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聖學十圖)
1. 태극도 -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라
2. 서명도 - 천지 만물과 하나가 되어라
3. 소학도 - 일상적인 일에 충실하라
4. 대학도 - 수신으로부터 시작하라
5. 백록동규도 - 인간이 되는 학문을 하라
6. 심통성정도 - 마음을 바르게 해라
7. 인설도 - 인을 본체로 삼아라
8. 심학도 - 잃어버린 본심을 찾아라
9. 경재잠도 - 경의 세부 사항을 실천하라
10. 숙흥야매잠도 -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라
성인이 되기 위한 열 가지 그림, 성학십도
퇴계 이황 연보
조선 중기의 유학자 이황(李滉)이 선조 1년(1568) 12월에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 1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선조에게 68세의 노대신(老大臣)이 즉위 원년에 경연(經筵)에 입시하였을 때 올린 글이다.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군왕의 도(道)에 관한 학문의 요점을 도식으로 설명하였다. 성학이라는 말은 유학을 가리키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성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학문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을 가진다. 《성학십도》는 서론의 내용이 담긴 <진성학십도차>와 10개의 도표와 해설로 되어 있다. <진성학십도차>에서는 왕 한사람의 마음의 징조가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경(敬)의 내면화를 중요시한다. 십도(十圖)란 태극도(太極圖)·서명도(西銘圖)·소학도(小學圖)·대학도(大學圖)·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인설도(仁說圖)·심학도(心學圖)·경재잠도(敬齋箴圖)·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의 10가지이다. 도표 가운데 5개는 천도에 근원하여 성학을 설명한 것이고 나머지 5개는 심성에 근원하여 성학을 설명한다. 7개는 옛 현인들이 작성한 것이고, 3개는 이황 자신이 작성하였다. 십도의 내용서술은 도표와 함께 앞부분에 경서(經書)와 주희(朱熹) 및 여러 성현의 글을 인용한 다음 자신의 학설을 전개하고 있다.
성학십도를 올리는 차(箚-간단한 상소문)와 도(圖)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신(臣) 이황(李滉)은 삼가 재배(再拜)하고 아룁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도는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하도낙서(河圖洛書)가 나옴에, 성인이 이것을 근거로 괘효(卦爻)를 지은 뒤로부터 도가 비로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도는 넓고 넓으니 어디서부터 착수하여야 하며, 옛 교훈(古訓)은 천만 가지나 되니 어디서부터 따라 들어가야 하겠습니까?
성학에는 큰 실마리가 있고, 심법에는 지극한 요령이 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 도(圖)를 만들고, 이것을 지적하여 설(說)을 만들어, 사람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入道之文)과 "덕을 쌓는 기틀(積德之基)"을 보여 주는 것은 역시 후현(後賢)들이 부득이하여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임금된 분의 한 마음(一心)은 온갖 정무(萬幾)가 나오게 되는 자리이며 온갖 책임(百責)이 모이는 곳이며 뭇 욕심이 갈마들며 침공하고, 뭇 간사함이 갈마들며 침해하는 곳입니다. 그 마음이 만일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지면서 방종하여 간다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아서, 그 누구도 이것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옛날의 성스럽고 현명한 황제(聖帝)나 군왕(明王)은 이러한 점을 걱정하여, 항상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로 하루하루를 삼가 지내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긴 나머지, 스승이 되는 관원(師傳之官)을 세우는 한편 바른 말을 간하는 직책을 두었고, 전후좌우에 의승(疑丞) 보필(補弼)이 있게 하였습니다. 수레를 탈 때는 여분(旅賁)의 규(規)가 있었고, 조회 때에는 관사(官師)의 법이 있었으며, 안석에는 훈송(訓誦)의 간(諫)이 있었습니다. 침실에는 근시(近侍)의 잠언(箴言)이 있었고, 일을 처리할 때는 고사의 인도함이 있었으며, 한가로이 있을 때는 공사(工師)의 송(誦)이 있었습니다. 소반이라든가 밥그룻, 책상, 지팡이, 칼, 들창문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길이 닿는 곳과 몸이 처하는 곳에는 어디나 명(銘)과 계'(戒)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유지하고 몸을 방범(防範)하게끔 하는 것이 이토록 지극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덕이 날로 새롭고 업(業)이 날로 번창하여, 티끌만한 허물도 없게 되고, 나아가 큰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후세의 군주들이란 하늘의 명을 받고 왕위에 오른 만큼 그 책임이 지극히 크고 무겁건만 어떻게 되어서인지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닦게끔 하는 것은 하나도 이 같이 엄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하면서도 불손한 태도로 스스로 성자인 체 하는가 하면 오만한 태도로 왕공과 수많은 백성들의 위에서 방자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결국 괴멸하게 되는 것이야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남의 신하가 되어 임금을 도에 합당하도록 인도하려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그 마음을 여러 모로 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장구령(長九齡)이 [금감록](金鑑錄)을 올린 것과 송경(宋璟)이 [무일도](無逸圖)를 드린 것과 이덕유(李德裕)가 [단의육잠]을 바친 것, 진덕수(眞德秀)가 [빈풍칠월도]를 올린 것 등은 모두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금심하여 마지않는 갖은 충정과 선을 베풀고 가르침을 드리는 간곡한 뜻이므로, 임금이 마음에 깊이 새겨 경복(敬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추한 몸으로 여러 대의 임금님께 받은 은혜를 저버린 채, 병든 몸으로 농촌에 틀어박혀 초목과 함께 썩어 가길 기약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헛된 이름이 잘못 전하여져 강연(講筵)의 중임(重任)을 주어 부르시니 떨리고 황송하옵니다. 