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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혈의 형상과 이론의 역사적 전개
- 문헌고찰을 중심으로
박 정 해
국문초록
본 연구는 풍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혈의 구성과 발전과정에 대해 살펴 보았다. 혈의 역사는 최초의 풍수서인 『청오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발복론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후 위대의 『관씨지리지몽』과 동진의 『금낭경』도 『청오경』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으나, 『청오경』보다는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이후 혈에 대한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당대의 양균송에 의해서다. 양균송은 『감룡경』과 『의룡경』에서 산의 형상을 구성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혈의 형상을 제시하면서 길흉까지를 제시하였다.
따라서 혈과 관련한 이론만으로 보면 당대는 비약적 발전을 이룬 시기라 할 수 있으며, 풍수논리의 전환기라 할 수 있다. 송·명대에 이르러 혈의 형태에 대해 다른 각도의 논리와 형상분류가 본격화된다. 송대와 명대의 풍수가들은 저명한 유학자들이 많았고 유학이 풍수이론과 접목되는 현상의 일환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명대 유기에 의해 출간된 『감여만흥』은 양균송의 풍수와는 다른 각도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데, 현재 풍수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지리인자수지』를 통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주제어: 풍수, 혈, 양균송, 유기(劉基), 구성(九星)
*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전통건축, 풍수전공)
1. 머리말
풍수는 전통에 바탕을 둔 환경학으로 바람과 물 그리고 햇빛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국세를 갖춘 곳에, 천기와 지기가 응축되어 생기로 가득한 혈처에 정주공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삶터를 구성하거나 조상의 체백을 안장하여 추길피흉하고 동기감응을 통해 발복을 얻고자 하였다.
하지만 산천은 천변만화하고 혈은 오묘하여 이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혈을 찾기 위해서는 풍수이론과 형식논리를 익혀야 함은 물론 형(形)으로 나타난 혈의 사상(四象)에 대한 구체적인 특징과 내력을 익혀야 한다. 더 나아가 풍수의 역사적 배경과 사상에 대하여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논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풍수는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발전하였으며, 여러 학문들과 습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이론과 논리만으로 구성되기 어렵고, 그 특징적인 모습 전체를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풍수이론의 기본을 살펴보는 연구는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주변학문과의 연계성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한 상황에서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풍수가 학문의 한 영역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본이론에 대한 논리적 체계와 역사적 사실 그리고 변천과정에 대한 풍수이론의 근본을 살펴보는 연구의 필요성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풍수연구는 현상만을 밝히는 연구에 머물러 풍수의 역사와 사상적 배경에 관한 연구는 미진한 상태이다.
아직 풍수이론이 등장한 배경과 역사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제시가 이루어진 연구는 미흡하고,1) 단지 풍수가 접목된 사례분석과 특징적인 모습만을 부분적으로 연구하는 실정이다.
혈이라 불린 시점과 혈이라는 용어가 풍수에서 처음 활용된 시점 등에 대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이 없다. 또한 혈의 구성과 특징을 형세풍수와 이기풍수의 관점에서 다룬 연구 또한 미진한 상태이다.2)
따라서 본 연구는 혈의 정의와 정립과정 그리고 혈 형상의 구성과 분류, 혈법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문헌고찰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풍수연구는 아직까지도 부분적인 모습만을 규명하고 있고,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모습으로 그 실체적 진실을 조명하는 연구는 부족하다. 다양성의 결여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는 현대인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으며, 학문의 한 영역으로 자리하는데 있어서도 불리한 실정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풍수가 합리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협력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자세의 전환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풍수는 이론적 구성과 현장답사를 통한 실전사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특징들이 어우러져 풍수의 전체적인 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수연구는 각 영역의 세분화와 전문화를 통해 기본이론 연구의 필요성은 높아진 시점이다.
1) 윤홍기, 『땅의 마음』, 사이언스북스, 2011.
2) 정재우, 「風水地理에서 穴의 類型과 特性에 關한 考察 : 陰宅을 中心으로」, 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2. 穴의 정의 및 이론정립
2.1. 穴의 定義
혈이란 풍수에서 요체가 되는 장소로서,3) 음양이 부합하고 내·외기가 서로 의지하는 곳으로,4) 산천이 모여들고 물의 흐름이 멈춤이 없으며 복되고 후덕하게 주위 사방의 산세가 감싸 안은 곳이다. 풍수에서 혈은 가장 좋은 곳 즉 기가 뭉쳐있어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곳을 의미한다. 또한, 가장 핵심적이고 특징적인 요소를 가진 풍수적 길지를 말하는 것으로 풍수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목표이자 추구점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혈은 땅의 기운이 뭉쳐있어 인간이 가장 좋아할만한 특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 인간의 길흉화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최고의 풍수경전인 『청오경(靑烏經)』에는 혈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고, 단지 혈에 의한 발복론만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혈이 갖는 의미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혈은 사전적 의미와 활용성에 따른 정의 그리고 문헌별로 제시된 정의를 달리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사전적인 의미에서 혈을 정의하면, 용맥의 생기가 취주하여 기가 머무르는 곳으로 산진수회(山盡水回)하고 장풍향양(藏風向陽)한 곳이라 정의할 수 있다.
반면에 활용성에 바탕을 둔 정의는 혈은 인체에 비유하면 경혈에 해당되는 곳으로, 음택에서는 시신이 매장되는 곳이며, 양택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문헌에 바탕을 둔 정의는 풍수서마다 각각의 정의를 제시하였다.
『장경익(葬經翼)』에는 『금낭경』 「기감편」의 ‘氣乘風則散 界水則止’의 논리를 바탕으로 “산이 멈추고 기가 모인 곳을 혈이라 부른다.”5)고 하였다. 진대의 양천(楊泉)은 『물리론(物理論)』에서 혈은 기세의 시작과 끝으로, 음양이 극에 이른 곳이라 하였다.6)
양균송은 『의룡경(疑龍經)』에서 주산과 혈을 초목에 비유하면서 주산은 뿌리에 해당되고, 혈은 꽃에 해당하기 때문에 뿌리가 참되면 꽃이 가짜일수 없다고 하였다.7)
즉, 주산이 근본이 되고 혈은 주산에 의해 맺힌 꽃이기 때문에 근본이 좋으면 가짜 혈이 맺힐 수 없다고 하였다. 반면에 『管子』 「추언」에는 혈을 ‘기가 뭉친 곳’ 이라 하면서, ‘기가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고 귀결시키고 있다.8) 이것은 기가 뭉친 곳에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혈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황제택경』에는 땅이 좋으면 곡식이 무성하게 잘 자라듯이, 집이 좋으면 사람이 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9) 이는 혈이 갖는 기운과 발복에 관하여 논하는 것으로 혈의 특징을 소개한 것이다.
3) 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민음사, 1984, 125쪽
4) 여기에서 內氣란 穴에서 나오는 따뜻한 기운으로 萬物에 생명이 싹트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外氣는 山川이 融結하여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5) [明]繆希雍,『葬經翼』「穴病篇」, 北京:華齡出版社, 2009, 468쪽 : 夫山止氣聚 名之曰穴.
6) 『物理論』: 氣勢之始终 陰陽之所極也.
7) [唐] 楊筠松, 김두규 역, 『疑龍經』「下篇」, 비봉출판사, 2009, 259쪽 : 龍上星辰是根荄 前頭結穴 是花開 根荄若眞穴不假 蓋從種類生出來.
8) 관자, 김필수, 고대혁, 장승구, 신창호 옮김, 『管子』 「樞言」, 소나무, 2006, 179쪽 : 有氣則生 無氣則死 生者以其氣.
또 다른 각도에서 혈의 의미를 규명하면, 혈은 입구 양쪽으로 받침목이 갖추어진 동굴 집을 말한다. 동굴 집은 지상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의 초기 주거형식으로 질 좋은 황토지역에서 쉽게 만들 수 있었다. 특히 동굴 집은 온도나 습도까지 적당히 조절되는 훌륭한 주거지였다.
