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서원 전문가 워크숍(2012. 4. 18)
서원 기록문화의 정리, 보존관리의 현황과 과제
[제1주제 발제문]
서원 기록자료의 정리현황과 과제
이 수 환
(영남대 국사학과 교수)
1. 서언
2. 서원자료의 전승상태
3. 서원자료 정리 현황
4. 향후 정리의 과제와 추진 방안
1. 서 언
조선시대 서원은 교육 교화의 중심지일뿐만 아니라, 사족들의 정치사회적 활동의 중심지라는 데서 이와 관련된 성리학 관련 서책 및 서원운영과 관련된 필사원본류와 고문서 등 많은 기록자료를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서원관련 자료들은 대원군의 전면적인 서원훼철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대원군 실각 이후 많은 서원이 복설되기는 하였지만 관계자료는 서원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院任案·入院錄 및 창건과 관련된 일부 자료만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거나 또한 복설되지 못한 경우에는 중요자료 1-2건 만이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원군때 훼철되지 않았던 서원은 여타의 서원에 비해 비교적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지만, 이들 서원도 일제강점기, 6.25 전쟁, 근대화의 과정 등 외부적 영향과 관리 소홀로 인한 자료의 도난 내지 소실이 많아 서원에 따라 차이가 많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 유교문화를 대표할 만한 일부 서원에서는 오늘날까지 다양한 문화재 및 역사기록물들을 철저히 보존·관리해 왔다는 것이다. 본 발표문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9개 서원을 중심으로 기록자료의 전승상태와 정리현황 및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본 발표에서의 기록자료의 대상은 서원운영과 관련하여 작성된 필사원본류와 고문서뿐만 아니라 서원이 소장하고 있는 서책과 책판도 포함하여 검토하였다.
2. 서원자료의 전승상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紹修·蘫溪·玉山·陶山·屛山·道東·遯巖·武城·筆巖書院 등에는 여타의 서원에 비해 많은 문헌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이들 9개 서원은 조선후기 각 지역의 首院으로써 가장 비중이 크고 영향력이 컸다는 점에서 볼 때 많은 서책과 책판 및 서원운영과 관련한 기록자료를 남겼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이 서원들이 소장하고 있는 기록자료는 서원별로 편차가 크다. 옥산․도산․병산서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원은 자료의 망실과 산질이 심한 상태이다.
먼저 기 발간된 보고서와 서원지 등을 중심으로 각 서원에 현전하는 자료 현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각 서원별 소장 자료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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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서원 |
현전 자료의 수량 |
정리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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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
紹修書院 安珦 1543년 건립 1550년 사액 |
1. 전적 : 周易傳義大全, 朱子大全, 闡義昭鑑 등 30종 145책 2. 고문서 : 謄錄, 竹溪誌, 雲院雜錄, 雜錄, 院任錄, 入院錄, 居齋錄, 尋院錄, 田畓案, 完議 등 110점 3. 책판 : 竹溪誌, 追遠錄, 家禮諺解, 六先生遺稿 등 4종 428장 |
소수박물관, 국편, 국학진흥원, 규장각, 계명대도서관 등에 분산소장.『朝鮮時代嶺南書院資料』(국편,1999)에 일부 등재, 『紹修書院誌』(영남문헌연구소편, 2007)에 전편 수록.『李朝書院文庫目錄』(李春熙編, 1969),『紹修書院所藏資料報告書』(紹修書院,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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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
玉山書院 李彦迪 1573년 건립 1574년 사액 |
1. 전적 : 三國史記(보물525호), 內賜本, 회재 手澤本 등 943종 3,977책 2. 고문서 : 院任·院生案, 土地·奴婢案, 尋院錄, 都錄, 通文, 所志 등 약 1,156점. 3. 책판 : 晦齋先生文集 등 19종 1,123장. |
옥산서원 유물전시관, 독락당 어서각, 무첨당 등에 분산소장. 『玉山書院誌』(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 1993)에 선별수록, 『2004년 일반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 실태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4)에 전적, 고문서, 현판, 기타 유물 목록 일괄수록. 『李朝書院文庫目錄』(李春熙 編, 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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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
陶山書院 李滉 1574년 건립 1575년 사액 |
1. 전적 : 퇴계 手澤本, 內賜本, 易東書院 藏書 포함 1,026종 4,605책 2. 고문서 : 完文, 尋院錄, 院任案, 土地·奴婢案, 通文 등 2,128점 3. 책판 : 退溪先生文集 등 57종 4,014점 |
한국국학진흥원 기탁(유교넷으로 서비스) 『陶山書院古文書』(1)·(2)(단국대 퇴계학연구소,1994·1997)로 편간. 『陶山書院古典籍』(국학진흥원, 2006)에 모든 자료의 수량 및 목록 수록. 『李朝書院文庫目錄』(李春熙 編, 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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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
屛山書院 柳成龍 1613년 건립 1863년 사액 |
전적 : 家禮諺解, 西厓集, 艮齋集 등 1,071종 3,039책 2. 고문서 : 書院要覽, 院任錄, 入院錄, 居齋案, 講案, 尋院錄, 土地·奴婢案 등 58점 3. 책판 : 西厓先生文集·別集, 童蒙須知, 陶山及門錄辨訂 등 25종 1,907점 |
『古文書集成』20(정문연, 1994)에 병산서원 고문서 수록.『李朝書院文庫目錄』(李春熙 編, 1969).『2004년 일반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실태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4)에 전적, 고문서, 현판, 기타 유물 목록 일괄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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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현풍 |
道東書院 金宏弼 1605년 건립 1607년 사액 |
1. 전적 : 景賢錄 등 내사본 10종 26책. 2. 고문서 : 道東重刱事蹟, 各處通文謄草, 院任錄, 入院錄, 尋院錄, 土地·奴婢案 등 3. 책판 : 景賢錄 1종 71판 4. 기타 : 제기 30점. |
