는 일이다. 도산서원 소장 古典籍類의 경우 일부 고서와 고문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8세기 이후에 작성된 것이다. 하지만, 도산서원의 역사적 위상, 소장 자료의 방대함과 다양성 및 각 자료 내용의 연계성과 연속성 등은 고려할 때 이미 보물로 지정된 임고서원, 필암서원의 자료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문화재 지정은 관리의 체계화와 안정된 재정지원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조처이다. 다행히 도산서원 자료는 전문기관에 일괄 위탁되어 체계적 보존관리와 연구가 진행 중에 있지만 비단 연구자(기관)와 서원 관계자뿐만 아니라 정부(지자체)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 내려면 자료의 문화재 지정은 미뤄 둘 수 없는 과제이다.
2) 연구사업의 추진과 정례화
도산서원은 그 지역적, 역사적 위상에 비해 전문적 연구가 미진하였는데, 이는 자료의 접근이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퇴계학’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연구 성과가 나왔지만, 정작 도산서원과 관련된 연구는 매우 소략한 형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2003년 도산서원 자료가 한국국학진흥원에 일괄 기탁된 이후 최근에는 유교넷을 통해 서지사항, 간략해제, 원문텍스트, 원문이미지 등이 웹서비스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구자들의 연구의욕을 높여줄 것이고, 제 분야에서 많은 연구들이 후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좀 더 적극적인 노력으로는 이 기회에 분산 소장된, 그리고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도산서원 관련 자료들을 정밀 재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한국서원에서 도산서원이 가진 역사, 문화적 특성을 반영시킨 주제별 연구를 매년 진행(학술세미나, 연구논문(총) 발간)할 필요성이다. 서원정신과 역사의 올바른 이해와 계승이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큰 과제라고 볼 때 이 사업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2011년부터 <한국 유교문화 심층연구>의 일환으로 도산서원 자료를 활용한 학제간 정기세미나를 진행 중이다. 그 결과물이 2012년 내에 발간될 예정이며, 추후 이러한 연구는 각 문중 및 서원 자료를 대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러한 연구가 가능한 것은 지자체 및 연구기관의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가 활성화된다면, 도산서원의 홍보, 교육자료로 적극 활용되어 그 문화사적 요소들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기대된다.
3) 기록 자료의 교육, 홍보자료 활용
기록 자료를 활용한 교육, 홍보를 위해서는 그 분야에 맞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이들 자료를 조사, 정리하여 자료집으로 발간하는 것이다. 자료집(서원지) 발간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서원지들은 내용이 소략하거나, 서원 내지 연구자의 판단에 의해 자료가 취사ㆍ수록되었다. 이것은 예산의 한계로 자료집(서원지)의 지면이 제한되어 많은 자료를 수록하기 어려웠던 것도 한 요인이 된다. 앞으로 서원지 발간을 위한 조사는 유ㆍ무형의 자료가 포함되어야 하며, 그 목차와 내용 범위는 연구자, 개발자, 관계자(서원, 관공서) 들이 참여하여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온라인에서는 모든 수집 자료를 검색, 열람이 가능토록 하여 이들 자료를 활용한 연구와 일반인의 이용이 쉽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서원과 관련된 주변의 유물, 유적, 인물 등을 소개하고 나아가 여러 답사 코스 소개(개발)와 제향인 내지 서원과 관련된 각종 스토리텔링을 개발하여 관련 자료들을 함께 소개해야 한다. 이는 일반인, 교사, 연구자들의 자료 활용도를 높이고, 서원에 대한 관심 증대와 관광 수효가 확대되는데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도산서원은 서원의 관광자원활용과 선비정신의 전승이라는 측면에서 타 지역의 서원들과는 달리 이미 가시적 성과를 이루고 있다.
첫째, 2001년 도산서원 부설 선비문화수련원 개설하여 선비정신의 전승을 위해 유교제례와 유학교육을 지속하고 있으며 둘째. 홈페이지(http://www.dosanseowon.com)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도산서원을 알 수 있도록 홍보하고, 현장에는 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하면서 언제든지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게 되어있다. 셋째,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다양한 코스도 이미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일부 코스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넷째, 기업, 학교, 관공서, 관광업체 등과 연계하여 지속적인 교육ㆍ홍보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수정ㆍ보완해야 할 점은 이들 기록자료를 제대로 활용한 도산서원의 교양 해설자료, 교육ㆍ홍보자료의 편찬을 강조하고자 한다. 현재까지의 관광 안내 자료를 보면 매우 소략하고, 건물과 제향인물 중심으로 획일화되어 있다. 역사와 정신이 포함되고 경관이나 건축, 제향인물의 행적이 수요층에 따라 알기 쉽고 다양하게 정리되어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주제와 특성, 도산서원만의 모습들이 축약적으로 편집 온축하려면 연구, 편집, 교육자들이 힘을 합쳐 수요자에 맞는 3-4종의 서로 다른 홍보ㆍ교육 자료들을 개발하여 간행하여야 한다. 도산서원만의 특징을 살린 홍보 자료집 발간과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코스의 개발 및 숙박시설의 개선이 이뤄진다면 도산서원은 단순 유교건축물이나 특정 인물 중심의 유산이 아닌 한국의 대표적인 정신문화유산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이야기(향교,서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병산서원의 공간배치와 디자인 관련 논문 (0) | 2012.12.25 |
|---|---|
| [스크랩] 병산서원 사진자료 (0) | 2012.12.25 |
| [스크랩] 도산서원 사진자료1 (0) | 2012.12.25 |
| [스크랩] 도산서원 광명실 및 상계 광명실 소장 자료 촬영 결과 해제 (0) | 2012.12.25 |
| [스크랩] 도산서원 의례고(이가원 박사) (0) | 2012.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