사양하고 피할 길이 없는데다 이미 이 자리를 면하지 못하고 욕되게 한 이상, 성학을 권도(權導)하고 신덕(宸德)을 보양하여 요순 시대의 융성을 이룩하려는 일만은 비록 사양하려 하여도 할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신은 학술이 거칠고 성기며 언변이 서투른데다 질병까지 잇달아 시강(入侍)조차 드물게 하였는데, 겨울철 이후로는 그것마저 완전히 그만두었으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신이 엎드려 생각하여 보니, 처음에 글을 올려 학문을 논한 것들이 이미 전하의 뜻을 감동 분발시킬수 없었으며, 나중에 직접 대하여 여러차례 아뢴 말씀 또한 전하의 슬기에 도움을 드릴 수 없었으므로, 보잘 것 없는 신의 정성으로는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옛 현인과 군자들이 "성학'을 밝히고 "심법"을 파악하여 "도"와 "설"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문(入道之門)"과 "덕을 쌓는 기초(積德之基)"를 보여주는 것이 마치 해와 별같이 밝게 세상에 돌아다니고 있으므로, 이에 감히 이것들을 가지고 나아가 아룀으로써 옛 대왕들의 공송(工誦)과 기명(器銘)이 남긴 뜻에 대신하고자 하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마도 과거를 본받아 장래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옵니다.
이에 옛것 중에서 삼가 더욱더 두드러진 것을 가려 뽑은 것이 일곱 가지 도(圖)입니다. 그 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정씨도"를 토대로 신이 만든 두 가지 작은 도(小圖)를 덧붙인 것입니다. 그밖에 세 개의 도는 비록 신이 만들었지만, 그 글(文)과 뜻(志)의 조목과 규획은 한결 같이 옛 성현들께서 한 것이지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을 합하여 [성학십도](聖學十圖)로 만들었는데, 각 그림 밑에는 외람되나마 저의 설을 붙여 보았습니다. 삼가 정서하여 사람 편에 올리옵니다.
하온대 신이 추위와 질병에 묶인 채 몸소 이것을 하려 하니 눈이 어둡고 손이 떨려 글씨가 단정하지 못하며 글의 줄과 글 크기가 모두 규격에 맞지 않습니다. 다행히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이것을 경연관(經筵官)에게 내리시어 바로잡을 논의를 더 많이 하게 하는 동시에 틀린 곳을 고치고 보충하게 하신 다음, 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정본(正本)을 정사(精寫)토록 하시기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그 정본을 해당관서에 의뢰하여 병풍 한 벌을 만드셔서 평소 한가롭게 지내시는 곳에 펼쳐 두시도록 하거나 또는 따로 조그마한 수첩을 하나 만들어 항상 궤안에 놓아 두고 기거 동작하실 때 언제나 보고 살피셔서 경계하신다면 충성을 바치려 하는 신의 뜻은 다행스럽기 이를 데 없겠습니다. 그리고 그 뜻 중에 다 드러내지 못한 것을 신이 지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찍이 듣건데 맹자는 "마음의 기능(心官)은 생각(思)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이해되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을 위하여 [홍범](洪範)을 진술할 때에도, "생각하는 것을 예(睿)라 하는데, 예는 성인을 이룩한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마음이란 방촌(方寸)에 있는데 지극히 허(虛)하고 영(靈)한 것입니다. 이(理)야말로, 도서(圖書)에 드러나 있지만, 지극히 허령한 마음으로 지극히 확실하고 알찬 이(理)를 구하면 틀림없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면 이해되고", "예(睿)가 성인을 이룩한다"는 것이 어찌 오늘날이라 하여 증명될 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영묘한 마음이라 해도 만일 마음의 주재하는 능력이 없으면 일을 앞에 당하여 놓고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이(理)의 드러남이 확실하더라도 만일 찾아서 처리하려는 생각이 없으면, 항상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도해를 토대로 생각하는 것도 소홀히 하여서는 아니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듣건대,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면서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로워진다"고 하였습니다. 배움(學)이란 그 일들을 익혀(習事) 참되게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큰 학문(聖門之學)이란 마음을 떠나서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한 점에까지 통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고서도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 위태로워 불안하므로 반드시 배워가지고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생각(思)과 배움(學)은 서로 계발(相發)하고 서로 도움(相益)을 주는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이 이치를 깊이 살피시고, 모름지기 먼저 뜻(志)을 세워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我)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이 순과 같이 되게 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분발하여 생각과 배움의 두 가지 공부에 힘을 쓰셔야겠습니다. 그런데 "지경"(持敬), 즉 경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란 곧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동과 정을 일관하고 안(마음)과 밖(행동)을 합치시키고, 드러난 것(顯)과 숨겨진 것(微)을 한 가지 되게 하는 도리입니다.