따라서 혈의 원래 뜻은 동굴 집이고, 여기서 ‘窟’과 사람이 살 수 있는 ‘空間’의 뜻이 나왔고, 이후 인체나 땅의 ‘穴’까지 지칭하게 되었다고 한다.10)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 한 자료가 ‘穴’의 갑골문 해석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
‘穴’자의 갑골문은 ‘ ’인데, 금문의 ‘ ’자, 전서의 ‘ ’자에서도 확인되듯이 ‘ ’=‘ (집)’에다 ‘ ’를 더한 것이다. 여기에서 ‘ ’자는 ‘양쪽으로 벌린다, 혹은 벌어졌다’라는 뜻으로 결국 ‘ =穴’자 역시 단지 ‘구멍 혈’이라기보다는 ‘집으로 쓰이던 굴의 벌어진 구멍’ 혹은 ‘구멍을 냈다’는 뜻을 나타낸다.11)
그 외에도 『설문해자』에 따르면 “혈은 흙집”12)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앞에서 제시한 동굴 집과 곧바로 연결할 수는 없으나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혈은 풍수적 사고에 바탕을 둔 의미라기보다는 동굴집이라는 현실에 바탕을 둔 사고에서 출발하였는데, 혈이 동굴집이라는 주장은 윤홍기에 의해 처음 제시된 것이다.13)
이와 같이 혈을 어떤 경로나 의미를 가지고 정의하였던 간에, 풍수의 궁극적인 의미를 가진 개념이라 할 때, 그 가치성은 크다고 할 것이다.
산천의 정기는 산맥을 통하여 유통되는 것이니 산맥이 진(盡)하면 산천 정기는 응취하여 혈을 결지한다. 혈이 결지된 곳은 불과 한평 남짓으로14) 혈에서는 홍황자윤(紅黃紫潤)한 혈토가 나오는데 일반 흙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혈토는 풍수에서 흙도 아니고 돌도 아니라 하여 비석비토(非石非土)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아주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특징이 있다.
『지리담자록(地理啖蔗錄)』에서 혈은 천지의 기운이 어린 정이고 산천 자연의 묘라고 한 것처럼,15) 혈은 자연현상이지만 신비한 것으로 아직까지 과학적인 잣대로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 천 년의 역사를 통해 경험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발전시켜온 풍수의 핵심인 혈을 미신이라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일 수 없기 때문에 초과학적인 현상에 대하여 서양사상에 바탕을 둔 계량화만이 정답일수는 없다.16)
9) 『黃帝宅經』: 地善卽苗茂 宅吉卽人榮
10) donga.com(뉴스), 2005. 6. 16.
11) 블로그(http://blog.hani.co.kr/eeekjang) 검색일 : 2015. 6. 11.
12) 염정상, 『설문해자주』, 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359쪽 : 穴 土室也.
13) 윤홍기는 혈은 황토고원의 굴집이라고 하면서, 풍수의 기원조차도 중국의 황토고원의 굴집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윤홍기, 『땅의 마음』, 사이언스북스,2011, 64-68쪽)
14) 張益鎬, 『遊山錄』前編, 鍾文社, 1983, 4쪽
15) [淸]袁守定, 『地理啖蔗錄』, 北京 華齡出版社, 2007, 48쪽 : 夫穴者 天地氤氲之精 山川自然之妙.
16) 박정해, 「조선 유교건축의 풍수적 특징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115쪽
2.2. 혈 이론의 정립
혈의 형상과 구체적인 이론이 등장한 시기에 대해 여러 풍수서들을 통하여 판단해보면, 해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먼저 최고의 풍수경전인 『청오경』에는 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없이, 혈이라는 용어를 여러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17) 이는 『청오경』이 쓰여진 한대에 이미 혈이라는 용어가 일반명사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18) 만약 혈이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라면, 혈에 대한 설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청오경』에는 혈에 대한 설명보다는 혈이 갖는 발복론만을 제시하고 있다.
이후 위대에 출간된 『관씨지리지몽(管氏地理指蒙)』과 동진의 곽박에 의해 출간된 『금낭경』도 『청오경』과 같이 혈의 특징을 발복론의 범주에서 논하고 있다. 또한 혈이라는 용어의 사용도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혈이 보다 더 일반화되고 발전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9)
17)『靑烏經』: 不蓄之穴 是爲腐骨 不及之穴 生人絶滅 騰漏之穴 飜棺敗槨 背囚之穴 寒泉滴瀝 其爲可畏, 可不愼乎.
18)『靑烏經』에는 穴과 마찬가지로 ‘風水自成’이라 해서 風水라는 개념의 설명도 없이 곧바로 발복론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는『靑烏經』이 쓰여 질 당시에 풍수와 혈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도나 인식이 이미 일반화 되었다는 것으로, 풍수는 漢代이전에 이미 정립되었다는 추정도 가능토록 하고 있다. 왜냐하면 풍수와 혈이라는 개념의 이해가 없는데 이에 대한 발복론을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수의 역사는 현대에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되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19) 『管氏地理指蒙』三 擬穴第二十一 : 藏穴配神 返始五行之造 封墳積氣 發揮列宿之臨 乘其勢之至止 擬其穴之淺深 淺不淺于太陽 深不深于太陰 淺不淺于露 深不深于沉 惟觀其至止而搜尋. ;
『錦囊經』 「氣感編」: 夫陰陽之氣 噫而爲風 升而爲雲 降而爲雨 行乎地中 則而爲生氣. ;
『錦囊經』 「山勢編」: 占山之法 以勢爲難 而形次之方又次之. 上地之山 若伏若連 其原自天. 若水之波 若馬之馳 其來若奔 其止若尸.
<그림 1> 地理人子須知
<그림 2> 撼龍經·疑龍經
이후 혈에 대한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당대의 양균송에 의해서다. 양균송은 『감룡경』과 『의룡경』에서 산의 형상을 구성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혈 형상과 길흉을 제시하였다. 즉, 주산의 형상과 혈 형상
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이론들을 제시하게 되는데, 우선적으로 주산의 형상과 혈의 참됨을 통해 진혈과 가혈을 구분할 수있는 근거를 제시하였다.20)
그리고 주산의 모양을 따르지 않은 혈은 가짜이거나 진짜 혈이 아니라고 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논리를 제시하였다.21) 그 외에도 양균송은 혈의 형상은 무조건 구성에 의한 주산의 형상분류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 이론을 통해 진짜와 가짜를 분류할 수 있다고 하였다.22) 이러한 양균송의 논리는 기존의 풍수서가 갖지 못한 획기적인 발전모델이라 할 수 있으며, 혈과 관련한 이론이 정립된 시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혈과 관련한 이론만으로 보면 당대는 풍수가 비약적 발전을 이룬 시기라 할 수 있으며, 풍수논리의 전환기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송·원시기는 혈과 관련한 풍수이론은 정체된 모습을 보인다.
이 시기에 전혀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23)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풍수서를 찾을 수 없다. 송·원시기에 출간된 풍수서로는 황묘응의 『박산편(博山篇)』과 장자미의 『옥수진경(玉髓眞經)』그리고 유병충의 『옥척경(玉尺經)』등이 대표적인데, 그 존재감이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혈과 관련하여 당과 명대를 이어주는 발전적인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명산론』은 그나마 혈과 관련한 이론을 제시하였으나, 이론적 발전을 이루는데 한계를 보인다.
20) 『撼龍經』: 形若眞時穴始眞 形若不眞是虛誑.
21) 楊筠松, 김두규 역, 『疑龍經』비봉출판사, 2009, 259쪽 : 穴若不隨上星 斷然是假不是眞.
22) 楊筠松, 김두규 역, 위의 책, 260쪽 : 千萬隨山尋穴形 此說斷能辨眞假.
