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6 황제고리 서울에서 9시 25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도착지 정주의 기상 불량으로 연착이 되었고 다시 비행기가 결빙되어 해빙작업을 하는 관계로 11시가 넘어 이륙하였다. 이번 여행은 하남성의 동북부 지역에 해당한다. 하남성은 황화문명의 발상지이다. 하남성은 중국 8대古都중 4개 즉, 안양, 낙양, 정주, 개봉이 속해있다. 정주시는 북으로 황하에 임하고 서쪽으로 嵩山에 의지하고 있다. 정주는 五帝 및 夏, 商, 周의 자취가 깃든 곳이다. 공항에 내리니 시계가 뿌연하였다. 이러한 날씨는 여행기간내내 지속되었다. 이번 여행은 동방문화진흥회 대전지회가 주관하였다. 여행인원은 원래 37명이었는데 가장 나이 많은 공선생님이 여권을 잘못 가져와 합류하지 못해 총 36명이었다. 이천선생님은 복희, 문왕, 소강절선생 등 주역의 성지를 답사하는 이번 여행단의 인원이 공교롭게도 36명인 것에 의미를 부여하셨다. 주역 64괘는 倒顚卦를 제외하는 실제로는 36괘이다. 또 복희 8괘의 1~8의 합수는 36이 된다. 觀光의 의미도 설명하셨는데, 주역 觀괘 六四효를 보면 ‘觀國之光 利用賓于王 (나라의 빛을 봄이니 왕에게 손님대접을 받는 것이 이로우니라.)’라 되어 있다. 관광은 곧 그 나라의 광채를 자세히 살펴봄에서 비롯된 말이다. 우리는 맨먼저 황제의 고향을 찾았다. 황제고리는 정주시 남쪽의 新鄭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역사는 三皇五帝에서 시작한다. 약 5000년전 황제는 헌원의 언덕에서 태어나 헌원황제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은 신화상의 인물을 2006년경 대규모로 복구하여 중화민족의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베이징올림픽때 이곳에서 채화한 성화는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그대로 타고 있다. ‘軒轅黃帝’라 쓴 패방을 지나니 헌원교가 나왔다. 옛날의 헌원교는 그 아래 보존되어 있었는데 이는 명나라때 지은 것이다. 넓은 광장을 지나니 흰색으로 된 거대한 황제의 상과 옆에는 황색으로 된 용의 상이 있었다. 용은 황제의 상징이자 중화민족의 상징이다. 황제의 사당앞에는 ‘炎黃子孫 不忘始祖’ ‘文明始祖’ ‘人文始祖’등의 주련이 매달렸다. 사당내에는 황제의 일생을 벽화로 그려 놓았는데 ‘黃帝誕生-創造舟車-黃炎結盟-征伐蚩尤’등 주제별로 되어 있었다. 중국인은 자신들을 염황의 자손이라 한다. 문헌기록을 보면 상고시대에 염제 역시 황제와 맞먹는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한다. 염제와 황제의 무력충돌로 판천에서 전쟁이 일어났으며 결국 황제중심의 흡수통일이 이루어졌다. 또 황제는 탁록의 전투에서 치우를 물리치는데 치우는 동이족이라 한다. 벽면에는 황제를 언급한 여러 역사문헌들을 소개해 놓았는데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좌구명의 <國語>晉語 : ‘昔少典取于有蟜氏生黄帝炎帝(옛날 소전이 유교씨를 취하여 황제와 염제를 낳았다.)’ 전국시대 <竹書紀年> : ‘黄帝軒轅氏元年帝即位居有熊初制冕服(황제헌원씨 원년에 즉위하여 유웅에 거쳐했으며 처음으로 면복을 제정했다)’ 사마천의 <史記>五帝本紀 : ‘黃帝者少典之子姓公孫名曰軒轅(황제는 소전의 아들로 성은 공손이고 이름은 헌원이다’ 皇甫滵의 <帝王世紀> : ‘黃帝有熊氏 少典之子 姬姓也 … 受國于有熊 居軒轅之丘 故因以爲名 又以爲號 … 有熊 今河南新鄭是也’(황제 유웅씨는 소전의 아들로 희성이다. 