『道東書院誌』(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 1997)에 선별수록. 『달성군 일반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 실태조사보고서』(달성군, 2005)에 고서, 책판, 기타유물수록. 『李朝書院文庫目錄』(李春熙 編, 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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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
灆溪書院 鄭汝昌 |
1. 전적 : 寒州先生文集, 桐溪先生文集 등 147점. 2. 고문서 : 經任案, 院錄類, 裒寶錄類, 田畓案, 秋收記, 通文, 簡札 등 717건. 3. 책판 : 一蠹先生文集·介庵先生文集 책판 377점 |
『李朝書院文庫目錄』(李春熙 編, 1969) 『경상남도 일반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 실태조사 보고서』(문화재청, 2005)에 고문서, 고서, 책판 등의 목록수록. 『灆溪書院誌』(1935, 朴彩箕)에 건립연혁, 배향인물 사적이 있음. 『古文書集成』24(정문연, 1995)에 고문서 수록. 『灆溪書院尊衛錄』(남계서원편, 1962) 존위록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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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 |
武城書院 崔致遠 1615년 건립 1696년 사액 |
1. 고서 : 直軒集, 肯構堂遺稿, 武城書院誌(1930) 등 8점 2. 고문서 : 泰山書院院(生)儒案, 院生案, 尋院錄, 奉審錄, 完文, 延額記事, 重修日記, 慕賢稧案 등 49종 |
『武城書院誌』(崔成在 等編, 1884) 『비지정 일반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 실태조사』(문화재청, 2009)에 고서와 성책고문서의 목록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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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연산 |
遯巖書院 金長生 1632년 건립 1659년 사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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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문서 : 金長生文廟配享敎旨, 儒生到記, 院中賭地記, 齋中記簿, 節目, 學稧案, 田畓改量案, 齋任錄, 連山縣 齋任錄 등 10종 2. 책판 : 沙溪先生遺稿, 沙溪全書, 愼獨齋先生遺稿 등 11종 1,841판 |
『遯巖書院誌』(1958) 『비지정 일반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 실태조사』2(문화재청, 2007)에 책판만 있음. 『李朝書院文庫目錄』(李春熙 編, 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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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 |
筆巖書院 金麟厚 1624년 건립 1662년 사액 |
1. 전적 : 家禮輯覽, 經書辨疑, 書傳, 樂學軌範 등 78종 245책(1969) 2. 고문서 : 奴婢譜, 院長先生案, 執綱案, 補講案, 文稧案, 西齋儒案書, 院籍, 長城府使下帖 등 14종 외(보물지정) 3. 책판 : 河西先生文集(舊·新), 草千字, 楷字, 墨竹, 筆法板木 등 7종 616판 |
문적일괄 14책 64매 (보물 제587호) 『筆巖書院院籍』(1802) 『李朝書院文庫目錄』(李春熙 編, 1969) 『筆巖書院誌』(1975) |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9개 서원에서 현전하는 서원자료는 지역에 따라 수량에서 큰 차이가 난다. 즉, 영남지역이 타 지역에 비하여 현전자료의 수가 가장 많으며, 영남권내에서도 퇴계학파권과 남명학파권 간에 차이가 있다. 이는 각 서원에서 생산된 자료의 량의 차이도 있겠지만, 대부분 서원의 관리소홀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서원에서 보면 內賜本과 제향인의 手澤本 등의 전적은 서원측에서도 중요시 여겨 별도의 함을 제작하여 보관해 왔다. 그러나 서원 건립 초기에 자체 구입하거나 개인·관청으로부터 기증받은 도서 등은 관리소홀로 인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현재 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책은 대부분 19-20세기 초의 것이다. 서원건립 초창기의 전적은 현전하는 傳與記나 書冊置簿記, 書院誌 등을 통해 그 대강을 확인할 수 있다.
각 서원에 남아있는 藏書 목록은 대부분 서책과 책판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고문서류는 考往錄, 傳與記, 尋院錄, 重建日記 등과 같이 서원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서책들과 같이 분류하여 보관하고, 기타 문서 등은 중요도에 따라 목궤 내지 잡문서로 분류하여 보관하였다. 서원들은 그 오랜 역사에 비례하여 그만큼의 문서가 작성·보관되었을 것이 자명하지만, 생산된 정확한 수량이나 목록은 기록이 없어서 확인이 불가능하다.
서원운영과 관련된 문서를 비교적 잘 소장하고 있는 옥산서원의 경우에서 보면 모든 문서의 목록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원 측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경제, 제향, 임원(조직), 관문서(증명서) 등은 文書秩을 두어 목록과 수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들 문서는 종류와 크기에 따라 대궤에는 서원의 재정과 관련된 노비·토지매매문서, 전답안, 노비추쇄안 및 부피가 큰 통문을 보관하였고, 중궤에는 집사기, 홀기, 입원록, 전여기 등 서원 조직·제향과 관련된 문서를 보관하였다. 그 외 명문, 완문, 관문 등은 잡문서로 묶어 보관하되 각종 회계록을 별도로 모아두었다. 심원록·고왕록과 같이 수시로 기록하거나 살펴봐야 하는 것들은 서책과 함께 책장에 보관하였다. 모든 서원에서 이와 같이 보관했는지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서원에서 文書櫃를 별도로 비치한 것으로 보아 문서의 분류와 관리는 비슷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전적은 별도로 소장처인 장서각을 만들거나, 궤에 넣어 동·서재의 별실에 보관하였다. 별실에 보관한 경우는 대개 서원건립 초기에 그러하였고, 이후 장서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를 보관할 별도의 시설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도산서원의 경우 동서재의 협실에 보관해 오다가 서적수의 증가로 인한 공간부족과 화재의 위험으로 1819년 書庫(光明室)를 신축하였다.
이들 서적의 관리는 원임들이 담당하였다. 1862년 필암서원의 節目에는 內賜한 서책은 극히 중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없으며, 보기를 원하면 서원에 와서 소중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서책을 보관한 經藏閣(藏書閣)의 출입은 執綱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였고, 또 傳與뒤에 서책을 잃으면 새로운 집강이 추심하여 收藏하라고 하였다. 도산서원도 院規에 서책 수장고에 출입할 시에는 三任(원장·재유사·별유사) 입회시 내지 堂會시에만 가능하며 서원의 책은 대여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은 도산서원 문서가 국학진흥원에 기탁되기 전까지 적용되었다. 이러한 규정은 각 서원들의 전형이 되어 대부분의 서원에서 ‘書籍門外不出’을 원규나 절목으로 제정·시행하였다.