23) 풍수이론도 여타 다른 학문처럼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논리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차츰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송·원시기의 정체된 모습조차도 발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明初의『堪輿漫興』과 같은 발전된 논리가 제시된 풍수서도 前代의 前據가 없이 갑자기 등장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원대의 전거를 확인할 수 있는 풍수서를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명대에 이르러 혈에 대한 이론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이와 같은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치적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명을 세운 주원장은 한과 당의 옛 영광을 동경하였고 한족문화의 부흥을 주요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풍수조차도 당대의 부흥했던 시기의 연장선에서 다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24)
특히 유기(劉基)25)는 주원장을 도와 명의 수도와 궁궐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명대를 대표하는 풍수서 『감여만흥(堪輿漫興)』을 저술하였다.
『감여만흥』과 『지리인자수지』는 명대의 풍수발전을 주도한 대표적인 풍수서인데, 먼저 유기가 저술한 『감여만흥』은 혈의 특징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26)
혈의 형태와 특징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현재에도 혈론의 정석처럼 받아들이는 와·겸·유·돌을 처음 제기하였다. 이후 『감여만흥』은 서선계·서선술 형제에 의해 출간된 『지리인자수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지리인자수지』는 한발 더 나아가 구체성과 논리성을 더하는 모습이다.
물론 명대와 청대를 거치면서 『산양지미(山洋指迷)』와 『지학탐원(地學探原)』27) 『지리탁옥부(地理琢玉斧)』28)등이 출간되었지만, 『지리인자수지』의 논리성과 구체성을 뛰어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지리인자수지』는 명·청대를 거친 이후에도 최고의 풍수서로 자리하였고, 현재 대부분의 풍수서는 『지리인자수지』의 내용을 그대로 차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현대의 풍수는 기존의 풍수논리를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적용 가능한 새로운 이론의 개발에 보다 초점을 맞출 필요성은 크다고 할 것이다.
24) 何曉昕, 태극풍수지리연구회 역,『중국풍수사』, 논형, 2014, 214쪽
25) 劉基는 浙江 靑田사람으로 자는 伯溫이다.『明史』 「劉基傳」에 따르면 유기가 감여분야에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한다.『英雄傳』에는 朱元璋의 지시에 의해 유기가 남경성과 궁궐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입지선정과 공간구성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明史』 「藝文志」에는 유기의 저서로『金彈子』와『一粒粟』,『披肝露膽』,『堪輿漫興』등이 있다고 한다.
26) [明] 劉基,『堪輿漫興』, 中國 內蒙古出版社, 2013, 75-128쪽
27)『地學探原』은 窩·鉗·乳·突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혈의 형상을 세분화하였으나, 많은 풍수학인들로 부터 그 합리성을 인정받는데 제한적인 모습을 보인다.
28)『地理琢玉斧』도『地學探原』과 같이 혈의 형상을 와·겸·유·돌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세분화하였으나, 이 또한 풍수학인들로 부터 수용되지는 못하였다.
3. 혈 형상의 구성과 분류
역사적으로 수많은 풍수서와 풍수사가 등장하였다. 특히 『흠정고금도서집성』 「감여부명류열전」에는 저리자(樗里子)를 비롯하여 107명29)의 저명한 풍수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중에서 혈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풍수사를 꼽으라면, 양균송과 유기 그리고 서선계· 서선술 형제를 꼽을 수 있다. 그만큼 이들의 역할은 지대하였고 혈 이론의 정립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양균송과 유기 그리고 서선계· 서선술 형제의 혈 이론과 아울러 이기풍수적 관점에서도 살펴본다.
29) 『欽定古今圖書集成』 「堪輿部名流列傳」에 소개된 저명한 풍수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樗里子, 朱僊桃, 青烏先生, 郭璞, 陶侃, 韓友, 蕭吉, 舒綽, 李淳風, 張燕公, 一行禪師, 司馬頭陀, 劉白 頭, 浮屠泓, 陳亞和, 楊筠松, 曾文遄, 范越鳳, 厲伯紹, 劉淼, 葉七, 邵庭監, 賴文俊, 曾十七, 蘇粹明, 丘延翰, 方十九, 張五郎, 丁玨, 濮都監, 劉雍, 廖禹, 孫世南, 李五牙, 王應元, 賴白鬚, 李鴉鵲, 鍾可朝, 曾道立, 李普照, 謝玠, 唐九僊, 陳希夷, 胡矮僊, 張子微, 謝子逸, 蔡神與, 劉七碗, 鄭彥淵, 劉子猷, 丁 應之, 丘公亮, 劉景清, 劉應寶, 第子驤, 王祿道, 建心僊翁, 劉元正, 劉景明, 劉謙, 劉種桃, 劉見道, 謝 和卿, 劉雲山, 劉雲峰, 劉二郎, 劉子僊, 吳景鸞, 宋花師, 劉勾力, 蕭才清, 廖信甫, 李蓬洲, 劉雲岫, 孫 伯剛, 劉潛, 傅伯通, 鄒寬, 徐仁旺, 王伋, 胡舜申,
孫晤, 達僧, 鐸長老, 梁饒, 張宗, 幕講僧, 非幻和尚, 周仲高, 劉用寅, 渠仲寧, 楊宗敏, 廖均卿, 游朝宗, 許國泰, 裴士傑, 徐拱, 卜夢龍, 楊院使者, 吳仲寬, 駱用卿, 曾易明, 谷宗綱, 陳後, 徐善繼, 汪朝邦.
3.1. 양균송에 의해 정립된 穴의 形狀
양균송을 시점으로 풍수는 이론화하는 경향을 보인다.30) 또한 양균송을 통해서 일대변화가 일어났고,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균송에 의해 정리되기 시작한 풍수이론은 구체성을 띄기 시작하면서 논리화 되었고 구체적인 형상을 제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혈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정의되기 시작한 것도 양균송에 의해서다. 따라서 양균송의 풍수는 정립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양균송의 역할과 활동 그리고 정리된 이론은 무엇이 있는지 하나하나 정리할 필요성은 커졌다. 왜냐하면 양균송은 의미있는 역할과 중요한 저작을 남기고 있어, 풍수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인물이기 때문이다.
양균송의 혈론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특징적인 이론이 『의룡경』 「하편」에 제시되었는데, 혈은 주산의 형상에 따라 혈의 형상이 정해져 있고, 주산의 형상을 따르지 않는다면 가짜 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높은 산이나 평지에서나 혈은 주산의 봉우리가 무엇이냐에 따라 정해진 이를 보지 않고 어찌 망녕되게 겸혈이니 유혈이니 할 수 있겠는가? 혈이 주산의 형상을 따르지 않으면 그러한 혈은 결코 가짜 혈이거나 진짜 혈이 아닌 것이다. 주산의 봉우리가 탐랑이면 그 아래 맺어지는 형은 乳穴이며, 무곡이면 그 아래 맺어지는 혈은 겸혈일 것이다.31)
30) 이것이 전적으로 양균송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대적으로 양균송이 살던 당대에 이르러 풍수가 이론화되었고, 이를 정리하여 후세에 전해준 공은 크다고 할 것이다.
31) 楊筠松, 김두규 역, 앞의 책, 259쪽 : 高低平地隨星 豈肯妄爲鉗乳穴 穴若不隨龍上星 斷然是假不是眞 請君更將舊墳覆 貪星是乳武鉗形. 이 부분은 譯者도 지적하였듯이 武曲과 巨門의 混同의 문제이다.
『疑龍經』에 묘사 된 내용은 武曲과 巨門이 서로 반대로 묘사 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張益鎬는 『龍水正經』 60-61쪽에서 巨門星은 鉗釵穴을 맺고 武曲星은 圓窩穴을 맺는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경연도 『정통풍수지리』에서 巨門星은 鉗釵穴을 맺고 武曲星은 圓窩穴을 맺는다고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배치되고 있다. 따라서 譯者의 주장처럼 楊筠松이 武曲과 巨門을 혼동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貪狼星 巨門星 祿存星 文曲星 廉貞星 武曲星 破軍星 左輔星
<표 1> 九星의 형상(출처 : 『龍水正經』)
乳頭穴 鉗釵穴 梳齒穴 掌心穴 黎鐴穴 圓窩穴 戈矛穴 伴窩穴
<표 2> 九星과 穴 形狀(출처 :『龍水正經』)
또한 『감룡경』 「변혈편」과 『의룡경』 「변성편」에는 주산의 형상에 따라 穴의 형태가 달라진다고 한다. 즉 탐랑성은 유두혈을, 거문성은 와혈을, 무곡성은 겸차혈을, 녹존성은 이벽두혈(犁鐴頭穴)을, 문곡성은 장심혈(掌心穴)을, 파군성은 과모혈(戈矛穴)을 맺고 좌보 우필성은 연소혈(燕巢穴)을 맺는다고 한다.
