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몽선습

[스크랩] 童蒙先習

장안봉(微山) 2015. 10. 18. 03:59
영조어제동몽선습서

英祖御製童蒙先習序

夫此書 卽東儒所撰也 總冠以五倫 復以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列之于次 而其自太極肇判 三皇五帝夏殷周漢唐宋以至皇朝 歷代世系 纖悉備錄 逮夫我東 始檀君 歷三國 至于我朝 亦爲俱載 文雖約 而錄則博 卷雖小 而包則大 其況堯舜之道 孝弟而已 舜之命契 以五品爲重 此文之冠以五倫者 其意宏矣

무릇 이 책은 우리나라 학자가 저술한 것이다.
총체적으로 오륜(五倫)을 맨 앞에 놓고,
다시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장유(長幼) 붕우(朋友)를 다음에 열거하였으며,
태극(太極)이 처음 열린 때로부터 삼황(三皇) 오제(五帝) 하(夏) 은(殷) 주(周) 한(漢) 당(唐) 송(宋)을
거쳐 황조(皇朝, 明)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세계(世系)를 모두 자세히 기록하고,
우리 나라에 이르러서는 단군(檀君)을 시작으로 삼국(三國)을 거쳐
우리 왕조(朝鮮)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실었으니,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기록은 넓고,
책은 비록 적으나 포괄한 것은 크다. 그런데 하물며 요순(堯舜)의 도는 효제(孝弟)일뿐임에랴.
순(舜)임금이 설(契)에게 명함에 오품(五品)을 귀중히 여기게 했으니,
이 글에 오륜을 맨 앞에 놓은 것은 그 뜻이 심오하다.


噫 孝於親然後 忠於君 弟於兄然後 敬于長 以此觀之 五倫之中 孝弟爲先 雖然 詩讚文王曰 於緝熙敬止 敬者 成始終徹上下之工夫也 故 大學要旨 卽敬字也 中庸要旨 卽誠字也 誠敬 亦於學問 車兩輪鳥兩翼者也 今予於此書 以誠敬二字 冠于篇首 誠然後 能免書自我自 敬然後 可以欽體欽遵 學者豈可忽乎哉

아! 어버이에게 효도한 후에 임금에게 충성하며 아우가 형에게 공손한 후에 어른에게 공경하니,
이것으로 볼 때 오륜중에서 효제가 첫째이다.
비록 그러하나 시경(詩經)에서 문왕(文王)을 칭탄하기를
"아아 공경함을 널리 빛냈도다(於緝熙敬止)"고 하였으니, 경(敬)이라는 것은
처음과 끝을 이루고 위와 아래를 관통하는 공부이다.
그러므로 대학(大學)의 요지는 곧 경(敬)자이고, 중용(中庸)의 요지는 즉 성(誠)자이다.
성(誠)과 경(敬)이 또한 학문에 있어서 수레의 두 바퀴요 새의 양 날개가 된다.
지금 내가 이 책에 성(誠과) 경(敬) 두 글자로 책머리에 얹노라.
성(誠)한 연후에 능히 '책은 책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음'(書自書我自我)을 면할 수 있고,
경(敬)한 연후에 가히 '공경하여 받들고 공경하여 준수'(欽體欽遵)할 수가 있을 것이니,
배우는 자가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리오


予又於卷下 國初開創 受號朝鮮之文 慨然追慕 三復興感也 噫 繼繼承承 重熙累洽 寔是至仁盛德 深恩隆惠 垂裕後昆之致 繼體之君 式體至德 兢兢業業 誠心調劑 至于蕩蕩 誠心愛民 永保元元 則吾國其庶幾也 吾國 其庶幾也 且我東禮義 雖因箕聖之敎 三韓以後 幾乎泯焉 入于我朝 禮義畢擧 文物 咸備 惜乎 述者之猶遺乎此哉 嗟爾小子 益加勉也夫時玄익(黑+戈)엄(門+奄)茂朝

