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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미(龜尾), 조선 초기의 농업정책을 기초한 학자들을 배출하다

장안봉(微山) 2013. 3. 10. 20:14

                       구미(龜尾), 조선 초기의 농업정책을 기초한 학자들을 배출하다

                                                                                                                                     이택용/경북정체성포럼 선비분과위원

우리나라에는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농자지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이라는 격언이 있다.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며, 특히 세종대왕은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食爲民天)' 라고 말하면서 농업을 장려하고 발전시켰다.

구미는 조선시대에는 선산부(善山府)라고 칭했다. 낙동강이 동서로 중앙을 관통하여, 농토가 비옥하고, 수리시설과 물산이 좋아서 살기 좋은 고을로 이름이 자자했으며, 인물이 많아 이중환선생은 택리지에서 조선인재 반은 영남(嶺南)에 나고, 영남인재 반은 선산(善山)에서 난다고 했다.

특히 조선 초기에는 인물이 많았으며, 고려의 삼은(三隱)에 길재(吉再), 생육신에 이맹전(李孟專), 우리나라 최초의 외교관 박서생(朴瑞生)과 김극유(金克柔), 농사직설의 편찬하고 서문을 쓴 정초(鄭招), 사육신이며 권농교서의 초안자 하위지(河緯地), 영남사림의 종조 김종직(金宗直) 등 인물의 연수(淵藪)이었다. 특이 한 것은 세종대왕의 농업정책을 입안하고 개혁한 인물이 우연하게도 선산의 인물들이다.

1428년(세종 10)에 일본을 처음외교관으로 다녀 온 사람은 정사 박서생과 종사관 김극유이다. 박서생은 세종대왕에게 올린 상소에서 일본의 선진농업을 열거하면서 관개개선의 혁신을 주창하고, 일본식 양수기 즉 수차(水車)와 물레방아의 도입을 위해서, 몇 번이나 만들어 보급하자고 건의했다. 또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많은 수확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관개시설이 충분하지 않던 우리나라의 논은 대부분이 천수답이라고 하여 하늘에 의존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그 생산력 또한 미약하였다. 따라서 관개시설은 농업을 진흥하고 국가를 부유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일본에서 재배되는 사탕수수의 도입을 주장하는 등 농업생산력을 증대시키고, 농민의 생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함으로서 중농정책(重農政策)을 위한 노력에 선각자의 모습을 보였다.

1429년(세종 11)에 정초는 세종대왕의 지시로 최초의 농업지침서인 농사직설(農事直設)을 편찬하고 서문을 작성하였다. 서문에, 농사는 천하의 대본(大本)이다. 예로부터 어진 임금은 이를 힘쓰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다. 삼가 생각하건대 태종과 정종께서 일찍이 유신(儒臣)에게 명하시어 옛날 농서(農書)로서 절실히 쓰이는 말들을 뽑아서 향언(鄕言)으로 주(註)를 붙여 판각(板刻) 반포하게 하여, 백성을 가르쳐서 농사를 힘쓰게 하셨다. 우리 세종대왕께서는 명군(明君)을 계승하여 정사에 힘을 써 더욱 민사(民事)에 마음을 두셨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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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4(세종 26)에 하위지는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농사를 장려하는 권농교서(勸農敎書)를 지어 올려서 반포하도록 하였다. 즉 내가 생각하건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농사라는 것은 의식의 근원으로 국정에 있어 무엇보다 먼저 하여야 할 것이다. 오직 그것이 생민의 목숨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천하의 지극한 노고를 겪게 되는 것이니, 윗사람이 성심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백성으로 하여금 부지런히 농사에 힘써서 생동감 있는 즐거움을 이루게 하겠는가. 지금의 수령들은 묵은 습관에 젖어서 비록 파종할 시기를 당하더라도 망종이 아직 멀었다고 하면서, 전답의 소송(訴訟)에 관한 것을 바로 처결하지 않으며, 곡식 종자를 꾸어주고 식구의 양식을 진휼하는 것도 항상 서두르지 않고 항상 느리게 하여 제때를 잃게 한다. 비록 급히 서둔다 해도 수령은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관찰사는 호조에 공문을 내어 정부에 보고하고, 정부는 사유를 갖추어 위에 아뢰어, 서로 왕복하는 동안에 망종(芒種)이 지나버리는 일도 있다. 혹은 갈고 심는 적기를 알지 못하고 한갓 권과(勸課)하는 명목만 힘써서 파종하는 것을 너무 일찍 독려하기 때문에 싹이 살지 못하여 도리어 농사를 망치게 하는 일도 있다. 혹은 참으로 절기의 이르고 늦음을 알지 못하여 계획이 소홀하여 사기(事機)를 잃는 경우도 또한 있다. 이것이 어찌 근심을 나누고 백성을 사랑하는 본의라 하겠는가라고 썼다.

구미(선산)는 조선 초기부터 농업의 최고 선진화 고을로서 농업에 관한 학자가 많았는지? 어떻게 선산고을에 박서생, 정초, 하위지 같은 분들이 세종대왕의 지시 아래 농업의 장려하고 개혁하는 정책에 참여한 것은 우연이 아니고, 선산이 농업의 중심지였다고 본다. 지금도 선산들과 해평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기름진 땅과 풍부한 햇볕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품질 좋은 쌀의 생산지다. 곡창지대로서 우렁각시쌀 묻지마쌀은 화학비료와 농약 대신 순수한 우렁이농법으로 생산한 쌀이며, 선산쌀 금오산청결미쌀 도담미쌀 흑두루미쌀 오매불망쌀 등 좋은 쌀을 생산하고 있다.

 

 

 

 

 

 

 

 

 

 

 

출처 : 이택용의 e야기
글쓴이 : 李澤容(이택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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