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선생문집(勉菴先生文集) 제24권
발(跋)
《목은사실편(牧隱事實編)》 발
목은(牧隱 이색(李穡)) 이 선생이 고려 말기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과 정주학(程朱學)을 제창하여 유학의 풍도를 진작하고 풍속을 변화시켰으며 강상(綱常)을 부식하고 예의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이씨 왕조의 문운(文運)을 열어 놓았으니 아, 하늘이 선생을 동방에 태어나도록 한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다만 왕조가 바뀌는 시기를 만났기 때문에, 곧은 충정과 큰 절개가 당시에 숨김을 당하여, 유고(遺稿)를 불사르고 지석(誌石)을 부수는 일과 사실을 개조하고 허위를 날조한 사서(史書)들이 서로 선생을 은폐시키고 비방하였다. 그러므로 비명(碑銘)이나 행장을 기술하는 데도 역시 올바르게 기록하지 않고 애매하고 잘못된 것이 구름에 덮이고 안개가 낀 정도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한번 우암(尤菴)이 지은 신도비 음기(神道碑陰記)가 나오고부터 선생의 선생이 된 전모가 청천백일(靑天白日)처럼 환하게 드러났다.
그리하여 앞서 선생을 헐뜯고 비방하며 큰 절개를 은폐시켰던 모든 말이 쓰여지지 못하였다. 오직 지호(芝湖) 이공 선(李公選)만이 선생에게 계속 반대 의사를 표시하여 우암이 비록 설복시키지 못하였지만, 신도비 음기를 오히려 회수하지 않았으니 우암의 의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원운곡(元耘谷 원천석(元天錫))의 기록한 것은 선배들이 모두 동사(董史)에 비유하였는데, 우암의 음기(陰記)는 그와 더불어 대의가 부합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니, 후일에 선생을 논의하는 자는 우암의 말을 버리고 비방하는 자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될 것이 명확하다.
선생의 후손 이환재(李?在)는 학문이 독실하여 의리에 밝은 사람인데, 항상 이 점을 개탄하여 여러 서적을 널리 찾아 사실을 얻게 되었다. 그런 후에 찬정 이용식(李容植)과 함께 발의하여 신도비명을 우암의 의도와 같게 다시 새겨 세우고 또 제가(諸家)의 올바른 논술을 모아서 《사실편(事實編)》 1책을 만들었다. 그것을 장차 인쇄해서 널리 배포하여 영구히 전하려 하면서 나에게 말 한마디를 청하였다.
현인 군자의 은미한 말씀과 떳떳한 행실이 사실과 다르게 전하는 것도 관계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제일의 관두(關頭)인 큰 절개에 있어서겠는가. 마치 옥(玉)이 진흙에 더럽혀진 것처럼 끝내 세상에 명백히 드러내지 못하여 알지 못하는 자들의 구실이 된다면, 그 세도(世道)에 끼치는 해가 과연 어떠하겠는가? 이는 참으로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에 감히 병으로 사양하지 못하고 간략하나마 삼가 관견(管見)을 이같이 쓰는 것이다.
[주D-001]동사(董史) : 동호(董狐)의 직필(直筆)을 말한다. 동호는 춘추 시대 진(晉)의 사관(史官)으로 진 영공(晉靈公)이 조돈(趙盾)을 죽이려 하자 도망갔는데, 그후 조천(趙穿)이 영공을 시해하자 조돈이 돌아왔으면서도 조천을 토벌하지 않았으므로, 동호는 사기에 “조돈이 그 임금을 시해했다.”고 썼다. 《春秋左傳 宣公2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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