먼저 『감룡경』 「변혈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탐랑이 만드는 혈은 유두혈이고, 거문이 만드는 혈은 우묵한 곳(窩)에서 찾아야 한다.
무곡이 만드는 혈은 갈래가 둘인 비녀(釵)나 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鉗)과 같이 생긴 곳에서 찾아야 한다.
녹존이 만드는 혈은 얼레빗 빗살(梳齒)과 같고, 염정이 만든 혈은 밭가는 쟁기의 뾰족한 보습머리(黎鐴頭) 부분과 같다.
문곡이 맺는 혈은 평지에서 맺히는데 높은 산간지방에서 혈이 맺혀도 마찬가지로 장심혈로 맺힌다.
파군이 맺는 혈은 뾰쪽한 창(三枝槍)과 같은데, 양쪽의 창살들은 가운데 창살을 감싸 안은 듯해야 한다.
파군혈은 반드시 양쪽 산들이 가운데 창살을 호위하는 모습이어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혈 앞을 흐르는 물이 혈을 감싸 안으면서 옆으로 흘러나가야 한다.
좌보가 맺는 정혈은 제비집과 같은데 그것이 만약 높은 산에 있다면 등잔을 걸어 놓은 모양(掛燈穴)과 같다. 좌보가 낮은 평지에서 穴을 맺으면 닭 둥지와 같은데 비록 윗부분이 둥글기는 하지만 앞의 연소혈이나 괘등혈
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움푹 들어간 모습을 하고 있다.32)"
32) [唐] 楊筠松, 김두규 역, 앞의 책, 179-181쪽 :
貪狼作穴是乳頭 巨門作穴窩中求
武曲作穴釵鉗覓
祿存梳齒黎鐴頭
文曲穴來坪裏作 高處亦是掌心落
破軍作穴似戈矛 兩傍左右手皆收
定有兩山皆護衛 鈈然一水過橫流
輔星正穴燕巢仰 若在高山掛燈樣
落在低平是鷄窠 縱有圓頭亦凹象.
다음으로 『의룡경』 「변성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탐랑의 모양이 다른 모양의 산으로 바뀌지 않으면 유두혈을 만들며, 거문이 다른 모양으로 변하지 않으면 와혈을 찾아야 한다.
무곡이 다른 모양으로 변하지 않으면 겸혈을 찾아야 하고 , 녹존이 변하지 않으면 여벽두 모양의 혈이 맺힌다. 문곡이 바꾸지 않으면 손바닥 가운데 움푹 들어간 모양인 장심혈을 맺고, 파군이 변하지 않으면 삼지창 모양의 과모혈을 맺는다.
좌보와 우필이 다른 산으로 변하지 않으면 제비집 모양의 연소혈을 맺는데 다른 산으로 변하는지와 변하지 않는지를 정밀하게 식별해야 할 것이다.33)"
33) [唐] 楊筠松, 김두규 역, 앞의 책, 328-329쪽 :
貪狼不變生乳頭 巨門不變釵頭覓
武曲不變窩中求 祿存不變犂鐴頭
文曲不變掌心作 破軍不變戈與矛
輔弼不變燕窩仰 變與不變宜精求.
이와 같이 혈은 주산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는 것으로, 주산의 형상이 곧 혈의 형상과 일치한다는 양균송의 주장은 획기적이었다. 왜냐하면 주산과 혈을 같은 뿌리로 보기 보다는 따로따로 보기 쉽고, 그 관계성을 따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산의 형상이 곧 혈의 형상과 연결되었다고 보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양균송의 주장은 현재에도 유효하며 혈을 찾는 심혈법중의 한 영역으로 오롯이 남아 그 가치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것을 양균송의 천재성이라 하던, 당시의 풍수수준을 높이 평가하던 간에 자연을 바라보는 자세와 관찰력은 높은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표 3> 양균송의 혈형과 사상의 비교
楊筠松의 穴形 | 乳頭穴 | 窩穴 | 鉗釵穴 | 犁鐴頭穴 | 掌心穴 | 戈矛穴 | 燕巢穴 |
穴의 四象 | 乳穴 | 窩穴 | 鉗穴과 突穴 | 鉗穴과 突穴 | 窩穴 | 乳穴 | 窩穴 |
물론 송·명대에 이르러 혈의 형태에 대해 다른 각도의 형상분류가 본격화되는데, 이러한 논의의 바탕에도 양균송의 논리는 여전히 그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단지 송·명대의 풍수가들은 저명한 유학자들이 많았고, 이들에 의해 저작된 풍수서는 유학과 풍수이론이 접목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표현에 다른 모습이 등장한다.
혈의 형상을 양의와 사상 그리고 팔괘로 구분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주렴계의 태극도설의 논리와 접목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혈의 형상을 오목한 형상과 볼록한 형상으로 양분하고 이를 양의(兩儀)라 하였다면, 와·겸·유·돌의 4가지 형태는 각기 사상(四象)의 특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또한 팔괘(八卦)는 사상을 다시 노소로 구분하고 건·태·이·진·손·감·간·곤과 같이 팔괘에 대입하였다. 이는 태극도설의 논리를 혈 형상에 그대로 차용한 것이지만, 현실 속에서 활용성을 담보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혈의 형상분류와 관련하여 가장 활용성을 담보한 경우는 와·겸·유·돌로 대변되는 혈의 사상이라 할 수있는데, 이 또한 주산의 형상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양균송의 혈 형상을 사상에 대입하면 <표 3>과 같기 때문에, 현재에도 두 혈형을 혼합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3> 태극도 (출처 : 성학십도)
<표 4> 穴의 形狀 分類 (출처 : 地理人子須知)
혈의 사상분류는 우리의 생활에서 인식하는 모습과는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보통 음양을 나눌 때, 볼록하게 돌출 된 것을 양이라고 하고, 오목하게 들어간 것을 음이라 하지만, 풍수에서는 그 반대로 해석한다.34)
볼록하게 돌출하면 음이고, 오목하게 들어가면 양이다. 오목하게 생긴 혈은 양혈이고 볼록한 혈은 음혈에 해당한다. 따라서 크게 오목한 와혈35)은 태양이고, 약간 오목한 혈인 겸혈36)은 소음에 해당한다.
반대로 크게 볼록한 돌혈37)은 태음이고, 약간 볼록한 유혈38)은 소음에 해당한다. 그리고 와혈과 겸혈의 혈심은 약간 볼록한 미돌한 부분에 맺으며, 유혈과 돌혈은 약간 미와한 곳에 혈심이 위치한다. 이는 음중양(陰中陽)하고 양중음(陽中陰)하는 자연의 이치에 부합한다. 이러한 원리는 입수룡과 혈장의 형태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데, 볼록한 용은 음룡으로 오목한 양혈을 맺고, 평평하게 낮게 오는 양룡은 볼록한 음혈을 맺는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를 ‘음래양수(陰來陽受)하고 양래음수(陽來陰受)한다’고 표현한다.
34) 風水에서는 물은 움직이니 陽이라 하고 山은 움직이지 않으니 陰이라 한다. 따라서 山이 陰이기 때문에 正常的인 陽의 세상의 기준과는 반대의 개념이 성립되기 때문에 반대로 해석하게 된다. 즉 불록한 것은 陰이고 오목한 것은 陽이라 해석하게 된다.
35) 窩穴은 開口穴 혹은 窟穴이라 부른다. 그 외에도 鷄宛과 鍋底, 掌心, 旋螺, 金盆, 銅羅 등이 있다. 와혈은 혈성이 양손으로 움켜쥘 수 있도록 교회함을 말하며, 주로 高山에 많다.