1752년(壬申) 9월의 옥산서원 完文에는 ‘옥산서원에는 宣賜 된 책도 많고 서원 설립시 節目으로 정한 書冊不出院門의 규정이 있어 수백 년 동안 1권의 책도 閪失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 관가에서 책자를 보기위해 下帖으로 명하여 빈번히 왕래하면서 일부를 잃어버리거나, 훼손되기도 했다. 혹은 포쇄를 위해 이동을 하면서 閪失되는 폐단이 있으니 士林들은 원규를 지켜 추후 官長이라도 책을 빌려볼 수 없도록 하라’고 했다. 또한 1792년 치제시 정조는 祭官을 통해 ‘書籍門外不出’이 원규로 성문화 되어있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양반들의 私家로 빌려가서 보고 있는 책자는 즉시 서원으로 가져오라고 傳諭하고 있다.
이처럼 옥산서원에서의 서책의 열람은 원규로서 서원 내에서만 가능하였으며, 대여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수령 내지 일부 관계자들에게는 이 규정이 잘 지키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왕명 이후에도 서책의 閪失은 계속 증가하여 이에 옥산서원은 새로이 서책목록을 작성하고 諸生들이 이 규정을 잊지 않도록 판목으로 새겨 걸어 경계토록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원에서는 실제로 이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많은 서적이 분실되었으며, 특히 일제시대 이후 서원측의 관리부실이 이어지면서 많은 전적이 유실되었다.
서원은 향촌 내 교육기관으로의 역할뿐만 아니라 교육문고 내지 출판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여 지방문화의 창달에 기여하였다. 사액서원은 일반적으로 사액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전답, 노비와 함께 서적을 하사받았으며, 자비로 서적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후 국가에서는 원생들의 공부를 분발시킨다는 의미로 서적을 인출할 때마다 서원에 頒賜를 거듭하였다. 또한 각 가문내지 院祠에서 印刊된 문집 등이 반질되어 옴으로써 서원은 향촌사회의 유생들을 위한 도서관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백운동서원이 창건된 지 2년 후에 편찬된 『竹溪誌』에 의하면 소수서원에는 이미 42종 500여 책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었다. 옥산서원은「1862년 書冊都錄」에 394종 2,545책이, 도산서원은 「1890년 傳掌記」에 490종 2,991책이 나온다. 遯巖書院은 현재 남아있는 서적이 없지만, 현전하는 「齋中記簿」(戊午3월)에 의하면 주역을 비롯한 경서와 사서, 예서, 각종 문집 등이 소장되어 있었다.
1759년에 작성된 「屛山書院書冊目錄」은 서원의 원임 체임시에 작성된 것으로 총 90종이 수록되어 있다. 병산서원은 도산․소수․옥산서원과는 다르게 서원 인근 명문가들에 의한 院外 대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러한 대출은 한편으로 장서의 대량 산실을 야기하여 장서 관리 체계가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되었다. 실제로 1673년의 목록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의 서적이 유실되었으며, 남아있는 것도 낙질이 심하였고 또한 10년 이상 반납을 하지 않은 서적도 있었다. 이 당시 장서의 1/3이 새로 들어온 新書였는데, 이는 18세기 이래 문중, 원사 등을 중심으로 일기와 문집의 출판이 성행하였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769년 목록에서 100종으로 장서가 늘어난 것도 新書의 증가로 인한 결과였다. 그러나 서책의 관리는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아서 1883년 『院案要覽』의 서책록조에서 보면 모두 산질되어 10분의 1정도의 서책만이 남아있다고 하였다.
서원은 이러한 지방의 도서관적 역할 뿐만 아니라 서적을 직접 출판하기도 하여 지방출판 문화의 중심지로서 문화 창달과 지식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서원에서 간행되는 책은 사서삼경 등 교육용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서원에 배향된 분 또는 서원과 관련이 있는 분의 문집과 유고 등이었다.
<표 2> 서원별 출판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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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명 |
鏤板考(種) |
최근 조사 현황 |
|
紹修書院 |
― |
4종 428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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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山書院 |
17 |
28종 3,928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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屛山書院 |
3 |
25종 1,907판 |
|
玉山書院 |
7 |
19종 1,123판 |
|
道東書院 |
― |
1종 71판 |
|
蘫溪書院 |
― |
5종 377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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遯巖書院 |
3 |
14종 1,841판 |
|
武城書院 |
― |
4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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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巖書院 |
1 |
7종 616판 |
위 <표 2>는 1778년 徐有榘가 편찬한 『누판고』에 나오는 9개 서원의 출판현황과 최근 조사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 서원에서 출판된 서적은 대부분 주향인 내지 배향인의 문집과 그 후손 내지 문인들의 문집 및 그들의 행적을 엮은 傳記類들이었다. 이 문집류와 전기류는 서원과 연관 있는 선현들의 학문과 사상을 배우려는 후학이나 후손들의 의도로 간행된 것이며, 나아가 가문과 서원의 세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표 2>에서 소수·도동·남계·무성서원 등은 출판된 서적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서원 소장 冊錄이나 현전하는 판본을 살펴보면, 소수서원에서는 『追遠錄』등 10종이 간행되었으며, 도동서원에서는 1771년에 『景賢錄』이 간행되었다. 남계서원에서는 『文獻公實記』(鄭汝昌)의 초·중간이 1635년과 1743년에 있었으며,『介庵先生文集』(姜翼)이 1686년에 간행 되었다.『누판고』에서는 무성서원에서의 출판사항은 확인이 되지 않지만, 이후 1834년에 태안현감과 서원유생들이 품의하여 巡營에서 <桂苑筆耕>을 開刊한 사실이 확인된다.