月上浣 命芸館而廣印 作序文於卷首


나는 또 책끝에서, 우리나라가 개창하여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받은 글에 개연히 추모하며 재삼 감격하도다.
아! 계승하고 계승해서 더욱 밝고 더욱 흡족해서,
진실로 이것이 지극한 어짐(至仁), 성대한 덕(盛德)과 깊은 은총, 융성한 은혜가 후손에게 미친 까닭이니,
왕통을 계승한 임금(繼體之君)은 지극한 덕(至德)을 본받아 삼가하고 두려워하며,
성심(誠心)으로 조제하여 탕탕(蕩蕩)함에 이르며,
성심으로 백성을 사랑하여 원원(元元)을 영원히 보전하면,
우리 나라는 (이상적인 나라에) 거의 가까와질 것이며, 우리나라는 거의 가까와질 것인져.
또 우리 나라의 예의(禮義)가 비록 기자(箕子)의 가르침에서 연유했으나
삼한(三韓)이후에 거의 없어진지라,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예의가 모두 갖추어지고 문물(文物)이
모두 갖추어졌으니, 아깝도다 기술하는 자가 오히려 이를 빠뜨렸구나.
아! 소자(小子)야, 더욱 힘쓸지니라.

임술년(1742년, 영조 18) 조월(朝月. 정월) 상순에 운관(芸館. 교서관)에 명하여 널리 간행케하고 책머리에 서문을 쓴다.

오륜

天地之間萬物之衆 惟人 最貴 所貴乎人者 以其有五倫也 是故 孟子曰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人而不知有五常則其違禽獸 不遠矣 然則父慈子孝하君義臣忠 夫和婦順 兄友弟恭 朋友輔仁然後 方可謂之人矣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중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이 귀한 까닭은 오륜(五倫)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말하기를 "어버이와 자식은 친함이 있으며, 임금과 신하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으며,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으며, 벗사이에는 믿음이 있다"고 하셨으니,
사람이면서도 오상(五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짐승과의 거리가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즉 어버이는 인자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임금은 의롭고 신하는 충성하며,
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순하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며,
벗은 인(仁)을 도운 연후에야 비로소 사람이라 할 수 있다.

父子有親

父子 天性之親 生而育之 愛而敎之 奉而承之 孝而養之 是故 敎之以義方 弗納於邪 柔聲以諫 不使得罪於鄕黨州閭 苟或父而不子其子 子而不父其父 其何以立於世乎 雖然 天下 無不是底父母 父雖不慈 子不可以不孝 昔者 大舜 父頑母 嘗欲殺舜 舜 克諧以孝 烝烝乂 不格姦 孝子之道 於斯 至矣 孔子曰 五刑之屬 三千 而罪莫大於不孝

어버이와 자식은 천성(天性)이 친한 것이다.
(어버이는) 낳아서 기르고 사랑하고 가르치며, (자식은) 받들며 뒤를 잇고 효도하며 봉양한다.
이런 까닭에 (어버이는) 의로운 방법으로 가르쳐서 나쁜 데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자식은) 부드러운 소리로 간하여 향당주려(鄕黨州閭)에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니,
진실로 혹 아버지이면서 그 자식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고,
자식이면서 그 어버이를 어버이로 여기지 않으면 어찌 세상에 설 수 있으리오.
비록 그러하나 천하에 이러한 부모가 없지 않다.
어버이가 비록 자애롭지 않더라도 자식은 불효하면 안된다.
옛날에 순(舜)임금은, 아버지가 완악(頑惡)하고 어머니가 모질어서 일찍이 순을 죽이려 했거늘,
순이 능히 효도로써 화합하셔서 점점 나아져 간악(姦惡)함에 이르지 않게 하시었으니,
효자의 도리는 여기에서 지극하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오형(五刑)에 속한 것이 삼천이나 되지만 죄중에 불효보다 더 큰 죄가 없다"고 하셨느니라.

