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기도)

[스크랩] 이천우선생 묘

장안봉(微山) 2013. 5. 2. 09:06

이천우선생 묘 및 신도비(고양 향토유적 7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이천우선생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이천우(李天祐, 1354∼1417)의 시호는 양도(襄度), 본관은 전주,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서형 이원계(李元桂)의 둘째 아들로, 이양우(李良祐)의 아우이고, 이조(李朝)와 이백온(李伯溫)의 형이다.

▲ 묘역 입구에 주차장이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우측에 사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고, 풍채가 아름다웠으며, 그릇이 컸다. 공민왕 18년(1369) 동녕부의 수령으로 있다가 이성계의 휘하에 들어가 여러번 왜구를 토벌하여 공을 세우고, 태조 2년(1393) 8월에 강천수(姜天守) 등 595인과 더불어 개국원종공신에 봉해졌다.

▲ 묘역 입구 좌우에 묘역 성역화 사업에 대한 공적비와 공로비

1979년에 건립된 신도비와 비각

▲ 비각을 지나서 묘역으로 오릅니다.

1394년에 상의중추원사가 되고, 1396년에 강원도조전절제사가 되어 왜구방비에 노력하였다. 1398년에 동지중추원사가 되었으며, 이해 정도전난(鄭道傳亂)이 일어나자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형 이양우와 더불어 정사공신 2등에 책봉되고 150결의 공신전을 받았으며, 완산후(完山侯)에 봉해졌다.

▲ 완산부원군 양도공 이천우선생 묘역 전경

정종 2년(1400)에 판중추원사를 거쳐 지삼군부사로 있으면서 소위 방간(芳幹)의 난이 일어나자 역시 방원을 도와 좌명공신 2등이 되고 100결의 공신전을 받았다. 태종 2년(1402)에 안주도절제사를 지내고, 다음해 완산군(完山君)에 개봉되었다.

▲ 이천우선생 묘역으로 오르며 바라 본 모습

1404년에 판사평부사를 지내고, 1407년에 정조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의정부찬성사에 오르고, 1409년에 병조판서로서 삼군진무소가 신설되자 도진무도총제를 겸하였다.

▲ 문화재로 지정된 이응도 목판(二鷹圖 木板)에 조각된 송골매를 묘역 좌우에 석재로 복제하여 놓았습니다.

▲ 조각된 송골매 뒷편에는 이응도(二鷹圖)에 대한 글이 쓰여있습니다.

1410년 판의흥부사에 이어 다시 찬성사가 되고, 판의용순금사사를 겸임하였으며, 1413년 이조판서를 거쳐 서북면도체찰사로 나갔다. 1414년에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으로 진봉되고, 의금부도제조를 지낸 뒤 다시 찬성사에 보직되었다.

▲ 대부분 호석이 직사각형인데 비해서 이천우선생 봉분 전면 호석은 약간 원형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사후에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전라도 영광의 무장영당(畝長影堂)에 제향되었다. 묘는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상감천 황룡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호석을 두룬 사각의 묘에는 정경부인 여흥민씨와 합장되었고 봉분은 20평 정도이며 길이 50m의 곡장을 내·외로 조성했다.

이천우 선생과 정경부인 여흥민씨 합장 묘역 전경

▲ 묘역내 문인석 모습

▲ 봉분 전측면과 후측면 모습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과 1979년에 세운 묘비, 그리고 좌우에는 문인석을 배치했고 4단의 계단석을 놓았다. 묘비는 높이 1.8m, 둘레 1m의 규모이다. 신도비는 1979년에 건립한 것으로 귀부와 이수를 갖추었으며 오석 비신의 규모는 높이 172cm, 폭 63cm, 두께 29cm이다.

이천우 영정 및 이응도 목판(전남 문화재자료 146호)   

▲ 이천우 영정 및 이응도 목판(李天禑 影幀 및 二鷹圖 木板) - 문화재청 사진

조선 전기의 무신인 이천우(1354∼1417) 선생의 초상화 1폭과 매가 조각된 목판 1점이다. 이천우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형인 이원계의 아들로, 1차 왕자의 난(1398)과 2차 왕자의 난(1400)을 평정하여 공신이 되었고, 그후 병조판서 등을 지내었다.

초상화는 머리에 사모를 쓰고 관복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안으로 마주잡은 채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약간 왼쪽을 바라보고, 관복에 좌우 옆트임을 두고 있어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태종 16년(1416)에 처음 그렸던 원본을, 영조 50년(1774) 당시 유명한 도화서 화원이었던 한종유가 옮겨 그리고, 1936년 이종원이란 화가가 다시 손질한 것이다. 얼굴과 관복에 흰 분을 짙게 바르고 그 위에 색을 덧칠하여 원래 색을 알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응도 목판은 초상화와 함께 태조가 하사한 것으로, 영조 때 그림을 옮겨 그리면서 함께 다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영조 때 문인인 유최기가 쓴 글이 있고 앞뒤에 각각 매가 한 마리씩 조각되어 있어 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천우선생 묘역 위치도

 지도 상단의 A 지점에 이천우선생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소재지 :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1432-4

지도 중앙의 A 지점에 이천우선생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양실업고등학교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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