36) 鉗穴은 開脚穴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釵鉗, 虎口, 合谷, 夾穴, 仙宮, 單提, 雙臂, 單股, 弓脚등이 있다. 겸혈은 평지나 고산에 모두 있다.
37) 乳穴은 懸乳穴을 말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垂乳 혹은 乳頭라고 한다. 평지나 고산에 모두 있는데, 열린 양 팔뚝 가운데에 생긴 乳이다.
38) 突穴은 바람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좌우를 감싸 주어야 한다. 또한 홀로 돌출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돌혈의 다른 이름으로는 口鷄와 心魚泡, 鵞卵, 龍珠, 紫微, 旺龍 등이다.
3.2. 穴을 새롭게 정립한 『堪輿漫興』과 『地理人子須知』의 穴 形狀 比較
최고의 풍수경전인 『청오경』과 『금낭경』은 풍수이론에 대한 구체성을 갖기 보다는 전반적인 모습을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청오경』에서 『금낭경』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한발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왜냐하면 학문의 발전과정이 그렇듯이 풍수의 발전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당대의 양균송에 의해 혈론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양균송 한 사람에 의해 이와 같은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양균송의 풍수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과정에는, 곽박과 양균송을 이어주는 무수한 풍수가들과 풍수서들의 등장에 기인한바 크다. 단지 이를 입증하는 풍수서가 발견되지 않아, 이에 대한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할 수 없을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양균송의 풍수가 다시 꽃을 피우는 명·청 시대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풍수가들에 의해 이론적 발전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송·원 시대에도 풍수이론은 꾸준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결과물로 등장한 것이 유기에 의해 저작된 『감여만흥』이라 할 수 있다.
『감여만흥』은 양균송의 풍수와는 다른 각도에서 변화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데,39) 현재 풍수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내용이 서선계·서선술 형제에 의해 저작된 『지리인자수지』가 아닌 『감여만흥』에 이미 등장
하였다는 사실이다. 와·겸·유·돌로 대변되는 혈의 형상뿐만 아니라 혈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혈론40)조차도 이미 『감여만흥』에 제시되었다. 더 나아가 『감여만흥』의 산도가 『지리인자수지』에 그대로 활용되는 모습을 보인다.
39) 양균송의 풍수는 주산의 형상을 九星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혈 형상을 제시하였다면, 劉基의 『감여만흥』에는 주산의 형상을 五行으로 분류하고 혈의 형상도 와·겸·유·돌과 같이 4가지로 단순화하고 명확화 하였다는 점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주산과 혈의 형상을 분류하는 과정 속에는 많은 논리와 이론들이 등장하고 논증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변화과정을 증명할 수 있는 풍수서가 아직까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40)『감여만흥』과『지리인자수지』에 제시된 증혈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朝山證穴과 明堂證穴, 水勢證穴, 樂山證穴, 鬼星證穴, 龍虎證穴, 纏護證穴, 脣毯證穴, 天心十道證穴, 分合證穴 이 있다.
<표 5> 『감여만흥』과『지리인자수지』혈세론 비교
이와 같이 『감여만흥』은 혈과 관련하여 상당히 앞선 풍수서라 할 수 있으나, 『지리인자수지』와 같은 다양성을 구비하지는 못하였다. <표 5>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감여만흥』과 『지리인자수지』는 많은 부분에서 닮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감여만흥』을 바탕으로 『지리인자수지』가 이론구성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 혈형에 대해서도 『지리인자수지』는『감여만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지리인자수지』가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비교하면 <표 6>와 같다.
<표 6>과 같이 와·겸·유·돌로 분류된 혈형에 있어서『감여만흥』과 『지리인자수지』는 그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림 4> 堪輿漫興 (古今圖書集成本)
실제로『지리인자수지』에는 몇 개의 혈형만이 추가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새로운 이론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발전해 간다는 논리는 성립한다. 물론 풍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앞에서 제시한 와·겸·유·돌로 대변되는 혈의 형상은『감여만흥』에서 분류한 혈의 형상으로, 『감여만흥』은 풍수사에서 중요한 변곡점과 같은 역할을 담당한 풍수서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감여만흥』 이 아직까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은 번역서의 출간이 늦은 탓이 크지만, 이의 영향을 받은『지리인자수지』가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화된 모습을 갖춘 것이 주원인이 되었다.
<표 6> 『감여만흥』과『지리인자수지』혈형 비교
『감여만흥』 | 『지리인자수지』 | |
窩穴 | 深窩, 淺窩, 闊窩, 狹窩, 木火土 金水體 窩穴 | 藏口窩, 張口窩, 深窩, 淺窩, 闊窩, 狹窩, 五行體의 正格과 變格, 帶曜八格 |
鉗穴 | 直鉗, 曲鉗, 長鉗, 短鉗, 雙鉗, 邊曲邊直鉗, | 直鉗, 曲鉗, 長鉗, 短鉗, 雙鉗, 邊曲邊直鉗, |
乳穴 | 長乳, 短乳, 大乳, 小乳, 雙垂乳, 三垂乳 | 長乳, 短乳, 大乳, 小乳, 雙垂乳, 三垂乳 |
突穴 | 大突, 小突, 雙突, 三突 | 大突, 小突, 雙突, 三突 |
『감여만흥』과『지리인자수지』는 닮았으나 닮지 않은 부분이 있고, 이에 대해 서로 비교 검토해 보는 것은 두 풍수서가 갖는 성격의 규명을 위해서도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감여만흥』에는 혈의 형상을 와·겸·유·돌 외에 정수혈(正受穴)41)과 분수혈(分受穴),42) 방수혈(旁受穴),43) 금수혈(金水穴),44) 목성혈(木星穴),45) 토성혈(土星穴)46)을 제시하였다.47)
이는『지리인자수지』에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출간된 풍수서에도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다. 『지리인자수지』가 『감여만흥』의 상당부분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혈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은 배경에는, 『감여만흥』을 바탕으로 수용할 것은 수용하면서도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은 과감히 버렸다는 가정을 가능토록 한다. 현재에 수용되지 않았던 혈 형태인 정수혈과 분수혈, 방수혈, 금수혈, 목성혈, 토성혈등은 실제로 논리성과 합리성 그리고 현실에 접목하는 실용성에서 그 가치성을 찾기 어렵다. 왜냐하면 혈의 형태는 와·겸·유·돌과 같이 분명해야 하고 그 특징조차도 명쾌한 논리 속에서 설명 가능해야 되는데, 『감여만흥』의 혈 형태는 그 구체성과 특징적인 모습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41) 용세가 아득하면 특정한 곳에 정으로 받는데, 정수한 혈은 세상에 드물게 있다. 만수천산하고 결혈한 곳에 장사하면 아손은 경사와 윤택하고 발복이 오래간다.
(迢迢特至爲正受 正受之穴世罕有 萬水千山結我墳 兒孫慶澤天壤久)
42) 팔처럼 한 가닥 내룡으로 내려오면 역시 용세의 규모가 있으므로 전재할 수 있다. 분룡은 소결하다고 말하지 마라. 작으면 작은대로 결혈하여 재물이 여유롭다.