따라서 각 서원에서는 이러한 서책 출판을 전담하는 刊所를 별도로 설치하여 승려에게 그 역을 맡기고 또한 재정도 별도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옥산서원은 刊所를 별도로 두고 서적을 출간하거나, 경주부 내지 다른 서원의 판목을 보수하는 일도 수행하였다. 특히, 속사였던 定慧寺에는 1670년 14종의 책판이 있었는데, 이중 9종이 옥산서원에서 간행한 것으로 주향자인 회재의 문집과 저술들이었다. 이후『누판고』가 작성된 18세기 후반까지 近思錄이 추가로 간행되면서, 옥산서원에서는 총 10종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서적출판 비용은 원칙적으로 서원의 기금으로 충당하지만 때로는 문중이나 제자들이 거출한 비용 및 특정유지의 기부금 등으로 印出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후손들이나 문인들이 契를 조직하여 그 돈으로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서원이 소장하고 있었던 서책, 책판 및 서원 운영과 관련하여 작성된 필사원본류와 고문서 자료 등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외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특히 서원측의 관리소홀로 많이 망실된 상태이다. 현재 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19세기 말에 적성된 각 서원의 院誌, 傳與記, 置簿類 등과 비교해보면 도산·옥산서원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80% 이상이 망실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서원자료 정리 현황
1) 목록․해제집 발간
서원자료에 대한 관심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 1932년 조선총독부에서는 전국 향교와 서원, 문중에 분포해 있는 고전적을 파악하기 위해 서면과 현장 방문을 통해 처음으로 종합적인 조사를 실시하였다.
서원자료는 해방 후 다시 한 번 수난을 겪게 된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서원자료들이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전란을 피해 보존될 수 있었던 자료들도 전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관리소홀로 인해 재차 사라져갔다. 실제 돈암서원자료의 경우 현재는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1958년의 서원지에는 도서목록이 정리된 자료가 확인되고 있다.
개별 서원 장서에 대한 조사는 1956년 한국어문학회에서 도산서원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하였다. 이후 서원 장서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는 1968년 이춘희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이 조사를 통해 경상도 서원의 자료들이 비교적 잘 보존, 관리되어 왔으며, 특히 옥산․도산․병산서원 등의 소위 퇴계학맥권의 서원자료들이 많이 남아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4,300여 책으로 가장 많은 장서를 보관하고 있던 도산서원은 이 서책들 중 일부가 역동서원의 장서로서 도산서원으로 이관·보관되어 왔음이 확인되었다. 이 역동서원 장서 중에서 퇴계가 직접 수집한 서적 12종 113책은 임란이전 판본으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도산서원 장서는 零本이 적고 타 서원문고나 도서관에서 보기 힘든 책들도 상당수 있어 서원문고의 보고라 할 만하다.
이후 개별 서원별로 자료조사와 연구가 진행되면서, 연구와 관련하여 필요한 일부 자료들이 연구자들에 의해 소개되어 갔지만, 서원 소장자료에 대한 일괄 조사는 문화재청이 주관하여 2004-2009년 사이에 진행된 「(비지정)일반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 실태조사」에서 였다. 이 조사를 통해 옥산·도동(달성군에서 조사)·남계·병산·돈암·무성·필암서원 소장의 전적, 고문서, 책판 및 기타 유물(기문, 현판, 제기 등) 등의 현황 및 목록, 보존실태 등이 보고되었다. 소수․도산서원은 이 사업과는 별도로 자체 조사가 이루어졌다. 도산서원은 2003년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서원자료 10,700여 점을 일괄 기탁하면서, 그 목록이 2006년 『도산서원 고전적』으로 소개 되었으며, 소수서원은 자체적으로 1998년에 「소수서원 소장 자료 조사보고서」(3책)을 간행하여 고서, 고문서 및 기타 유물의 목록과 간단한 해제를 함께 수록하였다.
이처럼 서원자료에 대한 조사가 정부, 지자체, 기관별로 진행되어 대략적인 현황이 파악되었지만, 이 조사는 자료의 목록과 일부 자료에 대한 사진 및 간단한 해제만이 제공되어서 연구자 내지 일반인들이 자료를 활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2) 서원지(자료집) 발간
1930년대 이후부터 각 서원별로 서원지 편찬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 시기는 先祖에 대한 현창사업의 촉발로 각 문중마다 대원군 당시 훼철되었던 서원과 사우의 복설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시기였다. 서원지 발간은 이러한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9개 서원의 자료집 간행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소수서원 : 최초의 사액서원이라는 상징성과 소장 자료의 사료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일반에게 자료가 소개되었다. 1937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소수서원 운영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를 정리한 『紹修書院謄錄』을 간행하였다. 이후 1999년에는 紹修書院院錄謄本, 雜錄, 紹修書院講所雜錄, 廟宇重修記事, 田畓案, 退溪笏記, 愼齋笏記 등을 영인한『朝鮮時代 嶺南書院資料』(국사편찬위원회)가 간행되었고, 2005년에는 영주시에서 『소수서원잡록』을 국역하여 간행하였다.
소수서원은 옥산․도산서원 등과는 다르게 서원자료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해 많은 자료가 소실되거나 외부로 유출되었다. 현재 서원측에서 확인한 외부 소장처는 국사편찬위원회, 도산서원(국학진흥원 기탁), 계명대학교 도서관, 개인 3명 등이다. 개인 3명이 소장한 것은 이들이 소수서원에 유물을 일괄 기탁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소수서원은 이들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2007년에 『紹修書院誌』(영남문헌연구소간)를 편간하였다. 이 서원지에는 소수서원의 연혁과 건립 및 사액과정과 배향자의 이력, 서원이 소장하고 있거나 다른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소수서원 관련 고문서 및 성책류와 고서 등의 목록 및 문집 등에 소재한 소수서원과 관련하여 작성되었던 각종 문자들도 수록하고 있어 소수서원 관련 자료의 현황 파악에 참고가 된다. 그러나 이 서원지에는 이들 자료에 대한 목록과 간단한 소개에 그쳐 자료집이라고는 할 수 없다.
