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 묘역(화성시 향토유적 13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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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남박씨 묘역 전경 |
반남박씨 묘역도 홍사용선생 묘역 주변에 있습니다만, 지번만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동사무소에 들아가서 위치를 물어보니 아무도 아는 직원이 없다고 면사무소로 가라고 하더군요. 면사무소에 갔더니 이 곳 직원들도 묘는 모르지만 지번으로 지적도와 항공 사진으로 찾아 보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서 겨우 위치를 알았습니다. 큰재봉공원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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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에는 반남박씨 묘원이란 돌 표지판이 있으며, 안쪽에 묘역이 있습니다. 관리인에게 이야기하고 들어가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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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에 세워진 재실(영모재/永慕齋) |
▲ 우측 묘역군 전경 |
반남박씨 묘역에는 박주(1520~1592) 창신교위, 박려(1549~1587) 증좌승지, 박대하(1577~1623) 군자감정, 박욱(1598~16667), 박원경(1622~1705) 중추부사 등 교위공파에 속하는 여러 인물과 그 후손의 묘소가 자리 잡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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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묘역군 전경 |
▲ 좌측 묘역군에서 내려다 본 묘역 입구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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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묘역군 하단에서 2번째 묘(박대하/朴大夏 묘)와 동자석 모습 |
박대하(朴大夏,1577년∼1623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초명은 대겸(大謙). 자는 무업(茂業), 호는 송곡(松谷). 생원 여(瓈)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 36)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 감찰·평안도도사 등을 지내고, 1608년 선조가 죽자 벼슬을 사직하고 은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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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묘역군 하단에서 3번째 묘(박려/朴瓈 묘) |
▲ 좌측 묘역군에서 맨 위의 묘(박주/朴澍 묘) |
박주의 묘는 상석, 혼유석, 향로석, 동자석 1쌍 등 원래의 석물을 갖추고 있다. 박주의 아들 박려의 묘는 1999년에 건립한 묘표를 제외하고는 옛 석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박려의 아들인 박대하의 묘는 묘표를 비롯한 모든 석물이 원래의 것이나 향로석은 땅속에 깊이 매몰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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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묘역군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맨위 박주/2단 박주의 아들 박려/3단 박려의 아들 박대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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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묘역군을 내려오며 바라 본 입구 방향 모습 |
▲ 우측 묘역군 좌측에 홀로 있는 묘(박창유/朴昌裕 묘) |
14대 박욱의 묘에는 후손인 남계 박세채(숙종때 좌의정)께서 묘비석을 직접 찬하고 명필가이신 윤덕준(숙종때 이조판서)이 쓴 조선 숙종때의 비문이 있어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된다. 17~18세기에 걸쳐 집중적으로 조성된 4쌍의 석인과 3기의 비석이 잘 보존되어 석인상의 양식 변화 과정은 물론 이 시기 서예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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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 묘역군 전경 |
▲ 우측 묘역군 상단에 있는 박대하의 아들 박욱 묘역 전경 |
박대하의 아들인 박욱의 묘는 원래 충청남도 연기군에 있었으나 최근 현재의 장소로 이장하였다. 옛 석물을 그대로 갖추고 있으며, 근래에 후손들이 봉분에 장방형의 호석을 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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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 묘역군 2열 첫 번째 박욱의 아들 박원경(朴元慶) 묘 |
▲ 우측 묘역군 3열 모습 |
반남박씨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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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화성시 동탄면 석우리 산1-1 화살표 ↑ 부분에 반남박씨 묘역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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