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끝맺음 하는 곳에 자리한 이호장묘(李戶長墓)
풍수지리학계에서는 길지(吉地)가 맺어지는 원리를 과실나무 열매에 비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전기(電氣)는 구리나 은으로 된 전선을 통해 흘려보낼 때 전도효율이 높듯이 지기(地氣)는 전선역할을 하는 산맥을 타고 흘러내려 산ㆍ수(山ㆍ水)가 만나 배합한 뒤 그 기가 취적(聚積)되어 길지가 맺어진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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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금계포란형명당 도형 |
크게 본 우리나라의 지상(地相)은 과실나무와 유사해 백두대간(白頭大幹)을 큰나무등치라 한다면 한북정맥(漢北正脈), 금북정맥(錦北正脈), 금남정맥(錦南正脈), 낙동정맥(洛東正脈)등은 중간의 큰 가지들에 해당되고 이 정맥들에서 뻗어난 잔가지들이 작은 산맥을 이룬 모습과 흡사하다.
과실나무의 경우 대부분 끝가지에 돋아난 새순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지는 원리와 같이 산맥도 흐름이 다한 끝가지인 맥진처(脈盡處)에 길지가 맺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산맥의 대간(大幹)에 잔가지가 짧게 뻗어 나와 그곳에 대길지(大吉地)가 생겨난 경우도 적지 않지만 통상 산줄기 끝가지에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리듯 많은 명당이 맺혀진 사례가 흔하게 발견된다.
이의 대표적인 예로 충남의 태안반도와 경기도의 김포반도 등을 들 수 있으니 태안반도에는 세계 최대의 원국명당(垣局明堂)과 많은 길지들이 자리해있고 김포반도에도 큰 명당들이 다수 맺어져 있다.
충남 서천군은 금북정맥이 흐름을 다한 종단처(終端處)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복종(伏鐘), 괘등(掛燈), 오룡쟁주(五龍爭珠), 연화출수(蓮花出水), 비룡도강(飛龍渡江), 장군대좌(將軍大坐), 금계포란(金鷄抱卵)등의 길지들이 있다고 예부터 전래돼왔고 필자가 현지 실사결과 사실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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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포란형명당 앞의 생기 충만한 봉우리들 |
“세모시”특산지로 널리 알려진 서천군 한산의 면사무소 옆 산기슭에는 한산이씨 시조(韓山李氏 始祖)인 이호장공(李戶長公)의 묘가 있는데 이 묘가 위에서 설시한 금계포란형명당으로 이 묘도 맥진처(脈盡處)에 맺어진 가혈(佳穴)중의 하나이다.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의 명당 덕에 큰 인물 다수 출현
이 묘자리는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는데 주산(主山)과 주변 산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알맞은 명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묘의 조성과 관련하여 두 설화가 전래돼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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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시조 효장공묘(金鷄抱卵形 명당) |
그 첫째는 이곳은 원래 동헌(東軒)자리로 원이 정사를 보던 곳이었는데 동헌마루 중 한 평 정도의 부위가 자주 썩어 여러 차례 보수를 했다.
하루는 이를 괴이하게 생각한 원이 당시 아전으로 있던 한산이씨에게 달걀을 묻도록 명하고 20일 후에 꺼내볼 요량이었다.
심부름을 맡았던 아전이 원의 뜻을 짐작하고 달걀을 묻은 15일 후에 꺼내보니 묻은 달걀들이 병아리가 거의 다된 사실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곯은 달걀들을 바꾸어 다시 묻어 놓았다.
달걀을 묻은 20일 뒤 원이 달걀을 꺼내오도록 명하여 그 곯은 달걀들을 파내어 원에게 보이니 원은 자기가 잘못 판단한 것으로 생각했다.
좋은 명당인 것을 확인한 아전은 깊은 밤에 남몰래 자기 부친의 백골(白骨)을 그 자리에 묻었고 그 명당 덕으로 가문이 창성해지자 동헌을 딴 곳으로 옮기고 성분(成墳)했다는 전설이다.
둘째는 원래 이 묘역에는 고려조 때 건립한 절이 있었는데 고려말경 풍수지리학에 밝은이가 한산현감으로 부임해와 근무하면서 이 절의 법당마루 밑 땅이 금계포란형의 큰 혈장(穴場)임을 알고 그 진가(眞假)를 시험하기 위해 이호장(李戶長)에게 달걀을 묻도록 명했는데 약삭빠른 이호장이 곯은 달걀만을 골라 묻고 후일 캐내어 현감에게 바치니 현감은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으로 알고 실망했다는 것이다. 얼마 후 그 현감은 강화군수로 전임해갔고 이 절에서는 떠돌이 중이 살해되는 괴사건이 일어나 이 절의 중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어 절은 황폐해졌다.
그 후 이 자리에 이호장이 묻히게 됐다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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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앞에 있는 계란봉과 朝山인 관두봉 |
위 두 전설 중 어느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운 일이나 현재도 이호장묘역 안에 오래된 불탑(佛塔)이 서있는 것으로 보아 절 터였다는 심증을 짙게 한다.
어떻든 이 이호장묘의 주산(主山)은 금북정맥이 끝마무리되는 곳에 우뚝 세워진 금닭 모습의 정기 충만한 건지산이다.
이 산의 동남쪽 기슭 혈장 앞 내명당(內明堂)에는 천작(天作)인지 인작(人作)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왕릉봉분 크기만한 3개의 계란봉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세인들의 관심을 고조시킨다.
또한 건지산 오른편에서 뻗어 내린 내백호(內白虎) 자락은 마치 금닭이 날개를 펼쳐 알봉들을 감싸 안는 형상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이호장묘는 건지산에서 이단(二段)으로 떨어져 내린 맥이 멎는 자리에 남남동향(亥坐巳向)으로 입향(立向)을 했고 물은 동동남쪽(乙方)으로 빠져나가 풍수논리에도 잘 맞는다.
이 묘의 안산(案山)은 알봉이며 조산(朝山)은 헌앙한 관두봉이고 내청룡은 낮게 돌아준 반면 외청룡은 드높게 겹겹이 회포(回抱)해 장관이다.
서서북쪽의 주산, 동동북쪽의 월성산과 외백호쪽 삼양방(三陽方)의 생기 넘치는 봉우리들이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간병, 손신(艮丙, 巽辛)쪽이 서로 교응(交應)하고 있어 부귀 겸전하고 재사다출(才士多出)할 큰 길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 묘를 쓴지 얼마 되지 않아 경학(經學)의 대가인 가정 이곡(稼亭 李穀)과 성리학의 대가이며 고려 말의 명신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부자가 태어나 두 사람 모두 원(元)나라 대과(大科)에 급제하는 기적을 낳았다.
이 밖에도 조선조의 기재(奇才)로 역학(易學)에 정통했던 예언가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函)과 명재상 이산해(李山海), 근세의 사회운동가로서 국권회복에 헌신한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등도 이호장의 후예들이니 이같이 한산 이씨들이 성운을 누리고 많은 인재가 배출된 것은 오로지 이 묘의 덕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서광석 논설위원 cca4491@yahoo.co.kr cca4491@yahoo.co.kr>
출처 :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글쓴이 : 기라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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