君臣有義

君臣 天地之分 尊且貴焉 卑且賤焉 尊貴之使卑賤 卑賤之事尊貴 天地之常經 古今之通義 是故 君者 體元而發號施令者也 臣者 調元而陳善閉邪者也 會遇之際 各盡其道 同寅協恭 以臻至治 苟或君而不能盡君道 臣而不能修臣職 不可與共治天下國家也 雖然 吾君不能 謂之賊 昔者 商紂暴虐 比干 諫而死 忠臣之節 於斯 盡矣 孔子曰 臣事君以忠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의 분수이다.
(임금은) 높고 귀하며 (신하는) 낮고 천하니,
높고 귀한 임금이 낮고 천한 신하를 부리는 것과 낮고 천한 신하가 높고 귀한 임금을 섬기는 것은
천지의 떳떳한 도리(常經)이며 옛날과 지금에 공통되는 의리이다.
이런 까닭에 임금은 하늘의 원리(元)를 본받아 호령을 발하고 명령을 내리는 자요,
신하는 하늘의 원리를 조화시켜 착한 일을 베풀고 간사함을 막는 자이다.
임금과 신하가 모이고 만날 때에는 각각 그 도를 다하여,
함께 공경하고 서로 삼가하여 지극한 정치(至治)에 이르는 것이다.
진실로 혹 임금이면서 임금의 도를 다하지 못하며 신하이면서 신하의 직책을 닦지 못하면,
함께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 없느니라.
비록 그러하나 우리 임금은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적(賊)이라 말한다.
예전에 상(商)나라의 주왕(紂王)이 모질고 사납거늘 비간(比干)이 간하다가 죽으니,
충신의 절개가 여기에 다했도다.
공자가 말씀하기를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는 충(忠)으로 해야한다"고 하셨느니라.

夫婦有別

夫婦 二姓之合 生民之始 萬福之原 行媒議婚 納幣親迎者 厚其別也 是故 娶妻 不娶同姓 爲宮室 辨內外 男子 居外而不言內 婦人 居內而不言外 苟能莊以 之 以體乾健之道 柔以正之 以承坤順之義則家道 正矣 反是而夫不能專制 御之不以其道 婦乘其夫 事之不以其義 昧三從之道 有七去之惡則家道 索矣 須是夫敬其身 以帥其婦 婦敬其身 以承其夫 內外和順 父母其安樂之矣 昔者 극缺  其妻之 敬 相待如賓 夫婦之道 當如是也 子思曰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남편과 아내는 두 성(姓)이 합한 것이다.
백성이 태어나는 시초이며 만복의 근원이니,
중매를 통해 혼인을 의논하며 폐백을 들이고 친히 맞이하는 것(親迎)은 그 분별(分)을 두텁게 함이다.
이런 까닭에 아내를 취하되 같은 성을 취하지 않으며,
집을 짓되 내외(內外)를 분별하여, 남자는 바깥에 있으면서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부인은 안에 있으면서 바깥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진실로 (남편은) 능히 씩씩함으로 제 위치를 지켜서 하늘의 굳센 도리(乾健之道)를 몸받고,
(부인은) 부드러움으로 바로잡아 땅의 순종하는 의리(坤順之義)를 이어나가면
집안의 도리(家道)가 올바르게 되려니와,
이에 반하여 남편이 오로지 제어할 수 없어서 그 도리로써 인도하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을 이겨서 의리로써 섬기지 못해서,
삼종의 도(三從之道)가 어두워지고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으면 집안의 도리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모름지기 남편은 자기 몸을 삼가하여 그 부인을 거느리고,
부인도 자기 몸을 삼가하여 그 남편을 받들어서,
내외가 화애롭고 순(順)해야 부모가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
옛날에 극결(극缺)이 밭에서 쟁기질할 때 그 아내가 밥을 내오는 데 공경하여
서로간의 손님을 대접하는 것 같이 했으니,
부부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느니라.
자사(子思)가 말하기를 "군자의 도리는 부부에서 처음 시작된다"고 하였다


長幼有序

長幼 天倫之序 兄之所以爲兄 弟之所以爲弟 長幼之道 所自出也 蓋宗族鄕黨 皆有長幼 不可紊也 徐行後長者 謂之弟 疾行先長者 謂之不弟 是故 年長以倍則父事之 十年以長則兄事之 五年以長則肩隨之 長慈幼 幼敬長然後 無侮少凌長之弊而人道 正矣 而況兄弟 同氣之人 骨肉至親 尤當友愛 不可藏怒宿怨 以敗天常也 昔者 司馬光 與其兄伯康 友愛尤篤 敬之如嚴父 保之如兒 兄弟之道 當如是也 孟子曰 孩提之童 無不知愛其親 及其長也 無不知敬其兄也


