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도)

[스크랩] [안동 서후] 의성김씨 학봉종택

장안봉(微山) 2012. 12. 16. 21:25

 

 

 

 

 

 

 

 

 

 

 

 

 

 

 

 

 

 

 

 

 

 

 

 

 

 

 

 

 

 

 

 

 

 

 

 

 

 

언문편지-1592년 12월 24일 학봉이 경상우도 감사로 재직시 경남산음(산청)에서 안동 본가에 있는 부인에게 보낸 편지로 학봉이 진중에서 부인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비장한 영결의 편지이다. 학봉은 4개월후 죽음을 예감 하였던지 "살아서나 다시보면 그때나 나을까 모르지만 기필 못할세"라 적었다. 감사라 하여도 전시중이라 형편이 어려워 석서(조기)2마리, 석이(버섯)2근, 석류20개만을 보낸것이 피봉에 적혀있다.

 

팔고조도-의성김씨 시조 김석으로부터 18대손인 김예범까지의 세계와 19대손인 김진으로 부터 31대손인 김흥락까지의 8고조를 도표로 표시한 가첩형태의 문서이다

1577년 학봉이 중국에서 사신으로 가서 가져온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이다. 안경알은 옥돌이며 안경테는 거북등뼈로 만들었다.

철퇴-학봉이 임진왜란 당시 초유사,경상우도 감사로 활동 하면서 지휘봉및 호신용으로 사용했다. 몸체에 은으로 용을 음각했다.

산가지-옛날 수효를 셈할때 사용하던 물건으로 이것을 가로와 세로로 벌여 놓아서 셈을했다. 또한 주역을 공부할때 괴를 풀어 보는데도 사용했다. 대나무나 뼈등으로 젓가락 처럼 만들었다. '산통을 깨다' 할때의 산통이다. 학봉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안경과 함께 가져온 것이다.

나주목사 입안문-1586년 학봉이 나주목사 재직시 내린 노비 소송에 관한 판결문으로 모두 5건이다.

초유문초(招諭文抄)-1592년 5월 4일 학봉이 의병의 창기를 촉구하기 위해 지은 초유문 초록으로 '글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왔고 붓에 먹을 찍을 겨를도 없이 써내려 갔다'고 했다. 260구 1588자에 달하는 긴 격문이다. 

 증시교지-1679년 8월 6일에 학봉에게 시호를 내리는 교지이다.시호는 문충공이며 시주는 '道德博聞曰文 危身奉上曰忠'(도와덕을 널리 알았으니 문이요 몸을 바쳐 나라를 받들었으니 충이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