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압록부와 장령부
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
신주神州
신주는 압록부 서경성이며 고려고국이다. 광륜 이십리의 석성이라고 하였다. <신당서>高麗故地為西京,曰鴨淥府,領神、桓、豐、正四州...<요사/지리지>淥州,鴨淥軍,節度。本高麗故國,渤海號西京鴨淥府。城高三丈,廣輪二十里,都督神、桓、豐、五四州事。故縣三: 神鹿、神化、劍門,皆廢。大延琳叛,遷餘黨於上京,置易俗縣居之。在者戶二千。隸東京留守詞。統州四、縣二: 弘聞縣。神鄉縣。
이미 앞에서 밝힌대로 신주성은 졸본성이며 황성이고 창도현 천주진으로서 졸본성 편에 자세하다.
압록이 조공도라는 것은 발해 후기 해도를 의미한다. 鴨淥,朝貢道也。
옛신주神州
압록부성은 처음에 임황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뒤에 거란이 발호하여 고려고국으로 후퇴했을 것이다.
고구려 영양왕 때에 화룡和龍, 분주汾州, 환주桓州, 풍성豊城, 압록鴨綠은 임황臨潢에 속했다고 하였다.
이때의 임황성이 발해 초기 압록성이다.
풍성은 고구려 풍성이고 풍주는 요나라가 세운 것인데 발해 풍주 위치로 고려된다.
압록부성이 임황성이었을 것이다. 요나라 임황부성이 지어지기 전에 발해 임황성은 개로현 남쪽 굉성(宏城)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풍성은 노합하 연안에 있었다.
옛환주桓州
본래 환주는 화룡이었던 조양시와 나만기진 사이로 고려된다.
고구려 영양왕 때에 화룡和龍, 분주汾州, 환주桓州, 풍성豊城, 압록鴨綠은 임황臨潢에 속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풍성은 풍주 부근이었으므로 분주와 환주는 조양시와 나만기(발해 풍주) 사이가 되는데 그 중간에 오한기진이 있다.
오한기 敖漢旗의 살리파향 산성자산성이 고구려 환나부(桓那部) 위치다.
환주 아래 조양으로 가는 사가자진에 분주(汾州) 고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분주는 네 강의 수계가 갈라지는 곳이다.
사가자진에는 서쪽에는 대형 적석총 고분들이 있다. 신석기 시대 제사 유적도 있다.
사가자진 서남쪽 노호산에는 장성 유적이 있다. 고구려 천리장성이 오한기진부터 여기까지 이어져 있다. 즉 부여성이었던 천산진에서 서요하를 건너오한기진을 지나서 사가자를 지나 조양을 지나 금주시 해북을 지나는 천리장성이 있었다.
환주桓州
거란족의 발호로 동쪽 내지로 옮겨온 환주는 고려중기 도성이고 환도성이다.
산상왕이 짓고 묻혔으나 고국원왕 때에 불탔다. 한 대산에 자리잡은 동성이 주성이다. 桓州。高麗中都城,故縣三:桓都、神鄉、洪水,皆廢。高麗王於此創立宮闕,國人謂之新國。五世孫釗,晉康帝建元初為慕容皝所敗,宮室焚蕩。戶七百。隸淥州。在西南二百里。
이는 산상왕의 환도성편에 자세하다.
옛풍주豊州
풍주는 요나라 기록에 의하면 나만기진(奈曼旗鎭) 부근에 있었다. 나만기진에서 구려하로 고려되는 교래하를 건너 발해 풍주가 있었던 것으로 고려된다.豐州。本遼澤大部落,遙輦氏僧隱牧地。北至上京三百五十里。戶五百。
[한단고기]에서 풍성豊城으로 나오는 곳에서는 동남으로 생겨났다.
고구려 영양왕 때에 화룡和龍, 분주汾州, 환주桓州, 풍성豊城, 압록鴨綠은 임황臨潢에 속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풍성이 풍주였으므로 분주와 환주는 화룡이었던 조양시와 나만기진 사이로 고려된다.
풍주豊州
한편 풍주는 발해 반안군에 옮겼다. 豐州。渤海置盤安郡,故縣四:安豐、渤恪、隰壤、硤石,皆廢。戶三百。隸淥州。在東北二百一十里。
신주 동북 210리가 되는 새로운 풍주 위치는 이통현이며 동모산성 아래다.
반안군 동모산은 본래 대야발이 반안군왕으로서 책봉받아서 지키던 곳이고(단기고사 서문), 대야발의 4세손인 대인수 황제가 즉위하면서 선조의 땅 반안군을 일개 군에서 주로 승격시킨 것으로 고려된다.,
옛정주正州
정주는 [한단고기桓檀古記-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에서 발해 정주正州는 의려국依慮國 고지라고 하였다. 의려국은 선비국과 고구려국 사이로 추정되는데 공손탁의 요동국 북쪽일 것이다. 고륜기진庫倫旗鎭 서쪽에 육가자향은 의하依河와 가까이 있다. 육가자는 부여 도성 영고탑과 같은 의미다. 그 육가자향 옆에 구가자 고성이 있는데 바로 의려국도이고 발해 정주다.
정주正州
정주가 발해 후기에 비류고지로 옮겨졌는데 거리로 추정하면 내몽과 과이심좌익후기현 소재지인 감기하(甘旗下)이다. 正州。本沸流王故地,國為公孫康所並。渤海置沸流都。有沸流水。戶五百。隸淥州。在西北三百八十里。統縣一: 東那縣。本漢東耐縣地。在州西七十里。
장령부長嶺府
하주瑕州
장령부성은 고탐의 <도리기>에서 영주로부터 고개모신성을 지나서 상경으로 가는 1500리길 도중에 있었다.
현재 장령현이 홀한성과 부여성 이전이다. 따라서 장령성의 원래 위치로 비정된다. 曰長嶺府,領瑕、河 二州。長嶺,營州道也。
하주瑕州2
대인수황제 때에 장령부는 난하의 동쪽으로 옮겨갔다.
중국과의 국경에서 장령부를 둘 곳은 조양시밖에 적절한 곳이 없다.
조양시가 하주瑕州였을 것이다. 임금왕(王)이 들어간 하瑕주의 의미는 왕도라는 뜻으로 고려되고 화룡성은 본래 연나라의 수도였다.
하주(河州)2
하주(河州)는 북표시 흑성자(黑城子)다. 고구려 하성(河城), 발해 하주(河州), 요나라 천주(川州)를 거쳐 본래 하성河城과 중국에서 발음이 비슷한 흑성으로 바뀐 것이다.
처음 하주河州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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