어른과 어린이(長幼)는 천륜(天倫)의 차례이라,
형이 형이 되는 까닭과 아우가 아우가 되는 까닭에서 어른과 어린이의 도리가 비롯되는 것이다.
대개 종족(宗族)과 향당(鄕黨)에는 모두 어른과 어린이가 있으니 문란해서는 안된다.
천천히 걸어 어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공손(弟)하다 이르고,
빨리 걸어 어른을 앞서가는 것을 공손하지 않다(不弟)고 한다.
이런 까닭에 나이가 많기를 배(倍)가 되면 어버이같이 섬기고,
10년 위면 형으로 섬기고, 5년 위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따라가니,
연장자는 연소자를 사랑하고 연소자는 연장자를 공경한 후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고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서, 사람의 도리(人道)가 올바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형제는 부모님의 기(氣)를 같이 받은(同氣)의 사람이라,
뼈와 살(骨肉)을 함께 한 아주 친한 사이(至親)이니, 더욱 마땅히 우애할 것이요,
노여움을 감추거나 원망을 품어서 천륜(天倫)의 떳떳함을 어그러 뜨려서는 안된다.
옛날에 사마광(司馬光)이 형인 백강(伯康)과 함께
매우 우애하고 매우 돈독하여 (형을) 아버지같이 공경하고 (아우를) 어린애같이 보호하였으니,
형제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느니라.
맹자가 말하기를
"어린 아이가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며,
커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다"고 하셨다


朋友有信

朋友 同類之人 益者 三友 損者 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 友善柔 友便  損矣 友也者 友其德也 自天子 至於庶人 未有不須友以成者 其分 若疎而其所關 爲至親 是故 取友 必端人 擇友 必勝己 要當責善以信 切切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苟或交遊之際 不以切磋琢磨로 爲相與 但以歡狎戱謔 爲相親則安能久而不疎乎 昔者 晏子 與人交 久而敬之 朋友之道 當如是也 孔子曰 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信乎朋友 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붕우(朋友)는 같은 무리의 사람이다.
유익한 벗이 셋이요, 해로운 벗이 셋이니,
벗이 곧으며 벗이 미더우며 벗이 견문(見聞)이 많으면 유익하고,
벗이 편벽되며 벗이 유약하며 벗이 아첨하면 해로운 것이다.
벗이란 것은 그 덕을 벗하는 것이라,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벗으로써 이루지 못한 것이 없으니,
그 정분(情分)은 성긴 듯하지만 그 관계는 매우 가깝다.
이런 까닭에 벗을 취하되 반드시 단정한 사람으로 하며,
벗을 택하되 반드시 자기보다 나아야 하니, 마땅히 믿음으로 착한 일을 책하며,
간절하고 절실하게 충고하여 선(善)으로 인도하다가, 할 수 없으면 그만둘 것이다.
진실로 혹 교유할 때에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서로 더불지 아니하고,
단지 장난하고 노는 것으로 친한다면, 어찌 오래되면 소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안자(晏子)가 사람을 사귀되 오래토록 공경하니 붕우의 도리는
이와 같으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벗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면 윗 사람에게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
벗에게 믿음을 얻는 데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 공손하지 못하면
친구에게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


總論

此五品者 天敍之典而人理之所固有者 人之行 不外乎五者而唯孝爲百行之源 是以 孝子之事親也 鷄初鳴 咸관漱 適父母之所 下氣怡聲 問衣욱寒 問何食飮 冬溫而夏淸 昏定而晨省 出必告 反必面 不遠遊 遊必有方 不敢有其身 不敢私其財 父母愛之 喜而不忘 惡之 懼而無怨 有過 諫而不逆 三諫而不聽 則號泣而隨之 怒而撻之流血 不敢疾怨 居則致其敬 養則致其樂 病則致其憂 喪則致其哀 祭則致其嚴

이 다섯 가지는 하늘의 편 법전이며 사람의 도리로서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행실이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오직 효도(孝)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이런 까닭에 효자가 어버이를 섬김에는,
닭이 처음 울거든 세수와 양치질을 다하고 부모님의 처소로 가서
기운을 낮추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어 옷이 더운가 추운가를 여쭈며,
무슨 음식을 드실까를 여쭈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정해드리고 새벽에는 문안하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고하며,
돌아와서는 반드시 뵈며, 멀리 돌아다니지 않으며, 돌아다닐 때는 반드시 행방을 알리며,
감히 몸가짐을 제멋대로 하지 않으며, 감히 재물을 마음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부모가 사랑하시면 기뻐하여 잊지 말며, 싫어하시면 두려워하여 원망하지 않으며,
잘못이 있으면 간하되 거슬리지 말고, 세번을 간해도 듣지 않으시면 울면서 따르며,
노하여 피가 나도록 매질을 하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며,
부모가 거처할 때는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다하고, 편찮으시면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슬픔을 다하고, 제사에는 엄숙함을 다해야한다.