2) 옥산서원, 도동서원 : 두 서원의 서원지는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1993년과 1997년에 각각 『玉山書院誌』와 『道東書院誌』로 발간하였다. 두 서원지는 서원내 소장 자료가 너무 많아 1책에 관계 자료를 모두 정리한다는 원칙을 세워 서원지 편찬의 본뜻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료를 선별하였고, 동일한 자료가 방대할 경우에는 각 시대별로 대표적인 사료를 추출하여 정리하였다. 특히 옥산서원의 경우 서원운영과 관련하여 그때 그때 작성된 필사원본과 고문서가 거의 대부분 소장되어 있다는 점에서,『옥산서원지』에는 都錄, 傳與記, 尋院錄 등 대부분의 필사원본은 대표적인 것을 선별하여 수록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종합적인 자료집 발간이 필요하다.
3) 도산서원 : 도산서원 소장 자료(고문서)는 1994년 단국대학교 퇴계학연구소에서 도산서원 소장 자료에 대한 조사를 거쳐 도산서원자료 중 院規, 儀禮, 通文, 日記類 등 일부를 엮어서 1994년과 1997년에『陶山書院古文書』(1)·(2)로 편간하였다. 여기에 실린 고문서는 모두 원본사진과 正書를 같이 기재하여 연구에 편의를 도모하였다. 이후 1999년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朝鮮時代 嶺南書院資料』에 단국대 퇴계학연구소에서 간행한 자료집에 누락된 院任錄·遊院錄 등 일부자료가 수록되었다. 도산서원 소장 자료는 2003년 4월부터 2007년 6월까지 단계적으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이들 자료는『陶山書院古典籍』(2006)이라는 목록집으로 간행되었으며, 현재 유교넷(http://www.ugyo.net)으로 원문이미지와 간단한 해제를 서비스를 하고 있다.
4) 병산서원 : 병산서원 관련자료는 1994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국학진흥사업의 일환으로 편간된 『古文書集成』20집에 정리되었다. 현재 이들 자료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한국국학진흥원의 웹사이트인 유교넷(http://www.ugyo.net)의 ‘명문가고문서’ - ‘풍산류씨 충효당’ 항목에 포함하여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자료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국고문서자료관에서는 『古文書集成』20(1994)에 수록되었던 고문서와 성책류 58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5) 남계서원 : 1935년과 1962년 등 몇 번에 걸쳐 서원지의 편찬이 있었으나, 이후 서원 관련 모든 자료는 1995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국학진흥사업의 일환으로 편간된 『고문서집성』24집에 정리되었다. 현재 남계서원 소장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ㆍ국사편찬위원회ㆍ남명학 고문헌시스템ㆍ한국고문서 자료센터․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등에서 제공되고 있다.
6) 돈암서원 : 1958년에 『돈암서원지』가 발간되었다.
7) 필암서원 : 1949년(1책), 1975년(2번, 4책, 3책)에 『필암서원지』가 발간되었다. 이후 고문서는 1985년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古文書』에 정리 수록되었다. 여기에는 보물(587호)로 지정된 필암서원 문적들 외에도 다양한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어 주목된다.
8) 무성서원 : 1884년에 『무성서원지』가 발간되었다.
9개 서원의 관련 자료는 서원별로 편차가 매우 크다. 몇몇 서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원은 관리소홀로 자료가 대부분 산실되었다. 한편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소수․도산․옥산서원 등의 경우 자료집 성격의 서원지 등이 발간되었지만, 지면상의 문제로 모든 자료를 수록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 몇몇 서원자료는 전문학술기관에서 정리하여 인터넷으로 서비스되고 있지만, 그 활용에는 한계가 있다.
4. 향후 정리의 과제와 추진 방안
서원은 한국 유교문화의 본산으로 성리학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지역의 교육, 문화, 지성사의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대표적인 유교교육기관이다. 특히 서원은 여론과 공론의 수렴처로서 지역 사림들의 사회․정치활동의 중심지였다는 점에서 지연과 학연별로 한국 유교문화의 다양성과 개성이 집약된 문화유산이자, 각종의 유․무형의 자료가 집약된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해당 서원이 지닌 고유하고, 특별한 성격을 드러내어 이를 현대에 재조명하여 계승·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재조명의 기초 작업이 바로 서원자료와 기록자료의 정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정선된 서원별 문화사적 특징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까지는 서원관련 원자료의 확보가 미흡함에 따라 오늘날 콘텐츠 개발의 부진을 초래하여 서원문화의 다양성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서원 기록자료는 3단계를 거쳐 조사·정리·가공되어야 한다. 첫째는 자료의 포괄적 수집과 정리이며, 둘째는 <서원지(자료집)>의 편찬, 보급이다. 이를 통해 컨텐츠 개발이나 스토리텔링, 교육, 체험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 서원지를 바탕으로 제 분야의 연구를 통해 개발된 소스들은 최종적으로 <한국서원 아카이브>에 집결된다. <서원 아카이브>는 국내외에 한국 서원 문화의 보급과 홍보의 허브로 활용하여 연구, 교육, 관광 등에 활용될 수 있다.
