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본관 고령(高靈). 필명 금협산인(錦頰山人)·무애생(無涯生). 호 단재(丹齋)·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정생면 익동 도림리(현재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신광식(申光植)이며 모친은 밀양박씨이다. 할아버지 신성우(申星雨)로 부터 한학을 익혔으며 1897년 신기선(申箕善)의 추천으로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이남규(李南珪)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에 나갈 뜻을 포기하고《황성신문(皇城新聞)》에 논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주필로 활약하였으며, 내외의 민족 영웅전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힘썼다.
1907년 항일결사조직인 신민회(新民會)와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등에 가입·참가하고, 이와 관련하여 다수의 글을 발표하였다. 이듬해 순 한글 《가정잡지》를 편집·발행하였다. 또한 《대한협회보(大韓協會報)》 또는 《기호흥학회보(畿湖興學會報)》 등에 논설을 발표하고 1909년 친일조직인 일진회(一進會) 성토에 앞장섰다.
1910년 4월 신민회 동지들과 협의 후 평안북도 오산학교를 거쳐 중국 칭다오[靑島]로 망명, 그곳에서 안창호(安昌浩)·이갑(李甲) 등과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조직된 항일단체인 권업회(勸業會)에서 발행하는 기관지인《권업신문(勸業新聞)》에서 주필로 활동하다가, 1914년 이 신문이 강제 폐간되자 그 해 남북 만주와 백두산 일대 부여, 고구려, 발해 유적지 등 한국 민족의 고대 활동무대를 답사하였다. 1915년 상하이[上海]로 가서 신한청년회(新韓靑年會) 조직에 참가하고, 박달학원(博達學院)의 설립하여 민족교육에도 힘썼다. 베이징으로 건너가 비밀결사단체인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을 창단하여 단장이 되었고, 신대한청년동맹(新大韓靑年同盟) 부단주(副團主)가 되었다.
1919년 상하이에서 거행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하였으며, 의정원(議政院)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나, 한성임정(漢城臨政) 정통론과 이승만 배척운동을 내세워 임시정부 공직을 사퇴하고 주간지 《신대한(新大韓)》을 창간하여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과 맞서기도 하였다. 당시 임시정부는 소수의 의견만으로 소집되어 불완전한 상태이며, 항일운동을 전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조직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승만은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주장하였기에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부적절한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서 민중의 폭력혁명으로 독립의 쟁취를 부르짖고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는 창조파(創造派)의 주동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안창호, 이동휘를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 개조파와 대립하여 임시정부의 존폐문제를 논하였으나 결렬되고 말았다. 다시 베이징[北京]으로 건너가 항일비밀단체인 다물단(多勿團)을 조직에 가담하여 지도했으며, 본국의 《동아일보》,《조선일보》에 논설과 역사논문을 발표하였다.
1925년경부터 무정부주의를 신봉하기 시작, 1927년 신간회(新幹會) 발기인, 무정부주의 동방동맹(東方同盟)에 가입, 1928년 잡지 《탈환》을 발간하고 동지들과 합의하여 외국환을 입수, 자금 조달차 타이완으로 가던 중 지룽항[基隆港]에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旅順] 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옥사했다. 적과 타협없이 독립투쟁을 전개하는 동안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 이와 같은 견해가 곧 그의 역사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고조선(古朝鮮)과 묘청(妙淸)의 난(亂) 등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고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사학(近代史學)의 기초를 확립했다.
저서에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艸)》 《조선사론(朝鮮史論)》 《이탈리아 건국삼걸전(建國三傑傳)》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이순신전(李舜臣傳)》 《동국거걸최도통전(東國巨傑(崔都統傳)》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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