경의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은 반드시 이 마음을 제장정일(齊莊靜一)한 속에서 보존하고, 이에 대한 이치를 학문사변(學問思辨)하는 사이에 궁리하며, 남이 보지도 듣지도 않는 곳에서 "계구", 즉 자신을 경계하며 두려워하는 것을 더욱 엄숙하고 공경스럽게 하며, 혼자만 있는 은밀한 곳(隱微幽獨之處)에서는 "성찰", 즉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더욱더 정밀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도해(圖)에 입각하여 생각할 때에는 그 도해에만 집중적으로 전념하여 마치 다른 도해가 있다는 것은 모르는 듯이 하여야 하며, 어느 한 일을 익힐 때는 그 일에만 전념하여 마치 다른 일이 있는 것은 모르는 듯이 해야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변함없이 그렇게 하여야 하고 오늘과 내일 매일매일 계속하여야 합니다. 혹은 새벽녘 정신이 맑을 때(夜氣淸明時)에 되풀이하여 그 뜻을 음미하여 보기도 하고, 혹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응대할 경우에도 그것들을 경험하면서 키워가셔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처음에는 혹 부자유스럽고 모순되는 난점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거나, 때로는 극히 고통스럽고 불쾌한 일들도 ?平? 않겠으나, 이러한 것은 바로 옛 사람들의 이른바 "장차 크게 나아갈 기미(大進之幾)"이며 또한 "좋은 소식의 징조(好消息之端)"이니, 절대로 이로 인하여 그만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더욱더 자신을 가지고 힘을 기울이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이(理)가 서로 영향을 미쳐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환히 꿰뚫 듯 이해하게 되고, 익히는 것(習)과 그 익혀진 일이 서로 익숙하여져서 점차로 순탄하고 순조롭게 행하여지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각각 그 한가지에만 전념하던 것이 끝내는 모두 일치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맹자가 말한 " 학문을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자기에게) 깨닫는 경지(深造自得之境)"이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만두지 못할 경험입니다. 또 이에 따라서 부지런히 힘써 나의 재능(吾才)을 다하면 안자(顔子)의 인을 어기지 않는 마음과 나라를 위하는 사업(爲邦之業)이 다 그 속에 있게 될 것이며, 증자(曾子)의 일관된 충서(忠恕)와 전도의 책임이 그 몸 자신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외경(畏敬)"의 태도가 일상생활 중에서 떠나지 않으면 "중화(中和)"에 의한 만물의 "위육(位育)"의 공(功)을 이룩할 수 있으며, "덕행"이 이륜(人倫)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천인 합일"의 묘한 경지도 마침내 이룰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도라 하여 만들고 설이라 하여 지은 것이 겨우 열폭의 종이에 늘어놓은 데 불과하며, 생각하시고 익히시는 것이 단지 평소 한가로운 곳(燕處)에서 하는 공부에 지나지 않지만 도(道)를 깨달아 성인을 이루는 요체와 근본을 바로잡아 정치를 베푸는 근원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전하께서 이에 시종 유의하시어 하찮다고 소홀히 하신다거나 귀찮고 번거롭다고 치워 버리지 않으신다면, 나라(宗社)의 다행이며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신이 초야에 묻힌 야인으로서 근폭(芹曝)을 올리는 정성으로 전하의 위엄을 모독하는 것임을 무릅쓰고 바치나이다. 황송하옵고 송구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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