1) 1단계 : 광범위하고 철저한 서원자료의 조사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는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대로 대다수 서원자료가 관리 소홀과 무관심으로 대부분 망실되거나 散失된 실정이다. 산실된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제향인의 후손과 원임 및 그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탐문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조사지역에 대한 철저한 기초조사부터 시작한다. 대상 서원의 기본적인 연혁과 관련 문중의 구체적 구성과 위상, 연혁과 관련된 시대적 변화, 관련 유적, 주요 성씨와 중심인물 등에 대한 기초적인 사항 파악이 그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9개 서원은 각 지역의 首院으로서 역할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서원에서는 많은 서책와 서원운영과 관련된 필사원본과 고문서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각 서원의 관계자료는 소실된 것을 제외하고도 서원측의 관리소홀로 후손가 내지 서원 관계자(원임)들에게 분산된 것들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각 서원자료의 종합적인 정리를 위해서는 이에 대한 조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소수서원 자료는 한국전쟁으로 상당수가 소실되거나 이후 散失되었다고 한다(『동아일보』1969년 7월 5일(5면)기사). 그러나 2007년에 발간된『소수서원지』에서 보면 국사편찬위원회, 계명대 도서관, 국학진흥원(도산서원소장본)에 중요한 소수서원 자료가 보관되어 있고, 특히 개인이 소수박물관에 기탁한 유물속에 서원관련 자료가 확인되고 있다. 옥산서원의 경우에서도 보면 배향자의 후손가(무첨당, 독락당)에서 서원관련 많은 중요한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다. 옥산서원 문서는 이외에도 제향자의 후손가에 많이 소장하고 있음이 양동마을 일반동산문화재 일괄 조사때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소수․옥산서원의 예에서 보듯이, 서원관련 자료가 배향자의 후손 또는 서원의 운영을 담당했던 원임들의 후손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있다. 또한 현재는 규장각, 장서각, 한국국학진흥원 등의 학술기관과 대학 연구소, 도서관, 박물관 소장 자료들이 대부분 전산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의외의 자료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각 서원자료의 종합적인 정리를 위해서는 이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문집에 수록된 관련자료도 조사가 필요하다.
2) 2ㆍ3단계 : 서원지(자료집) 편찬과 아카이브 구축
서원자료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거쳐, 자료에 대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서원지(자료집) 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존에 발간된 『옥산서원지』 대도동서원지』 등은 상세한 해제와 원자료의 영인을 통해 서원지의 자료 활용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지면의 제약으로 모든 자료를 수록하지 못하고 대표적인 자료만 선별·수록하였기에 활용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최근에 발간된 『소수서원지』(영남문헌연구소편, 2007)는 서원의 창건과 운영, 제향인물, 건물연혁, 소장 자료, 토지, 건물, 서적, 유적, 유물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 제공과 현황파악이 용이토록 하필요소수서원에 대한 홍보와 연구에 근거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작한다는 목운영, 간행. 기존 그래서 기존 서원지들에 비해 다소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일반인들을 창건국한문 혼용체의 사용과 事蹟, 記文, 詩文, 碑文, 簡札 등의 번역문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다만, 지면의 제약으로 원자료들을 영인하지 못하고 入院錄, 院錄謄本, 院任題名錄, 任事錄 등의 일부 자료만 탈초·수록하고, 나머지 자료는 목록과 현 소장처만 소개하고 있다.
한편 이들 서원지는 서원별 내지 연구자들의 기초자료의 선별 기준이 달라서 수록내용의 편차가 심하다. 자료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표준 목차안>을 마련하여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종합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서원에 전승된 (성책)고문서는 매우 다양하며 종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 고문서 분류에 대한 논의는 현재에도 정리되지 못한 채 규장각, 장서각, 국학진흥원 등의 중요 기관들에서는 각기 다른 분류안을 채택하고 있다. 서원고문서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각 기관에서의 분류안에 따라 서원고문서를 분류하면 문서들 간의 연계성을 파악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렇기에 서원자료는 그 종합적인 특징에 주의하여 실제 관리와 연구의 편의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서원 (성책)고문서를 이해준의 견해에 따라 내용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창건과 연혁 : 考往錄, 事蹟, 日記類, 上樑文, 記文, 書院誌, 官撰資料(列邑院宇事蹟, 書院可攷, 書院謄錄, 邑誌 등)
② 조직과 운영 : 院任案, 院生案, 執事分定記, 謁廟錄, 稧案, 鄕約, 儒生案 등
③ 경제운영 : 土地·奴婢案, 田畓案, 身貢案, 守護軍案, 院屬案, 用下記, 傳與記, 都錄, 屬寺, 屬店, 書院村 文書, 牌旨, 賜牌文書 등
④ 교육·제향 : 講案(講規), 書院規約, 立議, 節目, 完文, 學規, 書冊都錄, 笏記, 致祭文, 告由文 등
⑤ 향촌사회사자료 : 尋院錄, 時到記, 扶助記, 通文, 回文, 上書, 所志, 萬人疏, 簡札 등
이러한 서원지 편찬에는 서원관계자, 연구자, 활용자(교육자, 개발자, 관련 공무원 등) 등으로 구성된 편찬위원회를 구성한 후, 분야별 서원 연구자(인문, 경관, 건축, 문서, 기타)가 집필해야 하며, 서원지는 자료집의 성격으로 향후 제 분야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서원자료에 대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과 함께 탈초와 번역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최종적으로 이렇게 정리된 자료를 종합하는 <한국서원 아카이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서원문화의 대중화를 통한 한국 유교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이러한 과제들이 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서원지 편찬과 아카이브 구축에는 서원측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들의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3) 서원자료를 이용한 학제간 연구의 활성화
서원이 가지는 정신사적, 문화적사적 위상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9개 서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역사적 위상이나 현존 서원자료를 통해서 볼 때 학제간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2011년부터 <한국 유교문화 심층연구>의 일환으로 도산서원 자료를 활용한 학제간 ‘서원포럼’를 진행 중이다. 서원정신과 역사의 올바른 이해와 계승이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큰 과제라고 볼 때 이러한 사업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다만 각 서원별로 이러한 연구가 활성되기 위해서는 서원측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지자체 및 연구기관의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각 서원별로 이러한 연구가 활성화된다면 서원의 홍보, 교육자료로 적극 활용되어 그 문화사적 의미들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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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http://www.itkc.or.kr
한국학자료센터 : http://www.kostma.net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 http://e-kyujanggak.snu.ac.kr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 http://www.ugyo.net
서원기록자료 정리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토론
정 순 우
(한국학대학원 교수)
이 교수님은 그 동안 옥산서원이나 도동서원의 서원지 발간 작업을 주도하면서 서원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분류, 간행에 관한 매우 성공적인 사례를 제시해 주셨다. 이 교수님의 본 발표문도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하는 9개 서원의 자료 현황에 대해 전체적인 윤곽을 알려 주고 있어 추후 관련 작업에 매우 요긴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부록으로 첨부된 9개 서원의 상세한 자료 목록은 해당 서원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요긴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작업에 참여한 분들의 노고에 감사 드리면서 몇 가지 보완적인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1. 본문에서 밝혔듯이, 옥산․도산․병산서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원은 자료의 망실과 산질이 심한 상태이다. 비교적 충실하게 자료가 보관되었다고 하는 도산서원만 하더라도 자료의 편재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가령 교육관련 자료나 각종 제의 관련 자료도 시대적 변천과정이나 운영의 전모를 알기에는 매우 부실한 모습을 보여 준다. 병산서원의 경우에도, 남아 있는 고문서로는 서원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제대로 구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자료상의 어려움이 제대로 된 서원지의 발간을 어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이해된다. 따라서 지금 연구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일은, 어떻게 하면 지금 잔존된 자료들을 최대한 집적하여 최선의 선본을 제공하는가 하는 점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이번에 이 교수님 팀이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아직 손이 미치지 못한 미 발굴 자료들도 망라하여 수집하고 체계화 할 필요성이 있다. 예로 각 서원별로 관련된 인물의 사상, 행적, 교류양상 등을 알려 주는 다양한 사료들, 예로 아직도 산재되어 있는 문집자료나 일기자료 혹은 금석문 등에 대한 포괄적인 수집이 요청된다고 본다. 9개 서원의 경우, 지금 보고된 자료들만으로 서원지를 간행한다고 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또한 충실한 서원지 발간을 위해 학계가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혹은 해야만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길 바란다.