(一枝臂上脫形來 亦有規模堪剪裁 莫謂分龍爲小結 小以成小有餘財)
43) 정수한 용맥은 기맥이 크지만, 양변의 청룡이나 백호에 있기도 하고 관성이나 귀성이 호전하는 중에 혈이 있다(正受龍身氣脈洪 或在兩邊龍虎上 或于官鬼護纏中)
44) 금성이 중첩하여 2-3개가 되고 동하는 곳은 금수함이라 한다. 두구인 와혈을 소홀히 하지마라 집안은 흥발하여 백자천손한다.(金星重疊二而三 動處名爲金水涵 斗口窩中莫放過 其家興發百斯男)
45) 목성은 직으로 낙하여 삼정이고 심천과 고저마다 내성이 있다. 평지에 목성은 어디에 장사하는가? 절포한 위에 진정한 혈이 있다.(木星直落下三停 深淺高低看內城 橫倒木星何處下 節泡之上有眞情)
46) 토성은 고대하고 두텁고 단정하여 소등이나 병풍과 같은 모양이다. 만약에 토성이 후룡이 되어 혈을 비추면 형제와 부자가 같이 관직에 오른다.(土星高大厚而端 牛背屛風總一般 若在後龍兼照穴 兄弟父子幷爲官)
47) [明] 劉基,『堪輿漫興』, 內蒙古:內蒙古人民出版社, 2010, 75-87쪽
4. 穴法의 역사적 전개
4.1. 혈을 찾는 尋穴法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풍수의 궁극적 목적은 혈을 통해 실천된다. 혈이 중요한 만큼 찾기도 어렵고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모든 풍수서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특징이다. 이와 같이 풍수서마다 혈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먼저 『명산론』에는 조금의 오차만 생겨도 화복의 차이는 천리나 되니 이일을 어찌 어렵지 않다고 하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48)
그 만큼 혈은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확함까지 겸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혈은 정밀함을 바탕으로 그 진면목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옛말에 ‘3년 尋龍에 10년 點穴’ 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穴을 찾기도 어렵지만, 정확한 점혈를 하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다.
48) 蔡成禹, 김두규 역, 『明山論』, 비봉출판사, 2004, 95쪽 : 若夫百里平洋 千山叢雜 受氣之地 只在一穴 差之毫厘 則禍福千里 是非難歟.
실제로 혈을 찾기란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혈을 찾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연구되고 제시되었는데, 이를 심혈법(尋穴法)이라 한다. 최고의 풍수경전인 『청오경』과『금낭경』을 비롯하여, 당대의 양균송조차도 구체적인 심혈법을 제시하지는 못하였으나, 비로소 송대에 이르러 구체성을 더하게 되는데, 조선시대 지리학 고시과목 중에 하나인 『명산론』의 심혈법을 살펴보면, 높으면(陽) 낮은 곳(陰), 급하면(陽) 완만한 곳(陰), 주산(陽)과 객산(陰)을 음양으로 대비시키고, 부족하면 더해주고, 넘치면 덜어주는 요감정혈법까지 제시하였다.
그 외에도 심혈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혹 높은 곳에서는 평평한 곳을 취하고,
혹 낮은 곳에서는 볼록한 곳을 취하고,
혹 완만한 곳에서는 급한 곳을 취하고,
혹 급한 곳에서는 완만한 곳을 취하라.
더러는 주산과 객산을 보고 穴을 취하고,
더러는 좌우를 보고 혈을 정하고,
더러는 석맥을 보고 혈을 정하고,
더러는 물줄기를 보고 혈을 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본래의 자리라고 생각 되는 부분에서 거꾸로 혈을 잡고,
부족한 것을 메워 혈을 잡고,
적절히 더하거나 줄여서 혈을 잡고,
돌려서 쌓고 난 뒤 혈을 잡는 등,
그 혈을 정하는 종류는 하나만 있는 것이다.49)
49) 蔡成禹, 김두규 역, 위의 책, 97-98쪽 : 或以高取平 或以低取突 或以緩取急 或以急取緩 或取主客 或取左右 或取石脈 或取水脈 或反本 或假借 或乘除 或回護 其類不一.
이는 당대의 양균송에 의해 정리된 풍수이론에 근거한바 크다. 왜냐하면 정리된 이론이 없는 상태에서는 혈을 찾을 수 없으며, 그에 따른 심혈법조차 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대에 이르러『지리인자수지』는 이론적 발전과 아울러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심혈법을 제시하였다. 현대에 활용하는 심혈법은 명대의『지리인자수지』에 근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지리인자수지』에 제시된 심혈법을 살펴보면, 주산의 형태에 의한 구성심혈법과,50) 산의 높고 낮음에 따른 삼세심혈법,51) 그리고 주변 산의 원근고저에 따른 삼정심혈법등이 있다.52)
뿐만 아니라 과협을 보고 혈을 정하는 과협심혈법과,53) 보국을 보고 혈을 정하는 보국심혈법,54) 안산의 형상을 통해 혈을 정하는 안산심혈법,55) 명당의 평탄 원만한 모습을 보고 혈을 정하는 명당심혈법,56) 물의 형상을 보고 혈을 정하는 수세심혈법,57) 낙산의 모습을 보고 혈을 정하는 낙산심혈법,58) 귀성의 유무룰 통해 혈을 정하는 귀성심혈법등이 있다.59)
이와 같이『지리인자수지』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심혈법을 제시하였고, 명·청시기에 형세풍수가 꽃을 피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50) 主山의 모양을 보고 穴의 위치와 형태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주산이 貪狼木星이면, 乳頭穴을 찾는다.
主山이 巨門土星이면, 鉗釵穴을 결지한다.
主山이 祿存土星이면,梳齒穴과 鉗釵穴을 결지한다.
主山이 文曲水星이면, 掌心穴을 맺는다.
主山이 廉貞火星이면, 犁壁穴을 결지한다. 主山이 武曲金星이면, 圓窩穴을 결지하는 곳을 찾는다.
主山이 破軍星이면, 鉗穴인 尖槍穴을 맺는다.
主山이 左輔土星이면, 半窩穴인 卦燈穴을 맺는다.
窩穴인 燕巢穴을 찾는다. 右弼 金星은 뚜렷한 主山이 없다.
51) 三勢尋穴法은 主山을 비롯해서 穴 주변의 산들이 모두 높으면, 穴도 높은 산 높은곳에 결지한다.
산이 낮으면 穴도 낮은 산 낮은 곳에 결지 하는 것이 원칙이다.
三勢란 산의 높고 낮음에 따라 天地人으로 나누어 분류한 것이다. 주변 산이 높아 높은 곳에 穴이 있는 것을 天穴이라 한다. 중간에 있는 것을 人穴이라 하며, 주변 산이 낮아 穴도 낮은 곳에 맺는 것을 地穴이라 한다.
또 높은 곳에 있는 天穴을 마치 사람이 서있는 듯 하다하여 立勢라고도 한다. 중간 높이의 人穴은 앉은키 높이라 하여 坐勢라 한다. 낮은 곳에 결지한 지穴은 누워서 잠을 자는 형태라 하여 眠勢라고도 한다.
52) 三停尋穴法은 하나의 산에서 穴이 높은 곳에 있는지, 중간에 있는지, 낮은 곳에 있는지를 살피는 尋穴法이다. 청룡과 백호, 안산, 조산 등 주변 산들의 높고 낮음에 따라 穴의 위치를 예측한다. 또 주변 산들이 멀리 있는가 가까이 있는가에 따라서도 穴의 위치를 예측하여 찾는 방법을 말한다.
주변의 산들이 높고 가까이 있으면 穴은 높은 곳에 결지한다. 이를 上停天穴이라 한다.
주변 산들이 적당한 높이면 穴도 산 중턱에 결지한다. 이를 中停人穴이라 한다.
주변 산들이 낮고 멀리 있으면 穴도 산 아래 낮은 곳에 결지한다. 이를 下停地穴이라고 한다.
53) 過峽尋穴法은 過峽을 보고 穴을 맺을 수 있는 龍脈인지 여부와 위치를 판단하는 것이 尋穴法이다. 또 龍의 生旺死絶과 吉凶禍福을 판단하기도 한다.
54) 保局尋穴法이란 局勢를 보고 穴을 찾는 방법이다. 局勢란 靑龍 白虎를 비롯한 周邊 산들이 穴을 감싸주고 있는 형태를 말한다. 전후좌우에 있는 산들이 主龍과 穴을 향해 유정하게 감싸주고 있으면 穴이 맺을만한 곳이다. 수백 리 혹은 수십 리를 行龍한 용이 穴을 결지 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보국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保局이란 穴을 중심으로 靑龍, 白虎, 案山, 朝山, 明堂, 물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이 취합한 것을 말한다.
55) 깨끗하고 아름다운 案山을 보고 그 맞은편에서 穴을 찾는 것을 案山尋穴法이라 한다.
