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여행(9) - 지역별 왕릉군(16) - 1편 |
16. 동구릉지구 관리소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그 동안 왕릉 여행을 하면서도 동구릉 만큼은 자료를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아서 소개를 못했었습니다. 9개의 능을 한 번에 소개하는 자료도 그렇지만 9개의 능을 답사하는데만도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본 왕릉 여행에서는 동구릉에 있는 9개의 왕릉을 동선에 따라서 3곳의 능역씩 3편으로 나누어서 간단하게 사진으로만 소개하고 넘어갑니다. |
동구릉 능역 배치도 |
동구릉은... |
조선을 세운 태조의 무덤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뒤 조선시대를 통하여 가족무덤을 이루고 있는 왕릉군이다. 동구릉이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개의 무덤이란 의미로, 무덤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동칠릉이라 불렀는데 철종 6년(1855)에 수릉이 옮겨진 이후 동구릉으로 굳어졌다. 태조가 죽은 뒤 태종은 서울 가까운 곳에 후손들이 묻힐 좋은 땅을 찾다가 하륜(河崙)에 의해 이곳을 무덤지역로 정하였다고 한다. 400여 년에 걸쳐 왕릉이 자리잡았음은 동구릉의 지세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 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라 하겠다. 동구릉에는 1대 태조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무덤인 현릉, 14대 선조과 의인왕후·계비 인목왕후의 무덤인 목릉,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무덤인 휘릉,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무덤인 숭릉,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의 무덤인 혜릉,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 추존 문조대왕과 신정왕후의 무덤인 수릉, 24대 헌종과 효현왕후·계비 효정왕후의 무덤인 경릉 등 9개의 무덤이 있다.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을 기본으로 삼아서 만들었으며, 조선왕조 최초의 왕릉으로서 이후 왕릉의 본보기가 되었다. 동구릉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왕릉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무덤을 만들 때 각 무덤에 따른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재실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각 무덤에 재실은 없고, 9개 무덤을 하나의 경계지역으로 하여 구릉 남쪽에 재실이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중앙 북쪽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동쪽에 3개, 서쪽에 5개의 무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의 왕릉 중 한 지역내에 왕릉군을 이루고 있는 곳은 서오릉과 서삼릉이 있으나, 동구릉에 가장 많은 무덤이 있다. |
동구릉을 들어서면... |
▲ 동구릉 입구 전경 |
▲ 동구릉 입구의 홍살문 |
▲ 동구릉 재실(관리소로 사용) |
동구릉 매표소 앞의 녹지 공간에 멋진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습니다. 매표소를 들어서면 크고 넓은 홍살문이 있으며, 조금 더 가면 우측에 재실이 보이는데, 현재는 동구릉 관리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
수릉은... |
▲ 수릉 홍살문에서 바라 본 전경 |
▲ 수릉의 참도에서 바라 본 전경 |
▲ 수릉 비각 |
동구릉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왕릉이 수릉으로 합장릉입니다. 또한, 참도 주변의 넓은 공간에는 잔디가 깔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잔디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정자각의 보수 공사가 끝나서 깨끗합니다. |
▲ 수릉 좌측 석물 |
▲ 수릉 능역 |
▲ 수릉 우측 석물 |
수릉(綏陵)은 추존(追尊) 황제 문조(文祖)와 신정(神貞) 황후의 능이다. 문조는 1809년 순조의 아들로 태어났고 4살이 되던 1812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9세부터 순조의 명으로 대리 청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정 왕후는 83세까지 천수를 누리면서 조선 후기의 정국을 좌지우지한 여장부였다. 1808년에 태어나 1819년 왕세자 빈으로 책봉되고 1827년 헌종을 낳았다. 헌종이 왕통을 이어받고 남편이 익종으로 추대되자 왕대비에 올랐고 후사 없이 승하한 철종 뒤에는 대왕 대비가 되어 왕실의 권한을 이끌게 되었다. 또한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을 즉위케 하고 수렴 청정을 하며 민비가 세력을 잡을 때까지 흥선대원군과 함께 정국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오랜 장수로 조선 후기의 잇따른 정변과 열강의 재난을 겪기도 하였다. 1890년 승하하여 문조의 능과 합장하였다. |
현릉은... |
▲ 문종 능역 전경(정자각 방향의 좌측 언덕) |
▲ 현덕왕후 능역 전경(정자각 방향의 우측 언덕) |
두 번째 만나는 능이 동원이강릉인 현릉입니다. 모든 왕릉은 거의 홍살문 바로 앞에서부터 참도가 있는데 현릉의 참도는 홍살문 10여 미터 앞에서부터 박석이 깔려 있으며, 그 와 함께 배위 역시 홍살문 이전에 있습니다. |
▲ 현릉 입구 전경 |
▲ 현릉 참도 및 정자각 |
▲ 현릉 정자각 좌우로 동원이강 |
그리고 참도는 3번 방향을 틀어서 정자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조 왕릉 중에서 참도가 제일 긴 왕릉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릉의 주변은 상당히 넓어서 수릉에 이어서 많은 아이들의 소풍 장소로 또한 휴식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
▲ 현덕왕후 능역에서 바라 본 문종릉 |
▲ 현릉의 동원이강을 한 화면에... |
▲ 문종 능역에서 바라 본 현덕왕후 능 |
현릉(顯陵)은 건원릉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현릉은 조선 제5대 문종(文宗)과 현덕(顯德) 왕후의 능이다. 문종은 세종의 장자로 1414년에 태어났다. 세종의 건강상의 이유로 일찍부터 섭정을 했던 문종은 1450년 즉위 후 언로를 열어 민의를 파악했으며 문무를 중용하여 능숙하게 정치를 꾸려 나갔으며 군사 제도의 개편을 하기도 하였다. 재위 2년 4개월만에 몸이 허약한 문종은 1452년 보령 39세로 승하하였다.