若夫人子之不孝也 不愛其親 而愛他人 不敬其親 而敬他人 惰其四肢 不顧父母之養하博奕好飮酒 不顧父母之養 好貨財 私妻子 不顧父母之養 從耳目之好 以爲父母戮 好勇鬪  以危父母


사람의 자식으로 불효를 하는 자는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며,
그 사지를 게을리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며,
장기나 바둑을 두고 술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아니하는 것이며,
보화와 재물을 좋아하며 아내와 자식을 사사로이 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며,
이목의 좋아함을 좇아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기를 좋아하여 싸움을 사납게 하여 부모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噫 欲觀其人 行之善不善 必先觀其人之孝不孝 可不愼哉 可不懼哉 苟能孝於其親 則推之於君臣也 夫婦也 長幼也 朋友也 何往而不可哉 然則孝之於人 大矣 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 然 自非生知者 必資學問而知之 學問之道 無他 將欲通古今 達事理 存之於心 體之於身 可不勉其學問之力哉 玆用其歷代要義 書之于左

슬프다!
그 사람의 행실의 착하고 착하지 않음을 보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효성스러움과 효성스럽지 않음을 볼 것이니,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있으며 가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실로 그 어버이에게 효도할 수 있으면, 임금과 군신사이와, 남편과 아내 사이와,
어른과 어린이 사이와, 벗과 벗 사이에서도 그것을 미루어서 어디를 간다고 그렇게 할 수 없겠는가?
그런 즉 효도는 사람에 있어서 중대한 것이지만, 또한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면서부터 아는 자(生知)가 아니면 반드시 학문(學問)에 의하여 알아야 한다.
학문의 길은 다름이 아니라, 옛날과 지금을 통하며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그것을 마음에 보존하며 몸에 체득하는 것이니,
그 학문을 기르는데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역대의 요점을 모아 다음에 적노라.


東方 初無君長 有神人 降于太白山檀木下 國人 立以爲君 與堯 竝立 國號 朝鮮 是爲檀君 周武王 封箕子于朝鮮 敎民禮儀 設八條之敎 有仁賢之化 燕人衛滿 因盧관亂 亡命來 誘逐箕準 據王儉城니 至孫右渠 漢武帝 討滅之 分其地 置樂浪臨屯玄도眞蕃四郡 昭帝 以平那玄도 爲平州 臨屯樂浪 爲東府二都督府 箕準 避衛滿 浮海以南 居金馬郡 是爲馬韓 秦亡人 避入韓 韓 割東界 以與 是爲辰韓 弁韓則立國於韓地 不知其始祖年代 是爲三韓

동방에 처음에는 군장(君長. 임금)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태백산(太白山)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임금으로 세웠는데,
요(堯)임금과 병립(竝立)하여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였으니 이가 곧 단군(檀君)이다.
주무왕(周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여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서 팔조(八條)의 교법(敎法)을 세웠으니 인현(仁賢)의 교화가 있게 되었다.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노관(盧관)의 난때문에 망명(亡命)하여 와서
기준(箕準)을 꾀어 내쫒고 왕검성(王儉城)에 웅거하였는데,
손자인 우거(右渠)에 와서 한무제(漢武帝)가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서 낙랑(樂浪) 임둔(臨屯) 현도(玄도) 진번(眞蕃)의 사군(四郡)을 두었다.
소제(昭帝)가 평나(平那)와 현도로 평주(平州)를 삼고,
임둔과 낙랑으로 동부(東府)의 두 도독부(都督府)를 삼았다.
기준이 위만을 피해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가서 금마군(金馬郡)에 거처하니 이것이 마한(馬韓)이다.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이 한으로 들어오자
한(韓)이 동쪽 경계를 나누어 주니 이것이 진한(辰韓)이다.
변한(弁韓)은 한(韓)나라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그 시조와 연대를 알지 못한다.
이것이 삼한(三韓)이 된다.


