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미신?‘문명의 결정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인간의 삶이 이미 프로그램된 것이라면 사주(四柱)와 팔자(八字)는 그 프로그램의 오의를 읽는 키워드다. 인생은 한낱 나비의 꿈과 같다는 장자의 ‘호접몽’도 존재의 본령은 어디 먼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인 셈. 하지만 삶이 그저 고정된 프로그램이라면 존재는 너무 참담하지 않은가.
미래를 엿보고 싶은 욕구는 성욕만큼이나 강하다. 인터넷에서 가장 문전성시를 이루는 사이트도 바로 포르노와 사주 관련 사이트. 조금만이라도 미래를 엿볼 수 있다면 이득은 엄청나다.
하지만 정통 불교를 연구한 조용헌 교수(원광대)의 ‘사주명리학 이야기’는 그런 얄팍한 계산을 충족시켜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아리의 ‘잡술’로 천대받는 사주명리학을 학문의 지위로 복권시키려 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주명리학은 한자문화권의 천재들이 만들어낸 동아시아문명의 결정체. 동양사상의 근본인 천지인(天地人) 삼재는 바로 출발점이다. 천문은 시간이고 지리는 공간. 그리고 그 속의 인간은 존재다. 시간은 공간의 속도이며 공간은 존재를 품는 그릇, 곧 시간은 존재의 변화 속도다. 따라서 존재가 태어난 순간을 기록한 사주 여덟자는 인생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방향타. 명리학자는 이 인생 바코드 여덟글자를 해석한다. 따라서 사주는 뿌리없는 저잣거리의 놀잇감이 아니다.
이 책에는 한국 명리학계와 풍수학계의 계보가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조선시대만 해도 서거정 서경덕 이지함 남사고 등 당대의 도학자들 대부분이 한다하는 유학자였다. 경국대전에는 과거로 명리학자를 뽑았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또한 사주는 체제전복을 꿈꾸는 혁명가들의 신념체계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정감록’은 대중을 선동하고 동원하는 근거가 됐다.
이 책은 딱딱한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천재적 명리학자들의 일화들은 신비감을 잔뜩 증폭시킨다. ‘유신’(維新)을 하면 ‘유신’(幽神·저승의 귀신)이 된다는 경고를 무시한 박정희 전대통령, 자신을 애꾸로 만들면서까지 관상을 공부한 백운학은 13세 소년 고종의 즉위를 알아맞힌 전설적인 대가였다. ‘사주첩경’을 남긴 이석영과 김재규의 운명을 예견한 박재완, 천기까지 꿰뚫은 박재현 등 근대 한국 명리학계 ‘빅3’ 등이 상세하게 소개된다.
저자는 사주의 오묘한 이치를 ‘상응’과 ‘반복’의 원리로 설명한다. 베이징 하늘 나비의 날갯짓이 캘리포니아에서는 폭풍우로 변할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처럼 세상의 모든 질서는 연결돼있다는 것이 ‘상응’의 원리. 또 밤과 낮이나 사계절처럼 모든 자연과 우주의 질서는 ‘반복’이기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주역’의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지도록 탐독한 공자는 “사람의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의 일을 알겠나”라고 지나친 운명론을 경계했다. 존재는 늘 희망과 불안 사이에서 서성거린다. 어쩌면 그것이 모든 존재에게 프로그램된 공통분모인지도 모른다. 선택은 결국 당신의 몫이다.
/김광호기자 lubof@kyunghyang.com/
2002.11.29 (금) 16:47 경향신문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인간의 삶이 이미 프로그램된 것이라면 사주(四柱)와 팔자(八字)는 그 프로그램의 오의를 읽는 키워드다. 인생은 한낱 나비의 꿈과 같다는 장자의 ‘호접몽’도 존재의 본령은 어디 먼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인 셈. 하지만 삶이 그저 고정된 프로그램이라면 존재는 너무 참담하지 않은가.
미래를 엿보고 싶은 욕구는 성욕만큼이나 강하다. 인터넷에서 가장 문전성시를 이루는 사이트도 바로 포르노와 사주 관련 사이트. 조금만이라도 미래를 엿볼 수 있다면 이득은 엄청나다.
하지만 정통 불교를 연구한 조용헌 교수(원광대)의 ‘사주명리학 이야기’는 그런 얄팍한 계산을 충족시켜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아리의 ‘잡술’로 천대받는 사주명리학을 학문의 지위로 복권시키려 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주명리학은 한자문화권의 천재들이 만들어낸 동아시아문명의 결정체. 동양사상의 근본인 천지인(天地人) 삼재는 바로 출발점이다. 천문은 시간이고 지리는 공간. 그리고 그 속의 인간은 존재다. 시간은 공간의 속도이며 공간은 존재를 품는 그릇, 곧 시간은 존재의 변화 속도다. 따라서 존재가 태어난 순간을 기록한 사주 여덟자는 인생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방향타. 명리학자는 이 인생 바코드 여덟글자를 해석한다. 따라서 사주는 뿌리없는 저잣거리의 놀잇감이 아니다.
이 책에는 한국 명리학계와 풍수학계의 계보가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조선시대만 해도 서거정 서경덕 이지함 남사고 등 당대의 도학자들 대부분이 한다하는 유학자였다. 경국대전에는 과거로 명리학자를 뽑았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또한 사주는 체제전복을 꿈꾸는 혁명가들의 신념체계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정감록’은 대중을 선동하고 동원하는 근거가 됐다.
이 책은 딱딱한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천재적 명리학자들의 일화들은 신비감을 잔뜩 증폭시킨다. ‘유신’(維新)을 하면 ‘유신’(幽神·저승의 귀신)이 된다는 경고를 무시한 박정희 전대통령, 자신을 애꾸로 만들면서까지 관상을 공부한 백운학은 13세 소년 고종의 즉위를 알아맞힌 전설적인 대가였다. ‘사주첩경’을 남긴 이석영과 김재규의 운명을 예견한 박재완, 천기까지 꿰뚫은 박재현 등 근대 한국 명리학계 ‘빅3’ 등이 상세하게 소개된다.
저자는 사주의 오묘한 이치를 ‘상응’과 ‘반복’의 원리로 설명한다. 베이징 하늘 나비의 날갯짓이 캘리포니아에서는 폭풍우로 변할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처럼 세상의 모든 질서는 연결돼있다는 것이 ‘상응’의 원리. 또 밤과 낮이나 사계절처럼 모든 자연과 우주의 질서는 ‘반복’이기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주역’의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지도록 탐독한 공자는 “사람의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의 일을 알겠나”라고 지나친 운명론을 경계했다. 존재는 늘 희망과 불안 사이에서 서성거린다. 어쩌면 그것이 모든 존재에게 프로그램된 공통분모인지도 모른다. 선택은 결국 당신의 몫이다.
/김광호기자 lubof@kyunghyang.com/
2002.11.29 (금) 16:47 경향신문
출처 : 역학살롱(實戰命理의 場)
글쓴이 : 우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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