56) 明堂은 平坦圓滿하면서 均衡있게 穴을 環抱해주는 형태라야 한다. 만약 등을 돌려 배반하거나, 감싸주지 못하고 飛走하면 凶狀으로 穴을 맺지 못한다. 또 기울거나 좁게 狹窄하면 穴을 결지 할 수 없다.
57) 水勢尋穴法은 물을 보고 穴을 찾는 방법이다. 물은 움직이는 陽의 기운이다. 반면에 龍은 움직이지 않는 陰의 기운이다. 穴은 산과 물이 서로 만나 陰陽調和를 이룰 수 있는 곳에서 맺는다.
58) 橫龍入首하여 결지 하는 경우, 樂山을 보고 穴을 찾는 것을 樂山尋穴法이라고 한다.
59) 橫龍入首하는 경우 入首龍 반대 측면에 붙어 있는 鬼星을 보고 穴을 찾는 것을 鬼星尋穴法이라 한다. 橫龍入首穴에는 반드시 鬼星과 樂山이 있어야 한다. 鬼星이 없으면 生氣를 모이게 할 수 없다.
또한 다양한 풍수이론이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시대적 발전에 기인한바 크다. 즉, 풍수의 발전은 당시를 주도하던 학문세계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당시의 풍수학자들은 대부분 유학자들인 경우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학문세계와 연결되는 경향을 보인다. 명대를 주도하던 양명학(陽明學)은 특정의 틀만을 고집하던 주자학(朱子學)과는 달리 다양한 사상을 수용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풍수이론의 발전과 일정부분 연관성을 갖는다.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양균송이 혈의 형상을 주산의 형상과 대비시켰던 기준은 송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명대의『지리인자수지』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성의 수용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명·청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이론서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풍수서는 지나치게 이론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 풍수서로 인해 각각의 논리들이 넘쳐나면서 혼란과 혼동이 판치는 이론의 홍수를 맞게 되었고, 논리가 논리를 만들고 이론이 또 다른 이론을 만들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이 지나치게 이론화된 풍수서들은 본질을 흐리게 되었고 결국엔 본말이 전도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현실 속에서 혈을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렵게 되는 혼란이 가중되었다.
4.2. 穴에 적용하는 理氣風水 분석
혈법과 관련한 이론적 발전도 시대상과 무관치 않는 모습을 보인다.
당대에는 오음성리(五音姓利)로 인해 왕충(王充, 27-104)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풍수는 여전히 유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음성리 외에는 뚜렷한 혈법의 특징을 확인할 수 없다. 송대에는 사마광(司馬光, 1019-1086)에 의해 풍수는 정면으로 비판받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기풍수가 가장 발달한 시기이기도 하다. 혈법도 가장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기풍수 발전을 이룬 왕급(王伋, 1007-1073)과 진박(陳搏)이 주로 활동하던 시기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원대의 풍수는 퇴조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여기에는 관청에서 내려진 풍수금지령과 무관하지 않다. 『신원사(新元史)』 「예지(禮志)」의 기록에 따르면, 원 태정 2년(1325)에 음양상지를 사설(邪說)이라 하여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60)
이와 같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노반경』과 『신간음양보감극택통서』, 『신간음양정리론』, 『팔택주서』등이 출간되어, 풍수발전을 이끈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으나, 뚜렷하게 제시된 혈법은 없다. 명·청대는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한족문화를 다시 일으키기 시작한 시기이다. 특히 명대에는 황제와 상류층 인사들의 총애에 힘입어 풍수는 어느 정도 규범화되었고,61) 형세풍수가 보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이 명·청 시기에는 이기풍수에 비해 형세풍수가 보다 발전하면서, 88향법 외에는 특출한 혈법이 등장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60)『新元史』 「禮志」: 泰定二年 山東廉訪使許師敬 請頒族葬制 禁用陰陽相地邪說 時同知密州事楊仲益撰用周制國民族葬昭穆圖 師敬韙其言 奏請頒行天下焉.
61) 하효흔, 태극풍수지리연구회 옮김, 『중국풍수사』, 논형, 2014, 220쪽
<표 7> 穴法관련 著述과 穴法 區分
水法 관련 著述 | 依水 立向 | 入首龍 관련 穴法 | 三合法 | 其他 |
『地理新法』 | 88 | 地理新法, 催官定坐立向法, | 三合定 | 八卦定坐法 八穴借庫法 分金 三吉六秀 |
혈법을 다룬 이론서로는 <표 7>과 같이 호순신의 『지리신법』외에도 『최관편(催官篇)』과 『지리인자수지』, 『지리오결』등이 있다. 또한, 혈법의 종류로는 88향법62)과 최관정좌입定坐法),65) 사천공망룡(四賤空亡龍),66) 손재상정용법(損財傷丁龍法),67) 쌍금살(雙金殺),68) 살인국(殺人局),69) 삼합정좌법팔괘정좌법(三合定坐法八卦定坐法),70) 이십사룡제길혈(二十四龍諸吉穴),71) 분금(分金)72)등이 있다.
그중에 물을 기준으로 하는 향법으로는 88향법이 있고, 입수룡 관련 혈법으로는 최관정좌입향법, 지리신법, 천월덕입수정좌법, 사천공망룡, 손재상정용법, 쌍금살, 살인국 등이 있다. 삼합관련 혈법으로는 삼합정좌법이 있으며, 기타 혈법으로는 팔괘정좌법과 분금(分金), 팔혈차고법(八穴借庫法),73) 삼길육수74)등이 있다.
62) 88향법은 청말의 조정동이 지은 『地理五訣』에 처음 등장한 향법이다. 현재 88향법은 주택과 묘의 좌향을 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향법이다. 이 향법은 물을 기준으로 향법을 구성하였기 때문에 依水立向法이라고도 한다. 88향법의 구성은 正生向과 正旺向, 自生向, 自旺向, 正養向, 正墓向, 文庫消水, 沐浴消水, 胎向胎流, 衰向胎流, 絶向絶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63) 催官定坐立向法은 『催官篇』에 있는 입수정좌법으로 입수룡에 따라 좌향이 정해져 있다는 향법이다. 즉, 각 입수룡에 따라 입수룡에 부합하는 좌향이 정해져 있고, 이에 부합하는 향을 놓으면 길하다는 것이다.
64) 地理新法은 송대의 호순신이 지은 『地理新法』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조선시대를 풍미하게 되는데, 이 향법은 정작 중국에서는 많은 활용성을 갖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리신법은 입수1절용을 대오행으로 분류하고, 득수처와 파구처를 九星과 12포태법을 대입하여 길흉을 살피는 향법이다. 특히 길한 방향에서 득수하고 흉한 방향으로 파구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모든 향법의 기준점이 되었다.
65) 天月德入首定坐法은 입수2절용과 입수1절용을 보고 천월덕좌향을 놓는 혈법인데,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향법이다.
66) 四賤空亡龍은 입수 1절용과 입수 2절용이 특정 방향인 경우에는 흉하다고 하는 혈법이다. 즉, 亥·壬·戌 용은 핍손하다. 寅·甲·丑 용은 재산이 망한다. 巳·丙·辰 용은 사람이 다친다. 申·庚·未 용은 빈천하다는 것이다.
67) 損財傷丁龍法은 특정의 입수룡에 좌를 정하면 흉하다는 이론이다. 극히 단순한 기준으로 정해진 혈법인데, 그 출처조차 명확하지 않다.
68) 특정의 입수룡에 특정의 좌가 쌍금살에 해당한다는 것으로 이를 어기면 흉하다는 것이다. 즉, 戌·亥龍에는 乾坐가, 辰·巳 龍에는 巽坐가, 丑·寅 龍에는 艮坐가, 未·申 龍에는 坤坐가 雙金殺에 해당하여 흉하다는 것이다.
69) 不配合 雙山의 한 가운데로 들어온 입수룡에 庫葬宮의 坐를 놓으면 흉하다는 向法이다. 즉, 巳·丙 龍에 乙辰坐, 寅·甲龍에 癸丑坐, 亥·壬龍에 辛戌坐, 申·庚龍에 丁未坐가 殺人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70) 三合定坐法八卦定坐法은 삼합을 바탕으로 향을 구성하는 것으로, 삼합의 生·旺·墓를 적절히 활용하는 향법이다.