2. 본문에서 이 교수님은, 현재 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19세기 말에 적성된 각 서원의 院誌, 傳與記, 置簿類 등과 비교해보면 도산·옥산서원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80% 이상이 망실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관련 자료가 모두 남아 있어도 그 역사적 실체를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서, 잔존된 자료들을 가지고 서원의 역사적 실체를 구명하는 작업은 더욱 지난한 일이다. 이 교수님은 소수․옥산서원의 예와 같이 서원관련 자료가 배향자의 후손 또는 서원의 운영을 담당했던 원임들의 후손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충분한 개연성이 있으나, 과연 얼마나 충실한 자료들을 발굴할 수 있을 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논평자의 경험으로는 오히려 서당이나 서재 혹은 향교에 관련된 자료들에서 서원과의 관련성을 알려 주는 다양한 사례들이 목도된다. 새로운 사료의 발굴을 위한 전략은 어떤 것이 있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짧은 기간 내에 새로운 서원지를 작성하는 사업에 효율적으로 반영될 수 있을지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3. 서원 자료에 대한 아카이브 구축 사업은 정만조 교수님이 이끄는 국민대 팀에 의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바가 있다. 향후의 아카이브 구축 사업은 기존 국민대 팀의 성과를 바탕으로 진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 교수님이 파악하기에, 종래 국민대 팀에서 시행한 서원 아카이브 사업의 장, 단점은 무엇이고, 향후 동 사업을 계승하기 위해 학회 차원에서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4. 서원이 가지는 정신사적, 문화사적 위상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학제간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을 동의한다. 아직은 미온적인 문학부분이나, 철학, 미술사 분야 등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한 실정이다. 이와 함께 중국이나 서구에서의 관련 연구자들과의 교류도 좀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님이 제직하고 있는 영남대를 중심으로 이러한 연구센터가 설립되기를 희망한다.
서원기록자료 정리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토론
김 희 태
(전남도청 문화재전문위원)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잠정목록 신청서에는 10개 항목 등재 기준에서 문화유산 6개 항목 중 아래와 같이 4개 조항을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이 가운데 vi)항은 기록자료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고, 서원의 여러 부분[특히, 건조물]이 수리·정비되어 있는 현 시점에서 보면 ii)항과 iii)항도 기록으로 증빙되어야 한다. 재건축은 완벽하고 상세한 기록문건에 기초할 때만 진정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iv)항에 명시한 ‘유가(儒家)의 천인합일사상’ 역시 기록자료로 설명되어져야 한다.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있어 기록자료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ii) 기준 : 오랜 시간 동안 또는 세계의 어떤 문화 지역 안에서 일어난 건축,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 계획 또는 조경 설계의 발전에 관한 인간적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주어야 한다.
설정 : 한국의 서원은 유교 성리학이 조선 사회에 정착한 후, 성리학의 보급에 합당한 한국 특유의 서원 건축 형식을 형성하였다.
iii) 기준 : 문화적 전통, 또는 살아있거나 소멸된 문명에 관하여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
설정 : 한국의 서원 건축은 조선시대 사학(私學) 교육의 가장 전형적인 증거(testimony)를 보여준다.
iv) 기준 : 인류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잘 보여주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이어야 한다.
설정 : 한국의 서원 건축은 주변 경관과 조화하는 특유한 공간 유형(type)을 창출하였다. 서원의 전면(前面) 경관은 성리학자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산수 자연미의 전형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유가(儒家)의 천인합일사상을 반영한다.
vi) 기준 : 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을 보유한 사건 또는 살아있는 전통, 사상, 신념, 예술적. 문학적 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설정 :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지방 문화와 교화의 중심지로서 많은 문집과 문헌을 남겼다. 이들 서원은 향촌사회의 여론과 공론을 집약하는 지성들의 집회소 역할, 제향과 강학 기능을 통한 사회교육의 장소, 그리고 도서관과 출판기능을 수행하였다.
“한국의 서원”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계기로 서원 문화사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서원이 조선시대의 교육, 교화, 출판과 정치 사회 활동의 중심지로서 그 정신과 현장, 자료에 대하여 연구·활용·계승하는 일도 우리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문화재 관리 현장에 종사 해온 필자로서는 더더욱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터라,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을 추진하고 있는 관계 기관과 학계 제현께 감사를 드린다.
