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헌공 만구와 김진구(景獻公 晩求窩 金鎭龜)-서석 김만기의 아들
1651(효종 2)∼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수보(守甫), 호는 만구와(晩求窩). 반(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영의정 익겸(益謙)이고, 아버지는 영돈녕부사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만기(萬基)이며, 어머니는 한유량(韓有良)의 딸이다.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오빠이다.
168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관이 되어 『현종실록』찬수에 참여하였다. 이어 정언(正言)·헌납(獻納)·교리(校理)·응교(應敎)·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684년 경상감사가 되었으며 이어 승지가 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에 의하여 남인정권이 들어서자 김석주(金錫胄)와 함께 가혹한 수법으로 남인을 숙청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게 되자 풀려나 호조판서에 기용되고, 곧 경기도관찰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듬해 도승지·전라도관찰사 등을 거쳐서 1696년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세자가례부사(世子嘉禮副使)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형조·공조·호조의 판서를 역임한 뒤 1700년 지돈녕부사·어영대장·수어사 등을 거쳐, 이듬해 우참찬·좌참찬, 1702년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경헌(景獻)이다.
경헌공 김진구 묘-서석 김만기의 묘 앞에 위치한다
충문공 북헌 김춘택(忠文公 北軒 金春澤)-서석 김만기의 손자
1670(현종 11)∼1717(숙종 4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백우(伯雨), 호는 북헌(北軒). 생원 익겸(益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숙종의 장인인 만기(萬基)이며, 아버지는 호조판서 진구(鎭龜)이다.
증조모 윤씨에게서 학업을 익히고, 종조부 만중(萬重)으로부터 문장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특이하여 김수항(金壽恒)의 탄복을 받기도 하였다. 서인·노론의 중심가문에 속하였으므로 항상 정쟁의 와중에 있었으며, 특히 1689년의 기사환국 이후로 남인이 정권을 담당하였을 때에는 여러 차례 투옥, 유배되었다.
1694년 재물로 궁중에 내통하여 폐비 민씨를 복위하게 하고, 정국을 뒤엎으려 한 혐의로 체포되고 심문받았으나,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축출되면서 풀려났다. 그 뒤 노론에 의해서는 환국의 공로자로 칭송받았으나, 남구만(南九萬) 등의 소론으로부터는 음모를 이용한 파행적 정치활동을 행하였다고 공격받았다.
1701년 소론의 탄핵을 받아 부안(扶安)에 유배되었으며, 희빈장씨(禧嬪張氏)의 소생인 세자를 모해하였다는 혐의를 입어 서울로 잡혀가 심문을 받고, 1706년 제주로 옮겨졌다. 시재가 뛰어나며 문장이 유창하였고,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북헌 김춘택 묘(좌), 서석 김만기 묘(중), 만구와 김진구 묘(우)
북헌 김춘택 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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