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스크랩] 지나치지 않는 마음

장안봉(微山) 2013. 12. 4. 06:19

지나치지 않는 마음

피지 않았을 땐 조바심에 더디 핀다 저어하다가
한창 피고 나면 애태우며 조락을 다시 걱정하여라
이제야 알겠네 소옹이 사물의 이치 꿰뚫어보고
꽃을 볼 때 반개한 때만을 취한 그 이유를

未開躁躁常嫌遅
旣盛忡忡更怕衰
始識邵翁透物理
看花惟取半開時

- 유숙기(兪肅基, 1696~1752)
「다시 매화를 노래하다 두 번째(又賦梅 其二)」
『겸산집(兼山集)』 권1
 


  유숙기는 주로 영조(英祖) 연간에 활동했던 문인이다. 그런데 분매(盆梅)를 유독 좋아했던 모양이다. 좋은 분매가 있으면 백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이불과 털가죽에 싸 가지고 와 완상(玩賞)할 정도로 분매에 대한 벽(癖)이 있었다고 스스로 노래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이 시는 먼저 「매화(梅花)」 2수를 읊고 난 뒤 매화에 대한 감상이 미진하였던지 남은 생각을 다시 2수로 읊은 것 가운데서 두 번째 시이다.

  역대로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 유명해진 꽃들이 있다. 동진(東晉)의 은사(隱士) 도연명(陶淵明)은 국화를 사랑하여 울타리 아래 가꾸면서 술에 띄워 마시기도 하였고, 북송(北宋)의 주돈이(周惇頤)는 연꽃을 사랑하여 「애련설(愛蓮說)」이라는 짧은 글을 통해 연꽃의 품격을 추켜세웠으며, 구양수(歐陽脩)는 「낙양모란기(洛陽牡丹記)」라는 짧은 책자에서 “천하의 참된 꽃은 오직 모란[天下眞花獨牡丹]”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모란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한편, 매화는 북송(北宋) 때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서 평생 독신으로 은거하며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았던 임포(林逋)의 매화시를 통해 그 청고(淸高)하고 아결(雅潔)한 형상이 주목받기 시작하여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비롯한 수많은 문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다른 꽃들을 압도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 시의 첫 수는 역대 매화시의 주제와 별로 다르지 않다. 겨울의 추위를 무릅쓰고 피고야 마는 그 고고한 기상은 여느 화사한 꽃들과 봄을 다투지 않고, 속살까지 하얀 그 빛깔은 흩날리는 눈보다 오히려 더 흴 정도이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 향기가 은은하게 공간을 가득 채우고, 겨울밤 달빛 아래 매화 그림자는 춤을 추듯 일렁인다. 책상에 놓인 매화 한 가지를 바라보며 시인은 매일같이 매화를 노래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꽃이 피면 언젠가 지는 것은 자연계의 이치인 법. 생명은 성쇠(盛衰)의 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인가. 꽃이 피기 전에는 어서 꽃이 피었으면 하고 아이처럼 바라더니 꽃이 활짝 피고 나서는 덜컥 노인처럼 조락(凋落)을 걱정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제 저 꽃이 지면 또 한 해를 기다려야 할 터인데. 이때 문득 착잡한 시인의 마음속으로 옛사람의 지혜가 떠오른다. “술을 마심은 흠뻑 취하는 데까지 가지 않게 하고, 꽃을 완상함은 만개한 데까지 이르지 말도록 삼가네.[飮酒莫敎成酩酊 賞花愼勿至離披]”라고 노래했던 소옹(邵雍)의 지혜가. 실제로 소옹은 만개(滿開)한 때 꽃 보는 것을 삼가고 반개(半開)한 꽃을 더 좋아했는데, 이는 ‘좋은 장소는 오래 연연해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곳은 다시 가지 말라.[優好之所勿久戀 得志之地勿再往]’고 말했던 처사(處士) 진단(陳摶)의 충고를 실천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극즉반(物極則反)’이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은 극에 이르면 반대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이 이치를 알아 노자(老子)는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장구할 수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라고 말했을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온통 ‘극(極)’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되돌아보게 된다.

 

글쓴이 : 변구일(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출처 : ▒ 한 산 草 堂 ▒
글쓴이 : 천하한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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