71) 二十四龍 諸吉穴法은 『地理人子須知』에 소개된 혈법이다. 이 향법은 특정의 입수룡에는 그에 합당한 좌향이 정해져 있다는 것으로, 催官定坐立向法과 맥락의 향법이다.
72) 分金은 장사에서 활용하는 기법으로 망자의 생년을 納音五行과 비교하여 分金을 정하게 된다. 분금의 오행이 亡者의 생년오행을 生하거나 같으면 길하다. 또한 망자의 생년오행이 분금을 극하면 길하지만, 망자의 생년오행을 극하면 흉하다. 그 외에 망자의 생년오행이 분금을 생하면 이 또한 흉하다.
73) 八穴借庫法은 『地理五訣』에 등장하는 혈법으로, 팔괘의 여덟 개 혈이 자생 자왕하는 법이다.
74) 三吉六秀는 향법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는데, 삼길 방위는 辰·庚·亥가 있고 육수방위로는 艮·丙·巽·辛·兌·丁으로 보는 것이다.
이중에 대부분의 혈법은 활용성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88향법과 분금만이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88향법은 현재에도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청말에 출현하여 비교적 근대라는 점과 합리성이 보다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이기풍수는 득수처와 파구처, 주산과 좌향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이기풍수가 갖는 장점인 동시에 한계성으로 작용한다.75)
혈에 적용된 이기풍수의 종류와 활용법이 많지 않은 것은 근본적인 논리체계에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문제점을 극복할 필요성이 크다.
최고의 풍수경전인『청오경』에는 “음양으로 향을 정함에 있어서, 절대로 이치에 어긋나도록 정하지 말라. 그 차이가 털끝만큼만 생겨도, 그 어그러짐이 천리를 간다.”76)고 하였다. 그 만큼 혈에 적용하는 이기풍수는
중요하고 그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는데,77) 이를 다룬 풍수서와 술법은 많지 않다. 따라서 각각의 풍수서에서 다룬 술법들의 특징과 활용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성은 크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혈과 관련한 이기풍수의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발전된 논리의 개발은 절대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75) 조인철, 2005, 「풍수향법의 논리체계와 의미에 관한 연구-건축 계획론의 관점에서-」,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p.227
76)『靑烏經』: 向定陰陽 切莫乖戾. 差以毫釐 繆以千里.
77) 하지만 일부 풍수학인들에 의해 형세풍수만을 중시하고 이기풍수를 경시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청오경』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기풍수의 중요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5. 결론
이상과 같이 풍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혈의 역사와 특징적인 모습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재까지 한국의 풍수연구는 풍수이론의 구성과 역사관련 연구는 부족하였다. 앞으로 한국의 풍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풍수이론의 역사적 사실과 배경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풍수의 핵심을 차지한 혈과 관련한 연구의 필요성은 크다고 할 것이다.
혈이란 산천이 모여들고 물 흐름에 멈춤이 없으며 복되고 후덕하게 주위 사방의 산세가 감싸 안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혈은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데, 혈에 대한 정의는 사전적 의미와 활용성에 따른 정의 그리고 문헌별로 제시된 정의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먼저 사전적인 의미는 용맥의 생기가 취주하여 기가 머무르는 곳으로 산진수회 하고 장풍향양한 곳이라 정의할 수 있다. 반면에 활용성에 바탕을 둔 정의는 혈은 인체에 비유하면 경혈에 해당되는 곳으로, 음택에서는 시신이 매장되는 곳이며, 양택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문헌에 바탕을 둔 정의는 『장경익』에서 산이 멈추고 기가 모인 곳을 혈이라 부른다. 그 외에 혈은 동굴 집을 말하는 것인데, 이를 설문해자와 갑골문의 해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혈의 역사는 최고의 풍수경전인『청오경』에 등장하지만 구체화 되지 못하고, 단지 혈이 갖는 발복론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위대의『관씨지리지몽』과 동진의 곽박에 의해 출간된『금낭경』도 『청오경』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으나,『관씨지리지몽』 과『금낭경』은『청오경』보다는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이후 혈에 대한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당대의 양균송에 의해서다. 양균송은『감룡경』과『의룡경』에서 산의 형상을 구성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혈의 형상을 소개하면서 길흉까지를 제시하였다.
또한, 혈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시작하는데, 양균송은『의룡경』 「하편」에서 혈은 주산의 형상에 따라 혈의 형상이 정해져 있고, 주산의 형상을 따르지 않는다면 가짜 혈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외에도『감룡경』 「변혈편」과『의룡경』 「변성편」에는 주산의 형상에 따라 혈의 형태가 달라진다고 한다. 즉 탐랑성 주산은 유두혈을, 거문성 주산은 와혈을, 무곡성 주산은 겸차혈을, 녹존성 주산은 이벽두혈을, 문곡성 주산은 장심혈을, 파군성 주산은 과모혈을 맺고 좌보 우필성 주산은 연소혈을 맺는다고 한다. 따라서 혈과 관련한 이론만으로 보면 당대는 비약적 발전을 이룬 시기라 할 수 있으며, 풍수논리의 전환기라 할 수 있다. 이후 혈의 형태에 대해 다른 각도의 논리와 형상분류가 이루어지는데, 송대와 명대를 거치면서 본격화된다. 송·명대의 풍수가들은 당시에 저명한 유학자들이 많았고, 이들을 통해 유학이 풍수이론과 접목되는 현상의 일환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양의와 사상 그리고 팔괘로 구분하는 형상분류가 이루어진다.
명대의 유기에 의해 출간된『감여만흥』은 양균송의 풍수와는 다른 각도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데, 현재 풍수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내용이『지리인자수지』가 아니라『감여만흥』에 이미 등장하였다는 사실이다.
와·겸·유·돌로 대변되는 혈의 형상뿐만 아니라 혈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혈론 조차도 이미『감여만흥』에 제시되었다. 이와 같이『감여만흥』은 혈과 관련하여 상당히 앞선 풍수서라 할 수 있으나, 『지리인자수지』와
같은 다양성을 구비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명대에 이르러 혈에 대한 이론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감여만흥』과『지리인자수지』는 대표적 풍수서라 할 수 있다.
『감여만흥』과『지리인자수지』가 현재에도 풍수서의 교본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의 학문세계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명대를 주도한 양명학은 풍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다양한 사고를 바탕으로 풍수이론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풍수서도 시대적 변화에 일정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혈법을 다룬 이론서로는 호순신의 『지리신법』외에도 『지리오결』과 『최관편』 『지리인자수지』등이 있다. 또한, 혈법의 종류로는 88향법과 최관정좌입향법, 지리신법, 천월덕입수정좌법, 사천공망룡, 손재상정용법, 쌍금살, 살인국, 삼합정좌법팔괘정좌법, 이십사룡 제길혈, 분금등이 있다.
그중에 물을 기준으로 하는 향법으로는 88향법이 있고, 입수룡 관련 혈법으로는 최관정좌입향법, 지리신법, 천월덕입수정좌법, 사천공망룡, 손재상정용법, 쌍금살, 살인국 등이 있다. 삼합관련 혈법으로는 삼합정좌법가 있으며, 기타 혈법으로는 팔괘정좌법과 분금, 팔혈차고법 등이 있다.
이중 거의 대부분의 혈법은 현재 활용성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88향법과 분금만이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88향법은 현재에도 상당한 활용성을 보이는데, 청말에 출현한 혈법이라는 점과 합리성이 보다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혈과 관련한 이론은 많은 발전과 변화를 이루어왔으나,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풍수도 시대적 요구를 적극 반영하여 근본적인 이론의 개발과 아울러, 기존의 풍수논리를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적용 가능한 영역의 확대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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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poongsoojiri.co.kr 강의실(검색일 : 2014. 12. 19)
Abstract
Park, Jeong-Hae
(Hanyang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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