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여행(6) - 봉분의 형태/배치에 따른 분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이제, 능역 위로 올라 오셨으니 능의 형태 및 배치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조선조 왕릉은 봉분(封墳) 형태 및 배치에 따라서 5가지로 분류됩니다.
조선조 왕릉(북한에 있는 2기와 연산군묘와 광해군묘 포함) 44기를 왕릉의 형태별로 분류를 해 보았습니다.
44기 중에는 단릉 15기, 쌍릉 14기, 합장릉 8기, 동원이강릉 6기 그리고, 삼연릉 1기 순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단릉과 동원이강릉은 조선조 전기에, 쌍릉과 합장릉은 조선조 후기에 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 의릉의 선의왕후릉 뒷 모습 |
1. 단릉(單陵) |
◈ 왕과 왕비의 능이 지역적으로 다른 곳에 따로 조성된 경우. 왕은 정비나 또는 계비와 함께 묻히는 것이 일반적이나, 단릉으로 따로 조성된 왕의 능도 3기(태조의 건원릉, 단종의 장릉, 중종의 정릉)나 있습니다.
44기 중에 단릉이 제일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특이한 것은 정비가 먼저 승하하면 단릉으로 쓰고, 나중에 왕이 승하하면 정비 옆에 쌍릉이나 합장릉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더군요.
태강릉의 태릉(문정왕후의 능) ▶ |
조사를 해보니, 1기(16대 인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비가 아닌 계비와 쌍릉이나 합장릉 등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일반인은 조강지처가 우선인데, 왕들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먼저 죽은 자와의 세월이 30년 이상 차이가 나면 합장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시 왕의 권력이나 정치적인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
2. 쌍릉(雙陵) |
◈ 한 언덕에 나란히 봉분이 나뉘어 있는 경우이며, 사람이 보는 위치에서 왼쪽이 왕의 능, 오른쪽이 왕비의 능입니다.
쌍릉의 형식이면서 좌,우가 아닌 위, 아래로 배치된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을 동원상하봉이라고 합니다. 이 경우는 곡장이 하나이며, 위(뒤)가 왕의 능이고 아래(앞)가 왕비의 능입니다. 능 과 능 사이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도 곡장이 하나이면 쌍릉으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동원상하봉의 석물은 왕과 왕비의 능에 따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쌍릉이면서 동원상하봉의 형식을 취한 곳은 성북구에 있는 의릉과 여주의 녕릉이 있습니다. 또한, 의릉의 동원상하봉은 바로 뒤에 있는데 비해서 여주 녕릉은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동원상하봉은 한 화면에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
▲ 쌍릉(헌인릉의 헌릉) |
▲ 동원상하봉(여주의 녕릉) |
▲ 왕비 능에서 바라본 왕의 능 |
3. 합장릉(合葬陵) |
◈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경우(여주 세종의 영릉, 파주 인조의 장릉 등)
봉분이 하나인 단릉과 합장릉은 혼유석(상석)으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봉분 앞에 혼유석이 1개일 경우에는 단릉으로, 혼유석이 2개일 경우에는 합장릉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를 해 보니 합장릉임에도 불구하고 혼유석이 1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4대 세종의 영릉 이후에 16대 인조의 장릉이 두번째로 합장릉으로 조성되었으며, 22대 정조 이후에는 합장릉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
▲ 합장릉(여주 세종대왕의 영릉) |
▲ 합장릉 혼유석 2개(여주 영릉) |
▲ 합장릉 혼유석 1개(인릉) |
4.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 하나의 정자각 뒤로 한 언덕의 다른 줄기(능간 30~50여 미터 떨어짐)에 별도의 봉분을 설치한 경우에 동원이강릉이라고 합니다.
항상 왼쪽 언덕이 왕의 능이고 오른쪽 언덕이 왕비의 능이나 예외로, 서오릉의 경릉(추존 덕종) 한 곳만은 오른쪽이 왕의 능, 왼쪽이 왕비의 능임. 오른쪽 사진은 동구릉의 현릉입니다.
사진의 왼쪽이 왕의 능이고 오른쪽이 왕비의 능인데, 오른쪽은 석물만 일부 보일 겁니다.
동원이강릉은 능과 능 사이가 50여 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서 사진이 한 화면에 잡히지 않더군요. |
동구릉에 있는 14대 선조의 목릉은 동원에 선조와 의인왕후 그리고 인목왕후 묘역은 한 원(原)에 3개의 강(岡)으로 따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목릉은 비공개 지역이었습니다만, 2006년 6월 6일부터 공개(매년 5월부터 10월까지)되었습니다. |
5. 삼연릉(三連陵) |
◈ 한 언덕에 나란히 3개(왕, 왕비, 계비)의 봉분이 나뉘어 있는 경우. 동구릉에 있는 24대 헌종의 경릉이 유일합니다. |
중종과 숙종의 사후 운명은... |
중종(조선 제11대)은 권력의 암투가 많았던 시기로 왕비가 3명이나 되면서도 왕을 합하여 4명 모두, 능이 다른 곳(정릉,온릉,희릉,태릉)에 따로 조성되었습니다.
초기에 중종은 제1계비인 장경왕후의 옆에 능이 조성(서삼릉)되었으나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던 제2계비인 문정왕후에 의해 능이 옮겨졌으며(선정릉의 정릉), 중종과 같이 묻히길 원했던 문정왕후도 결국, 사후에는 중종과 같이 묻히지 못하고 능이 따로 조성(태릉)되었습니다.
중종의 정비(正妃)인 단경왕후는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 왕비책봉 1주일만에 폐위되었다가 사후에 복위되어 묘에서 왕릉(온릉)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중종과는 반대로 숙종(조선 제19대)은 왕비, 제1계비, 제2계비와 함께 4명이 모두 서오릉내에 조성되어 있어서 사후에도 가까이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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