吉再선생을 배향한 吳山書院의 來歷을 記錄한『吳山志』를 찾았다
이택용/경북정체성포럼 선비분과위원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하는『오산지(吳山志)』는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1책(4卷, 50張)으로 1590년(선조 23)에 발간한 책이다. 구미의 향토사를 공부하면서 오산서원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있어서 선현들의 문집에서 자료를 찾기는 했으나,『오산지』가 필사본인지 출판한 책인지가 궁금하였다.
이만운(李萬運)의 서문과 장현광(張顯光) ‧ 조헌(趙憲) ‧ 손순효(孫舜孝)의 시문, 류운룡(柳雲龍)의 제오산지(題吳山志), 정종로(鄭宗魯)의 발문 등이 있어서 늘 찾기 위해서 노력하던 중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책 내용은 고려의 충신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제향(祭享)한 인동(仁同, 현 구미시)의 오산서원(吳山書院)과 관련 있는 기록을 모은 서원지이다. 표지 우측상단에는 목차가 필사되어 있다. 영주에 있는 이산서원(伊山書院)에 1590년(선조 23)에 기증된 기증기가 있고, ‘내견재방 물출원문(來見齋房 勿出院門)’이 필사되어 있는 것을 보아 이산서원의 장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늦어도 1590년(선조 23)에는 간행되었다. 임진왜란 이전의 간본이므로 훈련도감자본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간혹 금속활자도 보이는 목활자본이다. 권두와 권말에는 야은가장(野隱家藏)의 묵인이 있고,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이 인동현감(仁同縣監)으로 있을 때 길재의 묘를 수리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오산서원을 세웠는데 이 글은 그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원래 길재의 묘는 인동현의 서쪽 14리쯤 되는 금오산(金烏山) 동쪽 오포(吳浦, 현 오태동)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1569년(선조 3)년 인동현감 조천계(趙天啓)가 이곳에 묘표를 세우고 오산서원을 창건하였으나, 그 후 돌보는 사람이 없어 황폐한 상태였다. 1585년(선조 19) 류운룡이 이곳 인동현감으로 부임하여 길재의 묘역을 수리하였고, 1587년(선조 21)에는 금오산 나월봉 동쪽에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를 세웠으며 묘소에는 묘표를 다시 세웠다. 1588년(선조 22)에는 오산서원을 묘소 앞 오태산록(吳泰山麓)의 나월봉(蘿月峯) 아래로 이전하였다. 이러한 조치를 취한 류운룡은 오산서원의 여러 유생들이 길재의 학식과 덕망을 본받아 충효를 함양할 것을 바란 것이다. 류운룡의 문집인『겸암집(謙菴集)』에 기록된바 류운룡이 오산서원의 제의나 원규를 도산서원 ‧ 역동서원 ‧ 이산서원 ‧ 백운동서원 등의 원규나『오례의(五禮儀)』를 참작하여 만든 것으로 나타나므로 이 책의 편자는 류운룡으로 볼 수 있다.
권1은 행록(行錄)으로 행장(行狀), 제문(祭文), 비음기(碑陰記), 권2에는 향사(享祀), 제의(祭儀), 전알(展謁), 권3은 학규(學規)로 유사(有司), 원사(院士), 거업(居業), 권과(勸課), 방검(防檢), 교제(交際), 상정(相正), 양현(養賢), 수우(修宇), 점서(點書), 전복(典僕), 권4에는 고증(考證)을 수록하였다.
권1에는 길재의 전기, 권2-3에는 오산서원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것으로 제의와 원규인데, 도산(陶山) ‧ 역동(易東) ‧ 이산(伊山) ‧ 백운(白雲) ‧ 금오(金烏) ‧ 천곡(川谷) ‧ 병산(屛山) 서원의 원규와『오례의(五禮儀)』와『죽계지(竹溪志)』를 참작하여 만든 것이다. 제문에는 1577년(선조 11) 사제문과 박응복(朴應福), 손순효(孫順孝), 윤근수(尹根壽), 류성룡(柳成龍)의 제문이 수록되었다. 원규는 규정마다 다른 서원의 원규를 채택하였으며, 각각 그 전거를 밝혔다. 천곡서원의 원규를 적용한 점서(點書)에는 서적이란 한번 서원에 납입되면 서원문 밖을 나갈 수가 없으나, 간혹 기증이 있거나 서원에서 자체 마련하기도 하므로 책 수에 있어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폭우로 손상될 수 있고 좀이 먹어 못쓰게 될 수도 있어 반드시 점검할 것이며, 포쇄하거나 점검할 때 습기가 닿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조선 중기의 서원연구와 오산서원의 창건에 관하여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을 발간한 후에 묵헌(黙軒) 이만운(李萬運)의 서문이 있고,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중봉(重峯) 조헌(趙憲), 물재(勿齋) 손효순(孫舜孝),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등의 글이 있다. 그리고 입제(立齋) 정종로(鄭宗魯)의 발문이 있어서 중간을 거듭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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