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양왕릉(사적 191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고려 공양왕릉 입구에서 바라 본 능역 전경 |
대중교통으로 공양왕릉을 가기 위해서 지하철 3호선 원당역에서 내려서 공양왕릉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고양시청 앞에서 버스를 타라고 해서 1Km 가량 걸어서 시청 앞에서 왕능골 가는 버스를 타고 왕능골에서 하차했습니다. 수첩을 잃어 버려서 버스 번호는 모릅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길 건너 마을길로 걸어 가다 보면 사당이 하나 나옵니다. 저는 이 것이 공양왕릉 사당인가 하고 담장 너머로 넘겨다 보았습니다만, 조선왕조 제3대 태종의 2남 효령대군의 손자 율원군(栗元君) 이종의 사당이었습니다. |
▲ 충의제(효령대군의 손자인 율원군 이조의 사당) 전경 |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래 좌측 사진과 같이 묘지군이 보이는데, 이 곳이 공양왕릉입니다. 능역 좌측 소나무 사이로 고려국 공양왕릉제라는 플래카드도 걸려 있었는데, 고양시 향토문화 보존회에서 매년 제를 지내는 것 같습니다. 삼척에 있는 공양왕릉에서도 2006년 5월 14일(음력 4월 17일, 공양왕이 살해된 날) 봉제(奉祭)가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좌측에 물이 마른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공양왕과 삽살개의 전설이 있는 연못으로 흔적만 남은 것을 최근에 다시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
▲ 공양왕릉 초입 전경 |
▲ 공양왕과 삽살개의 전설의 연못 |
▲ 공양왕릉제를 알리는 플래카드 |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개성에서 도망쳐 이 곳의 작은 사찰에 머물며 지내던 어느 날, 공양왕이 보이질 않아서 여러 사람들이 찾아 헤메었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공양왕이 귀여워 하던 삽살개가 연못을 들여다 보며 자꾸 짖어대서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보니 그 안에서 옥새를 품은 왕이 왕비와 함께 죽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
▲ 고려 공양왕릉 전경 |
39기 고려왕릉 중에 남한에는 6기의 고려 왕릉이 있으며, 강화도에 4기(사적으로 지정) 그리고 이 곳 고양시의 고려 공양왕릉(高麗 恭讓王陵)은 사적 1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삼척에도 공양왕릉이 있는데 삼척 공양왕릉(三陟 恭讓王陵)이란 명칭으로 강원도 기념물 7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두 곳의 공양왕릉은 문헌의 기록이 부족하여 어느 쪽이 왕릉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하며, 고양시의 능은 조선 왕조가 인정하고, 삼척시의 능은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두 곳 모두 조선시대 문헌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
▲ 입구 좌측에서 바라 본 공양왕릉(맨 앞의 봉분) 전경 |
▲ 공양왕릉 정면 전경 |
공양왕릉은 10여 미터의 사초지 위에 쌍릉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왕릉 주변은 붉은 목책을 둘러 놓았습니다. 최근에는 능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는 것 같은데... |
▲ 공양왕의 능 |
▲ 공양왕비의 능 |
쌍릉 앞에는 각각의 묘표석이 서 있으며, 중앙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는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조선 고종때 세우고 高麗恭讓王高陵이는 글이 새겨 졌다고 하는데 글씨는 잘 판독이 안됩니다. |
▲ 능역 우측 인석 전경 |
▲ 공양왕릉 전경 |
▲ 석수(호랑이인지, 삽살개인지) |
비석 바로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그 앞에는 기단부가 없이 꽃혀 있는 듯한 장명등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장명등에서 10여 미터 앞에는 깨진 듯한 돌 조각을 석수(호랑이 상이라 하기도 하고 삽살개 상이라기도 하네요)가 뚫어져라 바라 보고 있습니다. |
▲ 키 큰 인석 |
▲ 묘표석 |
▲ 장명등 |
▲ 키 작은 인석 |
능역 좌우로는 망주석과 작은 인석 그리고 큰 인석이 한 쌍씩 서 있습니다. 큰 인석은 문인석으로 보이는데, 작은 인석은 문인석도 무인석도 아닌 모습으로 어정쩡한 모습입니다.
현재는 깔끔하게 능역이 관리되고 있습니다만, 2001년에는 관리가 소홀해서 도굴 흔적까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남한 지역에 몇 기 남아있지 않은 고려 왕릉으로 오랫동안 잘 보존되었으면 합니다. |
▲ 공양왕릉 후경 |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 재위 1389∼1392)과 그의 부인 순비 노씨의 무덤이다. 공양왕은 이성계 등에 의해서 즉위한 이름뿐인 왕이었다. 조선 건국 직후 원주로 추방 되었다가 태조 3년(1394)에 삼척부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태종 16년(1416)에 공양왕으로 봉하고 고양현에 무덤을 마련하였다. 왕과 함께 묻힌 왕비는 노신의 딸로 숙녕·정신·경화 세 공주와 창성군을 낳았으나 고려가 멸망한 후에 왕과 함께 폐위되었다.
무덤은 쌍능 형식으로 무덤 앞에는 비석과 상석이 하나씩 놓여 있고, 두 무덤 사이에 석등과 돌로 만든 호랑이 상이 있다. 이 호랑이 상은 고려의 전통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조선 초기의 왕릉인 태조와 태종 무덤의 것과 양식이 비슷하다. |
공양왕릉 뒤편에 있는 묘역들은... |
▲ 공양왕릉 뒤편에 있는 묘지군들 |
공양왕릉 능역 뒤로 올라서면 7~8기의 묘지들이 있습니다. 대부부분 묘비에는 申公之墓란 묘비들이 여럿 보입니다. 신씨 집안 사람들의 묘들이 왜 여기 있는 것인지...
당시 정연 가문은 신흥세력인 신숙주 가문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명문이며, 왕실과 이중삼중으로 혼맥을 형성한 막강한 가문이었습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볼 때 전 공양왕릉이 묻혀있는 이 산의 원 주인이 정연 가문이었다가 연일정씨가 신숙주의 며느리가 되면서 재산을 분재받아 이후로 고령신씨의 재산이 된 것으로 추측합니다." |
고양시 공양왕릉 위치도 |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65-1, 산65-6
지하철 3호선 원당역 5번 출구로 나오면 고양시청까지 1Km 정도 걸어가서 왕능골 가는 버스 승차.
풀소리님께서 알려주신 대중교통정보는... 명성운수 5번, 82번, 85번, 85-1번, 800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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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양왕릉을 카페에서 소개하자마자 풀소리라는 분이 공양왕릉 뒤편에 있는 무덤군에 대해서 꼬리글로 알려 주셔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공양왕릉 위쪽에 있는 무덤떼 중 맨 위에 있는 무덤(사진 중 맨 끝)이 신숙주의 손자이자 대제학을 지낸 당시의 일류 명사 기재(企齋) 신광한의 무덤입니다. 공양왕릉과 신광한 무덤 사이에 연일정씨 무덤이 있는데, 이분은 안평대군의 장인인 병조판서 정연(鄭淵/ 송강 정철의 고조할아버지)의 증손녀이며, 신광한의 어머니입니다. 즉, 신숙주의 며느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