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강원도)

[스크랩] [영월] 김삿갓 유적지

장안봉(微山) 2013. 2. 27. 03:37

1. 생애

난고 김병연은 1807년 경기도 양주에서 아버지 김안근과 어머니 함평이씨 사이의 2남으로 출생하였으니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본관은 안동김씨(휴암공파 24대)이며 속칭 김삿갓(金笠)이라고 부르는 해학과 풍자의 가객이요 시선이다.

권문세족인 안동김씨 가문이었던 집안이 몰락하게 된것은 조부인 선천부사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을 평정하지

못하고 항복해 역적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 조부 김익순은 무과에 급제하여 1811년 평안도 선천부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홍경래.우군칙이 중심이 되어 1811년 12월 농민반란을 일으켜 평안도 가산.박천.곽산.정주를 점령하고 북진을 하는데 이때 선천부사 김익순은 홍경래의 반란군을 진압하지 못하고 도리어 반란군에 투항하여 반역에 가담하게 된다. 

 1812년 4월 정주에서 반란군은 진압이 되었고 김익순은 능지처참을 당하고 가문은 멸족처분을 받았다.

그리하여 노비 김성수의 도움으로 황해도 곡산으로 숨어살던중, 김익순에 대한 죄는 본인에게만 묻고 가문은

 폐족(멸족->폐족)하는 것으로 결정이 완화 되면서 경기도 광주, 이천을 거쳐 영월로 옮겨 숨어 살게된다.

영월도호부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논 정가산 충절사 탄 김익순죄 통우천(論 鄭嘉山忠節死 嘆 金益淳罪 通于天)"-가산군수 정시(鄭蓍)가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충절을 논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를 탄 하노라) 시제로 글을써서 장원을 하였다. 그후 어머니로 부터 집안 내력을 듣게되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족의 집안이라는 세상멸시에 대한 자괴감으로 처자식을 남겨둔채 홀로 방랑의 길로 나서게 된다.

이때부터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삿갓을 쓰고 방랑을 하게 되었으니 속칭 김삿갓, 김립(金笠)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방랑의 생활을 시작하여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팔도강산을 떠돌아 다니면서 서민들의 애환과 시대의 울분을 풍자와 해학이 담긴 시로써 노래하였다.  22세에 가출하여 2년간 떠돌아 다니다가  24세에  집으로 돌아와 익균을 낳고는  다시 집을 나서 행운유수와 같이 평생을 떠돌아 다니다가 1863년 3월 29일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정시룡(丁時龍-창원정씨)의 집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니 그의나이 57세이다. 3년후 차남 익균이 영월군 하동면(현재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이장하였다.  세월이 흘러 김삿갓의 묘가 실전되어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것을 1982년 향토사학자  故 정암 박영국(靜巖 朴泳國) 선생의 땀과 연구로  발견이 되고 현재에 이른다.

 

 

 

 

 

 

 

 

 

 

 

 

 

 

 

 

 

 

 

 

최상의 락으로 사는 돌아온 김삿갓-달마도를 선물받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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