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란의 상주 순국열사(殉國烈士)를 기리다! 충렬사(忠烈祠)
백두대간 밤원숭덕지맥에서 동(東)으로 가지를 친 노음산(露陰山:728.5m)과 천봉산(天峰山:435.8m)을 지나 북천 변에 잠긴 자산(294.5m)자락 아래 상주 시내를 한 눈에 가로질러 저 멀리 갑장산(甲長山:805.7m)을 바라보고 있는 「충렬사忠烈祠」는 상주의 성지(聖地)로 만산동 699에 소재합니다.
상산지에는 「忠烈祠: 在州北三里 肅廟戊寅創建享判官權吉統制使鄭起龍察訪金宗武翰林全克恒舊有戶長朴傑從享傍祠」와「忠義壇: 在州西三里 正廟癸丑設壇 賜額享文烈公尹暹佐郞贈都承旨李慶流校理贈直提學朴箎義士贈執義金俊臣義士金鎰有吏卒壇將士壇有 御製碑」라 적고 있지요.
이곳은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로 전형적인 배산임수형(背山臨水形)입니다. 1914. 5.10 상주목의 이향정(二香亭)을 옮겨 침천정(枕泉亭)이라 개명했으며, 이 亭의 서쪽에 호장 박걸의 단(壇)과 판관 권길의 사의비(死義碑)가 이건된 지역과 사근도 찰방 김종무 단소를 포함하여 1988년 임란북천 전적지기념물로 지정하였답니다.
지정된 배경은 1592. 4.13 부산가덕도 연대봉에서 최초로 발견 보고된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여 성이 무너지고, 이어 파죽지세로 북진, 왜군의 주력인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끄는 17,000여명의 조총으로 무장한 대 부대와 조선의 중앙군 순변사 이일 장군과 의병이 뜻을 모아 최초로 왜군과 접전한 장소로, 당시 목사 김해는 이미 도주한 상태라 상주목(牧)은 판관 권길과 호장 박걸이 동분서주하여 모병한 800여명의 농민군에 불과 하였으나, 판관 권길과 호장 박걸, 종사관 윤섬· 이경류· 박호등의 경군(京軍)과 사근도 찰방 김종무, 의병장 김준신 등은 병들과 함께 죽기를 맹세하고 혈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순절하고 순변사 이일은 단기(單騎)로 탈주하였다 한다. 창의장 김일 은 5월 17일에 순국 하였다. 이 때 이곳은 시산혈하(屍山血河)를 이루어 후세인이 이 산을 철환산(鐵丸山)이라 하고, 이들이 빠져 죽은 증연(甑淵)을 학사담(學士潭)이라 불렀다. 이로 인하여 선조는 상주전역에 일 년간 복호(復戶)를 내려 상주는 왕의 은전(恩典)을 입기도 하였다.
당시 충의단은 무양동에 있었으나 도시발전과 건물의 퇴락으로 현재의 장소(연원동 140-2)로 이건하였다. 충렬사(忠烈祠)는 임란북천전적지가 1988년 지방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되어 1990년부터 정화사업을 실시함에 따라 북천전투에 참가하여 전원 순국한 800여명의 이름 없는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함이다. 임란북천전적지 입구를 들어서서 태평루를 지나 진입하면 임란전적기념비 옆의 광장에 이른다. 1990~1991년에 사당과 재실, 비각과 전적비, 내삼문과 외삼문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충렬사의 외삼문인 경절문(景節門)으로 오르는 계단 왼편에 5기의 큰 비석이 서 있는데, 비명(碑銘)은 좌에서 우로 壬亂忠臣 南原尹公諱暹殉國碑, 朝鮮忠臣 韓山李公慶流殉國碑, 朝鮮忠臣 密陽朴公諱箎殉國碑, 朝鮮義士 淸道金公諱俊臣殉國碑, 朝鮮義士 商山金公諱鎰殉國碑로 명문이 새겨져 있네요.
계단을 올라 경절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자양재와 오른쪽에 임란기념관이 있으며, 내삼문인 충의문(忠義門)을 오르기 전에 비각(碑閣)이 있는데, 이곳에는 두기의 비(碑)가 서 있지요. 왼편은 창석 이준이 撰하고 1698년에 세운 “判官權吉死義碑”를 이곳으로 이건(移建) 하였으며, 오른쪽은 “충신의단비”로 충의단에 세웠는데, 충렬사가 건립됨에 따라 복제(複製)한 것을 세운 것이다.
충의문을 들어서면 시야가 더 넓어지는데, 사당은 3칸 목조와가 맞배지붕으로 편액을 「忠烈祠」로 걸고, 좌에서 우로 掌樂院正 朴公(掌樂院正에 贈職), 執義 金公(號는 節谷, 본관은 淸道. 司憲府執義에 贈職), 都承旨 李公(字는 長源, 본관은 韓山. 承政院都承旨에 증직), 永豊君 權公(字는 應善, 본관 安東. 永豊君에 封해지고, 吏曹判書에 贈職), 文烈公果齋 尹公(字는 汝進, 號는 果齋, 본관은 南原. 龍城府院君에 封해지고, 領議政에 贈職, 諡號는 文烈이다), 吏曹判書 金公(字는 毅伯, 본관은 善山. 이조판서로 贈職), 直提學 朴公(字는 大建, 본관은 密陽. 弘文館直提學 贈職), 執義 溪村 金公(號는 溪村, 본관은 商山. 贈 司憲府執義), 殉節無名烈士 의 임란 순국열사 9위(位)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993. 5.30 첫 고유제를 시작으로 이 때 부터 당시 1592. 4.25(음력)이 양력 6월4일이라 매년 이 날에 “상주충렬사제전위원회(위원장: 김재궁) 주관으로 상주시의 기관장을 비롯한 다수가 참석하여 향을 사르고 맑은 술로 당시의 전투에서 순절한 고귀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는 상주임란의 역사성을 담고 있는 聖地이다. (참고: 상산지, 상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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