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스크랩] 구중궁궐 여인들의 한(恨)이 서린 화단 `화계`.풍수와 정원 /박경자의 한중일 정원 삼국지

장안봉(微山) 2016. 10. 2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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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의 한중일 정원 삼국지

구중궁궐 여인들의 한(恨)이 서린 화단 '화계'

 

중국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왕푸징 거리에서 인력거를 타고 조금 가다 보면 오래된 골목길로 유명한 후통(胡同)과 비교적 보전이 잘된 사합원 주택을 만난다. 이곳은 친근한 라오베이징(老北京)의 옛 정취가 배어 있는 곳이다.

 

베이징의 주택은 네 개의 건물이 그 주위를 둘러싸는 사합원(四合院) 형태다. 가운데 중정(中庭)이 있어서 화단을 만들고 모양 좋은 돌 등을 배치했다. 사합원은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형 주택이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사합원은 한(漢)대부터 정착된 상류계층의 주거형식이다.

 

 

중국 당대 귀족 저택

 

 

명기1959년 시안시 서쪽 교외의 당(唐)대 묘지에서 출토된 건물 모형이 있다. 네모난 마당 북쪽 후원(後院)에는 팔각정과 석가산(石假山)과 연못이 있다. 정원 각각이 잘 조화돼 있고 배치가 잘 짜여 있는 중정이 있는 당대 귀족 호화 저택의 축소판이다.

원(元)대에 베이징을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동방견문록에서 ‘저택이 자리한 부지는 모두가 정사각형을 이루도록 직선으로 구획되었다’고 사합원을 표현했다. 세계 어느 나라의 건축에나 중정(中庭)은 있다. 멀리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동양권의 중국, 일본에서 대부분 주거형식은 모든 시대에 중정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중정은 방어와 채광, 관리에 용이하다.

 

 

중국 공왕부 사합원 마당

 

조선시대 주택 마당은 신분계급에 따라서 엄격하게 나누어진다. 서민주택 마당은 앞마당이 주가 되고 타작마당, 동네 공동 작업장으로 쓰였다. 중류주택 마당은 독립된 건물이 늘고 앞마당, 뒷마당, 옆마당 등 몇 개의 마당이 있다.

 

상류주택에서 마당에 정원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는데 사랑마당과 별당, 별채에 정원을 만들었다. 사랑마당에는 담장주변에 꽃이 아름다운 초화류와 기이하게 생긴 괴석을 놓기도 하고, 연못을 파거나 장소가 적당치 않으면 석연지(石蓮池)를 놓고 연을 즐기기도 했다. 별당 앞에는 꽃이 화사한 과일나무 등을 심었다. 그리고 별채에는 연못을 중심으로 정원을 꾸몄다.

 

우리나라 건물은 ‘산을 등지고 물을 가까이한다’는 배산임수(背山臨水)에 따라 후원은 언덕이 된다. 이 언덕에 궁궐에서는 장대석을 쌓고 민가에서는 자연석을 쌓아 계단형식의 화단을 만들었는데, 이 화단이 ‘화계(花階)’다.

 

 

경복궁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 정원 화계 전경.

 

 

화계에는 화초와 과수를 심었다. 경복궁의 아미산정원과 창덕궁의 주합루나 낙선재에는 아름다운 화계가 있다. 궁궐의 화계에는 화초나 과수 이외에 괴석과 석조, 장식 굴뚝 등을 설치했다. 경복궁에 있는 왕비 침소인 교태전 뒤에 있는 아미산 화계는 그 중 으뜸간다.

 

화계는 한번 궁궐에 들어오면 죽어서 관으로 나갈 때까지 오직 궁중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구중궁궐(九重宮闕) 속의 여인의 한이 서린 곳이다.

 

아미산 화계에 놓인 석조에 ‘붉은 노을을 담는 못’이라는 뜻의 낙하담(落霞潭)이나, ‘보름달을 담는 못’이라는 뜻의 함월지(涵月池)를 새긴 것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본다’는 소중현대(小中顯大)라고나 할까, 이곳에서 작은 곳에 우주를 담아 즐긴 조상의 풍류를 엿볼 수 있다.

 

일본에서 ‘정(庭)’이라고 하는 글자의 고자(古字)는 ‘정(廷)’으로 궁전의 앞뜰(前庭)을 말한다. 이 정(廷)에 부속하는 원(園)이 정원(庭園)이다.

