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집 제1권
부(賦)
양촌부(陽村賦)
【안】 권근은 고려 말 옥사에 연좌되어 충주로 유배당했다. 양촌(陽村)에 살았기 때문에 인하여 호(號)를 삼았다. 이색(李穡)의 《양촌기(陽村記)》도 역시 이 부(賦)의 뜻[義]을 취하였다.
아 깊고 멀다 이 양이여 / 於穆惟陽
나라가 열리자면 꼭 먼저 내네 / 有開必先
높은 것은 하늘 아닌가 / 莫高匪天
상위(象緯) 가 여기 달리네 / 象緯是懸
깊은 것은 땅이 아닌가 / 莫深匪地
중연(重淵) 에 잠겼다오 / 潛于重淵
만물이 하고 하지만 / 萬物林林
어디엔들 아니 그러리요 / 無適不然
때는 마침 봄ㆍ여름이라 / 時焉春夏
마음이 일고 꽃이 피네 / 生意發榮
오직 군자인 사람은 / 人惟君子
잡는 마음 강명하도다 / 秉心剛明
미묘한 한 생각에서 / 一念之微
측은히 싹이 텄다 / 惻然其萌
넓고 넓은 온 누리 / 四海之廣
평화로운 백성일레 / 熙熙者氓
잘게는 호망에 들고 / 細入毫芒
크게는 유형을 감싸서 / 包乎有形
섞어놓아도 벌어짐이 없다고 / 混兮無間
열어놓아도 다함이 없네 / 闢兮無窮
앞이라 해도 처음이 없고 / 前無其始
뒤라고 해도 마침이 없네 / 後無其終
누가 이를 주장했는가 / 孰主張是
도의 종지가 됨이로세 / 道爲之宗
뉘 그 묘리를 얻었는가 / 孰得其妙
양촌 권공이로세 / 陽村權公
널리 만수를 관찰하고 / 博觀萬殊
요약하여 일중에 이르렀네 / 約至一中
조심조심 이를 지키어 / 謹而守之
내 몸을 재계하네 / 齋戒吾身
멀지 않아 회복되어 / 不遠而復
그 끝이 면면히 잇네 / 其端綿綿
넓혀서 채워 감이 / 擴而充之
샘이 흐르듯 불이 타듯 / 泉達火燃
천하일도 하루에 하나 / 一日天下
남을 말미암지 않네 / 而不由人
체 받자면 어찌하나 / 體之如何
건건(乾乾) 만이 있을 따름 / 惟乾乾兮
[주D-001]열리자면 꼭 먼저 내네 : 《예기(禮記)》 공자한거(孔子閒居)에 “하고자 하는 바의 일이 장차 이르려면 반드시 먼저 징조가 있다[嗜欲將至有開必先].”이라 하였는데 그 주에 ‘유개필선’이란 말은 “성인(聖人)이 왕천하(王天下)를 하고자 할 적에는 신(神)이 길을 열어 반드시 먼저 그를 위하여 어질고 지혜 있는 보좌를 미리 낳게 한다.” 하였다.
[주D-002]상위(象緯) : 일월(日月)과 오성(五星). 오성은 금성(金星)ㆍ목성(木星)ㆍ수성(水星)ㆍ화성(火星)ㆍ토성(土星).
[주D-003]중연(重淵) : 아주 깊은 곳을 이름. 심연(深淵)과 같은 말. 땅 밑에 구연(九淵)이 있다 해서 중연이라 칭한다.
[주D-004]천하 …… 말미암지 않네 :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하루에 극기복례(克己復禮) 하면 천하가 인(仁)에 돌아온다. 인을 함은 자기를 말미암지 남을 말미암을 것인가?[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爲人由己而由人乎哉]” 하였다.
[주D-005]건건(乾乾) : 두려워하고 수성(修省)하는 뜻임.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군자는 종일 건건한다[君子終日乾乾].”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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