新羅始祖赫居世 都辰韓地 以朴 爲姓 高句麗始祖朱蒙 至卒本 自稱高辛氏之後 因姓高 百濟始祖溫祚 都河南慰禮城하以扶餘 爲氏 三國 各保一隅 互相侵伐 其後 唐高宗 滅百濟高句麗 分其地 置都督府 以劉仁願薛仁貴 留鎭撫之 百濟 歷年 六百七十八年이高句麗 七百五年 新羅之末 弓裔 叛于北京 國號 泰封 甄萱 叛據完山 自稱後百濟 新羅 亡 朴昔金三姓 相傳 歷年 九百九十二年 泰封諸將 立麗祖 爲王 國號 高麗 剋 群兇 統合三韓 移都松嶽 至于季世 恭愍 無嗣 僞主辛禑 昏暴自恣而恭讓 不君 遂至於亡 歷年 四百七十五年

신라(新羅) 시조 혁거세(赫居世)는 진한(辰韓)땅에 도읍하여 박(朴)으로 성(姓)을 삼았고,
고구려(高句麗) 시조 주몽(朱蒙)은 졸본(卒本)에 이르러 고신씨(高辛氏)의 후예라 자칭하여
성을 고(高)라 하였고, 백제(百濟) 시조 온조(溫祚)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도읍하여
부여(扶餘)로 성씨를 삼았는데, 삼국이 각각 한 모퉁이씩을 차지하여 서로 침범하고 정벌하였다.
그 후에 당나라 고종(高宗)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서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하여 유인원(劉仁願) 설인귀(薛仁貴)로서 머물러 있으면서 진무(鎭撫)하게 했다.
백제는 역년이 678년이요, 고구려는 705년이다.
신라말에 궁예(弓裔)가 북경(北京, 北原京 원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했고,
견훤(甄萱)은 반란을 일으켜 완산(完山. 전주)에 웅거하여 스스로 후백제(後百濟)라 칭했다.
신라가 망하니, 박(朴) 석(昔) 김(金) 세 성이 서로 전해 역년이 992년이었다.
태봉의 여러 장수가 왕건(王建)을 세워 왕으로 삼고 국호를 고려(高麗)라 하여
여러 흉적을 쳐서 죽이고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송악(松嶽)으로 도읍을 옮겼다.
말세에 이르러 공민왕(恭愍王)이 아들이 없고, 가짜 임금(僞主) 신우(辛禑)가 어둡고 포악하며
스스로 방자하고, 공양왕(恭讓王)이 임금 노릇을 하지 못해 마침내 망하게 되니 역년이 475년이었다.

天命 歸于眞主 大明 太祖高皇帝 賜改國號曰朝鮮 定鼎于漢陽 聖子神孫 繼繼繩繩 重熙累洽 式至于今 實萬世無疆之休 於戱 我國 雖僻在海隅 壤地 小 禮樂法度 衣冠文物 實遵華制 人倫 明於上 敎化 行於下 風俗之美  擬中華 華人 稱之曰 小中華 玆豈非箕子之遺化耶 嗟爾小子 宜其觀感而興起哉

천명(天命)이 참된 주인에게 돌아가니,
명나라의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국호를 고쳐주어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고 신성한 자손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거듭 밝고 거듭 흡족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실로 영원히 끝이 없는 아름다움이 되었도다.
아아! 우리 나라가 비록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땅은 좁고 작으나,
예악(禮樂) 법도(法度)와 의관(衣冠) 문물(文物)은 실로 중화의 제도(華制)를
준수하여 인륜(人倫)이 위에서 밝고 교화(敎化)가 아래에서 행하여 풍속의 아름다움이
중화(中華)와 같으니, 중국인이 소중화(小中華)라 칭한다.
이것이 어찌 기자(箕子)가 끼친 교화가 아니겠는가?
아, 어린이들은 마땅히 이것을 보고 느껴서 떨쳐 일어날 것인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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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慶州 日新書堂 & 日新古典飜譯院
글쓴이 : 일신 서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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