유웅에서 나라를 받고 헌원의 언덕에 거쳐했으므로 이름을 삼고 호를 삼았다. 유웅은 지금 하남 신정이다.) 황제의 사당 양쪽에는 부인인 누조와 모모의 사당이 있었다. 누조는 元妃인데 두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최초로 양잠을 발명했다고 한다. 모모는 次妃(넷째부인이라 함)인데 직조기를 발명했는데 추녀였다고 전한다. 황제는 창힐에게 문자를 만들도록 하였고 십간과 십이지 육십갑자를 만들고 영륜에게는 악기를 제조하게 하였다. 황제는 110년을 재위했으며 죽은 뒤 橋山에 묻혔다 한다. 2007년 중국은 이곳에서 拜祖大典을 거행하였다. 광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는 그때의 행사장면이 상연되고 있었다. 배조대전은 각종 매스컴 및 CCTV에 생중계 되었는데 구호는 ‘共拜祖先 同築和諧(함께 조상을 경배하고 다같이 화해를 다지자)’였다 한다. 광장에는 황제보정과 중화성씨비가 있었다. 황제보정은 아홉 마리의 용으로 장식하고 다리는 세 마리의 곰의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용은 九州를 상징하고 곰은 有熊에 나라를 세운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중화성씨비에는 성씨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중앙가지는 황제의 성인 姬이고 좌측은 치우의 성이며 우측은 신농(염제)의 성인 姜이다. 여기에서 점점 가지가 분화되듯이 萬姓이 되었다는 것이다. 옆의 설명문에는 “성씨의 역사는 만년이 되며 이는 세계에서 최고로 오래된 성씨다. 성씨는 조상이 우리에게 준 진귀한 유산이다. 역사상 중국에 출현한 성씨는 23,000여개인데 문자로 고증할 수 있는 성씨는 3,000개이다. 모든 성은 뿌리가 같다(萬姓同根)”이라는 글이 써 있었다. 성씨담장에는 약 3000여개의 성씨가 몇 십개의 담장에 알파벳 순서로 분류되어 새겨져 있다. 중화성씨광장은 중화소수민족 모두의 뿌리가 되는 상징적 장소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정주시내로 들어와 정주의 최대서점인 신화서점에 들렀다. 나는 중국지도책과 조천록 관련 2권의 책을 구입하였다. 책을 보거나 사는 손님들이 제법 있었는데 하루에 4~5000권이 팔린다고 하였다. 주) 3황(皇)과 5제(帝)가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우선 3황으로는 ① 천황(天皇)·지황(地皇)·태황(泰皇)(〈사기 史記〉), ② 천황·지황·인황(人皇)(〈하도 河圖〉), ③ 수인(燧人)·복희(伏羲)·신농(神農)(〈상서대전 尙書大傳〉), ④ 복희·신농·축융(祝融)(〈백호통 白虎通〉), ⑤ 복희·여와(女媧)·신농(〈춘추운과추 春秋運科樞〉), ⑥ 복희·신농·황제(黃帝)(〈상서 尙書〉 공안국 서[孔安國序]) 등의 여러 설이 있다. 5제에 대해서는 ① 태호(太皥 : 복희)·염제(炎帝:신농)·황제·소호(少皥)·전욱(顓頊)(〈예기 禮記〉), ② 황제·전욱·제곡(帝嚳)·당요(唐堯)·우순(虞舜)(〈사기〉), ③ 소호·전욱·고신(高辛:제곡)·당요·우순(〈상서〉 공안국 서) 등 설이 다양하다. 이같이 다양한 주장이 있는 것을 보면 삼황오제라는 말이 먼저 생겨난 후에 그에 맞추어 제왕의 이름을 붙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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