 

고대 일본 정원은 동아시아정원과 마찬가지로 건축과 주로 건물의 남측에 만들어지는 뜰(庭)이며 의례와 연회를 베풀던 장소였다. 이러한 의식의 배경이 됐던 원(園)에는 자연 풍물이나 명승을 도입해서 넓은 의미로 경치를 축소해서 나타내는 축경(縮景)을 만들었다.

 

일본 헤이안시대 정원을 묘사한 그림

 

 

일본의 헤이안 시대에 쓴 사쿠테이키(作庭記)에는 주 건물에서 연못까지의 남쪽 뜰에서 다양한 행사와 뱃놀이를 했다 한다. 당시 정원에는 돌, 다양한 식생, 샘, 연못, 섬, 계류, 다리, 폭포 등이 있었다.

 

중세로부터 근세에 걸쳐 쇼인즈쿠리(書院造) 건축의 등장과 함께 의례나 연회의 규모가 축소되고 그 장소도 실내로 옮겨졌다. 정원은 실내의 특정 장소에 앉아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감상의 대상이 된 정원 중에서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은 담장이라는 인공적 틀을 설치하고, 그 안쪽에 모래나 돌을 깔고 주변에 다듬은 나무들을 배치해 자연의 추상경을 나타내며 마음의 풍경을 그리려고 했다.

 

담장 너머로 풍경을 조망하면 또한 이 풍경이 정원의 일부로 느끼게 된다. 조망을 구체적으로 정원에 끌어들인 것이 근세 정원의 차경(借景)이다. 이 차경수법은 특히 한·중·일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박경자의 한중일 정원 삼국지

풍수와 정원…나무 한 그루로도 팔자 바뀐다고 믿어

 

중국 청대 문인 조문식(曺文植)이 쓴 시 ‘서체(西遞)’는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오랜 역사를 갖은 안후이성(安徽省) 남부 휘주 마을을 바탕으로 쓴 이 시는, 풍광이 아름답고 풍수이론을 완벽하게 갖춘 마을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靑山雲外深 청산은 구름 밖으로 깊어가고

白屋煙中出 하얀 집들은 연기 중에 나타나는데

雙澗左右寰 두 줄기 개천은 좌우로 흘러가고

群木高下密 나무숲들이 산중에 빽빽이 들어찼구나

曲徑彎如弓 산골 오솔길은 구불구불 돌아가고

連墻若比擳 집 둘레 담장들이 총총 들어서 있는데

自入桃源來 무릉도원에 들어서 보니

墟落此第一 촌부락 중 여기가 제일이구나.

 

풍수는 원래 고대 중국에서 유래했다. 풍수는 자연 세계가 작용하는 법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사람들의 책략을 정하는 점술도 포함된 광범위한 복합적 개념이다. 당시 사람들은 풍수원리에 따라 만든 정원은 안식처를 제공하고, 풍수원리를 무시하고 어겼을 경우 재앙을 준다고 믿었다.

 

 

중국의 풍수지침서

 

중국인들은 정원을 만들 때 풍수이론을 바탕으로 우선 좋은 방향을 선택하고 나서 선호하는 숫자로 나무, 돌 등을 홀짝수 배열했다. 정원에 나무를 심을 때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 백호, 남쪽에 주작, 북쪽에 현무로 동서남북에다 사신상응(四神相應)을 배치했다. 방위 별로 기피 해야 하는 나무도 있었다. 물 흐름은 방향에 따라서 순류와 역류가 있다.

 

‘거가필용(居家必用)’은 중국 원대에 쓰였다. 이후 동아시아 각국에서 정원을 만들 때 거가필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택의 동쪽에 살구나무가 있는 것은 흉하다.

북쪽에 배나무가 있고, 서쪽에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사는 사람이 모두가 음탕하고 사악한 일을 행한다.

서쪽에 버드나무가 있으면 사형을 당한다. 동쪽에 버드나무를 심으면 말이 불어나고,

서쪽에 대추나무를 심으면 소가 불어난다. 중문(中門)에 회화나무가 있으면 3세(世)가 되도록 부귀를 누린다. 뒤쪽에 느릅나무가 있으면 갖가지 귀신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

 

 

중국 장시(江西)성 왕커우촌(汪口村). 중국에서 풍수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힌다.

 

 

일본 헤이안 시대의 정원서 ‘사쿠테이키(作庭記)’에는 사신(四神)과 상응하는 나무 심는 법이 있다.

