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牧隱) 이색(李穡)선생 문집의 서문
권근(權近)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이치[理]가 있으면 곧 천지자연의 문채[文]가 있는 것이므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은 그것을 얻어서 사방을 비추고, 풍우상로(風雨霜露)는 그것을 얻어서 변화하며, 산하(山河)는 그것을 얻어서 흐르기도 하고 우뚝 솟기도 하며, 초목(草木)은 그것을 얻어서 꽃을 피우고, 연어(鳶魚)는 그것을 얻어서 날기도 하고 뛰기도 하니, 성색(聲色)을 갖추고 천지 사이에 가득 차 있는 모든 만물이 각각 자연의 문채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크게는 예악형정(禮樂刑政)의 아름다움과 작게는 위의문사(威儀文辭)의 드러남이 어찌 이 이치의 발현(發現) 아닌 것이 있겠는가. 다른 사물들은 그 한쪽만을 얻었고 사람은 그 온전한 것을 얻었다. 그러나 사람 또한 기품(氣稟)의 얽매인 바와 학문(學問)의 성취한 바에 따라서 그 온전함을 보존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자가 드물다. 그러나 성인(聖人)은 천지와 같아 육경(六經)에 실려 있는 구비된 이치와 우아한 문채는 무엇으로도 그 위에 더할 수가 없다.
진한(秦漢) 시대 이전에는 그 기(氣)가 혼연(渾然)하였는데, 조위(曹魏) 시대 이후로는 천지의 기가 분열됨으로써 규모(規模)가 모조리 없어져서 문채와 이치가 진실로 막혀 버렸다. 그러다가 당(唐)나라가 일어나 문교(文敎)를 크게 진흥시킴으로써 작자(作者)들이 계속하여 일어났는데, 처음에는 각기 단편적으로 겨우 자기 나름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고, 그 후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에 이르러서야 그 규모가 광대해져서 천휘 만상(千彙萬狀)이 모두 한데 모이게 되었으며, 송(宋)나라의 구양수(歐陽脩), 소식(蘇軾) 또한 분발하여 일어나서 전인의 규모를 따라잡아 앞질렀으니, 아, 성대하도다.
우리 동방(東方)의 목은 이색선생(牧隱李穡先生)은 자질이 순수하고 기가 맑으며, 학문이 해박하고 이치가 밝아서, 속에 간직한 것은 지정(至精)한 이치에 묘하게 계합(契合)하였고, 배양한 것은 지대(至大)한 호연지기(浩然之氣)에 능히 짝하였다. 그러므로 그 문사(文辭)에 펼쳐진 것들이 침착하여 여유가 있고 혼후하여 한량이 없다. 그 밝음은 일성(日星)보다 더 빛나고, 그 변화하는 것은 풍우(風雨)보다 더 신속하며, 우뚝이 뛰어나서 산악(山岳)보다 더 높고, 세차게 흘러서 강하(江河)보다 더 광대하며, 화려한 꾸밈은 마치 초목의 꽃과 같고, 동(動)하는 것은 마치 연어의 활발함과 같으며, 풍부함은 마치 만물이 각각 그 자연의 묘(妙)를 얻은 것과 같다. 그리고 예악형정(禮樂刑政)의 거대한 일과 인의도덕(仁義道德)의 중정(中正)함도 모두 순수하여 그 중정한 법칙에 귀합(歸合)되었으니, 진실로 천지의 정영(精英)을 타고나서 성현(聖賢)의 심오한 도를 다 연구하고 구양수, 소식의 궤철(軌轍)을 달려서 한유, 유종원의 실당(室堂)에 오른 이가 아니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우리 동방에 문학(文學)이 있어 온 이후로 선생보다 더 훌륭한 분은 없었으니, 아, 지극하도다.
1404년(태종 4) 가을 7월 일에 문인(門人) 순충익대좌명공신(純忠翊戴佐命功臣) 정헌대부(正憲大夫) 참찬의정부사 판형조사 보문각대제학 지경연춘추성균관사 세자좌빈객(參贊議政府事判刑曹事寶文閣大提學知經筵春秋成均館事世子左賓客)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은 서(序)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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