문종의 시호는 공순(恭順)이다. 생전에 문종은 부왕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사후 부왕을 가까이 모시고자 영릉(寧陵)의 오른쪽 언덕을 장지로 잡았으나 광(壙)을 파보니 물이 나고 바위가 있어 취소하고 이곳 건원릉 동쪽에 모셨다고 한다. |
목릉은... |
현릉을 나와서 길을 따라 가다보면 건원릉이 보입니다만, 건원릉 우측 오솔길을 따라가면 최근에 한시적으로 개방한 목릉이 나옵니다. |
▲ 개방 이전의 입구 전경 |
▲ 목릉 홍살문 앞에서... |
▲ 최근에 보수한 정자각과 비각 |
목릉은 2006년 6월 6일부터 한시적으로 개방되었으며, 매년 5월부터 10월 하순까지(산불경계기간 비공개) 공개하며, 다른 능과 달리 자유 관람으로 사초지와 능역까지 올라가서 석물의 직접관람이 가능합니다. |
▲ 인목왕후릉으로 가는 길목에서 뒤 돌아 본 전경 |
▲ 선조의 능역 위에서 내려다 본 전경 |
목릉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다른 동원이강릉과 달리 한 원에 3개의 강(줄기, 언덕)을 가진 능입니다. 그래서인지 능역이 굉장히 넓습니다. |
▲ 선조의 능역 전경 |
▲ 의인왕후의 능역 전경 |
목릉의 정자각 바로 뒤편에는 선조의 능역이 자리하고 있으며, 50여미터 떨어진 우측 강에는 선조의 정비인의인왕후의 능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 의인왕후의 능역에서 있는 석물 중에서 훼손된 석물들 |
의인왕후의 능역에 있는 석물들은 6.25 동란때 수난을 많이 당해서 왼쪽 석마 한 마리는 주둥이가, 오른쪽 석마 1마리는 머리가 아주 깨져서 없어졌으며, 문인석도 온몸이 여기저기 깨져있어서 보기가 흉합니다.석양 한 마리도 얼굴이 깨져있습니다. |
▲ 인목왕후 능역으로 가는 돌길 |
▲ 홍살문에서 바라 본 의인왕후릉 |
▲ 인목왕후릉 앞의 수복방터 |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의 능역은 정자각 앞쪽 우측 멀리 떨어져 있으며, 거리는 한 몇 백미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선조와 의인왕후의 능역 아래서부터 돌길이 인목왕후 능역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수복방터에는 주초석이 남아있습니다. |
▲ 인목왕후의 능역 전경 |
목릉(穆陵)은 동구릉에서 가장 안쪽, 건원릉의 동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목릉은 조선 제14대 선조(宣祖)의 능이다. 선조는 중종의 손자이고 중종의 일곱번째 아들인 덕흥(德興) 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1552년에 태어났다. 선조는 명종의 총애를 받으며 성장하여 하성군(河城君)에 봉해졌다가 명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1567년 왕으로 즉위하였다.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어질었던 선조는 학문에 정진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훈구 세력을 물리치고 사림을 대거 등용했고 이황과 이이 등을 우대하여 학문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그러나 재위 때 두 차례의 왜란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와 전국토의 황폐화 그리고 궁궐과 귀중 도서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잃게 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왜란이 끝난 후 선조는 복구 작업에 정진하나 흉년이 계속되고 정치의 안정을 찾지 못하던 중 1608년 5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목릉에는 대왕릉 이외에 비(妃) 의인(懿仁) 왕후와 계비(繼妃) 인목(仁穆) 왕후의 능이 위치하고 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각 3면의 곡장이 쳐진 3개의 언덕 위에 봉안된 것은 동원 이강 형식의 변형인 동원(同原) 3강(岡) 형식이다 |
동구릉 2편에서 계속... |
동구릉 찾아가는 길 |
소재지 : 경기 구리시 인창동 산2-1 버스 - 서울 → 동서울 → 구리시 → 동구릉 - 서울 → 의정부 → 퇴계원 → 동구릉 - 서울 → 화랑대사거리 → 구리시 → 동구릉 ※ 구리시내에서 퇴계원 방향(43번국도)으로 약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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