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

[스크랩] 예기(禮記)-2 禮란?

장안봉(微山) 2014. 2. 20. 02:38

예기(禮記)-2 禮란?
禮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교 윤리규범으로 종교적인 의의와 제도적인 의의를 함축하고 있다. <說文>에 의하면 ‘禮자는 示와 豊을 모은 字이다. 시(示)는 원래 神字에서 示만은 뗀 것이며, 시는 또 다시 二와 小자를 합친 자이다. 二는 본래 上을 뜻하며, 小는 上天으로부터 日, 月, 星의 광선이 내려 비쳐주는 형상이다. 豊은 曲과 豆를 합친 것으로 豆는 祭器요, 曲은 그릇에 제물을 담은 모습이다. 제기에 제물을 담아서 神에게 올리는 恭敬心의 표현이 禮라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三代, 즉 孔子 이전의 예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書經>의 여러 기록에서도 나타나거니와 당시의 예의 관념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것이었다. 西周初에 이르러서는 殷禮를 답습하다가 周公에 의하여 禮樂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周禮>도 공자 당시에는 많은 변천을 겪어야 했다. 예가 사회적 규범인 이상 고정적인 것일 수 없고, 공간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공자는 “은나라는 夏禮에 말미암았으니 손익한 바를 알 수 있고, 주나라는 殷禮에서 말미암았으니 손익한 바를 알 수 있으며, 혹 주나라를 계승한다면 비록 百代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대의 예는 종교적 성격이 많이 감소되고 정치적 윤리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주왕실의 통치수단적인 의미가 반영되었음을 뜻한다.

공자의 시대는 ‘無道의 사회’로 표현할 만큼 각국은 富國强兵에 전념하던 상황이었다. 이에 공자는 도덕적 인간성 회복에 중점을 두지 않을 수 없었으며, ‘克己復禮爲仁’이라고 하여, 爲仁의 방법으로서 사사로운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야함을 강조하였다. 인간의 인간다움이 仁이라고 한다면 예는 그것의 실천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여기서 예는 비로소 철학적인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극기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四勿로서 言行視聽 등 모든 행동을 예에 의거하여 제약하라는 것이며, 결국 復禮의 의도는 본래적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예는 본래 종교적 의례 형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러한 경외지심은 宗法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法制, 사회적 典禮, 윤리적 禮儀로 확장되어 갔다.

<周官>은 바로 주대의 법제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예는 바로 법제를 의미하며 天命에 입각한 禮樂政治를 이상으로 하는 유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공자의 德治와 맹자의 王道政治의 이념이 그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능히 禮讓으로써 실천한다면 나라 다스리는 데 무엇이 어려울 것이며, 능히 예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예를 어찌하리오?”라고 하였던 것이다.

사회적 전례로서는 <儀禮>,<禮記>등에 기록된 바의 五禮(吉 凶 軍 嘉 賓), 六禮(冠 昏 喪 祭 鄕飮酒 相見), 九禮(冠 昏 朝 聘 喪 祭 賓主 鄕飮酒 軍旅) 등을 들 수 있다. 보통 말하는 禮儀, 禮式은 주로 이러한 사회적 전례를 가리킨다. 윤리적 예의는 五常의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적 예의라도 정치적 법제와 사회적 전례와 전연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의식이나 정치적 법제 내의 윤리적 의의를 인정해서 이것을 윤리적 의의라고 하는 것이다.

출처 : 瑞亭漢文
글쓴이 : 나루터 최계원 원글보기
메모 :

'예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예기(禮記) 원문  (0) 2015.06.30
[스크랩] 예기와 예기정의 한문 원문  (0) 2015.04.03
[스크랩] 예기(禮記)-1 예기란?  (0) 2014.02.20
[스크랩] 예기 원문  (0) 2014.02.20
[스크랩] 예기 원문  (0) 2014.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