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김씨(順天金氏)
순천(順天)은 전라남도 남동쪽에 위치하며 백제시대에는 함평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승평(昇平)으로 고쳤으며, 983년(고려 성종 2) 지명을 순주(順州)·자주(慈州)·은주(殷州)로 고치고 각 주마다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 995년(성종 14) 곤해군절도사(袞海軍節度使)가 파견되고, 1012년(현종 3) 안무사로 고쳤다가, 1036년(정종 2) 다시 승평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 부유현(富有縣)·돌산현(突山縣)·여수현(麗水縣)·광양현(光陽縣)을 속현(屬縣)으로 거느렸다. 1309년 승주목(昇州牧), 1310년 순천부(順天府)가 되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도호부로 승격하여, 조선시대 동안 순천도호부는 전라좌도 남부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1479년(성종 10) 속현이었던 여수현(麗水縣)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어 전라좌도 해안방어의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순천의 별호는 평양(平陽)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 소속 순천군으로 개칭하고, 1896년 전라남도 순천군이 되었다. 1949년 8월 순천읍과 도사면 일부 해룡면 일부를 합하여 순천시가 되고 종래의 순천군은 승주군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의 새로운 순천시가 되었다. 2003년 승주읍과 10면 1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천김씨 시조는 김총(金摠)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문헌비고(文獻備考)》, 《평양군공영정이안기(平壤君公影幀移安記)》에 의하면 신라 왕실의 후예로 헌안왕 때 인가별감(引駕別監)으로 많은 공을 세워 평양군(平陽君: 순천 옛 지명)으로 봉해졌다. 그 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순천(順天)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순천김씨의 가문은 단종 때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후손인 김종서(金宗瑞)가 화를 입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여 선대의 문헌이 거의 소실되었다. 다만 김윤인(金允仁)이 중현대부(中顯大夫) 전객시령(典客寺令), 김형(金浻)이 추밀원사(樞密院事), 김유정(金惟精)이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정주목사(定州牧使)를 역임하고, 충순보조익위공신(忠純輔祚翊衛功臣)으로 여산군(麗山君)에 봉해졌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후손등이 김윤인을 일세조로 삼고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계유정란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후 후손인 김유온(金有溫)의 외가인 안동권씨의 보호를 받으며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그의 7세손인 김류(金瑬)와 김경징(金慶徵)이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공을 세워 공신의 반열에 오르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746년(영조 22)에 김종서가 신원되면서 양민 신분을 획득하였다고 한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전서공파(典書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묵재공파(黙齋公派), 절재공파(節齋公派), 전직공파(殿直公派), 영주공파(寧州公派), 사예공파(司藝公派), 양경공파(襄景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 익찬공파(翊贊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판서공파(判書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군수공파(郡守公派), 횡성공파(橫城公派), 상의원정공파(尙衣院正公派)로 나뉘어졌다.
순천김씨 시조 사적지 전경
재실 동원재(同源齋)
평양군영당-시조 김총의 영정을 모신 영당이다
2세~21세 추모단-시조 김총 묘역 오르는 입구에 있다
순천김씨 시조 김총 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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