 

 

" ‘집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청룡으로 하며, 만약 이러한 유수가 없으면 버드나무를 9그루 심어 이를 대신한다. 서쪽에 대로가 있는 것을 백호로 삼고, 만약 이러한 대로가 없으면 대추나무를 7그루 심어 대신한다. 남쪽 앞에 연못이 있는 것을 주작으로 하고, 만약 연못이 없으면 계수나무를 9그루 심어 대신한다.

 

북쪽 뒤에 있는 언덕을 현무로 삼고, 만약 이 언덕이 없으면 노송나무 3그루를 심어 대신한다. 이러한 배치를 통해서 관직에 오르고 복되고 영화로운 삶을 누리며 무병장수하게 된다. 이러한 배치를 갖추고 있으면 이외에 어느 나무를 어느 방위에 심든지 무방하다.

 

나무를 심을 때도 금기해야 할 점이 있다. 문의 중심에는 나무를 심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심었을 경우 한(閑)의 글자가 되기 때문에 좋지 않다. 뜰 중심에는 나무를 심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심었을 경우 곤(困)의 글자가 되기 때문에 좋지 않다. 아울러 집에도 부지의 중심에 나무를 심는 것은 수(囚)의 글자가 되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 "

 

 

전라남도 구례군의 운조루. 옛부터 풍수의 명당터로 알려져 왔다.

 

일본인들은 물의 흐름도 사신(四神)과 상응해야 땅의 이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게 하는 물을 순류(順流)라 하고, 서쪽에서 동쪽에 흐르는 물을 역류(逆流)라고 해서 물은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차아유정고법비전지서(嵯峨流庭古法秘傳之書)’는 무로마치 시대의 풍수서다. 이 책은 정원 만들 때 우선 방향을 고려했다.

 

" ‘정원에서 두 가지 상서로운 것 중 하나는 동쪽, 남쪽, 서쪽에 있는 정원이고, 두 번째는 폭포의 입구 뒤에 높은 산과 큰 나무가 있는 것이다.’ "

 

일본인들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숫자에 따라서 나무와 돌을 배치하기도 했다. 특히 4라는 숫자를 기피하고 돌이나 초목을 개체로 취급하는 것을 꺼렸다. 일본 문화에서는 짝수보다 칠, 오, 삼이라는 홀수를 선호했다. 특히 4는 꺼리는 숫자였다. 정원의 구성에서도 마찬가지다.

 

" ‘네 개의 돌과 네 개의 꽃,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는 피해야 한다.

네 개의 돌이란 돌 네 개를 한 번에 세우는 것, 네 개의 꽃이란 꽃피는 나무 네 그루를 심지 않는 것, 돌 하나라는 것은 가령 형태가 좋은 돌이라도 한 개만은 세우지 않고 반드시 다른 돌과 함께 세운다는 뜻이다.

작은 정원이라도 나무 한 그루와 꽃 한 포기는 심지 않는다. 다만 정원이 큰 경우에는 여러 돌이 많으므로 하나만 세워도 된다.’ "

 

 

일본 교토 다이토쿠지(大德寺) 신쥬안(眞珠庵) 정원 七五三 석조.

 

일본인은 7은 ‘lucky 7’, 8은 한자 ‘八’ 모양이 점차 번영하는 모습이라고 좋아한다. 또 4는 일본어로 し(시)라고 읽는데 死(죽을 사)도 し(시)라고 발음한다. 9역시 く(쿠)라고 읽는데 苦(괴로울 고)도 く(쿠)라고 발음하는 탓에 일본인들은 4와 9를 싫어한다.

 

미신은 풍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인들의 좋아하는 수는 8, 6, 9, 2이고 반면 혐오의 대상은 4, 10, 13 등이다. 그러나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숫자와 정원관계는 분명치 않다. 우리정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인의 숫자에 대한 신앙은 칠오삼(七五三) 돌 놓기(石組) 방식에서 뚜렷이 보인다. 칠오삼 돌 놓기는 중앙에 일곱 개의 석조, 그 오른쪽으로 다섯 개의 석조, 왼쪽으로 세 개의 석조로 조합돼 있다. 선종사원의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인 료안지(龍安寺) 방장 정원이나 다이토쿠지(大德寺) 신쥬안(眞珠庵) 방장 동쪽 정원 등에서 볼 수 있다.

 

 

 

/ 조선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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