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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蔡沈(채침)의 書集傳序

장안봉(微山) 2016. 5. 27. 04:30

 

蔡沈書集傳序

[蔡沈(1167~1230)蔡元定의 셋째 아들로 仲默, 九峰, 諡號文正이며 建陽(지금의 福建) 출신이다.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白鹿洞書院에서 朱熹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즈음 주자는 당시 재상인 趙汝遇의 천거로 남송 제4대 황제인 寧宗經筵官이 되어 개혁정치에 참여했다. 그러나 慶元 원년(1195)에 반대파인 韓侂胄(한탁주) 등이 득세하면서 이른바 慶元黨禁을 일으켰는데 먼저 조여우를 유배 보내 죽게 하였고, 이듬해에는 道學을 배척하여 僞學이라 하고, 조여우와 주희를 따르는 무리들 59인을 逆黨이라 하면서 귀양 보냈다. 이때 蔡元定도 연루되어 蔡沈은 아버지를 따라 官道州(지금의 湖南道縣)로 유배를 갔는데 짚신을 신고 삼천리 길을 걸어갔다. 그곳에서 蔡沈은 문을 닫아걸고 글을 읽으며 무리들에게 강학했다. 아버지가 죽자 운구하여 고향땅으로 돌아온 뒤에 九峰山에 은거하면서 오로지 尙書를 익혔다. 수십 년 만에 그윽하고 은미함을 열어 밝혀 아버지와 스승의 설에 부끄럽지 않게 되었고, 왕왕 선유들이 미치지 못한 바를 발명했기에 학자들은 그를 九峰先生이라 일컬었다. 朱子는 만년에 蔡沈에게 書集傳을 짓도록 했다. 그는 邵雍皇極經世, 이른바 先天數學으로 尙書홍범편을 해석했다. 天地人物은 다 로 말미암아 파생되니, 天地가 시초가 되는 까닭은 이고, 인물이 생하는 바도 이며, 만사가 얻고 잃는 까닭도 라고 인식했다.]

 

慶元己未冬先生文公令沈으로 作書集傳하라하시고 明年先生歿하시다 又十年始克成篇하니 總若干萬言이라 嗚呼書豈易言哉리오 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皆載此書하니 而淺見薄識豈足以盡發蘊奧리오 且生於數千載之下하여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하니 亦已難矣

경원(남송 제4대 황제인 寧宗의 연호) 기미년(1199) 겨울에 문공(朱子詩號) 선생께서 나에게 書集傳을 지으라고 명하시고 이듬해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10년만에야 비로소 편을 다 지었으니 대략 만 여 글자이다. 아아, 를 어찌 쉽게 말하리오. 23왕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이 다 이 글에 갖춰졌으니 본 것이 얕고 아는 것이 박한 자가 어찌 족히 온오함을 다 발했겠는가. 또한 수천 년 뒤에 태어나 수천 년 전에 대해 밝게 강론하고자 했으니 또한 매우 어려웠다.

 

이나 二帝三王之治本於道하고 二帝三王之道本於心하니 得其心則道與治固可得而言矣리라 何者精一執中堯舜禹相授之心法也建中建極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일새라 曰德曰仁曰敬曰誠言雖殊而理則一이니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至於言天則嚴其心之所自出이오 言民則謹其心之所由施禮樂敎化心之發也典章文物心之著也家齊國治而天下平心之推也心之德其盛矣乎로다

그러나 23왕의 다스림은 도에 뿌리하고 23왕의 도는 마음에 뿌리 했으니, 그 마음을 얻으면 도와 다스림은 진실로 가히 얻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정미롭고 한결같이 하여 을 잡으라 함은 堯舜禹가 서로 준 심법이고, 을 세우고 을 세움은 商湯周武가 서로 전한 심법이기 때문이다. 이라하고, 이라하고, 이라하고, 이라고 한 것은 말은 비록 다르지만 이치인즉 하나이니, 이러한 마음의 묘함을 밝히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을 말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그 마음이 나오는 바를 엄하게 하고, 백성을 말하는 데에서는 그 마음이 말미암아 베푸는 바를 삼가니, 예악과 교화는 마음의 발함이오, 법도와 문물은 마음의 드러남이고, 집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치하는 것은 마음의 미룸이니, 마음의 덕이 그 성대하도다.

 

二帝三王存此心者也夏桀商受亡此心者也太甲成王困而存此心者也存則治하고 亡則亂하나니 治亂之分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後世人主 有志於二帝三王之治인댄 不可不求其道有志於二帝三王之道인댄 不可不求其心이니 求心之要하며 舍是書何以哉리오

23왕은 이 마음을 보존한 자이고, 하의 걸과 상의 수(紂王)는 이 마음을 잃은 자이고, 태갑과 성왕은 곤하면서도 이 마음을 보존한 자이다. 보존하면 다스려지고 잃으면 어지러워지니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의 나뉨이 그 마음을 보존하느냐 보존하지 못하느냐의 여하에 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후세의 임금이 23왕의 다스림에 뜻을 둔다면 그 도를 구하지 않을 수 없고, 23왕의 도에 뜻을 둔다면 그 마음을 구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마음의 요체를 구하면서 이 글을 버린다면 무엇으로써 하리오.

 

自受讀以來沈潛其義하고 參考衆說하여 融會貫通廼敢折衷하니 微辭奧旨多述舊聞이오 二典禹謨先生蓋嘗是正하사 手澤尙新이로다 嗚呼惜哉集傳本先生所命이라 凡引用師說不復識別이라 四代之書分爲六卷이라 文以時異治以道同하니 聖人之心見於書猶化工之妙著於物하니 非精深이면 不能識也리라 是傳也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雖未必能造其微이나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因是訓詁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리라 嘉靖己巳三月旣望武夷蔡沈하노라

내가 배워 읽은 이래로 그 뜻에 깊이 잠기고 여러 설을 참고하여 융화 관통함에 이에 감히 절중하니 은미한 말과 깊은 뜻은 대부분이 옛날에 들은 것을 기술했고, 2(요전편, 순전편)과 우모(대우모편)는 선생(주자)께서 일찍이 바로잡으셔서 손때가 아직도 새롭도다. 아아, 슬프도다. 집전은 본래 선생이 명한 바이다. 그러므로 무릇 인용한 스승의 말씀을 다시 구별하여 기록하지 아니했다. 4(요순시대,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의 글을 나누어 6(1虞書 5, 2夏書 4, 3商書 17, 4周書 13, 5周書 8, 6周書 11)으로 하였다. 글은 때로써 다르나 다스림은 도로써 같으니 성인의 마음이 글에 나타난 것은 화공(천지조화의 이뤄냄)의 묘함이 물건에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 정미롭고 깊은 자가 아니면 능히 알지 못하리라. 이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의 마음에 대하여는 비록 반드시 그 은미한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지만,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의 글에 대하여 이 훈고를 따른다면 또한 가히 그 가르치는 뜻의 대략을 얻을 것이다. 가정(남송 寧宗 15) 기사년(1209) 삼월 보름날에 무이 채침은 쓰노라.

속마음 충, 여기서 음은 앞은 기록할지’, 뒤는 알 식

 

 

출처 : 家苑 이윤숙의 한자와 유학경전 강의(경연학당)
글쓴이 : 法故創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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