이수환교수의 <서원 기록자료 정리의 현황과 과제>는 서원자료의 전승 상태, 서원자료의 정리 현황, 향후 과제와 추진 방안을 정리한 것이다. 다양한 서원 자료 가운데에서도 그 중심이라 할 기록자료에 대한 현황·문제점·과제를 제시하여, 앞으로 세계유산추진은 물론 서원문화의 보존·전승·활용에 시금석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교수의 자세한 정리를 통하여 많은 공부가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논지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토론을 하기 보다는, 함께 고민해야할 방향을 제언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물론 이수환교수의 제안 내용과 중복된 것도 있다.
1. 서원자료의 종합화, 표준화, 목록화, 연표화
서원에 대한 개별 조사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를 종합화 할 필요가 있다. 기초조사부터 진행해야 된다는 어려움도 있지만, 시일이 가더라도 집성해야 한다. 서원지 발간과 아카이브로 제안된 내용에도 있다. 그리고 다양하면서도 개별적인 대상을 종합화하기 위해서는 표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종합화된 자료를 비교 연구할 수 가 있고, 세계유산이 추구하는 인류적 활용도 가능하다. 또한 목록화와 연표화도 필요하다. 연계 검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연표화는 한국의 서원 기록자료를 횡으로 종으로 연계하여 세밀하게 연표를 작성해 봄으로서 시대, 지역, 유형, 인물, 자료의 연계성을 찾아 내 보자는 것이다. ‘연속유산’으로서의 진정성을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2. 보존관리체계의 확대와 관련 법규 정비와 적용
보존관리나 법규정비는 기록자료 차원에서만 예시해 본다. 필암서원 기록 자료 조사현황을 정리하다가, 보물 제587호로 지정된 필암서원 문적의 범주에 들어갈 문적이 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필암서원 배향인물인 하서 김인후의 교서, 교지, 서경장, 치제문 등은 필암서원과는 별도로 문중에 보관되어 오다가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되어 있다. 그리고 서원 제례는 무형의 유산이지만 홀기, 제관분정기, 제수 치부록, 치제문, 고유문, 제기 등은 지금의 문화재관련 법규로 치자면 유형문화재나 민속문화재[제기류]이다. 다른 서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문화재로 지정된 기록자료와 유사한 대상이 더 있는가 하면, 분산되어 있고, 문화재의 유형도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따라서 두가지를 제안해 본다.
하나는 동종(同種) 전수 조사 형식으로 문화재 지정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미 문화재청에서 초상화, 불교조각, 고지도, 옛글씨[서예] 등을 대상으로 종별당 1~3년간에 걸쳐 문화재 조사와 지정(보물)을 추진한 사례가 있다. 이를 확대하여 서원유물 이라는 틀에서 추진했으면 싶다.
다른 하나는, 기록자료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문화재 분류체계인 유형문화재, 민속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을 뛰어 넘는 법규로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민간 산실이라는, 조선의 유교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이었던 ‘서원 문화 구성요소’가 현행 문화재보호법의 틀에서는 건조물은 기념물[사적, 시도기념물]과 유형문화재[국보, 보물, 시도유형문화재]로, 제례는 무형문화재로, 제례의 구성 요소인 제기(祭器)나 홀기(笏記) 등은 민속문화재로, 전적이나 고문서·목판 등은 유형문화재[국보, 보물, 시도유형문화재]로 각각 나뉘어 지정 관리됨으로서 다양하면서도 종합적인 구성요소가 해체화, 개별화 되어 버린다는 맹점이 있다. 하여 ‘서원문화유산’이라는 큰 틀에서 공간과 시간, 인간과 자료를 아울러 관리 할 수 있는 단일체계로의 개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3. 한국의 서원 [기록]자료총서 집대성과 연구총서 발간
조사정리 자료는 보존되고 활용되어져야 한다. 특히 기록자료는 분산, 산일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진행될 필요도 있긴 하지만, 총서 형태로 집대성 되어야 한다. 자료 총서만이 아니라 연구총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서원 [기록]자료총서를 500책즘 계획하고 연구총서를 100책쯤 계획하여 연차적으로 힘을 모아갈 필요가 있다. 국가와 지자체, 학계와 민간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는 등재가 종착역이 아니라 등재를 통한 인류의 활용과 후손에의 전승이 전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4. 연속 유산으로서의 세계유산 기본자료 활용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전국 6개도 8개 시군에 소재한 9개 서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속유산’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다. ‘연속유산’이란 측면에서 보면 ‘개별적으로 중요한 몇개 서원의 전국 분포’라는 단순성이 아니다. 따라서 서원 기록자료를 포함한 개별 서원 자체의 특성과 가치도 중요하지만 연계되는 가치와 특징도 찾아내야 한다는 명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왜 ‘연속유산’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자료는 결국 기록 자료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민간 부문 산실로서 연계성이라는 큰 틀은 있지만, 그것이 시기별로 서원별로 연속성이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연속유산’이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자료로서 고증되어야 한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계유산 추진에 있어서 기록자료의 중요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서원이나 서원 기록자료는 현재 국가 사적이나 국보·보물·시도 유형문화재 등으로 지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 보존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존관리 차원에서도 단일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런데 연속유산으로서 중요 한 것은 현재의 보존관리도 중요하지만, 생성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진정성이 있고 그것이 어떻게 연계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자료로서 고증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세계유산 협약을 위한 운영 지침(가이드라인)>의 진정성 설명 가운데 다음 항목이 참고가 된다.
유산의 가치를 이해하는 능력은 이 가치에 대한 정보의 원천이 신뢰성과 진실성을 갖추고 있다고 이해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정보의 원천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문화유산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특성과 이후 과정에서 보유하게 된 특성, 그리고 이들의 의미와 연계하여 진정성의 전 국면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 필수적 토대를 구성한다.
이수환 교수가 제안한 과제나 각 서원별로 기록자료를 정리하면서 제안한 과제, 그기록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서원자료의 종합화·표준화·목록화·연표화, 보존관리체계의 확대와 관련 법규 정비와 적용, 한국의 서원 자료총서 집대성과 연구총서 발간 등은 서원 기록자료의 정리 과제이다. 나아가 세계유산 등재와 인류적 활용이라는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의 서원”이 ‘연속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안고 가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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